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장, 밀실, 살인. 뻔한 소재인 건 알지만 뻔할 수록 잘 먹힌다. 내용이 뻔하지 않으면 되지 뭐. 그렇게 생각하고 스키장에 있는 호텔에 틀어 박힌 지 벌써 3개월 째...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초고는 이미 마무리했어야 하는데.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아아, 남자다. 남자가 없어서 글이 안 나오는 거다. 연애는 하루종일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서 곤란하지만, 약간의 자극은 생활에 활력을 주거든. 괜찮은 남자가 있으면 잠깐 데리고 놀아야 겠어. 이제 연말이라 사람들도 많이 몰릴 거고 말이야.
...음? 아, 젠장. 또 그 여자 전화지? 하루에 20통씩 찌라시를 보내는 것도 모자라 이제 아침 저녁으로 전화까지... 이쯤 되면 지랄도 정성이지. 그놈의 초보자용 임간 코스인지 뭔지 한 번 듣고 말지, 진짜.
아, 남자... 다 필요 없고 남자가 필요해.
에고님의 자비로 2017년 연말을 크툴루 세션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생전 처음 해보는 OR!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시작했는데... 그냥 한마디로 말하자면 제가 6개월만에 후기를 쓰고 있습니다 ^_TTT 써야 할 후기가 이빠이 있는데도 이것부터 쓰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 이걸 시작으로 착착 써나갈게요.
후우, 자. 차분히 시작해 봅시다.
우선 첫 OR이라 걱정이 많았습니다ㅠㅠ 늘 TR만 하다가 텍스트로만 해야 하는 것도 은근 부담스럽고, 롤20 사용법도 전혀 몰랐거든요. 하지만 준비된 OR 선생님 루루팡님이 잘 인도해주셔서 롤20 정착은 무사히 치렀고 캐메도 아주 간편하게 잘 치렀습니다. 그리고 텍스트 플레이도 전혀 어렵지 않았고요! (오히려 알피는 TR로 할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했닼ㅋㅋㅋ / 생각해보면 저는 실물보다 텍스트 친화적인 인간이고 ㅠㅅㅠ)
오히려 기존 비주얼 노블 게임할 때 느끼는 그런 기분 좋은 피로감이 느껴져서, TR과는 또 전혀 다른 맛이 있었고 집순이인 저는 너무 너무 좋은 세계를 다시 알아버렸고(?!)ㅋㅋㅋ 실제로 세션 끝나니 비주얼 노블 한 편 하루에 올클리어할 때 그 느낌이 들더라고요. 시간을 오래 투자하는 만큼 시나리오나 NPC와 친해져서 몰입도가 더더욱 올라가는 그 느낌...! 제가 진짜 사랑하는 감정이고, 그래서 플레이 타임이 긴 비주얼 노블을 매우 사랑합니다ㅠㅠㅠ 근데 그걸 OR에서 느꼈네 크흡 ㅠㅠㅠㅠ 이 자체만으로도 감동이었고요..
그렇게 12시간이 넘는 대규모 세션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와, 정말... 엄청난 시나리오였습니다. 여러가지 의미로!ㅋㅋㅋ 이렇게 감정 이입하면서 플레이해 본 게 대체 얼마 만인가 싶을 정도였고, 이렇게 고민하면서, 이렇게 간절하게 해피엔딩을 원하면서 플레이한 시나리오도 없었던 것 같아요ㅠㅠㅠㅠ
감히 말하건데... 제 TRPG 인생 세 손가락에 꼽을 세션이었던 것 같습니다 ㅠㅁㅠㅠ
스토리는 간단하고 아주 고전적입니다. 스키장에서 만난 플레이어들이 초보자를 위한 임간 코스에 참여하면서 벌어지게 되는 일종의 추리극... 인데, 그냥 추리극이 아니라 정말 무서운 장치 몇 개가 시나리오의 핵심 매커니즘으로 작동하는 대작 볼륨의 시나리오예요. 이 장치 때문에 마스터링 난이도가 급상승하는데, 난이도가 높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시나리오는 정말... 제가 살면서 본 TRPG 시나리오 중에 마스터링 난이도가 가장 높습니다ㅋㅋㅋㅋ 중간부터 '아, 이건 마스터링 절대 무리야ㅎㅎ' 같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요.
마스터가 두 명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 할말 다 한 게 아닌가 싶은데@_@;; 어쨌든 세션 끝나고 가장 궁금했던 건, '아니! 이거 TR로 돌리신 분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였고 ㅠㅠㅠㅠ 진짜 궁금합니다. 이거 TR로 돌려보신 분들 제게 디엠 좀 ㅠㅠㅠㅠㅠ 저도 중간까지 TR로 소화할 방법만 연구하면서 플레이하고 있었는데, 후반의 어느 시점에서 완전히 놔버렸거든요. TR로 소화할 순 있겠지만, OR로 하는 게 가장 퍼펙트! 한 느낌이라 궁금합니다. 진짜 매우 매우...
...라고 말할 만큼, 이 시나리오는 OR에 최적화... 아니 OR로 해야만 하는 시나리오입니다. 그래야 진가를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TR버전을 안해봤지만...!) 등장하는 NPC도 많고, 마스터와 1:1로 대화해야 하는 부분도 굉장히 많습니다. 여기까지였으면 어떻게 핸드아웃이나 챗으로 해결해보려고 했는데 거기에 +a, a, a 되면서...ㅋ 포기. (팀원들 미안해요 홍홍 ㅠㅁㅠ)
굳이 TR로 만든다면, 크툴루보다 인세인이 어울리겠다 싶기도 했는데... 소화가 가능한 정도일 뿐이지 OR로 느낀 이 재미는 없었을 것 같고... 아무튼, 저는 하신다면 무조건 OR 추천입니다. OR만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뽑아먹을 수 있는 시나리오예요. 훌륭합니다. 짝짝.
하지만 사실 시나리오에 모든 공을 돌리긴 뭐한게, 이 시나리오는 정말 마스터가 노련하지 않으면 말아먹기 쉬운 어려운 시나리오거든요. 그리고 어찌 보면 매우 실험적인 부분도 있어서, 그 부분에선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주지 않으면 / 또는 노력했다고 해도 그 방향이 엉성하게 풀리면 한 순간에 확 노잼이 될 수도 있는 로또성이 있는 시나리오라, 시나리오 자체의 완성도만 따지면 조금 경악스러운 부분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 간의 시나리오 체감도가 많이 다를 시나리오라, 모두에게 평균 이상의 재미를 주려면 약간 운이 따라줘야 하지 않나 싶고요.
즉, 마스터가 엄청 열심히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체크하고 분배하지 않으면 소외되는 플레이어가 발생하거나, 초중반부가 매우 지루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시나리오입니다.ㅠ 물론 중반부를 넘어가면 어떤 장치에 의해 모든 포텐을 폭발시키며 세션 자체가 미쳐 날뛰기는 하는데... 이게 모든 분들께 다 들어 맞을지는 조금 의문이긴 합니다. 한마디로 어려워요ㅠㅠㅠ 마스터링도 어렵고 플레이도 어렵습니다ㅠㅠ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나리오는, 아니 오늘 세션은 훌륭했습니다.
일단 에고님이 시나리오를 장악한 상태에서 시스템에 맞게 잘 진행해주셨고, 플레이어분들도 저마다 역할에 맞게 적극적으로 잘 응해주셨어요. 게다가 저는 의도치 않게 약간 주인공 루트(..?)를 밟아버렸는데, 으윽... 이 루트가 너무 취향에 잘 맞고 전개도 원하던 대로 되서 ㅠㅠㅠㅠㅠ 더더욱... 아마 오늘 플레이어분들 중에 제가 제일 몰입이 심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ㅠㅠㅠㅠㅠㅠ 아 진짜 ㅠㅠㅠㅠ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미친 세션이었습니다ㅠㅠㅠㅠㅠ
추리물이라는 장르에도 아주 잘 부합하는, 혹자는 김전일 극장판 같은 TRPG라고 하시던데, 정말 김전일 극장판을 TRPG의 문법으로 읽어내면 이렇게 되지 않을가 싶었고요ㅎㅎ 단순한 옮김이 아니라, 정말 TRPG화 시켜 버린 느낌이라 제작자의 내공이 엄청나다는 걸 느끼면서 플레이했습니다.
진짜 재미있는데, 진짜 명작인데, 플레이 타임 100시간 넘어가는 비주얼 노블 같은 느낌(?) 그런 대작 특유의 테이스트가 찐하게 묻어 있고, 대작 고유의 단점마저 그대로 녹아 있는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대작인 시나리오입니다ㅎㅎ TR로는 쉽게 즐길 수 없는 밀도감이 있어서 너무 좋았고, 그 밀도에 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묵직한 임팩트를 받는 사람도 있을 법한 찐-한 시나리오였습니다ㅎㅎ
스포 없는 후기를 위해 내용은 자제합니다만... 진짜 너무 간절하게 해피 엔딩을 원하면서 플레이했을 정도로 엄청나게 이입하면서 플레이했고, 그 결과가 이루어져서 너무 기쁘고 뿌듯했습니다ㅠㅠㅠ 설산밀실을 해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이런 캐릭터로 이런 플레이를, 이런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게 가장 기쁘고 영광이었어요.
저는 일단... 에고님 마스터링 스타일이 너무 좋습니다.
뭔가, NPC가 항상 살아 숨쉬는 느낌이고 플레이어와 적극적으로 교감을 해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이 교감이라는 게 단순히 대화를 나누거나 친해지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저 캐릭터는 저 캐릭터의 세계관을 가진 상태에서 나와 교감을 하는 느낌이라 너무 좋은데... ㅏ 하면 ㅓ 하고 답해주는 느낌이랄까...! 진짜 친해지는 느낌이에요ㅠㅠㅠ 플레이하고 끝! 이 아니라, 그래서 그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그 후에 잘 지내고 있을까? 이런 느낌이 드는 알피나 마스터링을 해주셔서 넘 좋아요... 여운이 장난이 아닙니다ㅠㅠㅠ 진짜 사랑해요 에고님 ㅠㅠㅠㅠ (와락) 오늘 NPC 알피는 정말 제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셨습니다 ㅠㅠㅠㅠㅠ
그리고 OR 입문도 도와주신데다, 꼼꼼한 추리로 늘 허투루 나가는 법이 없는 루루팡님ㅠㅠㅠ 오늘도 믿고 가는 플레이였고, 진짜... 마지막에 참 진짜...ㅋㅋㅋㅋㅋ 루루팡님의 새로운 모습을 보면서 즐거웠고(???) 실제로 추리력이 많이 필요한 세션이라 자칫하면 방향도 못잡고 어긋날 가능성이 있었는데 루루팡님이 정돈된 추리를 보여주셔서 초반에 저도 좀 감을 잡고 플레이할 수 있었고, 늘 생각하지만 넘나 든든하고 멋진 플레이어이십니다..! 오늘도 같이 해주셔서 기뻤어요 ㅠㅠㅠ
오늘 처음 함께 한 Hyu님..! 팀 폴라리스의 명성은 익히 들었고 정말 캐릭터의 모든 생각이나 대사가 로지컬(!)하고 개연성이 있어서 한참 멍때리다가 Hyu님이 한마디 하시면 "앗, 그랬지!" 하면서 저도 원래대로 돌아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초반에 그런 것들이 있어서 후반에 좀 템포가 늘어지지 않으셨을까 싶었는데ㅠㅠ 그래도 마지막까지 충실한 자기 어필(?) 놓치지 않고 해주셔서 넘 좋았고, 바쁘신 와중에도 집중해주셔서 덕분에 마지막까지 잘 끝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드림 소설 드립은 잊지 않을게욬ㅋㅋㅋ 언젠가 TR로도 뵙고 싶습니다/ㅅ/
마찬가지로 처음 함께 한 코비님! 우왕 코비님 너무 알피 잘하시곸ㅋㅋㅋ OR 하시던 분 답게 흐름 타시는 거나, 필요한 타이밍에 필요한 말씀 해주시는 거 솔직히 프로 같아서 너모 멋있었습니다. -//- (잊지 마세요! 전 초반까지 코비님과 썸을 탔다는 것을!!ㅋㅋㅋㅋ) 리액션도 적극해주시고, 탐라에서도 늘 먼저 따뜻하게 말씀 주시거나 포근한 트윗 자주 해주셔서 꼭! 꼭! 같이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OR로나마 뵙게 되서 너무 영광이었고, 윤복이도 잊지 못할 거예요ㅠㅠㅠ 노란 브릿지의 청년...! 행복하시게! 또 다른 룰이나 TR로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간만에 쓰는 후기인데, 스포 없이 쓰려니 너무... 너무 감질 맛이 납니다! 사실 이건 후기보다 리플레이를 만들어야 하는 세션이기도 하고ㅋㅋㅋ 리플레이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_T 아무튼, 2017년 마지막과 2018년의 처음을 잇는 세션으로서 설산민실을 할 수 있어서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만족했습니다!
다시 한 번 긴 시간 동안 마스터링 해주신 에고님 감사드리고 ㅠㅠㅠㅠ 함께 해주신 루루팡님, Hyu님, 코비님도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 안 되겠다. 스포 포함한 후기 쓴다 써. 내가 여운이 안 가셔서 죽겠다 ㅠㅠㅠㅠ 이하 스포 포함 후기입니다.
후, 일단 저는 PC4의 '민소영'이라는 캐릭터로 진행했습니다.
직업은 작가, 나이는 37세, 여성이고 추리 소설을 쓰기 위해 스키장에 있는 호텔에 3개월 정도 틀어박혀 있다는 설정이었고요. 초기에 연하남 킬러(..) 라는 설정을 넣어 놔서 여기저기 플러팅하는 역할을 해보려고 했습니다ㅋㅋ 골초에 연애는 안하고 원나잇만 즐기는 닳고 닳은 누님이라는 설정이었는데... 큽, 이 설정 때문에! 이 설정 때문에 마지막에 더욱! (바닥 긁는다)
어찌됐든 함께 플레이해주신 코비님은 스키장의 안전 요원인 신윤복, 루루팡님은 프로게이머팀의 코치인 이민아, Hyu님은 스키장으로 파견 근무를 나온 회계사 김예지를 맡아서 플레이해주셨습니다. 이 중에 신윤복은 마침 제 캐릭터가 노릴 법한ㅋㅋㅋ 연하남 캐릭터라서 처음 만난부터 미친 플러팅을 던지며 연을 맺었고(..) 코비님도 넘나 프로답게 제 모든 플러팅에 응해주셔서 초반엔 신윤복 하렘물이냐는 얘기까지 나왔을 정도롴ㅋㅋㅋㅋㅋ 오그라들면서도 재미있었어요. 크흡ㅠㅠ
그렇게 저희 넷은 약간 도짓코... 아니 좀 미쳐있는 스키장 직원 박서윤과 함께 초보자 임간 코스에 참가하게 되었고, 예정대로 산을 오르다 폭설을 맞이하여 낡아 보이는 펜션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4명의 NPC, 간호사인 서유진과 그의 남친인 듯한 최영철, 그리고 츤데레 여대생(..) 이혜지와 프리터 박성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명 더 있는데... 그 분이 바로 제가 이번 세션에서 사랑하게 된(??) 이노아(일본명: 이와세 켄고)라는 대학생입니다. ㅠㅠ 플레이해본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큽, 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소년 탐정 캐릭터고요. 저는 에고님이 준비해오신 포트레이트 보고 첫눈에 뿅가서 그전가지 썸타던 윤복을 내쳐버리고 이후 플레이는 모두 노아와 함께 했습니다ㅋㅋㅋㅋ
다들 이것저것 조사하실 때 저는 노아를 데리고 지하실로 향했고요. 솔직히 이때 노아를 데려간 이유는,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혼자서 설산을 구경하러 왔다는 게 좀 이상해서(?) 캐볼 마음으로 그랬던 건데, 그냥 대화해보니 별다른 내용은 없어서 좀 더 지켜봐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하실에 들어가서 저장고를 연 순간! 모두 아실법한 서섹스의 초안을 발견했고, 저는 '아 이건 크툴루에서 으레 나오는 서적이구만ㅎㅎ' 하고 가져가서 모두에게 저장고의 상태와 책에 대해 알릴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노아가 만류하더군요..! 일단 혼자 알고 있는 게 좋겠다고 해서, 고민 끝에 내용이라도 읽은 후에 공개하자는 심산으로 나왔습니다.
이후, 밖에서 또 한 명의 조난자 안성호 씨가 옵니다. 그렇게 무대의 모든 등장인물이 모이고... 이후 전개는 해보신 분들은 모두 아시다시피 한명씩 웬디고라는, 인간의 얼굴을 흉내내는 이타콰의 종자에게 한명씩 붙잡혀 가시는 전개가 되었고요. 저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생존자였습니다ㅠ
생존자로 플레이하다보니 다들 먹히고 먹는(?) 중반부에서는 사실 정보가 거의 들어오지 않아,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였는데ㅠㅠ 제겐 아주 중요한 역할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하실에서 발견한 서섹스의 초안을 번역하는 것이었죠. 이게 그렇게 중요한 건 줄 몰랐는데 크흡ㅠㅠ
아무튼, 외국어를 찍어두길 잘했다! 싶은 마음에 틈틈히 시간이 날 때마다 번역을 했는데, 게임 시작하기 전에 너무 전투 능력치가 없는 것 같아 외국어를 조금 줄이고 주먹질에 찍어놨더니(??) 실패율이 꽤 되더라고요 ㅠㅁㅠㅠ 마스터님조차 함께 비명을 지를 정도로 필요한 타이밍마다 안 되서... 그래서 저는 노아의 도움을 구했고, 노아에게 제가 가진 총을 주고 신뢰를 구해서(호감도 상승(..)) 이후부터는 노아랑 딱 붙어 다니면서 계속 책을 번역했습니다.
사실 별다른 내용은 나오지 않아서 (그냥 크툴루적인 내용들) 마지막까지 번역할 의미가 있을까 했는데, 마지막장까지 번역하고 나서야 저도 몰랐던 이 사건의 전모가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ㅠㅠㅋㅋㅋ 그렇다고 아주 구체적으로 다 보인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데스마스크의 존재를 알게 됨으로서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특히 같은 플레이어라고 해서) 전부 믿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는 더더욱 노아랑 찰떡같이 붙어서 플레이 했습니다. (그리고 간간히 넘 모에한 알피 넣어주시는 에고님 크흡ㅠㅠㅠㅠㅠ 앙대 야매롱다ㅠㅠ)
그렇게 후반부에 이르러... 장작을 구하러 가는 파티가 꾸려집니다. 신윤복(코비), 이민아(루루팡), 이노아 이렇게 갔는데 노아가 왠지 무서워하는 것 같아서 제가 대신 가겠다고 했더니 마스터 왈 '노아는 아마 소영이 가는 걸 더 싫어할 거예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쉬봐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알았다ㅠㅠㅠㅠ 다녀와라 ㅠㅠㅠㅠㅠㅠ 무사해라 ㅠㅠㅠㅠㅠㅠ 완전 이 모드 되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때 이미 웬디고의 일당이 된 코비님은 루루팡님을 기습하여, 이민아마저 웬디고의 일당으로 만들기에 이릅니다ㅋㅋ 이 모든 광경을 지켜 본 노아는 펜션으로 황급히 돌아와 제게 윤복이 배신자이며, 민아 또한 죽여야 한다고 설득을 시작했습니다만... 같이 하는 플레이어분들을 의심하기엔 정보가 부족해서 긴가민가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잡혀간 줄 알았던 민아 씨가 의식을 치르기 위해 돌아오고ㅋㅋ 제가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자, 노아는 민아에게 함께 장작을 패러 가자고 제안합니다. 이미 웬디고의 수하가 된 걸 알고 있었던 노아가 ㅠㅠㅠ 소영을 지키기 위해 나가겠다고 한 것이죠 ㅠㅠㅠㅠ (아니다 이놈아
아무래도 나가면 안 돌아올 것 같기도 하고 ㅠㅠ 도대체 누굴 공격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웬디고는 유인원의 모습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다들 사람 모습이었으니까요ㅠㅠ) 저는 나가려는 노아를 붙잡고 확신을 달라고 했고, 이때 노아는 저를 패닉에 빠뜨리는 제스쳐를 취합니다... 자기 심장을 향해 찌르는 시늉을 하는 거에요.
이때부터 저는 ??????? 모드가 돼서, 아니 그럼 얘가 웬디고였단 말인가;; 그런데 나와의 짧은 만남으로 날 구하고 싶어져서 자길 죽이라고 하는 건가ㅠㅠㅠㅠㅠㅠㅠ 아니 시벌 내가 어떻게 죽이냐 널 응 으아아ㅓㄴ어ㅏ엉 엉 ㅠㅠ
...나중에 알고 보니, 혹시 민아와 나갔다가 자기 혼자 돌아오면, 그땐 자기도 웬디고가 되어 있을 테니 죽이라는 얘기였다고 하시더라고요 ^_^;;;; 아놔^_ㅠㅠ 노아야...
아무튼, 이때부터 거의ㅋㅋㅋㅋ 미친 듯한 고뇌와 번뇌가 계속되었고 ㅠㅠ 저 혼자 30분 가량 고민한 것 같은데, 결국 고민 고민하다가 제가 창을 들고 노아와 함께 나가기로 했습니다. 데스마스크는 상처를 입으면 벗겨지니까 함께 나가서 노아를 공격해보고, 만약 노아의 모습이 변하면 그대로 창을 찔러 죽인 후에 저도 자살할 생각이었어요ㅠ 혹시라도 다른 데스마스크가 숨어 있다가 절 죽이면 저도 웬디고가 되는 거니까... (특히 윤복은 그때 사라져서 돌아오지 않는 상황이었던 지라ㅠ)
주먹질 판정 성공. (이때 노아 새기 피하지도 않음ㅠㅠㅠㅠㅠㅠ 야이 시발ㅠㅠㅠㅠㅠ) 근데 상처가 안나서 어쩔 수 없이 창으로 허벅지를 살짝 찔러 보기로 했습니다. (이때도 안 피함ㅠㅠㅠㅠㅠ 야아아앙ㅇ) 근데 상처가 나도 얼굴이 안 변하더라고...? ??? ??? ????
그래서 너 왜 구라쳤냐고 했더니, 자기 구라 안쳤다고ㅠㅠ 민아가 지금 웬디고인 거라고 솔직히 불더라고요. 아 쉬벌 이때 얼마나 안심했는지 ㅠㅠㅠㅠㅠㅠ 노아 안 죽여도 된다 으앙안유ㅓㅣㅇㅠㅠㅠㅠ 하고 장작에 불을 붙여 달군 뒤에 바로 펜션으로 돌아갔습니다.
펜션에선 이미ㅋ 의식 준비를ㅋ 신나게 하고 계시더라고요ㅎㅎㅎㅎ 죽은 이혜지의 시체를 문앞에 고이 앉히며 뭔가를 하는 민아를 발견한 저는... 잠행을 판정했습니다!
근데 제가 잠행이 기본치라서 25밖에ㅠㅠㅠㅠ 실패했으면 아마 전투해서 제가 백퍼 졌을 거예요ㅠㅠ 전투 스킬 하나도 안 찍어서... 그래서 진짜 이때 엄청 간절하게, 아, 제발 주사위 신이시여 ㅠㅠㅠ 노아 구하게 해주세요 ㅠㅠ 살아남게 해주세요ㅠㅠ 빌고 빌면서 주사위를 던졌습니다.
24 뜨고 성공함.
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넘... 환희를 이기지 못하고 기뻐하며 민아의 행동을 지켜본 후, 바로 창으로 심장을 격파했습니다. 그렇게 웬디고는 의식을 치르지 못하고 사라졌고요. 흑... 폭설이 사라지고ㅠㅠ 동이 터오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ㅠㅠㅠㅠ
아, 진짜... 웬디고 소멸 선언 듣고도 내가 제대로 한 건가?? 싶어서 엄청 어리둥절했고 ㅠㅠ 조용하던 다른 두 분도 우르르 나와서 뒷 얘기 하시니까 비로소 아 ㅠㅠ 살았구나 ㅠㅠ 생존했다!의 기쁨 미친듯이 밀려 왔고ㅠㅠㅠ 옆에 사람 있었으면 안고 굴렀을 것 같습니다. 크흐흐흐ㅠㅠㅠㅠㅠ 진짜 너무 너무 뿌듯하고 기뻤어요 ㅠㅠㅠ 내가 쉬바 고민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ㅠㅠㅠㅠ
그리고 에필로그...
저는 불타는 펜션을 보면서, 노아에게 경찰이 오기 전에 도망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있었던 일은 없었던 거로, 너랑 나도 만나지 않았던 거로 하자고 했어요. 어차피 전 히키코모리 작가라 호텔에 계속 처박혀 있어서 다들 제 위치를 특정하기 힘들고, 오늘 임간 코스에 온 것도 순전히 윤복을 꼬시려고 충동적으로 온 거라 어디 알린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노아 역시 혼자서 겨울산을 보러왔던 거라 여기 온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제가 가지고 있던 서섹스의 초안을 주고 헤어지자고 했죠.
그러자 노아는 꼭 헤어져야 하는 거냐고 해서,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만날 수도 있지 않겠냐고 했더니 사실 우린 오늘 처음 만난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 그 이유에 대해선 마스터님의 여운 남기라고 상상에 맡겨주셨는데... 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노아처럼 추리에 관심이 많고 숙련된 녀석이라면 소영의 책을 읽었을 수도 있고, 사인회라든가 북 콘서트 같은 곳에서 만났을 수도 있겠다... 였습니다.
그렇게 다시 만나자는 말과 함께 노아는 소영에게 뽀뽀를 남기고 사라졌고요. (운다) 호텔로 돌아온 소영은 슬럼프를 이기고, 소년이 탐정으로 등장하는 추리 소설을 쓰기로 결심합니다. 만약 정말 내 독자였다면, 이 책이 나왔을 때 날 만나러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서요.
...라는 결말과 함께 제 설산밀실 플레이는 마무리되었습니다. ㅠㅁㅠㅠㅠ 에로스에 찌든 소설 작가였던 소영이 노아라는 대학생과 플라토닉한 관계로 끝맺는 결말 진짜 너무 취향이었고... 제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퍼펙트할 수 없는 엔딩이라 넘 감동하며 ㅠㅠㅠ 세션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렇게까지 NPC와 교감하며 플레이해본 것도 넘 오랜만이었고, 노아 자체가 너무 제 취향이라섴ㅋㅋ 사정없이 꽂혀서 진행한 것도 있고요 8ㅅ8 제가 너무 NPC에게 꽂혀서 중요한 걸 못보고 있지 않나? 하면서 계속 의심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했는데, 노아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제게 거짓말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고, 절 살리고 싶어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정말... 심장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큽ㅠㅠ
아아, 생존자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주사위 신님이 진짜 절묘한 타이밍에 크리티컬 띄워주시고 성공 띄워주시고 해서 운 좋게 생존자 루트를 탈 수 있었어요ㅠㅠㅠ 웬디고 루트 타신 분들도 나름의 왁자지껄한 재미가 있었을 것 같지만, 생존자 루트도 정말... 살아남았다...! 하는 카타르시스와 짠함이 공존하는 너무 좋은 시나리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