본문 바로가기
플레이 후기/더블 크로스

RE:HALOS : <검은 섬광> 임인섭

by 에이밍 2023. 3. 28.

 

 

 

 후후, 그럼 후기 본편을 시작해보겠습니다:D 제목 보고 눈치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이번 레니워 캠페인 후기는 PC별 후기로 나눠보려고 합니다! 캠페인 내내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니, 이번에는 제 입장에서 다른 PC분들을 하나하나 스포트라이트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쪼-끔 무리인 건 알지만^0^;; 저희가 지금까지 플레이한 로그를 모두 읽으면서 각 PC별 소감을 정리해보았습니다:D 첫 PC로는 RE:HALOS의 주춧돌이었던 인섭이형으로 기둥을 세우고 시작할까 합니다. 제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해석이니만큼 굉장히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내용이 될 것임을 미리 선언합니다+ㅁ+ 해석에 대한 불만이나 또 다른 해석은 후담팟에서 들을 테니까요=) 

 

 휴,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백두산 흑호랑이 검은 섬광, 임인섭 씨에 대해서 얘기해보죠.

 

 이하의 글은 <레니게이드 워> 캠페인의 전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
졈이된 너를 쓰러뜨린다.
그것이 히어로라는 일을 하는 우리가 할 일이라는 것.

또 다른 팔라딘

 

 인섭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팔라딘'이에요. 이상하죠? 인섭을 떠올릴 만한 소재는 얼마든지 있는데도 팔라딘은 제일 먼저 떠올린다는 게. 하지만 생각해보면 정말로 닮았습니다. 영웅으로서의 태도나 체격(?) 같은 것이... 이 생각이 처음 들었던 건, 작중에서 블래스터가 인섭의 공격을 받으면서 했던 대사를 봤을 때였어요.

 

 

 팔라딘과 같은 시선을 하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블래스터가 하는 말이라서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져요. 실제로 인섭 또한 자신과 팔라딘을 어느 정도 동일시하고 있지 않았나 싶은 장면도 있었고요,


 인섭이 저래 보여도(?) 화는 잘 내지 않는 편인데, 캠페인 통틀어서 가장 화를 내는 장면이 바로 여기거든요. 그렇게 폭주한 나유타를 상대로도 화낸 적이 없었던 인섭인데... 물론 팔라딘은 어른이고 나유타는 아이니까 분노의 격차가 있긴 할 거예요. 하지만 이건 단순히 '어른이니까 똑바로 해라!' 수준의 분노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팔라딘에 대한 인섭의 이해도는 매우 높게 느껴지거든요.

 

 이게 3화에 나온 대사인데,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팔라딘의 광기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팔라딘이 어떤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걸 눈치챈 게 인섭이었어요. 팔라딘은 단편적으로만 이해했다면 도달할 수 없는 해석이었다고 생각해요. 겉보기에 팔라딘은 '훌륭한 영웅'이기는 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제 예측대로 인섭이 팔라딘과 자신을 동일시했다면 그 이유는 뭘까요? 그건 둘 다 전전세대의 영웅이기 때문입니다. 인섭도 팔라딘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은 전후세대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가득해요. 둘의 위상은 다르지만 사회적으로는 완전히 같은 종류의 짐을 짊어진 채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인섭은 또 다른 팔라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만.

 

 이 둘을 움직이는 원리는 또 완전히 달라요. 팔라딘의 명제는 '모두를 구한다'에요. 이게 참 무서운 소리인 게, 이 '모두'는 사실 빌런도 히어로도 시민도 가리지 않는 개념이거든요. 팔라딘이 다크나이트가 되어서 하려고 했던 게, 모든 빌런의 소멸이 아니라 '아무도 희생하지 않는 세계'였던 걸 생각해보면 더 소름 끼치는 부분이죠... 사실 그에게 히어로나 빌런, 그런 경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던 거예요. 아무도 죽지만 않는다면야. 그렇기 때문에 팔라딘은 빌런이 될 수 있었던 거고요.

 하지만 인섭은 정반대입니다. 인섭에게 가장 중요한 건 히어로와 빌런의 경계에요. 인섭은 캠페인 전체에 걸쳐 히어로와 빌런의 경계를 아주 철저하게 나누고, 빌런을 처분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실상 비질런티가 되어 영웅조차 아니게 된 나유타를 보면서 한다는 소리가 '빌런만을 되지 마라'일 정도로, 인섭에게 있어서 빌런과 히어로의 경계는 매우 중요해요. 그렇다고 빌런을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인섭에게는 히어로도 빌런도, 다른 PC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젊은 시절의 과오를 그냥 혼자 덮어두겠다?
혼자서라면, 해결할 수 있겠다 생각한건가?
이거참 미안한데, 난 내 파트너가 그 꼴이 났다면 내 손으로 죽였어."

시대적 책임감

 

 인섭은 전전세대의 영웅입니다. 레니게이드 워를 직접 겪어내고, 살아남고, 그 결과물이 산출되는 현시대를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입장이에요. 이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생각해봅시다. 실질적인 전쟁은 끝났는데도 그 여파가 계속 기괴한 형태로 이어지는 상황인 거예요. 인섭에게 있어서 전쟁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교수님이 전쟁의 반대말은 '일상'이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처음 실감했던 기억이 나요. 일상을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건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하게 편재하는 거니까. 그런데 전쟁은 '일상은 빼앗길 수 있는 것'이라는 전제를 가능하게 만들어요.

 

 설령 전쟁이 끝나고 다시는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일상이 부서지는 성질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게 전쟁이 남기는 진짜 흉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인섭의 세계는 일상을 돌려받은 것 같은 느낌조차도 받을 수 없는 세계인 거예요. 그는 매분 매초 자신들의 세대가 해온 일의 결과로 점점 변해가는 세상을 지켜봐야 해요. 새삼 이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까 싶더라고요. 영원히 되살아나는 좀비들과 영원히 전쟁을 치러야 하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의 입장이란.

 팔라딘이 사후, No.2였던 피스가 No.1으로 취급받는 현실에 인섭이 분노해서 UGN을 뒤집어엎는 장면이 있었죠. 이것만 봐도 인섭이 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인섭은 레니게이드 워를 승리로 이끈 히어로들이 랭킹제라는 명목으로 계속 수면 위로 끌려 나오는 게 싫은 거예요. 인섭에게 레니게이드 워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진짜 전쟁이었으니까요. 그 여파로 지금까지 고통받아야 하는, 끝나지 않는 전쟁.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빌런'을 향한 인섭의 태도도 사뭇 다르게 보입니다.

 

 

 빌런이 된다면 파트너조차 죽이겠다... 단순히 빌런은 나쁜 놈이니 때려죽이겠다는 선언으로 읽히지는 않죠? 전 이 대사에서 전 인섭의 내면에 깊숙히 박힌 책임감을 느꼈어요. 그에게 악이란, 자신들의 세대가 만든 전쟁의 부산물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인섭이 빌런을 처단하는 행위는 '내가 지은 죄를 내가 손으로 처리하겠다'는 심오한 결심인 셈이죠.

 

 즉, 인섭의 히어로 활동은 전쟁의 여파로 남아있는 사체를 스스로 먹어 치워서 없애기 위한 의식 행위인 셈입니다. 호랑이로 태어났지만 하이에나를 자처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쌓아온 일상이 없어지면? 난 뭘 할 수 있지?
그냥 좀 커다란 호랑이 형태의 동물이 패악질 부리는 것 밖에 더 되겠지?
그건...재미없어.

잿더미에서 사체를 헤집는, 흑색 호랑이

 

 얘기가 나온 김에 그럼 인섭이 히어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보죠. 인섭은 빌런을 배척하는 만큼, 히어로의 역할에 대해서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몇몇 대사에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유타가 RE:HALOS의 끝을 고하는 장면이었을 거예요. 다들 RE:HALOS의 재결합 여부에 초미의 관심사를 세우고 있을 때, 인섭만은 나유타에게 '히어로이길 포기한 거냐'고 묻습니다. 인섭에겐 RE:HALOS보다 나유타가 히어로가 아니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임을 의미합니다.

 

 왜일까요? '히어로'라는 역할은 인섭에게 있어서, 그를 시대적 죄책감으로부터 구원하는 유일한 정체성이기 때문이에요. 인섭은 일상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기서 인섭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죠. 레니게이드 워는 분명히 모두에게 상흔을 남긴 무서운 전쟁이었어요.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전쟁의 결과로 자신은 히어로가 되었고, 그 전쟁의 결과로 남은 잔챙이들을 먹어 치우면서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었어요. 죄책감이 없었다면 전쟁이 끝난 후에 그냥 졈이 되어서 미쳐 날뛰어도 될 일이니까요.

 

 한마디로 인섭에게 레니게이드 워는 매우 이중적인 의미를 가져요. 그 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빌런이 날뛰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 빌런을 잡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거죠. 

 결국 인섭은 세계의 양면성을 모두 포용해야만 자신을 용납할 수 있는, 어른에게나 가능한 어려운 포지션을 요구받습니다. 물론 그런 포지션에 놓였다는 걸 인지할 만큼 메타 인지가 높은 것 같지는 않아요. 그 점에 대해서는 오히려 나이팅게일이 더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팔라딘이 너무 과해서 그렇지, 인섭도 싸울 때 보면 엄청 무리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잿더미 속에서 파헤친 사체의 몸통을 물고 머리를 흔드는 게 최선인 사내죠. 하지만 한 수 위인 나이팅게일에 입장에서 보면 이것도 사춘기(?)에 불과한 거예요. 그렇게 무리할 필요가 없는 데도 무리하는 것이니 말이에요.

 

 그런 인섭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같이 알아주는 사람은 바로 디아볼로스입니다.

 


애초에 말야, 네녀석은 너무 시니컬해.
뭐, 그러니 이 몸이 좀 더 과열되어도 문제없다 이거지.

유일한 동료

 

 레니워캠만의 매력이라고 하면 역시 우스꽝스러운(?) 히어로가 된 카스가 쿄지와 관계를 쌓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진 개그캐로 소모되는 것 같기는 하지만, PC5와의 관계에 의해 카쿄도 매우 다양하게 변주되는데, 저희 팟의 디아볼로스는 인섭과의 조화로 전전세대의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동료로 조형이 되더라고요. 그걸 또 귀신같이 이해하고 운용하신 우롱님의 배려와 천재성이 돋보이더란...ㅠㅠ

 

 디아볼로스도 전전세대의 영웅입니다. 인섭과 같은 세계를 보고, 같은 결과를 보고 있는 인물이에요. 하지만 이 둘의 태도는 또 사뭇 달라요. 


 7화의 <Crumble Days> 시점에서 그는, 레니워의 세계를 '지켜온 것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인섭이 레니워의 세계를 원하든 원치 않든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르죠. 레니게이드 워를 포함해서 현재 엔터테인먼트가 된 히어로의 세계까지 그 모든 게 다 자기가 '지켜낸 것'이라는 거예요. 



 역시 별생각 없이 사는 게 최고다 카쿄만큼은 인섭의 '시니컬함'을 인지하고 있어요. 사실 RE:HALOS 멤버들만 해도 인섭을 의지할 수 있는 좋은 형으로 생각하니, 인섭이 내적으론 얼마나 시니컬하고 차가운 사람인지 전혀 모른단 말이에요.

 

 하지만, 디아볼로스는 압니다. 카쿄 역시 코드네임이 상징하듯 지옥에서 태어난 악마니까요. 전후세대의 영웅들은 결코 알 수 없는 그 무게감을 유일하게 공유할 수 있는 사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전 우롱님이 이 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롤플레잉을 해주셨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카쿄가 그냥 가벼운 개그캐였다면 나오지 않았을 대사죠. 카쿄는 다 알고 있어요. 자신들이 싸운 전쟁이 무얼 의미하고, 그 결과가 얼마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지도요. 하지만 그는 그런 모든 것을 알고도 그 싸움에 뛰어든 자신은 '위대했고' 현재의 결과는 자신들이 '지켜낸 것'이라는 라벨을 새로이 붙였던 거예요.

 인섭이 지금까지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카쿄 덕분일지도 몰라요. 카쿄를 단순한 개그성 NPC가 아닌 PC를 떠받치는 주춧돌로 만들어주신 게 정말 좋았어요. 녹차님이 만든 인섭이라는 캐릭터를 우롱님이 정확하게 읽고 거기에 맞는 '디아볼로스'를 만들어서 합을 맞춰주신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놈, 토끼지만 맹수다.
우리가 지켜주는 게 아니라, 같이 싸우는 팀이라고.

전후세대에 대한  기대

 

 한편, 자기 자신과 자신의 세대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인섭은 전후세대에게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분명히 잘못된 지뢰밭이었을 텐데도 거기서 어떻게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려는 어린 영웅들을 볼 때 인섭을 자신의 기대를 감추지 않아요.

 

릿카를 보며
나유타를 보며

 

 아무리 인섭과 디아볼로스, 그리고 팔라딘 같은 영웅들의 레니게이드 워의 상흔을 지우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결국 이후를 살아 나가는 건 전후세대의 사람들입니다. 인섭은 본능적으로 그들이 잘 살아가기를 바라요. 그게 전전세대가 죄책감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고요. 지뢰는 우리가 모두 캐어낼 테니, 내가 산 채로 삼켜서 없앨 테니, 너희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리고 저는 우롱님이 이런 점을 진짜 소름 끼치게 잘 파악해서 노렸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 장면이 바로 5화에서 요나가 준이 세츠나에게 희생을 요구하던 씬이었어요.

 

 이 장면은, 정말 인섭에게는 결코 있어서도 안 되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장면입니다. 일그러진 빌런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전후세대의 아이들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아이들은 그걸 고분고분 받아들이는 상황이라뇨. 이 세츠나 서사는 진짜 인섭에게는 크리티컬 히트 그 자체인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인섭이 분노하고 세츠나에게 애착을 품고, 나중에 세츠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기까지의 서사로 주르륵 이어지는 것도 놀라웠어요.

 

 그리고 세츠나의 정체를 알게 된 직후, 세션 통틀어 인섭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인섭이 가장 지키고 싶어 했고, 가장 아파하고, 가장 원치 않는 그림을 눈앞에 들이대다니... 진짜 우롱님도 천재고, 이걸 받아서 고통스럽게 느끼는 인섭을 묘사한 녹차님도 미쳤고... 후, 정녕 인섭에겐 고통밖에 없는 것일까요. 이 세상에서 그가 기대를 걸만한 건 하나도 없는 것일까요.

 


우.윷.빛.깔. 프루츠☆펀치!!!!!!

궁극의 희망, 아이돌

 

 전시 상황에는 엔터테인먼트가 부흥할 수가 없습니다. 존재할 수는 있지만 그 형태는 매우 기이하거나 소극적이죠. 즉, 엔터테인먼트의 부흥은 전시 상황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가끔 전 엔터테인먼트의 본질이 인간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여튼, 그런 의미에서 인섭이 아이돌 덕후인 것은 매우 개연성 있는(!) 설정이 됩니다. 아이돌은 엔터테인먼트의 꽃이니까요. 레니게이드 워의 결과로 지뢰밭이 된 세계를 거니는 것이 고통인 인섭에게 아이돌은 전쟁은 끝났다는 걸 주기적으로 알려주는 사인인 셈이에요.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오히려 인섭의 덕질(?)은 작중에서 매우 살살 ㅋㅋ 표현된 편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아이돌이 있는 한 인섭은 안심할 수 있어요. 엔터테인먼트를 즐겨도 될 만큼 이 세계가 안전하다는 뜻이니까요.  여기서 레니워 세계관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ㅡ 특히 아이돌 ㅡ 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해석이 몇 가지 있는데... 이건 요나편에서 집중적으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ㅋㅋ

 

 아무튼, 인섭에게 있어서 아이돌은 지뢰밭에서 피어난 들꽃 같은 것이지요. 얼마나 소중하겠어요. 빼앗긴 들에 봄이 와버렸으니:)

 


 


검게 그슬려도, 찢어지고 녹아내려도, 네놈에 굴할 것 같냐!

전쟁의 끝

 

 그럼... 슬슬 결론입니다. 우선 지금까지의 이야기에 공감하셨는지 모르겠네요;D 시작할 때부터 얘기했지만 피드백은 후담팟에서 실컷 받겠습니다😎 아무튼 레니게이드 워의 상흔을 지닌 채, 전후세대에 대한 죄책감을 품고, 필사적으로 빌런을 배척하며 살아온 이 검은 영웅은 어떤 결론에 도달했을까요?

 

 사실 지금까지 얘기한 인섭에 대해서 생각하면, 그는 이스카리오테의 계획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그의 계획은 오버드라는 개념 자체를 이 세계에서 없애는 거니까요. 그럼 레니게이드 워 같은 건 일어나지도 않을 거고, 그가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갈 필요도 없는 것지요.

 

 

 그러니 이론적으로 이스카리오테의 계약에 가장 많이 흔들릴 만한 사람은 인섭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늘 다른 법이고... 뭣보다 이스카리오테가 너무 늦게 왔죠:) 인섭은 이미 자신만의 사춘기를 이겨내고 결론에 도달한 상태였습니다. 그가 성숙의 단초로 잡은 근거는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에요.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흔한 말이거든요. 그런데 인섭이 말하는 뜻은 그 선언의 출발점 자체가 다릅니다. 세상이 바뀌더라도 이 몸에 새긴 흉터를 품고 살아가겠다는 거예요. 명제가 아니라 선언으로서 말한 거죠. 그러니, 더 정확한 워딩은 '세상이 바뀌지 않아도 상관없다'인 겁니다.

 

  분명 책임은 무겁고 가끔 시대의 허벅지를 찢고 태어난 잘못된 디오니소스들을 볼 때마다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런 세계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현재의 자신 ㅡ 검은 섬광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입니다.

 


 선택에 관해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선택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내가 선택한 것을 좋게 만들겠다는 그 의지가 중요한 거죠. 어떤 것을 선택했느냐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건, 자신이 그 후에 져야 할 책임을 선택지에게 모두 떠넘기겠다는 의존적인 태도거든요. (이 부분은 나유타편에서 신랄하게 다를 예정입니다;)

 

 

 자신의 선택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망가지지 않았던 것으로 만들겠다는 선언. 이로 인해 인섭은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가족의 탄생'으로 이어지는데... 아니, 우롱님...<ㅇ> 당신은 대체...ㅠ 이 세계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순간, 그에게 전쟁의 아픔에서 비롯된 허상이 아닌 정말로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기는 이 구조는 대체...

 

 인섭이 형의 마지막 씬제의 제목은 '이삿날'입니다. 이건 단지 장소를 옮기는 의미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전전세대에서 전후세대로의 완전한 이전을 의미하죠. 허상의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던 것에서,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밥을 먹고 아이들의 미래를 그리는 삶으로 이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인섭은 비로소 지뢰밭을 떠나게 됩니다. 더는 지뢰를 파내어 삼킬 필요따윈 없어요. 온갖 소동물이 모여드는 산기슭에서 곰방대를 태우며 그 온기를 누리면 될 뿐입니다. 인간이 도저히 짊어질 수 없는 '시대'라는 짐을 떠안고 지뢰밭길을 오래토록 걸어 온 이 듬직한 영웅에게 경의를 표해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