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

게임 기획의 정석

에이밍 2025. 2. 25. 20:25

 

게임 기획의 정석

저자 : 타이난 실베스터 / 역자 : 오영욱
출판 : 도서출판 스타비즈

 

 

 뭐 이제 게임 관련 도서 블로그로 전업한 거냐ㅋㅋ

 

 아니 읽다 보니 TRPG에도 접목할 만한 내용이 나와서 소개하려는 것 뿐이라고요^0T! 누구보다도 티알에 진심인 저를 믿어주세요(?) 

 

 여튼, 게임 기획에 관한 책이긴 합니다만, TRPG도 결국 게임이고, 넓은 범주에서는 '함께 실시간으로 기획하는 게임'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TRPG 플레이에도 적용할 만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라는 귀한 통찰을 공유해주신 우롱님께 감사 🥹)

 

 마침 티알피저이자 기획자인 사람들끼리 모여서 토론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추려낸 아이디어들을 함께 공유하고자 포스팅을 작성해보았습니다. 방대하고 내용 중에서도 TRPG에 접목할 만한 내용들 위주로 추출했어요. 이 블로그에 자주 들러주시는 티알피저 분들이라면 유익한 포스팅이 될 겁니다. 

 

함께 읽어주신 분들 : 
🦕 우롱님 (@oolong_trpg)
🍋 마ㅅ탕님 (@0nceUP0NaT1M3)

 

※주의 사항!

1. 책의 일부 내용만을 취합하고 재해석한 글입니다.
2. 본 포스팅으로 책의 모든 내용을 알 수 없으며, 원본과 다르게 해석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3. 확실한 정보가 필요한 내용은 반드시 원본을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번 과 마찬가지로 나중에 복습할 저(..)를 위해 간결한 템플릿로 작성해보았습니다. 이하의 글은 다음과 같은 구조로 진행됩니다.

 

 

 

 의 내용에 관련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핵심 메시지 → 간략한 설명 자세한 설명 순서대로 원하는 부분만 읽어주시면 됩니다.


 TRPG에 관련된 부분만 관심이 있는 분들은 TRPG 팁만 봐주시면 되겠지요. 필요에 따라 원하는 텍스트를 취사 선택해서 읽어주세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게임이란 경험을 생성하는 기계이며, 경험은 감정을 자극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게임은 경험을 생성하는 기계이며, 경험은 감정을 자극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즉, 게임 기획은 감정을 만들어내는 설계이다.

또한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가치를 변경하는 이벤트에 가장 격렬한 감정을 느낀다.
이런 이벤트는 학습 욕구를 자극하며, 감정은 학습의 필요를 느낄 때 가장 크게 변화한다

 

▼ 어떤 게임을 '좋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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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게임은 경험을 생성하는 기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게임을 통해 신과 싸우기도 하고, 총을 쏘기도 하고, 연애를 하기도 합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들도 게임에서는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험이라고 하면 너무 막연하지 않나요? 자고로 경험이라면 우리가 겪고 느끼는 모든 걸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범주를 좁혀볼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이 만들어내는 건 '어떤 경험'일까요?

 

 저자는 감정을 자극하는 경험이라고 정의합니다. 흔히 명작이라 불리는 게임은 PL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예를 들어 <라스트 오브 어스>는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흔한 배경을 채택했지만, 유사 부녀 관계를 다룬 섬세한 내러티브 덕에 명작으로 평가받았죠.

 

 그렇다면 감정을 자극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자는 인간의 가치가 변동되는 사건이 감정을 자극한다고 설명합니다. 인간 가치란, 삶과 죽음, 승리와 패배, 부와 빈곤, 함께와 사랑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이 가치들은 우리의 생존과 관계가 있습니다. 즉, 당사자성을 자극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자기 목에 칼이 들어와야만 감정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단순히 육체적 생존만이 아닌 사회적, 정신적 생존을 모두 포함합니다.)

 

 즉, ' 좋은 게임이란, 당사자성을 자극하는 경험을 생성하는 기계'라는 결론에 도달하며,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험을 어떻게 '생성'할 수 있을까요?
다음 파트로 이어집니다.


 

좋은 TRPG 세션을 만들기 위한 1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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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서는 좋은 게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1. 좋은 게임은 좋은 경험을 제공합니다.

 2. 좋은 경험이란 감정을 자극하는 경험입니다.

 3. 사람의 감정은 생존과 관련된 문제에 반응합니다. 

 여기서 '생존'은 단순히 생사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인물의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 존속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즉, 생존이란 그 인물이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욕망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TRPG 세션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Q. PC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PC는 플레이어일 수도, 시나리오일 수도, 에너미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각자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TRPG에서 욕망은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PC의 사용 설명서이기 때문입니다. PC의 욕망이 명확할 수록 탁에서의 조율이 쉬워집니다.

 

 그리고 TRPG에서의 욕망은 테이블의 맥락을 고려해야 합니다. 다크한 분위기의 시나리오에 가벼운 캐릭터를 가져가면 곤란하겠죠.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의외로 자주 놓치게 되는 부분입니다. 

 

 이 모든 내용을 종합해보면, 좋은 TRPG 세션을 만들기 위한 핵심 질문은 바로 이겁니다.

 

 Q. PC가 '이 세션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하지만 이 욕망이라는 게 매우 알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우리는 평생을 함께 살아온 자신의 욕망도 잘 모르잖아요? 하물며 갓만든 PC의 욕망을 파악하는 게 쉬울 리 없습니다. 그러니 캐릭터 메이킹 단계에서 완벽한 답을 찾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세션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찾아가는 여유를 가지는 게 좋습니다.

 

 답을 끝내 찾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욕망을 탐구해보는 것입니다. 가끔은 PC를 아바타 삼아 다양한 욕망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PL의 욕망(!)을 알아가기도 하는데, 저는 이게 TRPG만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세션이 시작하기 전에, 세션을 진행하는 도중에, 세션이 끝나기 전에 PC의 욕망에 대해 생각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즐거운 과정이 될 거예요. 


 


 

잘 만든 기획은 '우아한 메카닉'으로 설계되어있다

우아한 메카닉이란 서사와 일치하는 메카닉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관성을 요구하는 서사와 유연성을 요구하는 메카닉은 서로 엇나가기 쉽다.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일치시키는 것이 기획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 우아한 메카닉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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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파트에서는 좋은 게임은 당사자성을 자극하는 경험을 생성하는 기계라고 정의했습니다. 자, 그럼 어떻게 만들어야 이 기계가  돌아갈까요? 저자는 '우아한 메카닉'으로 설계를 해야한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는 우아한 메카닉의 개념을 설명해보겠습니다.



 우아한 메카닉이라니 벌써부터 거창하게 들리는데, 정말 거창한 게 맞습니다(..) 책에 나온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게임의 허구 배경 설정과 메카닉이 일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테마와 메카닉이 맞물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추리 게임인데 정작 추리하는 파트는 하나도 없고 격투 게임처럼 서로 두들겨 패기만 한다면? 아무래도 몰입도가 떨어지겠죠. 그래도 격투 게임 요소를 사용하고 싶다면, 적을 두들겨 패면 단서가 나온다든가(?) 적을 물리쳐야만 단서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든가 하는 정도는 맞춰줘야겠죠. 

 

게임 홍보용 일러스트가 이랬는데 실제 게임이 이래버리면(......)


 예시는 굉장히 러프하지만, 실제론 매우 디테일한 영역까지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대사창이 넘어갈 때의 효과음, 점프의 높이, 보유 가능한 스킬의 수, 시스템 UI 등등 결을 맞출 수 있는 부분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이런 디테일을 얼마나 챙기느냐가 게임의 퀄리티를 결정하고요. 

 하지만 맞춘다고 그냥 맞춰지는 것도 아닙니다. 테마와 메카닉은 서로 다른 구조를 필요로 하거든요. 테마는 일관성이, 메카닉은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SF 테마의 게임을 만든다고 해봅시다.

 SF에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어요. (그런 SF라고 칩시다) 그런데 캐릭터가 얼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얼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야 게임 내의 다양한 기믹에 대응할 수 있다고요.

 

 그렇다고 설정을 바꾸면 세계관에 어긋나고, 기믹을 버리면 레벨 디자인이 밋밋해집니다. 서로의 입장을 고려해서 타협점을 찾아야 해요. J와 P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게끔 만드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네, 가타부타할 것 없이 우아한 메카닉을 만드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미있는 게임 만들기 어렵다~! 는 결말이라면 제가 이 책을 구워 삶고 있지는 않겠죠? 다음 장에서 우아한 메카닉을 쉽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TRPG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우아한 메카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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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만든 게임은 우아한 메카닉으로 돌아갑니다. 우아한 메카닉은 서사와 메카닉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쉽게 설명하면 다크 판타지 풍의 웅장한 전쟁을 컨셉으로 잡아놓고, 정작 게임에서는 졸라맨 도트 캐릭터가 나와서 낑낑깡깡 싸우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바로 위의 상세 리뷰 참고 ↑)

 

 이번 장에서는 TRPG에서 우아한 메카닉이 쓰인 예시를 찾아봤습니다. 저희 토론에서는 크게 세 작품이 거론되었습니다.

 

▼ 영원한 후일담의 네크로니카
 <네크로니카>의 핵심은 '부위 파괴'입니다. 부위 파괴라는 컨셉을 표현하기 위해 올인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 컨셉을 시스템을 서사와 메카닉 양쪽에서 모두 녹여내고 있어요.



 좀비 컨셉 덕에 신체가 살려도 PC는 죽지 않습니다. 그리고 팔과 다리, 머리, 배 등등의 신체 부위 각각에 자신이 원하는 무기를 설치할 수 있지요. 팔이 잘려도 다리와 머리와 배로 싸울 수 있습니다. 단, 파괴된 부위는 사용할 수 없지요.

 본래 인간의 신체는 심하게 파괴되면 복구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좀비이기 때문에 전신이 다 파괴될 때까지는 치열하게 싸울 수 있어요. 이렇게 네크로니카는 좀비 컨셉과 부위 파괴 시스템이 완벽하게 상호보완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아한 메카닉입니다.

 

광쇄의 리벌처
 <광쇄의 리벌처>에서는 우아한 메카닉이 두 가지 사용됩니다.

 첫 번째는 독트린이에요.우선 이 게임은 PC와 GM이 버디로 활약을 해요. PC는 파일럿이고 GM은 오퍼레이터죠. 그리고 에너미는 '독트린'이라는 사전에 설정된 패턴에 따라 움직이면서 PC들을 공격해옵니다.

 이게 왜 우아한가? 독트린이 알아서 ENEMY를 움직여주기 때문에, GM은 PC를 서포트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만 오퍼레이터가 아니라 진짜 오퍼레이터의 심정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거죠.



 두 번째는 수직으로 된 맵입니다. 왜 수직 구조를 사용했을까요? 이건 저희의 추론입니다만, 인간과 로봇 사이의 차이점인 중량감을 표현하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스킨을 벗겨놓으면 사실 초능력자와 로봇의 싸움에는 큰 차이가 없어요. 아무튼 무기를 휘두르고, 아무튼 뭔가를 발사해서 적을 공격합니다. 이래서는 컨셉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죠.

 그럼 둘 사이의 차이가 무엇이냐? 중량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봇은 인간보다 훨씬 무거워요. 그리고 무게감은 비상하고 추락하는 과정에서 가장 잘 표현되죠. 수직 구조의 맵을 사용하여 중량감을 표현한 것입니다.



 실제로 광쇄의 리벌처를 해보면 공중전 느낌이 여실히 듭니다. 이런 부분에서 전투에 몰입하게 되고요. 우아한 메카닉의 사례로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인세인 : 낙원 (스포일러 포함!)
 거,,, 정발도 안된 거 가지고 와서,,, 이래저래 설명해봤자,,, 공감이 가겟소,,, 헛헛, 일본어 못하면,,, 서러워서 살겠나,,,

 라고 생각한 분들께 심심한 사과와 함께 이 파트를 드립니다... 근데 이것마저도 스포일러 포함이라^^;; 

 낙원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인세인 시나리오입니다. 룰만이 아니라 시나리오에서도 우아한 메카닉이 사용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네크로니카가 부위 파괴, 광쇄의 리벌처가 버디라면, 낙원의 코드는 인식입니다. 무지했던 PC들이 진실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거든요.


 낙원의 세상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시스템 안과 시스템 밖의 세계입니다. 시스템 안에 갇힌 PC들은 처음에는 세상의 진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스템 밖으로 나가면서 세상의 진실을 알게 돼죠.

 시스템 안팎을 다루는 이 서사는 핸드아웃 양면의 메카닉으로 표현됩니다. 핸드아웃을 뒤집는 행위는 PC들이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런 핸드아웃 메카닉이 낙원만의 특징이라고 할 순 없습니다. 핸드아웃 룰 전반의 특징이니까요. 


 낙원의 특별한 점은 PC가 뒤집은 핸드아웃만이 '진짜'가 된다는 것입니다. 낙원에서는 모든 핸드아웃을 뒤집을 수 없기 때문에 PC가 인식한 정보만이 진실이 됩니다. 이 때문에 게임마다 다양한 결말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연구소 밖의 세상은 멸망했다'는 진실을 인식하게 된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를 나눠 봅시다.

 인식한 상태로 연구소 밖으로 나가길 선택한다면, 진정한 종말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이야기로 끝나겠지만
 인식하지 못한 상태로 연구소 밖으로 나가길 선택한다면, 어딘가에 있을 희망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로 끝이 날 겁니다.

 선택한 핸드아웃만이 이야기에 포함되는 메카닉은, 진실보다 인식을 중시하는 서사의 지향점과 연결됩니다. 인식에 따라 세계가 달리 정의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낙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무지하고 안락한 시스템 안의 세계만이 낙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인식의 차이를 서사와 메카닉 양쪽에서 모두 다루고 있는 거예요.


우아한 메카닉은 플레이어가 원하는 행동을 할 때 그에 맞는 보상이 주어질 때 성립한다.

외재적 보상이란, 플레이어의 특정한 행동을 했을 때 주어지는 보상이다. (= 퀘스트 보상)
내재적 보상이란, 플레이어가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다. (=성취감

우아한 메카닉은 플레이어가 하고 싶어한 것을 했을 때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에 성립한다. 

 

▼ 우아한 메카닉을 잘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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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여기만 읽을 분들을 위해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해보겠습니다.

 

 좋은 게임이란 감정을 자극하는 경험을 생성하는 게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서사와 메카닉이 서로 맞물리는 우아한 메카닉이 필요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우아한 메카닉을 만들 수 있을까요? <- 현재 여기!

 

 결론부터 말하자면'외재적 보상과 내재적 보상의 일치'입니다. 말이 드릅게 어려워 보이므로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외재적 보상 골드라고 표현하겠습니다. 몬스터를 물리쳐서 얻는 보상이 외재적 보상입니다. 그런데 왜 '외재적'이라고 부르냐면, 몬스터와 보상 사이의 관계가 임의로 설정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오크를 물리치면 왜 골드를 받을까요? 오크들이 돈 주머니를 들고 다니기 때문인 걸까요? 오크와 골드 사이에는 필연적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게임 기획자가 게임 플레이에 필요한 보상을 임의로 배치했을 뿐이지요.

 

 그럼 내재적 보상은 뭐냐? 지금부터는 내재적 보상 동기라고 표현하겠습니다. PL이 오크를 물리치길 바라는 이유가 있고, 그것이 실제로 실행 가능했을 때의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이 오크가 과거에 동료를 죽인 바람에 PL이 오크를 꼭 죽이고 싶어했다고 해봅시다. 이때는 별도의 보상이 없어도 오크를 죽인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할 것입니다. 이렇게 PL의 동기로부터 비롯된 즐거움이 내재적 보상입니다.

 

 그리고 우아한 메카닉은 이 두 가지가 일치했을 때 태어납니다. 한 마디로 PL이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때 그에 적합한 보상이 주어지는 메카닉인 것입니다.

PL은 오크가 가진 귀중한 아티팩트를 갖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오크를 죽였고, 보상으로 아티팩트도 얻었습니다.

 

 이 흐름이 매끄러울 때, PL은 게임에 몰입하게 됩니다. 몬스터들의 디자인이 흉측한 이유 또한 '저걸 없애고 싶다'는 PL의 내적 동기를 자극하는 제일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PL이 그것을 하고 싶어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신이 아닌 이상 남의 속마음을 아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보다 한단계 앞서 나가야 합니다. PL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맞추려 하는 게 아니라, PL이 그것을 하고 싶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아한 메카닉의 출발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PL의 동기를 자극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여기서 게임 속 내러티브의 가능성을 봅니다. 내러티브야말로 PL의 동기를 자극하는 가장 큰 요소라고 생각하거든요.여기서 내러티브란 단순히 스토리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PL의 시점에서 흥미로운 게임 플로우를 배치하는 것이 게임 내러티브의 진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어떤 내러티브가 훌륭한 플로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여기서 내러티브의 정의를 다시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러티브 작업은 심리 게임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다음 파트에서 알아보겠습니다.

 

 

 

PL의 욕망을 끌어내는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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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아한 메카닉은 PL이 하고 싶어서 한 일에 적합한 보상을 줄 때 작동합니다. 즉, '하고 싶게 만드는 것'과 '적합한 보상'을 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PL의 욕망을 이끌어내는 것은 다름 아닌 내러티브의 역할이며, 그런 의미에서 내러티브는 본질적으로 심리 게임에 가깝다는 것이 이번 파트의 요지였습니다.

 

 여기서 TRPG를 생각해봅시다. 

 

 TRPG는 상대적으로 저 두 가지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CRPG는 사전에 보상을 미리 설정해둬야 하지만, TRPG는 그 자리에서 PL이 뭘 바라는지 직접 물어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론과 달리 실제로는 그렇게 쉽게 되지 않습니다. 

 

 일단 PL은 자신이 무얼 바라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설령 PL이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탁에서 실현 가능한 욕망인지 PL 스스로 판단하는 건 상당히 어렵습니다. '이렇게 해도 되나...?' 하다가 끝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GM이나 시나리오가 먼저 PL에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GM이 현재 PC의 상황에서 욕망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제안하는 것입니다.

 

 어려워 보이지만 말의 뉘앙스를 약간 바꾸는 것만으로도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당신은 지금 하얀 방 안에 갇혀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라고 묻기 보다는 이렇게 묻는 것이지요.

 "당신은 지금 하얀 방 안에 갇혀 있습니다. 수상하다면 방안을 조사해보셔도 좋고, 나가고 싶다면 문을 찾아봐도 좋습니다."

 

  선택지를 제시할 때 욕망을 함께 제시하면 PL은 자기에게 허용된 욕망의 범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갑자기 주먹으로 방을 부수고 다니는 극단적인 가능성까지 고려하는 피로는 줄어들 것입니다. 

 

 무엇보다 욕망을 함께 제시하면 PL은 단순히 뭘 조사할지가 아니라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선택지가 누적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욕망을 탐구하게 됩니다. 특히 서로 헤매이기 쉬운 초반에는 상당히 유용합니다.

 

 선택지를 단순히 이야기 전개를 위한 깃대가 아닌 서로의 욕망을 캐치하는 이정표로 인식하고 사용해봅시다. 새로운 가능성이 발견될지도요.

 

 


 

내러티브 작업은 플레이어의 동기를 자극하고 적절한 보상으로 보답하는 심리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에 대해 보상할 때 보상은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플레이어의 동기를 읽고 그에 맞는 보상을 할당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내러티브는 기획자와 플레이어 사이의 심리 게임이다. 

 

▼ 내러티브 작업은 심리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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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의미에서 내러티브 작업의 본질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저의 마음을 읽는 것' 입니다. 그 순간 유저가 느낄 감정을 먼저 캐치해서 적절한 텍스트로 개연성을 부여해주는 것입니다.

 내가 유저라면 이 부분이 어색하다고 느낄 것 같은데? 그럼 어떻게 개연성을 부여하는 게 좋을까.

 

 그런 관점에서 내러티브 작업은 심리 게임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구간에서 유저가 느끼는 것이 설레임이라면 그 기대에 걸맞는 이야기를, 불안함이라면 불안함을 잠재워주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완벽하게 읽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그보다 앞선 작업을 해야 합니다. 

 

 뭔가를 하고 싶게끔 만들고 → 그것에 따른 내러티브를 제공한다.

 

 일단 유저가 어떤 행동을 하고 싶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 빈 공간에 가보고 싶게 만들거나, 저 아이템을 가져보고 싶게 만듭니다. 이걸 '후킹'이라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PL을 후킹할 수 있을까요? 핵심은 위화감입니다. 이 위화감을 가장 잘 사용한 게임인 <야생의 숨결>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젤다의 메인 스토리는 레일로드입니다. 마왕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하면 끝이에요. 하지만 공주를 구하러 가는 길에 끊임없이 신경쓰이는 건축물이나 사람이 등장합니다. '저런 게 왜 저기에 있지?' 하는 위화감이 계속 듭니다. 자연스럽게 후킹이 되는 것이지요.

 

 위화감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생존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위화감은 친근한 곳에 이상한 것이 등장할 때 발생합니다. 친근하다(=안전하다)고 생각한 곳에 이상한 것(=위험하다)이 등장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경계하게 됩니다. 저것이 나를 위협하는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신경이 쓰이게 돼요.


 그렇다면 위화감만 느껴지면 후킹은 성공인 걸까요? 아닙니다. 위화감만 느껴지면 경계심이 강해져서 도망치게 됩니다. 유저의 방어 기제를 해제해야 합니다.

 

 여기서 필요한 키워드가 바로 '접근성'이에요. '이상한 것이 있다, 그리고 저기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어야 궁금하다는 감정이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있는 이상한 건축물은 그냥 배경 에셋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까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가장 쉬운 방법은 '보상의 존재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상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플레이어는 접근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느낍니다. 

 

 정리하면 위화감 + 접근성 = 호기심 → 후킹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친근함과 낯섦을 섞고, 보상의 존재를 명확하게 하면, 유저는 호기심을 느끼고 움직이게 됩니다. 

 

 물론 이런 공식을 따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말한 건 A와 B를 섞으면 C가 된다는 내용이지, 이게 어떻게 해야 '매력적인' 것이 되는지는 얘기하지 않았으니까요. 같은 공식을 고스란히 사용한다고 해도 어떤 이야기는 매력적이지만 어떤 이야기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럼 '매력'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사실 이에 관해서는 뻔하고 지루한 답밖에 없긴 합니다.

 

 테스트 플레이를 많이 해야 합니다. 유저가 어느 구간에서 지루함과 흥미를 느끼는지 알아야 밀고 당기기를 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유저의 플레이에 관한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축적해야 합니다. 심리 게임은 결국 한 수 더 읽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만 있으면 제가 이 책을 구워 삶고 있지 않겠지요? 다음 파트로 이어집니다.


 

PL이 플레이에 적극 참여하고 싶게 만드는 방법 1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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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본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위화감 + 접근성 = 호기심 → 후킹이라는 것입니다.

 

 위화감과 접근성이 함께 느껴질 때 유저는 모험에 적극적으로 뛰어듭니다. 접근성을 높이는 한 가지 방법으로는 '명확한 보상'을 제시하여, PL에게 이 플레이에 참가해도 된다는 메타적 허가를 주는 것에 대해 얘기했고요. 

 

 그렇다면 이걸 TRPG에도 사용해보고 싶어지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TRPG에서 줄 수 있는 가장 명확한 보상은 이것입니다.

 

이야기의 진전이 있음을 약속한다

 

 여기서 '이야기의 진전'은 크게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물리적 차원과 심리적 차원이에요. 물리적인 차원부터 얘기해보겠습니다.

 

 물리적 차원 : 이야기의 진행 단계를 알려준다

 

 일반적인 게임은 처음과 끝이 완성되어 있습니다. 정해진 타이밍에서 시작해 예정된 구간에서 끝이 납니다. 하지만 TRPG는 탁의 이야기가 종결될 때 끝이 납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뜻이에요. 

 

 아무리 몰입감 있는 세션이어도 끝나는 타이밍을 알 수 없으면 사람들은 불안해합니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만큼, 체력과 집중력도 실시간으로 떨어지니까요. 

 

 그러니 PL이 체력과 집중력을 안배할 수 있게끔 이야기의 진행 단계를 밝히는 것이 좋습니다. 어느 구간에서 힘을 주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면, 자원을 아낄 수 밖에 없으니 소극적인 플레이가 됩니다.

 

 그런데 씬제/핸드아웃제로 구성된 룰이 아니고서야, 진행 단계를 명확하게 알기는 어렵습니다. 씬제라도 항상 알 수 있는 건 아니고요.

 

 GM조차 앞으로 이야기가 얼마나 남았는지 분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요. 픽션 퍼스트처럼 실시간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룰은 더 그렇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내용이 아닌 시간을 마지노선으로 잡으면 되긴 얼추 합니다. → "몇시까지만 진행하겠습니다.") 

 

 하지만 끝나는 타이밍이 명확하다고 해서 모두가 세션에 몰입하는 건 또 아닙니다. 여기서 두 번째 심리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심리적 차원 : '잘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물리적인 진행만으로는 PL의 몰입감을 충분히 끌어내기 어렵습니다. 심리적인 진행이 필요합니다. PL에게 '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지요.

 

  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PC가 호기심에 반응하거나 적합한 행동을 했을 때 '좋은 접근입니다'라고 힌트를 주거나, 재화나 경험치 같은 보상을 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또는 PC의 행동이 정확하게 반영된 전개를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PL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고, PL의 행동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준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PL은 상대적으로 GM보다 정보가 적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노련한 PL이라도 이후 전개에 대한 불안감은 있을 수 밖에 없어요. TRPG에서는 이런 불안감을 달래주는 것 자체가 보상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답을 맞췄다'는 개념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PL이 이야기의 진전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뉘앙스로 갈리는 경우도 많아서 딱 구분해서 사용하긴 어렵습니다만, 의식해서 사용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한 한 '평가'의 언어를 쓰지 않는 게 중요해요.)

답을 맞췄다 → "좋아요. 잘하셨습니다." (X)
과정을 팔로한다 →"아주 좋은 접근인 것 같습니다." (O)

 

 물론 모든 과정을 다 팔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PL이 세션의 진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네 행동으로 인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힌트를 적절히 주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PL의 어떤 행동이 좋은 접근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피드백을 한줄 정도 얹어주면 더 좋을 것입니다.

 

 한 마디만 기억합니다. '좋은 접근이에요' 그 말 한마디로 PL은 눈 앞에 닥친 위기와 기꺼이 맞서 싸울 용기를 낼 것입니다.


 


 

절대 공식 : 테스트 플레이의 횟수만큼 심리 게임을 잘 운영할 확률이 높아진다

유저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적절한 보상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유저의 심리를 읽어야 한다.
유저의 심리를 읽기 위해서는 여러 번의 테스트 플레이로 데이터를 모아야 하며
이때 유저가 어느 구간에서 지루함을 느끼는지를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

 

▼ 어쩌면 테스트 플레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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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리 게임에는 답이 없습니다. 같은 상황이어도 이전에는 작동하던 것이 작동하지 않기도 하니까요. 심리 게임의 공식은 항상 재현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게임에서의 심리 게임은 비교적 재현이 가능합니다. 정해진 규칙으로 만들어진 판에서 시작하니까요. 적절한 후킹과 보상을 통해 어느 정도 심리를 유도할 수 있고, 이것을 잘하는 것이 좋은 기획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판'을 잘 만들 것인가? 가장 중요한 건 '테스트 플레이'입니다. 

 

 판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번 테스트를 해야합니다. 많이 테스트한 게임일 수록 유저들이 어느 시점에서 불안함을 느끼는지, 어디에서 의욕을 느끼는지 확실하게 체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테스트 플레이가 중요하다는 것은 예습복습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만큼이나 흔한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테스트 플레이를 할 때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 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면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명확하지요.

 

 유저의 감정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지, 버그가 있는지, 그런 것들도 당연히 중요한 요소지만 게임의 진행 흐름에 따라 유저의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체크하는 것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사실 감정은 플레이가 반복될 수록 무뎌지는 법이라, 테스트를 많이 하는 제작자 입장에서 가장 알기 어려운 포인트입니다. 시스템의 오작동이나 버그는 제작자 레벨에서 어느 정도 체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적인 부분은 게임이 완성될 수록 점점 더 확인하기 어려워집니다. 무뎌지니까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되냐? 테스트 플레이를 할 때 지루한 부분을 알려달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게임은 크게 보면 몰입이 된다/안 된다입니다. 지루한 부분을 찾고 그 부분을 고치면 됩니다. 

 

 책에서는 피드백 방법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조언을 주고 있는데, 요약하면 '제안이나 조언이 아니라 플레이 경험 자체를 취득하라'라는 것입니다. 방금 세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얘기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지요. 이것만으로도 피드백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합니다.

 

 앞서 말했듯 PL이 게임을 플레이한 그 시점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가 중요합니다. 플레이 후의 해석은 오히려 객관적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진 후에는 누구나 쉽게 해석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러니 제안과 조언 못지 않게 경험을 나누는 피드백 또한 중요하게 다뤄야 합니다.

 

 하지만...?

 

 테스트를 무조건 많이 한다고 좋은 건 또 아니라고 합니다. 그 위험성에 대해서는 다음 파트로 이어집니다.



의견 개진이 자유로운 분위기의 탁을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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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내용을 요약하면 테스트 플레이에서는 유저가 어떤 부분에서 지루함을 느끼는지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TRPG가 바로 이 테스트 플레이 방식에 가장 적합한 매체라는 것입니다. TRPG에서는 PL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습니다. 즐거워하는지, 지루해하는지, 무서워하는지 등등을 PL이 구태여 직접 말하지 않아도 표정과 제스처, 또는 대사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리고 TRPG는 그 자체가 테스트 플레이입니다. TRPG에는 이야기가 완성된다는 개념이 없어요. 탁은 완성이 됩니다만, 같은 시나리오를 다른 탁에서 돌리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TRPG는 영원한 테스트 플레이다. 

 

 라는 전제에서 TRPG를 바라보면 탁을 좀 더 즐겁게 꾸릴 수 있습니다. 테스트 플레이라는 것은, 모든 PL이 잠정적인 기획자가 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GM이 주는 것을 일방적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참가자가 서로의 욕망을 맞춰가면서 퍼즐을 맞추는 것이지요. 

 

 GM도 PL도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을 때 좋은 탁을 만들 수 있어요. GM과 시나리오는 콘텐츠 제공자이고, PL은 일방적인 콘텐츠 소비자라는 구조는 이 영원한 테플의 굴레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건 우롱 🦕  님이 해주신 이야기인데, 만약 PL이 탁의 전체적인 플레이를 고려하지 않은 선언을 했을 때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 에 대해서 그 플레이의 의도를 물어보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진지한 플레이에서 마왕에게 똥침을 놓겠다는 트롤링을 하려고 하면, 그 의도가 무엇인지, 그 행동으로 가져오고 싶은 효과가 무엇인지를 묻는 거죠.  PL도 항상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플레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환기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갑자기 똥침을 놓을 수는 있는데 이유가 뭔지도 말할 수 있어야(..)

 

 물론 의견과 욕망을 솔직하게 주고 받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건 TRPG를 떠나 소셜 스킬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스킬이라고 생각해요. 

 

 뭣보다 의견과 욕망은 개개인의 자질보다는 상황에 좌우됩니다. 딱딱한 분위기에서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까요. 대화 상대에 대한 호감도와 신뢰도도 매우 중요하고요. 

 

 그렇다면 어떤 분위기일때 의견과 욕망을 보다 솔직하게 주고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런 분위기의 특징을 아는 것만으로도 탁을 꾸릴 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토론의 결론은 '나의 의견에 큰 부담과 책임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가볍게 던지는 거예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여러 가지의 경우의 수를 떠올리고 그것들을 던져서 의견을 논합니다. 다양하고 '가벼운' 의견을 반복해서 던지고 거기서 찾아낸 것을 쌓아올려가는 일종의 퍼즐 맞추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듯 TRPG가 테스트 플레이라는 관점을 모두가 공유해야 합니다.

 

 세션을 완성된 플레이라고 생각하고 진행하게 되면 아무래도 부담이 생길 수 밖에 없어요. 의견 하나 하나 내는 게 조심스럽고 그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의 대미지도 고스란히 옵니다.

 

 하지만 퍼즐을 맞출 때, 잘못된 퍼즐을 맞췄다고 해서 타박을 주지는  않잖아요? 맞는 퍼즐을 다시 찾아보면 됩니다. 세션도 이런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거예요. 

 

 설령 레일로드형 시나리오라고 해도 탁에 따라 디테일은 달라집니다. 디테일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결이 달라지기 때문에 테스트 플레이 & 기획자의 관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적어도 TRPG에 있어서는 '완성된 이야기'라는 개념을 잠시 접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랬을 때 실시간으로 완성되는 TRPG만의 장점을 맛볼 수 있거든요.

 

 물론 준비된 이야기에 내 캐릭터를 조미료처럼 얹어서 맛보는 정도로 충분하다!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결국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의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 하고 물으실 것도 같고요.

 

 그런 분들을 위해, 가장 부담없이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비법(?)을 다음 파트에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외 공식 : 테스트 플레이로 게임이 무미건조해질 수도 있으니, 가끔 '미친 짓'을 해야한다

반복된 수정 과정은 게임을 밋밋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끔 미친 짓을 시도하여 킥이 될 만한 포인트 찾아야 한다.

 

▼ 콘텐츠의 개성은 ㅂㅂㅎ ㄱㅇ에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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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스트 플레이의 결과는 기본적으로 삭제와 생략입니다. 불필요한 부분을 자르고 수정하여 코어가 잘 드러나게끔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지요.

 

 하지만 개성이라는 건 삐죽할 때가 많아요. 이게 뭐지? 싶은 게 개성이 됩니다. 사람들은 매끈한 것을 좋아하지만, 매끈하기만 한 것을 좋아하지도 않아요. 좋아하긴 해도 열광하기는 힘듭니다. 열광하려면 너덜너덜하고 삐죽한 것이 있어야 해요.

 

 테스트 결과를 너무 충실히 반영하다보면 이런 개성까지 잘려나가곤 합니다. 실제로 저자도 너무 많은 밸런싱과 테스트 플레이를 통해 미끈한 형태가 되는 것을 좋지 않다고 말해요. 

 

 그럼 어쩌란 말이냐? 테스트 플레이를 많이 하면 매력이 없어진다고 하고, 안하면 치밀도가 떨어져서 우아함이 사라진다니... 세상 일이 다 그렇지만 결국 중도를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가끔 미친 짓을 해보는 것을 추천해요.

 

 무난하게 진행되던 이야기에 가끔 감당이 안될 것 같은 떡밥을 던져본다던가 하는 것입니다. 이건 매우 위험한 방법이라고도 하는데, 이야기가 너무 미끈하게 빠지고 있을 때는 거기에 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는 말에는 저도 공감합니다. 테스트 플레이에서는 일단 던져 보고 아니다 싶으면 회수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자가 중시하는 것이 반복입니다. 정확히는 기꺼이 반복할 각오라고 생각해요. 사실 사람들이 완벽주의로 고생하는 이유는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복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하려는 것인데, 사실 완벽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어설픈 반복입니다. 

 

 무엇보다도 두려움없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걸 실험하고, 실패하고 성공하고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우연히도 정말 좋은 것'이 나오기도 합니다. 저자는 세렌디피티야말로 반복의 선물이라고 해요.

 

 한마디로 돌발성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러티브의 킥은 바로 이 돌발성이에요. 모든 걸 매끈하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킥마저 죽입니다. 킥은 비죽 튀어나와야 하는 것인데 깎아내면 사라질 수밖에요.

좀 과하긴 하지만(..) 훌륭한 킥의 예시!

 

 그러니 가끔은 과감하게 돌발 상황을 던져 보는 겁니다. 던졌다가 아니면 다시 회수할 수 있어야 하고요. 결국 개성은 기꺼이 반복할 각오에서 태어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그런데 이런 돌발성이 잘 작동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바로 일관성입니다. 돌발성이라는 건 기존의 규칙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하니까요. 그러니 기존의 규칙을 잘 정비해두어야 이 돌발성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일관성과 돌발성을 잘 교차하여 개성 있는 게임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 파트에서 알아보겠습니다.


 

 TRPG에서 최대한 안전하게 미친 짓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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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본문의 내용은 '게임을 너무 완성도 있게 만들려고 하면 개성이 사라지므로 가끔 미친 짓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TRPG에서는 미친 짓은커녕 의견을 얘기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미친 짓으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보단, 트롤이 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럼 TRPG에서는 가능한 안전하고 정제된 플레이만을 해야 하는 걸까요?

 

 방법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사담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담으로 나누는 이야기는 세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사담의 이런 특성을 활용해,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농담처럼 편하게 주고 받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세션의 맥락에서 좀 벗어나는 이야기도 사담이면 웃으면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다가 '괜찮은데?' 싶은 반응이 나오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를 해서 이야기에 적용하는 방법까지 함께 고려하는 거예요.

 

 실제로 사담을 많이 하는 팟에서는 재미있는 전개가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일례로 제가 가장 최근에 했던 <The Burnt Man>이라는 세션에서는 PL들끼리 사담을 했던 내용이 클라이맥스에 반영되어서 원본 시나리오와는 전혀 다른(!) 하지만 모두가 대만족한 엔딩을 볼 수 있었습니다.

 

캐메 당시의 대화 클맥에서의 사단

OOLONG(PL)의 PC가 흑산양의 자녀라는 설정 클맥에서 흑산양 재림(..)

 

 중요한 건 이 과정에서 GM도 그걸 반영했을 때 걱정되는 부분에 대해서 솔직하게 얘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GM이 모든 카드를 쥐고 모든 개연성을 다 만들려고 하면 도로 꽝이에요. 사담에서 나온 의견은 GM도 당연히 미리 준비하지 못했을 테니, 서로 머리를 맞대어 함께 퍼즐을 맞춰 나가야 합니다.

 

 사담을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토론하는 놀이터로 생각해봅시다.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듣고 가볍게 넘기세요. 하나 걸리면 그때부터 갓세션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사담도 소통이 잘 되는 그룹이어야 가능하겠지요?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팟이라면 문제 없겠습니다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플로우 틈새가 자주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 플로우 틈새를 막는 방법은 다음 파트에서 다뤄봅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플레이어를 집중하게 만들려면 플로우 틈새를 없애야 한다

우아한 메카닉은 게임 전체에 반영되어야 한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유저가 즐거워할 만한 후킹과 보상을 반복하여 게임을 꾸려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몰입도가 떨어지는 플로우 틈새를 얼마나 없애느냐가 게임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좌우한다.

 

▼ 일관적인 시스템과 다양한 응용 방법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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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게임의 개성은 삐죽한 부분, 즉 '돌발성'이 느껴지는 부분에서 태어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돌발성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일관성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설명했고요.

 

 저자는 이런 일관성을 '미래 예측하기'라고 설명했습니다. 플레이어에게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도구를 주고, 그 도구로 풀 수 있는 문제를 계속 제시하면서 (단, 조금씩 변형하면서) 몰입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말이 살짝 어려울 수 있으니 쉽게 설명해봅시다. 마리오를 예로 들어 보죠. 마리오는 위를 가리키는 버튼을 누르면 점프를 한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이 규칙은 게임 처음부터 끝까지 바뀌지 않고 일관되게 적용됩니다.

 

 이 규칙을 익힌 유저는 이후 높이 올라갈 때마다 버튼을 눌러 점프를 시도하게 됩니다. 같은 상황에서 항상 쓸 수 있는 일관성을 지닌 도구, 우리를 이걸 '규칙(Rule)'이라고 얘기합니다.

 

 이 규칙이 일관성있게 구현되었을 때, 돌발성 또한 제 힘을 발휘합니다. 아래의 예시를 봅시다.

 

일관성 돌발성
점프 버튼을 누르면 1칸 높은 곳에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3칸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만약 점프할 때마다 높이가 랜덤이라면, 3칸 높이에 있는 블럭은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기믹이 되겠지요. 닿을 때까지 계속 점프를 시도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1층 높이밖에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이걸 이용해서 최대한 난관을 해결해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응용
앞에 있는 블럭을 딛고 올라간다

 

 그리고 이렇게 주어진 도구로 눈앞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몰입감'이 생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몰입감이 자연스럽게 유지되게끔 만드는 것이 게임 기획의 최종적인 목표이고요.

 

 이건 단지 게임 시스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스토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PC를 죽이려고 하는 ENEMY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 ENEMY는 PC를 죽이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ENEMY가 도사리는 곳에 갈지 말지를 결정할 때, 그를 피하거나 정면대결을 하기를 결정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구간에서 PL은 몰입하게 됩니다. ENEMY의 행동 패턴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유저도 이에 맞춰 유의미한 결정을 할 수 있으니까요. 풀릴 것 같은 문제 앞에서 유저는 가장 용감해집니다. 유저에게 용기를 줍시다.

 

부술 수 있을 것 같아야 부술 엄두가 난다

 

 정리하면 일관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PC에게 도구(사용 방법 → 결과가 늘 동일한 무엇)을 제공하고, 그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구간을 계속 제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플레이어에게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도구를 주자.
2. 그 도구를 응용해서 풀 수 있는 문제를 계속해서 제시하자.

 

 바로 이 조합, 게임 세계에 부합하는 일관적인 규칙과, 그 규칙을 응용하여 해결할 수 있는 발칙한 문제의 조합 방식이 게임의 개성이 됩니다.

 

 마리오는 점프를 하지만 소닉은 대쉬를 하지요. 마리오는 다양한 고저차가 있는 맵을 통과해야 하고, 소닉은 다양한 루트를 선택해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해야 합니다. 

 

 확실한 코어를 만들고,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할 수 있는 과제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반복하는 것.

 

 이것이 게임 기획의 가장 본질적인 논리가 아닌가 합니다.

 



PL 전원이 테이블에 집중하게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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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의 주제는 일관적인 시스템과 이를 응용해서 해결 가능한 돌발적인 과제를 잘 조합할 때, 개성 있고 몰입감 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플로우 틈새가 생깁닙니다. 플로우 틈새 플레이 도중 집중력이 붕 뜨는 구간을 의미합니다. 기다리는 턴이 너무 길어져서 할 일이 없어 지루해진다든가, 이야기 전개가 지리해서 집중력이 날아간다든가, 케이스는 장르불문하고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TRPG의 플로우 틈새는 형태가 조금 다릅니다. 다인탁이 존재하는 TRPG에서는, 모든 사람을 집중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PL 전원이 탁에 집중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요? 저희 토론에서는 정말 어쩔 수 없는 문제(외부 이슈 등등)를 제외하면 가장 중요한 열쇠는 '실시간성'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실시간성이란, PL의 의사와 상관없이 게임이 계속 진행될 때 발생하는 현장감을 뜻합니다. 책과 연극을 예시로 들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책은 독자가 읽는 그 순간에만 진행이 됩니다. 읽지 않는 동안에는 이야기도 진행되지 않아요. 하지만 연극은 관객이 보고 있지 않아도 계속 진행됩니다. 이야기를 지나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장르인 것입니다. 

 

 바로 이 포인트,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야기는 계속 진행된다는 감각이 실시간성입니다.

 

 이게 왜 TRPG에서 집중력을 유도하는 포인트가 되느냐? 연극과는 또 다르게 게임에서의 실시간성은 '내가 개입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집중하면 좋은 일이 생길 가능성이 존재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 가능성들이 지나가버린다는 현장감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희는 이걸 실시간성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실시간성을 제공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벤트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인데, 이건 GM이나 시나리오의 소모가 너무 큽니다. 뭣보다 다인탁이면 사람에 따라 집중도가 떨어지기도 해요. 

 

 그보다 좋은 방법은 PC간의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나의 행동이 너에게 영향을 미친다, 너의 행동이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황이 되면 집중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걸 어떻게 유도하면 될까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상호작용이 강조된 룰을 플레이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상호작용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적용하는 룰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밑의 세 가지 룰은 상호작용을 이득이 생기는 방향으로 활용한 케이스라고 생각해 소개해봅니다. 이 룰을 플레이해라! 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불러일으키는지 참고하는 용도로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 영원한 후일담의 네크로니카

 네크로니카는 기본적으로 턴제이지만 상대의 행동에 끼어들 수 있는 '래피드'라는 커맨드가 존재합니다. 원하는 타이밍에 언제든 뛰어들 수 있게 하여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그래서 에너미가 위험한 공격을 시도하려고 할 경우, 또는 다른 PC에게 버프를 주고 싶을 경우, 래피드 스킬을 사용해서 순서에 상관없이 바로 도움을 줄 수 있어요. 언제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턴제임에도 실시간성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 사무라이 블레이드
 사무라이 블레이드는 나에게 주어진 화패를 사용해 다른 플레이어에게 재굴림권을 써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사무라이 블레이드에서는 주사위가 크리티컬이 나와야만 성공 처리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재굴림권이 아주 유용하게 쓰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메인 플레이어가 주사위를 굴리는 순간을 아주 집중해서 보게 됩니다. 자신이 도울 일이 없는지를 끝없이 체크하게 되지요. 실시간으로 세션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 아마데우스
 아마데우스의 경우에는 공용 자원이 존재합니다. 플레이어들은 판정에 필요한 주사위를 굴린 후, 남은 주사위로 각각의 번호에 대응하는 공용 자원을 쌓을 수 있습니다.

 1 흑 / 2 적 / 3 청 / 4 녹 / 5 백

 그리고 스킬 발동 조건이 바로 공용 자원의 개수를 따릅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스킬을 사용하려면 적적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어, 공용 자원에 적 2개 청 1개가 채워져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누군가가 판정에 쓰고 남은 주사위 '2'와 '3'을 사용해서 공용 자원을 채워줘야 합니다.

 이러다 보니 주사위를 굴릴 때마다 서로에게 뭐가 필요한지 실시간으로 소통하게 됩니다. 

 

 세 룰의 공통점은 다른 플레이어의 행동에 내가 이득을 주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두가 기본적으로 버퍼가 되는 셈이지요. 언제든 상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포지션이 되면 책임감과 더불어 몰입도가 동시에 생깁니다. 실시간으로 세션이 집중할 수 밖에 없게 되지요.

 

 두 번째 방법은 플레이와 별개로 강제 정지 or 진행되는 구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가장 쉬운 예시로는 시간 제한이 있습니다. n시간 안에 해결해야 한다! 같은 미션을 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모든 세션을 이렇게 플레이할 수는 없습니다. 이걸 두 가지 방식으로 응용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 플레이와는 별개로 계속 흘러가는 상황을 병행 연출하는 것입니다. 플레이어들이 뭔가를 두고 고민하고 있을 때, '한편'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을 중간 중간에 삽입해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들이 방에서 나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면, '한편 밖에서 누군가가 무거운 것을 끌고 다가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같은 식으로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음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플레이에 너무 압박을 주지 않는 한도에서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계속 암시해주면 아무래도 집중하게 됩니다. 하다 못해 '여러분이 그런 대화를 하고 있는 동안, 메이드는 차를 끓이다가 손을 댑니다' 같은 식으로라도 환기하는 묘사를 넣어주면 좋습니다. 

 

 다른 방법은 맛탕 🍋 님이 말씀해주신 '팬딩'입니다. 일부러 특정 사건에 대한 결과 또는 보상을 지연시켜서 그 생각에 계속 집중하도록 만드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플레이어가 어떤 NPC를 취조했을 때, 그 NPC가 잠깐 시간을 달라고 하면서 자리를 피한다든가 하는 상황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 외에 아이템을 얻었는데 사용 용도에 대해 잠깐 비밀로 해둔다든가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요.

 

 본래 사람은 해결되지 않은 일에 집중하게 되니 그 원리를 활용한 것이지요.  물론 팬딩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게끔 조절하고, 팬딩된 만큼의 보람을 줄 수 있도록 보상 측면에서도 고려할 점이 많겠습니다만, GM의 위기 상황(?)에 적극 사용할 만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하면, 실시간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PC간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룰을 플레이하거나, 마스터링 과정에서 '한편'과 '팬딩'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장면을 환기시켜주면 됩니다.

 

 물론 이것 외에도 더 많은 노하우와 좋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또 다른 티알피저 분들이 공유해주시겠죠:) 그날을 기다리며 이 글도 마쳐봅니다. 

 


 

 지금까지 다룬 모든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부분만 가져가셔도 액기스는 다 챙겨가실 거예요. 

 

게임은 감정을 자극하는 경험을 만들어내며, 외재적 보상과 내재적 보상이 일치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좋은 게임은 내러티브로 플레이어의 동기를 자극하고 보상한다.
테스트 플레이로 완성도를 높이되, 창의적인 시도로 새로움을 유지해야 한다.
모든 과정이 원활하려면 플로우가 끊기지 않도록 실시간성이 느껴지게 해야 한다.

 

 

 책에는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누락된 내용이 굉장히 많습니다. 특히 코어 플레이와 의존성 탑에 대한 내용은 굉장히 좋은데, 이 글에서는 TRPG와의 접점에 초점을 맞추느라 굳이 적지 않았지만, 관심 있으신 분들은 반드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함께 토론하면서 고견 주신 맛탕님과 우롱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 읽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영감이 되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의 탁이 평온한 가운데 극적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