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플레이 후기/더블 크로스

RE:HALOS : <Peace V> 하이바 하야토

by 에이밍 2023. 4. 17.

 

 절찬리에 연재 중인 리헤로 PC별 후기^0^)/ 예이~! 즐기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D 그 3탄! 이번에는 리헤로의 막내(?)이자 진정 성장형 히어로였던 피스(V) 하이바 하야토에 대한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V자형 서사였던 나유타와 달리, 하야토는 우상향 직선으로 성장한 PC였죠. 어떤 점에서는 하야토가 정통적인 레니워캠(?)에 더 잘어울리는 히어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요. 하야토가 팔라딘의 후계자였다면 이야기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런 상상이 계속 드는 걸 보니 다른 시간선에서는 하야토가 PC1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네... 하지만 레니빙 따위가 히어로가 될 수 있을 리가 크큭 😈 (나윳끼톤

 

 이하의 글은 <레니게이드 워> 캠페인의 전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수도 없이 생각했어.

 생략된 계승식

 

 하야토 후기를 쓰면서 가장 신경쓰인 점이 '이 녀석은 왜 자기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지 않는 걸까'였어요. 복제체라면 할 법한 고민인데도요. 그보다 하야토에게 중요한 건 '이 세계에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입니다. 자신의 입장을 이미 받아들인상태에서 시작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피스(원본)과 하야토(PC3)의 관계는, 원본과 복사본보다는 장기기증자와 이식자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해요.

 

 

 어쨌든 세션에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하야토가 정체성 혼란을 겪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그 당시의 흔적은 세션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드러나요.

 

 

 저는 이 생략된 부분을 재구성해보고 싶어요. 하야토가 레니빙인 자신의 입장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이 세계를 왜 받아들이기로 했는지에 대해서요.

 

 그걸 위해 우선 하야토의 활약을 순차적으로 따라가면서 하야토를 구성하는 핵심 원리 ㅡ 맹목성 ㅡ 를 파악해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발굴한 핵심 원리를 토대로 하야토의 생략된 자기 서사를 재구성해볼게요.

 

 그럼 이 세상에 인정받을 방법을 찾아 헤매던, 세션 시작 당시의 하야토에 대해서부터 얘기해보죠.

 


팀을 만나기 전에는...
그저 '하이바 하야토'로 있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RE:HALOS라는 사회

 

 이방인이 이 세계에 속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사회의 인정이겠죠. 너 또한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인증이요. 하지만 그런 걸 어떻게 객관적으로 인증할 수 있겠어요? 하야토의 세션은 이 답을 찾아 헤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야토가 내린 최초의 답은 아마도 '훌륭한 영웅이 되어서 인정받는다'였을 거예요. 근처에 딱 맞는 롤모델이 있었거든요. 바로 팔라딘입니다. 

 

 팔라딘, No.1 히어로. 그는 이 세계로부터 플래티넘 인증을 받은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도 가족도 포기하고 사람들을 지킨 결과 모두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죠. 세션 내에서 하야토가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아마 팔라딘은 그의 이상이었을 거예요. 하야토는 팔라딘처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사람들을 위해서 싸우다 보면 언젠가 이 세상에 받아들여질 거라고 믿었겠죠.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그렇지 않았을 거예요.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사람들 눈에 비치는 건 '피스'이지 '하야토'가 아니니까요. 이 세계는 피스의 세계라는 확신만 들었을 겁니다. 그런 하야토에게 단비 같은 제안이 옵니다. ''을 해보지 않겠냐는 거죠.

 

 팀이라는 건 소규모의 사회입니다. 어딜 가도 피스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 세계와 달리, RE:HALOS는 제로부터 시작할 수 있는 하야토만의 사회였습니다. 하야토에게 RE:HALOS는 단순히 함께 모여서 싸우는 조직 정도가 아니었던 셈이죠.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하야토의 이런 생각은 팔라딘의 추락으로 한 번 더 굳어집니다. 전쟁터 한 가운데에서 그의 파멸을 남김없이 목격한 하야토는 변하지 않을 결론을 하나 도출합니다. 팔라딘은 팀이 없어서 무너졌다는 결론이요.

 

 

 그 말대로 팔라딘에게 팀이 있었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추락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문제는, 하야토가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게 RE:HALOS가 해산된 이후라는 거예요.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때였던 거죠.

 

 팀이 없으면 무너진다.

 그런데, 나의 팀도 사라졌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하야토를 해석할 수 있는 가장 큰 키워드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옵니다. 바로 맹목성입니다. 

 


팀은, 정말로... 없는 걸까?

 맹목적 애정 

 

 팀이 없으면 무너진다. 이 결론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정답에 가깝죠. 하지만 하야토에게는 중요한 기준이 빠져 있어요. 왜 그 팀이어야 하는가? 하야토는 이것을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단 한번도 묻지 않았어요. 어찌보면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로 쉽게 팀을 받아들여요. 

 

 뭐, 딱히 거부할 이유야 없죠. 히어로로 이루어진 집단이고 팔라딘의 후계자를 주축으로 결성된 팀이니 문제의 소지도 딱히 없을 것이고요. 그런데 그냥 받아들이는 정도를 넘어서 하야토는 RE:HALOS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했어요. 

 

팀 해산 직후의 모습

 

 모두가 은연 중에 알고 있었던 RE:HALOS의 해산을 혼자만 눈치채지 못한 것, 뒤늦게 그 결과를 알고 화를 내고도 자신의 감정을 정의하지 못하는 것까지. 이 장면에서 하야토의 태도는 다른 PC들과 비교했을 때도 상당히 과격해요. 세션 통들어 하야토가 가장 감정적으로 나온 장면이기도 하고요. 그에게 RE:HALOS가 평균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런 하야토의 애정에는 팀의 퀄리티를 평가하는 과정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어떤 팀이냐는 하야토에게 중요하지 않았던 거예요. 팀이기만 하면 되었던 겁니다. (정말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굳이 RE:HALOS일 필요도 없었을 지도요.) 하야토가 생각했던 RE:HALOS라는 사회는 사실 환상이었으니까요.

 

 

 이 세계에 머물고 싶기 때문에 팀이 필요하다. 하야토의 맹목성은 이런 맥락에서 설명이 됩니다. 팀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은, 팀의 해산과 함께 자가당착을 맞이하고요. 이제 하야토는 자신의 논리를 포기하거나 굴복해야 합니다. 요나처럼 스스로 발목을 잡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요나가 그랬듯 하야토 역시 자신의 논리를 고수하기로 합니다.

 


 

 


어느 곳도 내게는 나의 있을 곳이 아니었고
...동시에, 있고 싶은 곳이야.

 '하야토'이기에 가질 수 있는 것

 

 하야토는 맹목성 ㅡ 그래도 상관없다 ㅡ 을 유지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도망쳐선 안 된다는 요나의 신념과 비슷하죠. 팀의 해체에 대해 이런 결론을 내려요.

 

 

 팀이 사라져도 함께 했다는 기억은 사라지지 않으니, 그 기억을 내 존재의 근거로 삼겠다... 그리고 캠페인이 완료된 시점에서 보면, 이 결론은 저희 캠페인의 최종 답안이기도 합니다. 하야토는 멤버 중 가장 빠르게 답에 도착한 사람인 거죠. 즉, 하야토의 맹목성은 이 캠페인에서도 '건강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왜 일까요? 왜 하야토의 맹목성은 이 세계에서 용인되는 것일까요? 죄송하게도 하야토만 분석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인지라, 대조군인 나유타와 비교하면서 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ㅠ_ㅠ (하야토 얘기만 하고 싶었지만...) 

 

 하야토와 나유타는 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극단에 있는 인물이에요. 나유타는 철저하게 논리에서 감정을 산출하는 반면, 하야토는 감정에서 논리를 도출합니다. 나유타는 불합리한 세계를 받아들일 근거를 필요로 하지만, 하야토는 이 세계를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근거를 찾아다닙니다. 바로 이 관점의 차이 때문에 하야토가 더 빨리 정답에 도착합니다.

 

 

 팔라딘이 없는 세계를 바라는 자신에 대해 깊은 혐오감을 품고 있는 나유타와 달리, 피스는 자신이 이 세상을 원한다는 사실을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설령 세상이 어떤 모습(=형식)이어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신의 삶(=내용)을 사랑하기 때문에 뭐든 감내하겠다는 아가페의 선언인 거죠.

 

 그리고 본질적으로 이 '아가페'는 피스가 아닌 하야토의 것이기도 합니다. 이 세계에서 괴리되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권리가 있는 거예요. 그렇게 자신의 모순을 포용하는 것으로 하야토는 스스로를 인정합니다. 이런 아가페를 세상이 부정할 리가 없지요. 

 

 즉, 맹목성은 피스가 아닌 하야토이기에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인 셈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결론에 도달한 요나는 그런 하야토의 입장을 곧장 이해하죠.

 

 

 그러나 같은 이유로 나유타는 그런 하야토를 싫어합니다. 

 


나 당신 싫어해요.

끝없는 열등감

 

 나유타는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팔라딘이 없어야만 자신이 히어로가 될 수 있는 세계라니 너무나 부조리합니다. 하지만 나유타의 방식으론 도저히 정답을 찾을 수 없던 찰나, 하야토가 먼저 결승선에 도착해버린 겁니다.

 

 애초에 이 둘은 세션이 시작되기 전부터 출발점이 달랐어요. 특정한 국면에서 나유타 같은 천재형 캐릭터 ㅡ 초반에는 뽀작이이긴 했지만, 어쨌든 노이만인 점에서 ㅡ 는 하야토 같은 열혈(?) 캐릭터를 결코 능가할 수 없는데, 불합리한 것을 두고 결론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특히 그렇습니다. 존재값부터 차이가 난다는 건 저보다 나유타가 더 잘 알고 있었을 거예요.

 

 

 게다가 성격상 하야토는 아무렇지 않게 선을 넘어요. 나유타는 하야토의 접근이 어지간히 불편했을 거예요. 자신은 도달할 수 없는 답에 손쉽게 접근하는 '진짜 영웅' 하야토에게만큼은 내면의 열등감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가까워지는 것도 불편한데, 심지어 이 녀석... 진위감지로 아예 속내를 파헤치기까지 합니다ㅋㅋㅋ

 

 

 갑자기 나유타 입장에서 진짜 빌런(..)은 하야토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드는데ㅋㅋㅋ 아무튼, 가장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은 상대가 계속 속내를 보여달라고 하니 정말 수치스러웠을 거예요. (2부에서 나유타가 하야토를 피해다니느라 배신자 오르카라는 멸칭이 붙었다는 설정이 있었는데, 비질런티가 된 자신을 하야토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쨌든 주기적으로 선을 넘는 하야토의 행위가 나쁜 것이냐? 하면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유타는 괴롭힘으로 느꼈을지언정, 하야토 입장에선 나유타를 도와주려고 한 거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나유타에겐 그런 도움이 필요했어요. 질풍노도 끝에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깨달은 어른의 도움이요. 

 

 그런데 이것도 나유타에게는 크리티컬 히트입니다.

 

 세션 중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나유타는 모든 신체적/정신적 에너지를 별의 단말을 유지하는 것에 쏟아 붓느라 신체적으로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상태였어요. 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성인 남성으로서 가져야 할 남성성을 가지지 못한 상태였고, 이것에 대한 수치심 때문에 자신의 이성적 감정(릿카)에도 솔직할 수 없었던 상황이거든요. (릿카조차 꼬마 꼬마 하면서 남자로는 전~혀 봐주지 않는 상황임ㅋㅋㅋ)

 

 허나 하야토는 검증받은 남성입니다. 유부남이고 아이가 있고, 팔라딘의 뒤를 잇는 훌륭한 히어로에요. 나유타가 가지고 싶었던 건 전부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인 거죠. 그런 사람이 이제는 내가 너의 형이 되어주겠노라하고 다가오는 거예요.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의 기대를 받으며 훌륭하게 성장한 형과, 그런 형과 늘 비교당하며 살아온 동생의 관계같다고 느꼈어요. 여기서 부모님을 세계로 치환하면 들어맞죠. 세계가 묻는 질문에 훌륭하게 대답하는 형과, 아무리 생각해도 멋진 답을 생각할 수 없는 동생. 이 차이를 어쩜 좋을까요. 그 어떤 사이드로도 하야토를 이겨본 적이 없는 나유타는 어떻게 해야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요.

 

 놀랍게도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 잘난 형이 사실 사생아였다는 걸 안 순간, 나유타의 모든 열등감이 해소됩니다. 항상 지기만 했던 동생이 드디어 '승기'를 잡아요. 그는 다이아몬드인 척하는 큐빅이며, 생화인 척하는 조화인 동시에 늑대인 척하는 하이에나였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새끼나유타 인생에서 해방감을 느낀 몇 안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사실 릿카를 제외한 멤버들은 하야토의 정체를 어느 정도 눈치챈 상황이었긴 하지만, 바로 그 릿카가 알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일 거고요. (진짜 비비꼬인 샛끼;

 

 물론 하야토의 정체를 고발한다고 해서 나유타가 갖지 못했던 것들이 돌아오는 건 아닙니다. 설령 하야토와 완전히 연이 끊어져도 또 다른 형태로 고통받겠죠.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상상해왔을 거예요. 하야토가 가진 것들은 자신이 가졌을 때의 모습을. 전도유망한 히어로로서 팔라딘의 후계자가 되고, 호감을 가진 여자에게 당당하게 다가가고, 세계의 폭언에도 굴하지 않고 즉답을 하는 자신을. 그렇게 남자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된 유우나기 나유타를요.

 

 

하이바 하야토의 삶.

 

 하지만 그런 환상은 모두 망상으로 판명이 되었고 현실은 다시 딱 맞는 온도로 비참해졌습니다. 하야토를 커밍아웃시키는 행위는 나유타에게도 달콤한 만큼 비참하고, 비참한 만큼은 안락했을 거예요. 

 

 하야토는 나유타의 어둠에 사로 잡히지 않습니다. 동시에 나유타도 그 얼토당토 않은 어둠에서 끄집어내기로 해요. 그는 자신을 희생해서 동생을 직접 가르치기로 결심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아니까요.

사랑하는 방법

 

 나유타가 하야토를 커밍아웃 시킨 직후, 하야토는 말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사실 하야토는 다 알고 있어요. 나유타도 과거의 자신처럼 불안해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전혀 달라보였던 이 둘은 쌍둥이처럼 닮아있다는 걸요.

 

 그렇기에 하야토는 나유타가 어떻게 해야 그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나유타는 팔라딘(아버지)을 죽이고 어른이 되어야 해요. 그렇게 이 가혹한 세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야토는 그걸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몸소 보여주기로 합니다.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만큼 불합리한 게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한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용기 있는 행동도 없을 거예요. 비참한 결과가 뻔히 보이는 일인데도 하야토는 그걸 하고 맙니다. 불합리한 선택을 두려워하는 나유타에게, 그런 걸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어른의 방식으로 보여줘요.

 

 (갑자기 뻘소리지만 저 장면 진짜 너무 너무 너무 좋아합니다... 볼 때마다 울컥해요... (자세한 건 나유타편 참조...)) 

 

 하지만 이건 사실 인식의 전환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이 조건이야말로 하야토와 나유타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이기도 해요.

 

 무언가를 조건 없이 사랑하려면, 조건 없이 사랑받아본 경험이 필요합니다.

 

 나유타는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RE:HALOS에 들어와 처음으로 그런 감정을 받아보지만, 살면서 경험해본 적 없는 감정이니 불편하고 당혹스러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하야토는 받아봤고, 받고 있습니다. 대체 어디서? 누구에게?

 

 하야토의 맹목성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밝힐 때가 되었습니다.

 


되묻는 목소리에, 말없이 하야토의 다리를 끌어안습니다.

 모든 것의 끝에 사랑이 있다면

 

  작년 쯤에 가장 친한 친구가 아이를 낳았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아이를 낳을 땐 그런가 보다 싶은데, 그 친구가 아이를 낳으니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아이에 대한 감정을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이런 사랑을 처음 받아 본다고요.

 

 살면서 받아본 그 어떤 사랑보다 아이에게 받은 사랑이 가장 크다는 거예요. 묘한 기분이었어요. 내리사랑이라는 말은 있어도 오르사랑이란 말은 없잖아요. 하지만 친구의 말에 따르면 아이가 먼저 자기를 사랑해줬다는 거예요. 결국 누군가는 먼저 사랑했기 때문에 가족이 된 거죠. 근데 그게 아이일 거란 생각은 못해봤었어요. 

 하야토에게는 히이로가 있었어요. 물론 히이로는 '피스'의 딸이었죠. 처음부터 하야토가 히이로에게 애착을 가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실제로 그랬다고 작중에서도 말했죠.

 

 

 하야토에게도 모든 걸 부정하던 시기가 있었을 거예요. 바꿔 말하면, 히이로가 방치된 시기가 있었을 거예요. 이때 히이로는 하야토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도 남았을 거고요. 어쩌면 하야토가 진짜 아빠가 아니라는 것까지 눈치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우울증에 빠진 아빠를 향한 히이로의 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고아가 될 처지에 놓인 아이가 생존 본능에 따라 어른에게 의존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실제로 전 모든 종류의 사랑에는 생존 본능이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두 설명할 수 없어요. 정말 그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행위였다면 히이로는 하야토에게 떼를 쓰고 졸랐을 거예요. 화를 내거나 울면서 짜증을 냈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그런 행위는 오히려 하야토의 심기를 거슬렀을 겁니다. 

 

 그러나 하야토는 도리어 히이로와의 생활을 통해 힘을 얻어요. 디테일은 알 수 없지만, 히이로가 하야토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를 보낸 기간이 분명히 존재했을 거예요. 하야토가 자신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히이로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자신과 마찬가지로 '있어야 할 곳'을 잃은 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온전한 사랑을 보내는 이 아이를 보며, 하야토는 깨달았을 거예요. 자신만이 이 아이의 지지대가 되어줄 수 있다는 걸요. 그리고 그렇게 되어주자고 결심한 순간 하야토의 세계는 맹목의 세계로 바뀝니다. 아빠라는 근거가 없음에도 히이로가 하야토를 온전히 사랑해주었던 것처럼, 하야토도 히이로가 존재하는 이 세계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던 거예요.

 

 

 하야토는 어떻게 복제본인 자신의 입장을 받아들였나?

 하야토는 왜 맹목적으로 이 세계를 사랑하는가? 

 

 모든 것의 끝에 사랑이 있었던 게 아닐까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