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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후기/모노톤 뮤지엄

SSS : 제1권 비단찢기는 성야에 춤춘다

by 에이밍 2021. 7. 5.

 

날짜 2020. 03. 21. 土 ~ 2020. 04. 17 
GM 광어 (@Thousandillutio) -
PC1 루와즈 (@ruwachilla) 레스테 에텔넬 루아흐
PC2 에이미 (@ehrtlr) 하이디
PC3 녹차파우더 (@melisi012) 크로셰
PC4 아본 (@eggpowder_abon) 시드

 

 티알 숙원 사업 중 하나였던 모노톤 뮤지엄 SSS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마스터인 광어님께 시나리오 집 사드리면서 돌려달라고 한 게 몇 년 전이더라(..) 아무튼, 기억하고 세션을 열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숙원의 캠페인인 만큼 후기도 잘 남겨보겠습니다. (__)

 SSS 캠페인은 4권으로 권당 2개의 시나리오가 실려있습니다. 즉, 총 8편의 시나리오를 플레이할 예정인데요. 이번 캠페인에서는 권당 후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막상 플레이해보니 한 권의 시나리오를 모두 플레이해야 이야기가 완성되더라고요. 1편의 이야기를 할 때 2편의 이야기를 참고하고, 2편의 이야기를 할 때 1편의 이야기를 참고하면서 탄탄하게 써보려고 해요.

 아울러 모노톤 뮤지엄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분들, 그리고 이 SSS 시나리오 집에 대해서 궁금한 분들께도 좋은 정보가 될 수 있는 후기를 써보고자 합니다:D 그럼 일그러진 컬러 팔레트의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모노톤 뮤지엄>이란?

 <모노톤 뮤지엄>은 <더블 크로스>로 유명한 F.E.A.R.에서 발매 중인 판타지 배경의 TRPG 룰북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티알러인 스가노 타스쿠(@suganotasuku)씨가 직접 그리고 쓴 작품으로, 동화 풍의 독자적인 세계관이 특징인 룰입니다. 동화풍 판타지에 *침식률을 얹은 느낌이랄까요? 침식률 참 사기템이야 어디다 붙여 넣어도 재미있어짐.

 *침식률 : 더블 크로스에 등장하는 스탯. PC에게 초인적인 힘을 부여하는 레네게이드 바이러스의 침식 수준을 표현하는 수치로,  높아질 수록 PC의 능력이 강해지는 만큼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할 확률도 높아진다.

 <모노톤 뮤지엄>에서는 이 수치를 '박리치'라고 표현하는데요. 이 세계로부터 PC가 얼마나 괴리되었는지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박리치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 복구할 수 없을 지경이 되면 '가람'이라는 괴물이 된다는 설정도 더블 크로스의 '졈'과 흡사하죠. 판타지 버전의 덥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기틀은 유사하다고 봅니다. 

힘을 얻는 대신 괴물이 되어가는 이야기


 F.E.A.R. 룰의 정체성을 제외한  <모노톤 뮤지엄>만의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역시 세계관입니다. 판타지/동화 풍의 세계관을 오타쿠 입맛에 맞게 일그러뜨려 둔 것이 정말 매력적인데요, 저주받은 왕자, 영웅이 될 뻔한 광대, 마녀가 된 인어 공주... 이런 키워드를 사랑하신다면 <모노톤 뮤지엄>을 좋아할 수밖에 없으실 거예요. 정말 세계관의, 세계관을 위한, 세계관에 의한 룰이기 때문이죠. 도대체 세계관을 어떻게 만들었기에 이런 소리가 나오는 건지 같이 살펴보시죠''/

 맛보고 가세요 오타쿠 들쑤시는 모노뮤 세계관

 우선 모노뮤를 안 해보신 분들도 세계관을 맛보실 수 있도록 정리해왔습니다. 세계관이 상당히 복잡한 편이라 여기서 설명한 내용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니 참고만 부탁드려요.


1000년, 아니 그보다 더 이전.

신은 이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신은 세상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이것을 왼쪽 땅과 오른쪽 땅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두 세계가 섞이지 않도록 신들은 오른쪽 땅으로 떠났고,
인간과 남은 존재들은 왼쪽 땅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들이 떠난 왼쪽 땅은 서서히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돈, 명예, 사랑... 온갖 욕망이 사람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신은 그들을 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신은 그들에게 '길잡이 표'라는 계시를 내렸습니다.
길잡이 표의 내용을 따르는 자는 불행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자는 공주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인간이 되어 주인을 구했습니다'

'잘됐어요, 잘됐어요.'

 

 

그러나 간혹 길잡이표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길잡이표를 거부하는 이들은 이형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간의 마음마저 잃게 된 이형은 '가람'이라 불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잡이 표가 얼토당토않은 계시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왕자는 공주를 죽였습니다.'

'인간이 된 고양이는 주인을 고양이로 만들었습니다'

'잘됐어요, 잘됐어요.'

 


사람들은 일그러진 길잡이표에 농락당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길잡이 표를 어기며 사람들을 돕는

'방직공'이라는 존재가 나타납니다.

 


방직공은 일그러짐에 휘말린 사람들을 구조하며

언제 가람이 될지 모르는 운명을 품은 채 세상의 균열을 기워나갑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때요? 매력적이지 않나요? 모노뮤의 세계관은 매력적인 세계관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신화적 기반, 그로 인한 이상 현상, 영웅의 도래와 고뇌까지. 저자가 따로 스토리텔링을 공부했나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세계관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어요. 다양한 컨셉의 캐릭터를 써볼 수 있게끔 동화풍으로 세계관을 잡은 것도 참 똑똑한 선택인 것 같고요.

 이게 말이 동화풍이지 오타쿠적으로 룽한 건 다 해볼 수 있는 그런 거거든요. 왕자, 공주, 거지, 광대, 마족, 범죄자, 수인... 이게 또 다른 룰에서는 접하기 힘든 롤인지라 더 유니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타쿠라면, 티알피저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보고 싶을 세계관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모노뮤의 세계관을 즐길 수 있게끔 4권의 시나리오 집으로 펴낸 것이 바로 <모노톤 뮤지엄 Super Scenario Support>, 줄여서 SSS입니다. 저희는 이 4권의 시나리오를 모두 클리어하는 것을 목적으로 모인 팟이고요:D 이것만 플레이해도 모노뮤는 이제 졸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캠페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현재에 이르렀다

 그럼 이번에는 SSS 1권 <비단찢기는 성야에 춤춘다>의 배경을 간단히 소개해볼게요. 이야기의 배경은 성도. 왼쪽 땅의 한 가운데에 있는 불사자와 종교의 도시입니다. 과거에 방직공들이 벌인 어떤 사건으로 인해, 방직공과 이형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중세풍의 도시에요. 폐쇄적이고 가혹하며 융통성 없는 도시입니다.


성도
, 방직공을 박해하는 중세풍의 종교 도시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98년 전, 성도에서 벌어졌던 <비단찢기의 밤>이라는 사건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비단찢기의 밤>은 <저녁 뜸의 처녀>라는 존재와 그를 따르는 방직공 조직인 <황혼의 사도>가 당시 성도에 살고 있었던 불사자를 차례차례 죽이고 이형으로 만들었던 대참사입니다.


저녁 뜸의 처녀, <비단찢기의 밤>에 방직공들과 함께 불사자를 학살한 지도자


 그후, 성도는 성교회라는 집단이 질서를 잡게 됩니다. 성교회는 <비단찢기의 밤>의 원흉인 방직공들을 철저히 배척하고 이형을 처단합니다. 그 후 성도는 다시 안정을 되찾긴 했습니다만 방직공과 이형에게는 매우 빡빡한 도시가 되어버립니다. 같은 성교회 안에서도 방직공을 처단하려는 강경파와 추방하려는 온건파로 나뉘어서 정치적인 긴장 관계가 형성될 정도로요.


성교회, 방직공을 처단하고 성도를 지키는 종교 집단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사라진 줄 알았던 <저녁 뜸의 처녀>가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저녁 뜸의 처녀>가 등장하는 꿈을 꾸거나, 그녀의 환각 또는 환청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처녀의 환상 뒤로 이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불길한 길잡이표가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마침 이날 태양이 검게 물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날을 <흑점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흑점의 날, <저녁 뜸의 처녀>가 다시 나타나 세상의 종말을 예언한 날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왼쪽 땅에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그러진 길잡이표'와 이형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성교회의 활동을 더욱 바빠지는 건 당연지사였겠죠. 하지만 역시 감당하기 어려웠나 봅니다. 결국, 성교회는 성도의 방직공과 이형을 모두 불사르는 대규모 화형식을 치릅니다.


성도의 대규모 화형식
, 성도에 머무는 방직공과 이형을 대량으로 화형에 처한 사건.


 플레이어들은 바로 이 성도에서 방직공의 정체를 은닉한 채 살아가는 PC들을 플레이하게 됩니다. 크게 2부로 나눠진 이야기 속에서 성도에 감춰진 참혹한 진실들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각각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설명해보겠습니다.

 


<비단찢기는 성야에 춤춘다>

 

 

 1부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성도의 수예점에서 참살 사건이 벌어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성도회는 이 사건을 <갈고리찢기 에파세>라는 이형의 짓이라 판단하고 수사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PC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방직공들이 됩니다. PC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PC1 : 불사자, <갈고리찢기 에파세>의 연인.
 PC2 : 성교회의 승려, 무수히 많은 이형을 처단한 성도의 영웅.
 PC3 : 여행자, 수예점 참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여행자 조합에서 보낸 방직공.
 PC4 : 기사, 성도의 백은기사단에 소속된 기사. 소중한 사람이 이형이 되어 잃은 기억이 있다.


 PC 구성이 참 기가 막힙니다. 저는 어지간해서는 핸드아웃 보고 고민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4명 다 해보고 싶어서 어쩌나 싶을 정도였어요. 도시의 배경이 되는 사건의 핵심 인물로 PC군을 구성한 게 인상적이더라고요. (불사자-성도회-방직공-기사) 실제로 포지션의 차이 때문에 이야기를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ㅎㅎ

 한편으론 PC가 저마다 다른 세력을 대표하다 보니, 얘네가 어떻게 해야 협력할 수 있을까(..) 싶어서 초장에는 합류 포인트를 잡느라 다 함께 우왕좌왕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요. 헤매고 고민한 만큼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가 서로 잘 엉겨 붙어서 짜릿한 순간들이 연이어 터지더라고요.

 PC간의 입장 차이가 크고,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을 탁의 몫으로 둔 만큼 팟의 구성원이나 분위기에 따라 전혀 다른 전개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개인적으로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저희는 저희 탁대로 룽~ 하고 멋진 이야기가 나와줬습니다:D

 


<구제는 화형과 같이 오누나>

 


 그리고 이어지는 2부에서는 훨씬 짜릿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1부의 참살 사건을 해결한 뒤 저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이번엔 길잡이표에 의해 PC들이 위험에 휘말리게 됩니다(!) 어떤 위험인지, 어떤 PC인지는 직접 플레이하면서 확인해 보시는 걸 추천 드려요ㅎㅎ 이게 모르고 당하니 짜릿한 게 있어서...

 2부도 마찬가지로 <비단찢기의 밤>과 <흑점의 날>로부터 이어지는 비극을 다루고 있습니다. 1부에서는 깊게 파고들지 못했던 부분을 사정없이 갈라내면서 도시에 감춰진 진상으로 도달합니다. 1부와 2부 각각 어느 정도 완결성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이 도시에 숨겨진 이야기를 완전히 즐기고 싶으시다면 2부까지 꼭 즐겨주셨으면 해요. 1부에서 남겨뒀던 부분들을 모조리 썰어서 밥 위에 올려 촤르륵 늘어놓는 참치 해체 쇼가 벌어진단 말이죠(..)

 1부가 정성스레 재료를 골라 스시를 만드는 세션이라면, 2부는 스시가 입안에서 흩어지는 걸 만끽할 수 있는 세션이랄까요.  세션마다 다르게 전개되겠지만 저희는 정말 할 수 있는 걸 다한 느낌이라서 개인적으로 대만족한 이야기였습니다.

 방직공에게  가혹하기 짝이 없는 이 도시에서, 방직공인 것을 숨긴 채 살아가는 PC들이, 거대한 사건에 휘말려 역사의 이면에 다가가는 이야기라니...  짜릿하지 않나요? 멘토스로 만들어진 PC들에게 사이다를 부어주는 듯한 세션이었네요. 실제로 짜릿했는가 하면 말해 뭐하겠습니까ㅎ... 그럼 슬슬 저희 세션 얘기로 넘어가 볼게요. 우선 저희 PC들 설정을 보시죠.

 저마다 사정을 감춘 채 살아가는 성도의 PC들

 알아야 할 세계관의 정보량이 많은 세션이다 보니, PC들도 시작부터 개인 서사를 잔뜩 물고 이야기에 뛰어들었습니다. 여기서 조금 정리해둬야 후기를 읽으실 때 편할 듯해서 좀 애써서 정리해보았는데요ㅎㅎ (그럴 이유가... 있음...) 이번에는 세계관과 관련된 부분인 기존 설정과 플레이어가 만든 부분인 고유 설정으로 나눠서 써보았습니다.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C1 & PC3 레스테 에텔넬 루아흐

현자 / 귀인 / 불사자
루와즈

 

기존 설정 성도에 사는 불사자로 귀족과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불사자가 된 사람은 재능과 관련된 신체 부위가 무지갯빛으로 빛난다.
레스테의 경우, 과거에 <비단찢기의 밤>에서 동반자였던 에파세 에텔넬 로리카를 잃은 경험이 있다.
고유 설정 레스테는 '춤'의 재능으로 불사자가 된 무희로, 불사자의 상징으로는 무지갯빛 발을 가지고 있다.
에파세 에텔넬 로리카의 연인으로, 에파세는 <비단찢기의 밤>에 방직공들에게 살해당했다.
레스테의 이름은 남아있다, 여전히~하다라는 뜻으로 에파세의 사라지다, 잊혀지다라는 의미와 반대이다.


 루와즈님이 데려와 주신 불사자 레스테입니다. 무려 발이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유리구두 신은 신데렐라 아가씨 컨셉이라니ㅠ 이게 머선129~~! 오타쿠 죽네ㅠ0ㅠ 레스테의 모습은 녹차님이 그려주신 풀버전 이미지를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정말 완벽하게 표현해주셨거든요ㅠ  녹차님 후기 링크

 레스테는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불사자(귀족)에 속하는 캐릭터입니다. 이 룰에서 불사자는 선천적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후천적으로 선택받기도 하는데요. 신이 보기에 흡족한 재능을 가진 자는 몸에 무지갯빛의 표징이 새겨지며 죽지 않는 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가뜩이나 성도는 신을 섬기는 곳이기에 불사자가 매우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자신들만의 고립된 구역에서 생활과 사치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받으며 살아가요. 


 그 와중에 <비단찢기의 밤>이라는 대참사가 벌어지고 만 겁니다. 성교회는 불사자를 지키기 위해서 방직공을 몰아냈고, 불사자는 더더욱 폐쇄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왠지 불사자들이 과보호 받는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레스테는 과보호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지키는지를 보여주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새장 속에서 갇힌 인물은 보통 새장에서 도망치거나, 새장 속에서 안주하는 결말을 맞이하게 마련인데 레스테 같은 경우에는 새장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불사자인 자신이 처지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두려움 없이 뛰어드는(=방직공으로서 싸운다) 캐릭터였거든요. 참 멋진 불사자였어요.


 


PC2 & PC2 하이디

승려 / 범죄자
에이미

 

기존 설정 성교회는 크게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며, 이들은 방직공이나 이형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온건파는 방직공과 이형을 보호하려고 하고, 강경파는 그들을 처형하고자 한다.
•하이디는 성교회의 영웅으로 불리는 승려이다.
고유 설정 •하이디는 온건파 소속의 승려이나, 뒤에서 성도의 범죄 조직인 <포르테>를 이끌고 있다. 
•성도의 화형식 사건에서 시드(PC4/기사)의 소중한 사람을 화형에 처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과거 크로셰(PC3/재봉사)가 성도에서 각성했을 때, 그를 밖으로 내보내 살려준 사람이다.


 제 PC인 하이디입니다. 이래저래 무거운 역할을 받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드는 서사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PC입니다. 이 PC의 테마는 '죄책감'이 아닐까 싶은데요. 죄책감으로 시작했던 이야기를 해방이라는 이름의 타락으로 끝맺는 이야기의 고저에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PC이기도 합니다. 하이디의 모습도 녹차 님이 너무나 멋진 필체로 그려주셨으니 스포일러 상관없는 분들은 구경 부탁 드립니다 ;_;  녹차님 후기 링크

 잠시 후 소개할 시드라는 캐릭터와도 어느 정도 서사가 엮여있기도 합니다.. 이형이 되어버린 시드의 딸을 화형에 처한 장본인이 하이디거든요... 그리고 사실 이 설정은 원본 시나리오에서는 상정되지 않은 내용입니다. 이 연결고리는 마스터인 광어님이 만들어 주셨는데, 돌아보니 이 설정이 없었으면 하이디가 세션에서 할 말이 많이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PC4와 서사를 엮어주신 덕분에 저도 후반부에 그런 서사를 만들 수 있었어요. (배부름)

 
 아무튼, 하이디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물리적으로 시드의 딸을 불사른 것은 하이디이고,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화형 당시의 오감이 온몸에 켜켜이 박힌 채,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아온 하이디가 자신의 죄책감을 털어내려고 애쓴 결과가 2부의 그 엔딩인 게 너무 좋았어요. 그리스 비극도 이렇게는 못쓴다(?) 자세한 이야기는 마찬가지로 스포일러를 포함한 후기에서 :)

 하여튼 성직자 설정만 달랑 들고 가자니 제 안의 청개구리가 청개굴청개굴하고 울어서 범죄자 레벨도 함께 가져갔는데요ㅋㅋ 이 설정은 엄청 유용하게 써먹진 못한 것 같지만, 하이디가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테마상 잘 어울리는 직업이었던 것 같아서 그것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생전 처음 해본 할머니 PC이기도 했고요. 여러모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아요ㅎㅎ



PC3 & PC1 크로셰

재봉사 / 여행자
녹차파우더

 

기존 설정 •이단의 마녀라 불리며 세계를 수선하는 재봉사다.
•밤의 여왕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성도의 재봉사 조합 지부인 수예점의 조사를 맡게 되었다.
고유 설정 •성도에서 태어났으며 불사자인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나 어느 날, 성도 한복판에서 방직공으로 각성하는 바람에 성도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재봉사 조합에 소속되어 왼쪽 땅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조합의 임무를 해결하고 있다.


 PC 중 유일하게 대놓고 커버(?)가 재봉사인 녹차님의 크로셰입입니다! 소년 같은 외모와 달리 31세의 아가씨인데 어쨌든 일행 중에 제일 나이가 어리긴 해서 어린아이 취급(..)을 받았네요. 재봉사+여행자는 이 룰의 주인공 포지션이라고 과언이 아닐 정도의 조합이죠. 더군다나 녹차 님이 맡아주신 덕분에 더더욱 PC1 같은 캐릭터가 되었다고 합니다ㅎ

 과거의 문제에 얽매여 있는 다른 PC들과 달리, 유일하게 현재의 문제에 맞닥뜨린 PC이기도 합니다. 그는 <비단찢기의 밤>도 <흑점의 날>도 잘 몰라요. 그런 점에서 크로셰는 외부인이자 관찰자이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 전체의 PC1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른 PC들은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지만 크로셰는 할 수 있거든요. 크로셰가 마지막에 하이디에게 외쳐주었던 그 대사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고요. (자세한 건 후기U_U)

 캐릭터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세상 풍파를 많이 맞았어도(?) 밝고 건전한 성품을 가진 단단한 PC입니다. 녹차 님이 애용하시는 유형이라고 생각하는데 썩어야 할 때는 팍 썩은 애들 쓰시고, 건강할 때는 세상 튼튼한 애들을 골라 잡으셔서 세션에서 뵐 때마가 신기합니다(?) 겉절이랑 묵은지를 번갈아 먹는 느낌이랄까^ㅁ^ (좋다는 뜻) 

 사실 PC 중에 가장 몸을 사려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알피나 조사하기가 어렵지 않으실까 했는데 워낙 능숙하시다 보니 쑥쑥 플레이해주시더라고요^ㅅ^)9 크로셰가 몸을 던져야 할 때는 거침없이 던지고, 싸워야 할 때는 또 적극적으로 싸워 준 덕분에 더욱 쾌적한 전개가 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크로셰에 대해도 후기에서 더 풀어볼게요.

 



PC4 & PC4 시드

전사 / 현자
아본

 

기존 설정 •성도의 화형식 날,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성도의 백은기사단에 소속된 기사이다.
•성도에서 벌어진 수예점 참살 사건의 수사관으로 차출되었다.
고유 설정 •화형식 날에 잃은 사람은 딸이었다. 이형이 된 딸은 그날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시드의 딸을 화형에 처한 사람은 하이디(PC2/승려)이다.
•방직공인 것을 숨긴 채 성도에서 기사로 일을 하고 있다.


 핸드아웃이 가장 매워 보였던(..) 기사님입니다. 아본님은 딸을 잃은 중년의 여성으로 표현해주셨어요. 기사라는 직함에 걸맞은 우직한 성격 탓에 딸의 화형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가련한 기사임입니다. 일반인이라면 견딜 수 없는 사건이죠. 그리고 하필 광어님이 딸을 화형에 처한 사람이 하이디라고 엮어주셔서 더더욱 미안한 이야기가 되었다고 하네요--;; 녹차님이 시드도 그려주셨는데 이건 정말 꼭 봐야 하는 그림이므로 (미친 갑옷 질감과 구도ㅠ) 스포일러 상관없는 분들은 필히 봐주시길 바랍니다ㅠ0ㅠ  녹차님 후기 링크

 소중한 사람이라고 하면 보통 연인이나 친구를 생각하기 쉬운데 중년의 여기사와 그 딸이라는 컨셉으로 가져와 주셨어요. 덕분에 세션이 추구하는 비극미가 한층 짙어진 것  같아서 좋았어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애정은 종류가 좀 다르잖아요. 그런 시드의 슬픔을 침착하면서도 채도 높게 표현해주셔서 감탄했습니다. 특히 2부 클라이맥스의 그 장면에서 그 몇 마디로 지난 아픔을 전부 설명하는 게 너무...  대사 스포일러 ["..우리의 인생은.. 좋은 여흥이 되었습니까?"]

 여튼, 설정이 설정이니만큼 이야기도 매웠습니다. 사실 저희 중에서 가장 매운 엔딩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시드의 문제는 노오력이나 으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어서 더 비극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예정된 비극을, 예정된 단계를 거쳐, 예정된 결말을 맞이한 느낌. 이 과정조차도 너무나 충직해서 과연 기사란 무엇인가 싶더랍니다.

 그만큼 시드라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충직함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게 충직함이 아니라 스스로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상황에 의존적으로 끌려가며 생긴 체념이라는 걸 알았을 때 좀 충격적이었요. 이 사람은 굉장히 신념이 굳은 사람이구나! 했는데 사실 너무 나약해서 오히려 강하게 보였던...ㅠ  중년 여기사로서 겪을 수 있는 비극을 다 보여준 캐릭터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세션에서 꼭 필요한 캐릭터였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저마다 복잡한 사정을 가진 PC들이 성도에서 벌어진 사건에 휘말려 한자리에 모이게 됩니다. 방직공인 것이 탄로 나면 죽거나 쫓겨나는 이 무자비한 도시에서 PC들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요? 이야기는 어느 날 밤, 성도에 사는 한 소녀가 환상을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환상은, 성도를 불사를 환상이었습니다.

 


▼ 스포일러 포함 후기

더보기

 
 성도 인근의 작은 마을의 술집. 말끔한 차림의 남자가 테이블 한가운데에 앉아있다. 그는 조금 지친 목소리로 말한다. 

 남자 :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비단찢기의 새벽>의 진상입니다.


 여기저기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온다.

 손님 : 이야, 잘 들었네! 어둠에 묻혀버린 <비단찢기의 새벽>의 진상이 이렇게 파헤쳐지는군그래!
 남자 : 제 이야기도 어디까지나 풍문을 수집해서 만든 추측일 뿐이니 너무 신뢰하진 마십시오.


 그때, 후드를 뒤집어쓴 노인이 다가와 슬그머니 테이블에 앉는다.


 노인 : 혹시 성도에서 벌어졌던 <비단찢기의 새벽>에 대한 이야기인가?
 남자 : 아, 네. 그렇습니다만.
 노인 : 괜찮다면 내게도 그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겠나? 나도 그 사건에 큰 흥미를 갖고 있다네.
 남자 :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노인 : 10만 크레딧에 사겠네.

 노인, 주머니에서 새하얀 지폐를 하나 꺼낸다. 정확하게 10만 크레딧이라고 적혀 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노인 : 자네의 이야기 말일세. 10만 크레딧에 사겠네. 
 남자 : 자... 장난
하십니까? 당신은 어디서 이런 돈을...
 노인 : 내 이름은 가돌프일세. 왼쪽 땅을 돌아다니는 여행자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사고 있네.

 노인=가돌프, 지폐를 남자 쪽으로 밀어 넣는다.

 가돌프 : 마침 요즘 가장 관심이 있는 이야기가 <비단찢기의 새벽>이라서 말이야. 그러니 나도 꼭 듣고 싶구만.
 남자 : 심심풀이로 유랑 중인 귀족분이신가 보군요...

 남자, 지폐와 가돌프를 번갈아 보다가 결심한 듯 말한다. 눈에 의지가 서려 있다.

 남자 : 좋습니다. 그 제안 받아들이죠. 하지만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셔도 돈은 주셔야 합니다.
 가돌프 : 그건 걱정하지 말게. 오히려 재미있으면 더 얹어줄 테니 마음껏 해보게나.

 남자, 이야기하기 위해 자세를 다시 잡자 주변의 손님들이 웅성거린다. 남자는 조용히 말한다.

 디에 : 제 이름은 디에입니다. 풍문의 진상을 밝히는 이야기꾼이죠.
 가돌프 : 기억해두겠네. 
 디에 : 그럼 사건 개요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

 디에,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듯 말한다.

 디에 : 지금부터 얘기하려는 것은 <비단찢기의 새벽>이라 불리는 사건입니다. 지난 3, 4월 성도에서 두 차례 연달아 일어났던 <성야> 사건과 <화형> 사건의 통칭이죠. 


 사건 개요


 디에 : <비단찢기의 새벽>에 대해서는 알고 계십니까?
 가돌프 : 아아, <갈고리찢기 에파세>가 나타나 성도를 휘젓고, 일그러진 길잡이표 때문에 성도가 불탔던 사건 아닌가.
 디에 : 거칠게 얘기하자면 그렇게 되겠군요.
 가돌프 : 덕분에 성도 안팎의 사람들이 두고두고 씹을 고귀한 미스터리가 탄생했지.
 디에 : 증거 없는 추측만 범람하고 있다 보니 이제 사건이 아니라 괴담의 단계로 넘어가는 중이긴 하지만요. 
 가돌프 : 나같은 미스터리 중독자는 쌍수 들고 환영할 이벤트지. 그럼 <성야> 사건부터 정리해보게나.
 디에 : 네. 




 <성야> 사건의 개요
- 비단찢기는 성야에 춤춘다 -

 디에 : <성야> 사건은 지난 3월, 성도 시내에 있는 수예점에서 직원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가돌프 : 그리고 백은기사단이 사건의 수사를 전담하기로 했지.
 디에 : 평범한 살인 사건이라면 백은기사단이 나설 이유까지는 없었겠지만 이번 사건은 특별했습니다.
 가돌프 : 사건 현장에서 균열이 발견되었다... 그게 이유였지.
 디에 :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수사를 맡게 된 것은 백은기사단의 기사인 시드였습니다. 그는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 중 하나죠. 

 


 디에 :  수사 끝에 참살 사건의 범인은 우벨트라는 가람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는 <저녁 뜸의 처녀>를 추종하는 <황혼의 사도>였죠.
 가돌프 : <황혼의 사도>가 수예점 참살사건을 벌인 이유는 뭐였나?
 디에 : 새로운 참극을 열어서 <저녁 뜸의 처녀>를 돌아오게 하려고 했다더군요. 아마 그들은 <저녁 뜸의 처녀>가 참극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가돌프 : 거참 광인의 사고 방식이로군. 그래서 사건은 어떻게 해결됐나? 내가 알기로는 공범이 있었다고 하던데.
 디에 : 공범이라기엔 일방적으로 이용당했지만요. 아무튼, 동자인 사리아 G. 안틀라세라는 소녀가 공범이었답니다. 우벨트가 <갈고리찢기 에파세>라는 원령을 그에게 빙의시켰다고 하더군요. 
 가돌프 : <갈고리찢기 에파세>라면, <비단찢기의 밤>에 살해당한 불사자 에파세 에텔넬 로리카의 원령 아닌가?
 디에 : 네, 바로 그녀입니다.


 디에 : 다행히도 불사자 레스테 에텔넬 루아흐의 활약으로 진범은 우벨트로 밝혀졌지만요. 그가 사리아와 에파세의 잘못이 아니라고 성교회에 강하게 어필했다고 하더군요. 
 가돌프 : 레스테는 에파세의 연인이었다지.
 디에 : 그렇습니다. 옛 연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거죠.


 디에 : 이것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성야> 사건의 개요입니다. 
 가돌프 : 흠, 이해했네. 그럼 <화형> 사건으로 넘어가지.




 <화형> 사건의 개요
- 구제와 같이 화형이 오누나 -


 디에 : <화형> 사건은 말 그대로 성도가 불바다가 될 뻔했던 사건입니다. 
 가돌프 : 갑자기 일그러진 길잡이표가 나타나서 성도가 엉망진창이 됐지.
 디에 : 그리고 이 사건으로 성도는 두 명의 영웅을 잃었습니다. 성교회의 하이디와 백은기사단의 시드였죠.
 가돌프 : 두 사람의 행방불명으로 이 미스터리 페스티벌이 시작된 거고 말이야.
 디에 : 뭐, 일단 순서대로 짚어보죠. 성도에 나타난 길잡이표에는 '크로셰'라는 모험가가 재앙의 마녀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가돌프 : 크로셰는 <성야> 사건에서 수예점의 참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재봉사 조합이 파견한 인물이었지?
 디에 : 네, 그리고 길잡이표를 따라 강경파인 어신추중이 크로셰를 잡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돌프 : 그러나 놀랍게도 크로셰는 어신추중의 추격을 따돌렸다고 합니다. 이것 때문에도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죠. 아무리 발이 빨라도 단신으로 어신추중 무리를 피해서 도망친 게 말이 되느냐면서요.
 가돌프 : 누군가 크로셰의 뒤를 봐준 게 아니냐는 추측이 대세더군. 
 디에 : 그게 누구일지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얘기하죠.
 


 디에 : 어쨌든 크로셰의 포획은 늦춰졌고, 길잡이표의 내용은 점점 더 왜곡됐습니다. 사람들은 급속도로 이형화가 됐고, 어신추중은 폭주해서 미친듯이 사람들을 잡아들였죠.
 가돌프 : 하지만 결국 재앙의 마녀를 붙잡아서 무사히 화형시켰다고 들었네.
 디에 : 네, 그리고 그 모든 일은 레스테가 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가돌프 : 뭐, 성교회의 발표를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이 없는 것 같네만.
 디에 : 저도 그건 성교회가 사태를 수습하려고 공표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크로셰가 성도에서 도망치는 걸 봤다는 사람도 있었으니 화형에 처했다는 건 거짓이겠죠.
 가돌프 : 그래서 자네는 이 일이 실제로는 어떻게 끝났다고 생각하나?
 디에 : 일그러진 길잡이표를 사용한 진범을 잡았겠죠. 개인적으로는 아나스타시스 진범설을 믿는 편입니다.
 가돌프 : 불사자인 아나스타시스 에텔넬 오스티나트를 말하는 건가?
 디에 : 네, 아시다시피 <화형> 사건 이후 불사자인 아나스타시스의 죽음이 공표됐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과거 <성도의 대규모 화형식>에 관여했다는 정보도 심심치 않게 새어나오고 있죠. 이번 사건도 그녀가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돌프 : 흐음, 뭐 알았네. 그래서 <화형> 사건은 어떻게 마무리되었나?
 디에 : 사건 이후 시드와 하이디는 행방불명이 되었고, 크로셰는 마을 밖으로 도망쳤으며, 레스테는 성교회의 지원을 받아 성도를 떠났습니다. 남은 건 <비단찢기의 새벽>의 진상을 둘러싼 미스터리뿐이죠.  
 가돌프 : 그 후로 전세계적인 추리 페스티벌이 시작됐고 말이야.
 디에 : 저희도 지금 그 축제의 한복판에 있군요. 


 
 디에 : 이걸로 <비단찢기의 새벽>의 개요는 어느 정도 설명한 듯하군요.
 가돌프 : 음, 젊어서 그런지 정리를 잘하는 구만.
 디에 : 그럼... 본격적으로 이 사건들을 제 추측에 따라 재구성해보겠습니다.

 디에, 의자를 당겨 앉는다. 촛불의 그의 얼굴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디에 : 도대체 <비단찢기의 새벽>은 왜 일어났던 것이며, 지금은 사라진 네 명의 인물들을 둘러싼 진실에 대해서 말입니다.


사건의 구현


 가돌프 : 자, 그럼 <성야>부터 시작인가?
 디에 : 아아, 말씀드리는 걸 깜박했군요. 저는 사건을 순서대로 구현하지 않습니다. 
 가돌프 : 음?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인가?
 디에 :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ㅡ 즉 레스테, 하이디, 크로셰, 시드를 둘러싼 의혹을 파헤치는 방식으로 사건을 재구성할 겁니다.
 가돌프 : 호오, 흥미롭군. 알았네. 자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게.
 디에 : 그럼 크로셰에 대한 의혹부터 해결해보도록 하죠. 



 

크로셰


 디에 : 크로셰, 재봉사 조합에서 보낸 여행자로 이번 사건의 시작과 끝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돌프 : 젊은 아가씨가 고생이 많았더군.
 디에 : 크로셰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의혹이 있습니다.

 1. 크로셰는 왜 성도에 들어왔나?
 2. 크로셰는 <성야> 사건 이후, <화형>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왜 성도에 머물렀나?
 3. 크로셰는 <화형> 사건에서 어떻게 어신추중을 따돌렸나?


 디에 : 그중에서도 크로셰 미스터리의 핵심은 바로 첫 번째, 크로셰가 성도에 들어온 이유입니다.

 1. 크로셰는 왜 성도에 들어왔나?
 2. 크로셰는 <성야> 사건 이후, <화형>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왜 성도에 머물렀나?
 3. 크로셰는 <화형> 사건에서 어떻게 어신추중을 따돌렸나?


 가돌프 : 이게 왜 의혹인가? 재봉사 조합에서 수예점 참살 사건의 조사를 위해 파견해서 온 것 아닌가?
 디에 : 크로셰는 본래 성도 출신의 사람이었습니다. 허나, 불행히도 어린 나이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방직공으로 각성하는 바람에 성도 밖으로 쫓겨났었다고 하더군요.
 가돌프 : 저런, 안타까운 일이구만.
 디에 : 그렇다면 재봉사 조합은 무슨 배짱으로 한번 성도에서 쫓겨난 사람을 다시 들여보낸 걸까요?
 가돌프 : 흐음... 그런 얘기로군.
 디에 : 안 그래도 성도의 출입국 관리는 매우 철저합니다. 정체를 들킬 가능성이 높은 크로셰를 성도에 들여보내다니 뭔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한 거죠. 다른 곳이라면 모를까 재봉사 조합이 알면서도 그를 들여보냈을 것 같진 않습니다.
 가돌프 : 하지만 어쨌든 그는 성도에 들어오지 않았나? 재봉사 조합의 도움 없이 어떻게 들어온 거지?
 디에 : 그런 이유로, 저는 크로셰가 재봉사 조합의 일원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돌프 : 호오, 흥미롭구만. 그럼 그는 누구인 건가? 성도에는 왜 돌아온 거지?
 디에 : 그 대답은 세 번째 의혹까지 전부 해결해야 알 수 있습니다. 일단 계속 진행해보죠.

 1. 크로셰는 왜 다시 성도에 돌아왔나?
 2. 크로셰는 <성야> 사건 이후, <화형>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왜 성도에 머물렀나?
 3. 크로셰는 <화형> 사건에서 어떻게 어신추중을 따돌렸나?


 디에 : 두 번째 의혹은 크로셰가 왜 <화형> 사건이 벌어질 때까지 성도에 체류하고 있었는가입니다. 
 가돌프 : 이것도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군. 논점 짚어주게.
 디에 : 가돌프님이 어딘가에 불법 체류 중이라고 가정해보죠. 그곳에 얼마나 오래 머물고 싶으십니까?
 가돌프 : 음, 볼일만 끝나면 가능한 한 빨리 떠나고 싶네.
 디에 : 볼일이 끝나지 않는 한 계속 머물 수밖에 없다는 뜻이군요.
 가돌프 : 그러하네.
 디에 : 다시 크로셰의 사정을 살펴보죠. 그는 한 달 동안 성도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그가 한 거라곤 수예점의 정리와 운영뿐이었습니다. 이게 불법 체류를 하면서까지 꼭 해야 했던 일일까요?
 가돌프 : 허허, 수예점 지하에 금괴가 묻혀져 있었을지도 모르지.
 디에 : 일단 그 가능성은 확인할 수 없으니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죠. 크로셰가 성도를 떠난 시점은 언제입니까?
 가돌프 : <화형> 사건이 끝난 직후였네.
 디에 : 잠시 <화형> 사건을 되짚어 보죠.

 

 

 디에 : 이 사건에서 크로셰는 길잡이표에 의해 재앙의 마녀로 지목당했습니다.
 가돌프 : 아아, 운이 나빴지. 하필 성도에 있을 때 정체가 들통나다니 말이야.
 디에 : 글쎄요. 이게 정말 우연이었을까요?
 가돌프 : 음? 그게 무슨 말인가?
 디에 : 저는 우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크로셰는 의도적으로 성도에 들어와, 의도적으로 이 사건에 휘말린 겁니다.
 가돌프 : 허허, 이야기가 이상하군.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디에 : 여기서 세 번째 의혹을 함께 생각해보죠.

 1. 크로셰는 왜 다시 성도에 돌아왔나?
 2. 크로셰는 <성야> 사건 이후, <화형>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왜 성도에 머물렀나?
 3. 크로셰는 <화형> 사건에서 어떻게 어신추중을 따돌렸나?


 디에 : 의혹을 해결하기에 앞서 가돌프님께 한 가지 묻고 싶군요.
 가돌프 : 아는 거라면 대답하겠네.
 디에 : 아마 잘 아실 겁니다. 자, 어신추중은 어떤 무리죠?
 가돌프 : 방직공과 이형 처단에 도가 튼 성교회의 강경파 무리 아닌가?
 디에 : 맞습니다. 어신추중은 방직공 사냥에 있어서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죠. 그렇다면 그런 베테랑을 피해서 단신으로 도망치는 게 가능할까요? 그것도 성도 안에서 말입니다.
 가돌프 : 불가능하지. 그래서 누군가 크로셰의 도망을 도왔다는 얘기가 꾸준히 나오는 게 아닌가.
 디에 : 그럼 크로셰의 도망을 도울 만한 사람은 누가 있겠습니까?
 가돌프 : 성도에 머무는 방직공 동료 아닌가? 동료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겠지.
 디에 : 만약 동료라면 그가 성도 밖으로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왔겠죠. 어신추중을 피해 도망다니도록 돕지는 않았을 겁니다.
 가돌프 : 흐음...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하긴 하군.
 디에 : 그보다 크로셰를 돕고 싶어 할 만한 더 확실한 인물이 있습니다.
 가돌프 : 누군가?
 디에 : 크로셰의 도주 시간이 길어져서 생긴 결과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길잡이표의 왜곡이 점점 더 심해져 사람들이 이형화되고 그들을 처단하려는 움직임도 가속화되었습니다. 이 일로 이득을 얻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돌프 : 길잡이표를 내건 사람... 설마 아나스타시스인가?
 디에 : 그렇습니다. 크로셰는 아나스타시스가 고용한 용병이었던 겁니다.


 
디에 : 아마 아나스타시스는 <성도의 대규모 화형식>을 다시 재현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길잡이 표가 악영향을 발휘할 시간을 벌어야 했겠죠.
 가돌프 : 호오, 왜 그 사건을 재현하고 싶었던 건가?
 디에 : 뭐, 그 이유는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겠죠.
 가돌프 : 잉, 잘나가다 갑자기 싱겁게 구는구만!
 디에 : 여기서 중요한 건 동기가 아닙니다. 광인의 범죄에 동기가 중요합니까? 중요한 건 그가 정말로 사건을 일으켰느냐죠.
 가돌프 : 그럼 자네는 무슨 근거로 아나스타시스가 진범이라고 생각하나?
 디에 : 이번 사건을 통해 이득을 얻을 만한 무리가 누구인지 추려보면 됩니다
 가돌프 : 그런 무리가 있나?
 디에 : <성도의 대규모 화형식>은 성도의 방직공과 이형을 모조리 처단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니 방직공과 이형이 사라지길 바라는 무리가 누구인지 생각해보면 됩니다.
 가돌프 : 그렇다면 성교회의 강경파와 불사자겠군. 강경파는 말할 것도 없고, 불사자는 <비단찢기의 밤> 이후로 방직공을 껄끄럽게 여기고 있으니 말일세.
 디에 : 그렇습니다. 하지만 강경파인 어신추중은 길잡이표에 놀아나는 추태를 보였죠. 남는 건 불사자입니다. 불사자 중의 누군가가 이 사건을 계획한 겁니다.
 가돌프 : 불사자 중에 범인에 가장 가까운 건 아나스타시스이고 말이야.
 디에 : 바로 그겁니다.


 디에 : 그럼 이후의 논의는 아나스타시스가 화형식을 재현하려고 했다는 것을 전제로 이어보죠.
 가돌프 : 음, 알겠네.
 디에 : 화형식을 재현하려면 성도에 가능한 한 큰 소란이 일어나야 했습니다. 어신추중이 직접 움직이고, 사람들이 불안감에 시달려 단체로 이형화될 정도로요.
 가돌프 : 그걸 위해 일그러진 길잡이표를 내렸겠지.
 디에 : 하지만 길잡이표를 내렸어도 마녀만 잡히면 끝나는 일입니다. 그러니 쉽게 잡히지 않고 도망 다니며 사태를 악화시켜줄 인물이 필요했죠.
 가돌프 : 즉, 크로셰의 역할은 성도가 불바다가 될 때까지 어신추중에게 붙잡히지 않고 도망 다니는 것이었던 거군.
 디에 : 맞습니다. 그리고 그가 무사히 도망 다닐 수 있도록 아나스타시스가 뒤를 봐준 것이고요.


 디에 : 자, 그럼 다시 첫 번째 의혹으로 돌아가죠. 크로셰는 왜 다시 성도에 돌아왔는가? 아나스타시스에게 고용되어 성도를 불바다로 만들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기에 크로셰만큼 적합한 인재는 없었을 것이고요. 아뇨, 오로지 크로셰만이 이 위험한 임무를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가돌프 : 어째서인가?
 디에 : 과거 크로셰는 길거리에서 각성했다는 죄목으로 성도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왼쪽 땅을 배회하는 삶이 순탄했을 리는 없죠. 
 가돌프 : 성도를 향한 복수였다, 이 말이군.
 디에 
사실 재앙의 마녀는 정말로 성도에 재림했던 겁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말이죠.




레스테


 디에 : <화형> 사건의 핵심 인물이 크로셰라면 <성야> 사건의 핵심 인물은 레스테입니다. 레스테에 관한 의혹을 해결하면 <비단찢기의 새벽>의 윤곽이 보일 겁니다.
 가돌프 : 음, 알겠네. 얘기해보게.
 디에 : 레스테에 대한 의혹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레스테는 <성야> 사건에 왜 관여했나?
 2. 레스테는 <화형> 사건에 왜 관여했나?
 3. 레스테는 왜 성도를 떠났나?


 디에 : 레스테의 경우에는 그녀가 왜 이번 사건에 관여하고 있는지가 가장 큰 의혹입니다. 불사자들은 워낙 폐쇄적이라 어지간해서는 외부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죠.
 가돌프 : 하기사 이번에도 불타는 성도를 보며 차나 마시고 있던 불사자가 태반이었다고 하더군요. 참 불쌍한 자들이야.
 디에 : 어떤 유명한 탐정이 남긴 말처럼 불사가 되는 것이 신의 은총인지 저주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돌프 : 자, 그래서 자네는 레스테가 왜 이 사건에 관여했다고 생각하나?
 디에 : 그럼 이번에도 첫 번째 의혹부터 짚어보죠.

 1. 레스테는 <성야> 사건에 왜 관여했나?
 2. 레스테는 <화형> 사건에 왜 관여했나?
 3. 레스테는 왜 성도를 떠났나?


 디에 : 사실 첫 번째 의혹은 논의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모두의 의견이 일치합니다. 가람 우벨트에 의해 농락당한 연인 에파세의 원령을 지키기 위해서 나섰다는 거죠.
 가돌프 :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 정도 동기라면 발 벗고 움직일 만 하지.
 디에 :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레스테는 아마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움직였을 겁니다.
 가돌프 : 범죄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디에 : <성야> 사건의 진범이 우벨트가 아닌 레스테라는 뜻이지요.
 가돌프 : 호오, 레스테가 <성야> 사건의 진범이라니! 그건 무슨 근거로 하는 말인가?
 디에 : 우선 이 사건에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우벨트가 왜 하필 에파세의 원령을 부활시켰느냐는 겁니다.
 가돌프 : 음? 그게 왜 이상한 일인가?
 디에 : 우벨트는 <저녁 뜸의 처녀>가 좋아할 참극을 일으키기 위해 이번 <성야> 사건을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목적이라면 에파세 같은 무희의 원령이 아닌 전사나 마법사의 원령을 고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가돌프 : 흐음,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군. 실제로 에파세는 원령치고는 상냥했다는 평가가 돌고 있으니 말이야.
 디에 : 하지만 어쨌든 에파세를 선택했으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저는 레스테가 우벨트에게 에파세를 되살려달라고 부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가돌프 : 재미있는 추측이구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
 디에 : 레스테는 불사자치고도 좀 독특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불사자들은 감정이 무딘 편인데, 98년 전에 죽은 연인을 지금까지도 그리워했다니까요. 
 가돌프 : 정말 엄청나게 사랑했나 보군.
 디에 : 그리고 그 정도로 그리워했다면 죽은 연인을 되살릴 방법 또한 당연히 찾아보지 않았을까요?
 가돌프 : 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네.
 디에 : 하지만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일은 쉬운 게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미 육체가 흙이 되어 사라진 상황이라면요. 그나마 가능한 방법이 하나 있다면, 동자에게 빙의시키는 것이죠. 동자 중에는 영에게 빙의될 수 있는 자가 있다고 하니까요.


 디에 : 물론 이것도 그냥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영혼에도 친화성이란 게 있으니까요. 마침 사리아 G. 안틀라세는 에파세가 살던 저택 부지에 살고 있었고, 동자의 자질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에파세와 영혼의 친화성이 높았겠죠
 가돌프 : 즉, 레스테는 사리아를 보고 에파세를 되살릴 계획을 세웠다는 거군.
 디에 : 갑자기 에파세의 영혼을 담기에 적절한 그릇이 나타났으니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가돌프 : 연인의 욕심 때문에 인간에서 불사자로, 그리고 다시 이형으로 바뀌는 삶을 산 건가. 나도 꽤 오래 살았지만 그렇게 자주 전직할 용기는 나지 않는군, 허허.
 디에 : 맛있는 차를 대접하면 어떤 옷이든 만들어준다던 어떤 유명한 재봉사도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군요. 
 가돌프 : 그렇다면 레스테는 왜 하필 우벨트에게 그걸 부탁한 건가? 우벨트는 불사자가 적대하는 <황혼의 사도> 아닌가? 빙의라면 다른 현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을 걸세.
 디에 : 아마 그녀도 일부러 <황혼의 사도>를 찾진 않았을 겁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던 거겠죠.
 가돌프 : 그 이유가 뭔가?
 디에 : 그건 하이디 미스터리와 함께 다뤄야 하니 잠시 후에 얘기하도록 하죠.
 가돌프 : 흠, 뭐 알겠네. 그럼 다음 의문이네. 어쨌든 결국 레스테는 스스로 우벨트를 처단하지 않았나? 동업 관계라면 왜 우벨트를 죽인 거지?
 디에 : 그야 우벨트가 레스테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닌
 : 레스테는 상냥하고 따뜻한 에파세가 돌아오길 바랐을 겁니다. 하지만 우벨트가 부활시킨 건 <갈고리찢기 에파세>였죠.
 가돌프 : 과연... 우벨트는 레스테의 부탁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에파세를 이용해 <저녁 뜸의 처녀>를 재림시키려고 했던 거군.
 로닌 : 이런 상황이니 레스테도 우벨트의 처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행여라도 우벨트가 다른 사람들에게 레스테의 범죄를 누설하면 더 큰 문제가 될 테니까요.
 가돌프 : 배신자의 처리와 범죄의 은닉인가. 흠, 이해했네.
 디에 : 첫 번째 의혹은 우선 이 정도로 마무리할 수 있겠군요.

 1. 레스테는 <성야> 사건에 왜 관여했나?
 2. 레스테는 <화형> 사건에 왜 관여했나?
 3. 레스테는 왜 성도를 떠났나?


 디에 : 문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의혹입니다. <성야> 사건은 레스테가 개입할 여지가 명백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화형> 사건에는 관여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가돌프 : 이번에도 결론부터 얘기해주지 않겠나? 나이가 드니 두괄식이 좋아져서 말일세.
 디에 : 뭐, 좋습니다. 저는 레스테가 <화형> 사건에 관여한 것은 성교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돌프 : 음...? 그게 무슨 말인가?
 디에 : 레스테는 <화형> 사건의 수습을 위해 성교회에서 파견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가돌프 :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뭔가?
 디에 :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화형> 사건은 불사자들에겐 그리 나쁘지 않은 사건이었습니다. 방직공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기억이 그리 쉽게 백화될 리 없으니까요. 
 가돌프 : 뭐, 그렇게 생각하는 무리도 있겠지. 
 디에 : 그런데 <성야> 사건 이후, <황혼의 사도>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겁니다. 불사자들의 불안은 극에 달했을 겁니다. 제가 불사자였다면 이 시점에서 <화형> 사건은 오히려 반가웠을 겁니다.
 가돌프 : 흐음, 그래서?
 디에 : 레스테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나설 이유는 없었다는 거죠. 그러니 그녀가 움직였다면 그건 분명히 외압이 있었던 겁니다.


 가돌프 : 그럼 성교회는 레스테를 왜 이번 사건에 파견한 건가?
 디에 : 그야 당연히 뒷수습을 위해서입니다.
 가돌프 : 뒷수습?
 디에 : 생각해보면 <화형> 사건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바로 성교회입니다. 그동안 그들이 수호해 온 질서가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 만천하에 밝혀지기 때문이죠. 심지어 범인이 성도가 떠받드는 불사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요?
 가돌프 : 그런가. 혁명의 불씨가 타오르겠군.
 디에 : 그러니 성교회는 뒷수습에 사활을 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강경파인 어신추중은 가짜 길잡이표에 놀아나는 추태를 보였고, 온건파는 영웅이었던 하이디가 행방불명되었으니, 성교회의 무능은 양면으로 입증이 끝난 상태였죠. 성교회가 뒷수습을 한다고 해결되는 상황이 아니었던 겁니다.
 가돌프 : 그래서 체면치레를 위해 또 다른 보수 세력인 불사자를 끌어들인 거군?
 디에 : 바로 그겁니다. 


 디에 : 대외적으로 이 사건은 불사자인 레스테가 해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후로 레스테는 영웅처럼 떠받들어지고 있죠. 덕분에 보수 세력은 체면치레를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가돌프 : 하지만 불사자의 유능으로 성교회의 무능을 덮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디에 : 물론 그렇게 주장하며 여전히 성교회를 비난하는 무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비율을 보면, 갑자기 생긴 문제 때문에 삶의 기반을 잃는 것보다 적당히 없었던 일로 하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은 거죠. 성교회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레스테를 대변인으로 내세운 것입니다. 
 가돌프 : 흐음... 일단 급한 불만 끈 거군.
 디에 : 뭐, 혁명의 씨앗이 심어지긴 했으니 언젠가 발아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가돌프 : 하지만 레스테가 성교회의 부탁을 들어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많은 불사자 중에 레스테를 고른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디에 : 그 부분은 지금부터 세 번째 의혹과 함께 해결하면 됩니다.

 1. 레스테는 <성야> 사건에 왜 관여했나?
 2. 레스테는 <화형> 사건에 왜 관여했나?
 3. 레스테는 왜 성도를 떠났나?


 디에 : <화형> 사건 이후, 그녀는 성도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가돌프 : 아아, 레스테 미스터리의 백미지. 온갖 추측이 쏟아지고 있으니 말일세. 자네의 의견도 궁금하구만!
 디에 :  그럼 우선 성교회가 레스테를 선택한 이유가 뭐였는지 알아보죠. 여기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성교회가 레스테의 약점을 잡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가돌프 : 레스테의 약점이라?
 디에 : 그러니까, 성교회가 알아버린 겁니다. 레스테가 <성야> 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을요.
 가돌프 : 호오... 자네의 추리가 계속 이어지는군. 
 디에 : <황혼의 사도>가 등장한 이상 성교회가 사건을 허투루 조사했을 리는 없습니다. 뭣보다 <성야> 사건은 에파세와 관련된 사건이니 레스테에 대한 조사는 더욱 철저히 진행했을 겁니다. 
 가돌프 : 그러다 덜미를 잡힌 건가.
 디에 : 성교회에서는 레스테의 처분을 고민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화형> 사건이 터진 겁니다.
 가돌프 :  레스테에게 <화형> 사건을 해결하면 이번 일을 없던 거로 해주겠다고 제안한 거군?


 디에 : 아뇨, 그 정도로는 레스테를 움직일 수 없었을 겁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에파세와의 만남마저 실패한 마당에 그녀가 그런 이야기에 벌벌 기면서 성교회의 말을 들었을까요? 될 대로 되라며 폭주했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가돌프 : 음? 그럼 그녀를 어떻게 설득한 건가?
 디에 : 제가 성교회라면, 그녀가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을 겁니다.
 가돌프 : 레스테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라면...
 디에 : 에파세의 부활을 돕겠다고 했겠죠.
 


 가돌프 : 오오, 하지만 성교회가 무슨 수로 에파세의 부활을 돕는단 말인가? 살릴 방법이 있었다면 옛적에 살리지 않았겠나?
 디에 : 말씀하신 대로 성교회는 에파세를 살릴 방법은 모를 겁니다. 아마 그 방법은 앞으로 찾아낼 생각이었겠죠.
 가돌프 : 아니, 그럼 뭐로 레스테를 설득한단 말인가?
 디에 : 성교회는 레스테에게 방법이 아니라 지원을 약속한 겁니다. 에파세를 살릴 방법을 찾아낼 때까지 필요한 지원을 모두 하겠다고 했겠죠. 
 가돌프 : 아아, 그러니까 성교회의 지원으로 에파세를 살릴 방법을 찾아 성도를 떠났다는 거군.
 디에 : 그렇지 않고서야 에파세의 흔적이 남아있는 성도를 떠날 이유가 없죠. 어쩌면 오른쪽 땅으로 떠났을지도요. 그곳에는 에파세를 온전히 되살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그녀가 다시 성도에 돌아올 땐 혼자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이디


 디에 : 일단 여기까지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군요.
 가돌프 : 아주 마음에 드네. 남은 둘의 이야기도 기대되는군.
 디에 : 하이디와 시드로군요. 이 둘의 행방에 대해서는 굉장히 많은 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가돌프 : 자, 그래서 자네는 이 둘에 대해 어떤 설을 제시할 생각인가?
 디에 : 우선 하이디에 대한 의혹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이디는 <성야> 사건 때 왜 사리아를 보호했나?
 2. 하이디는 <성야> 사건 때 왜 크로셰를 보호했나?
 3. 하이디는 왜 행방불명이 되었나?


 디에 : 이 의혹들에 대해 저는 '하이디 사도설'을 주장하고자 합니다. 즉, 그녀는 성교회의 신자가 아닌 <저녁 뜸의 처녀>를 모시는 집단의 사도로 오랜 세월 동안 암약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돌프 : 당장 듣고 싶구만! 어서 얘기해보게!
 디에 : 테이블이 흔들립니다.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 그럼 첫 번째 의혹부터 천천히 풀어보죠. 

 1. 하이디는 <성야> 사건 때 왜 사리아를 보호했나?
 2. 하이디는 <성야> 사건 때 왜 크로셰를 보호했나?
 3. 하이디는 왜 행방불명이 되었나?


 디에 : 첫 번째 의혹은 <성야> 사건 당시, 하이디가 에파세에 빙의되어 밤길을 헤매던 사리아를 은닉한 것부터 시작합니다.
 가돌프 : 어린 소녀가 한밤중에 비틀거리고 있었으니 집에 데려갈만하지 않나?
 디에 : 아뇨,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집에 데려갈 게 아니라 경비원들에게 맡겼어야 하죠. 하지만 그녀는 어째서인지 사리아를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가돌프 : 그렇다면 사리아에게서 이형의 기운을 느끼고 데려간 게 아닌가? 행여 길거리에서 각성했다간 크로셰 같은 꼴이 될 테니 말일세.
 디에 : 어차피 이형화가 시작된 거라면 숨길 수도 없습니다. 잠깐 사리아를 감춘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죠. 집이 아니라 성교회에 데려가는 게 더 안전했을 겁니다.
 가돌프 : 흠, 이해했네. 그럼 자네 생각을 들려주게나.
 디에 : 답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하이디는 <저녁 뜸의 처녀>를 모시는 사도라고요. 그러니 도망친 실험체를 붙잡는 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가돌프 : 호오, 그 말은 하이디와 우벨트가 동료라는 뜻이로군?
 디에 : 네, 맞습니다. 하이디는 우벨트의 공범으로, 도망친 사리아를 뒤쫓던 추격자인 것입니다.


 디에 : 만약 하이디가 사리아를 정말 걱정해서 데려갔던 거라면, 날이 밝은 즉시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후 매우 기묘한 행동을 합니다. 돌려보내기는커녕 몰래 그녀의 집을 찾아가 정황을 살피죠.
 가돌프 : 하이디 미스터리에서 가장 의견이 분분한 부분 중 하나지.
 디에 : 하이디가 우벨트의 동료라고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아마 하이디는 사리아가 제대로 에파세에게 빙의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토지에 남은 에파세의 영을 확인하러 갔던 거겠죠.
 가돌프 : 재미있는 추측이군. 하지만 이 정도로 하이디를 <황혼의 사도>라고 주장하긴 어렵네.
 디에 : 나머지 두 의혹을 해결하면 조금 더 설득력이 생길 겁니다. 

 1. 하이디는 <성야> 사건 때 왜 사리아를 보호했나?
 2. 하이디는 <성야> 사건 때 왜 크로셰를 보호했나?
 3. 하이디는 왜 행방불명이 되었나?


 디에 : 두 번째 의혹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이건 하이디 사도설만 가지고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거든요.
 가돌프 : 그나저나 하이디가 <성야> 사건 때 크로셰를 보호한 적이 있나? 나는 저 의혹의 출처가 궁금하네만.
 디에 : 네,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성야> 사건 당시, 하이디는 크로셰와 함께 다니면서 참살 사건을 조사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크로셰의 신분에 대해서는 자신이 후원하는 아이라는 말과 함께요.


 가돌프 : 뭐, 이상할 것 없지 않나? 듣자하니 예전에 크로셰가 성도에서 쫓겨났을 때 그 뒤를 봐준 사람이 하이디라고 하더군. 그러니 또 도와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디에 : 아뇨.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이디가 크로셰를 도와준 것으로 인해, 별개의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성야>와 <화형>이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가돌프 : 왜 그렇게 생각하나?
 디에 : 우선 하이디는 크로셰가 방직공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겁니다. 자기 자신이 직접 내보낸 아이였으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하죠.
 가돌프 : 그렇겠지. 
 디에 : 그런데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다시 성도에 돌아왔다? 저라면
 가능한 한 빨리 성도에서 나가라고 재촉할 겁니다. 한 번 쫓겨났던 방직공이 다시 성도에 들어왔다가 걸리면 훨씬 더 무거운 처분을 받게 되니까요. 
 가돌프 : 흐음... 그렇겠지.
 디에 : 하지만 하이디는 오히려 크로세를 보호했습니다. 그것도 한달 동안이나요. 크로셰는 하이디 덕분에 성도에 머무를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돌프 : 어릴 적에 가족과 생이별을 시킨 전적이 있으니 그때의 죄책감 때문에 도와준 것인지도 모르네.
 디에 : 죄책감 때문에 도와줬다기엔 너무 리스크가 큽니다. 가뜩이나 하이디는 고위급 승려이기 때문에 지켜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 달이나 크로셰를 보호해준다? 동정심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가돌프 : 그럼 자네는 그녀가 왜 크로셰를 도왔다고 생각하나?
 디에 : 그야 당연히 크로셰가 하이디의 동업자
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크로셰가 어신추중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 또한 하이디였을 겁니다.

 

 가돌프 : 크로셰와 하이디가 동업자라니, 그건 무슨 근거로 하는 말인가?
 디에 : 그전에 가돌프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렸던 것 중에 이상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없으셨습니까? 특히 아나스타시스에 대해서요.
 가돌프 : 딱히 깊게 생각하며 듣진 않았네만.
 디에 : 저는 아나스타시스가 크로셰를 고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나스타시스는 크로셰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 고용한 걸까요?
 가돌프 : 음... 그러고 보니 이상하군. 불사자들의 삶은 상상 이상으로 폐쇄적이니까. 그녀가 어떻게 성도 밖에 있었던 크로셰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좀 의문이긴 하군.
 디에 : 네, 그리고 저는 아나스타시스에게 크로셰를 소개해 준 사람이 하이디라고 생각합니다.
 가돌프 : 호오... 그렇게 되는가.
 디에 : 하이디는 승려이니 불사자의 커뮤니티에도 접근할 수 있고, 성도의 사정에도 누구보다 밝습니다. 거기에 더해 크로셰의 사정에 대해서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죠. 
 가돌프 : 그렇다면 하이디가 아나스타시스에게 동조한 이유는 뭔가? 
 디에 :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세 번째 의혹을 풀면 해결될 겁니다.

 1. 하이디는 <성야> 사건 때 왜 사리아를 보호했나?
 2. 하이디는 <성야> 사건 때 왜 크로셰를 보호했나?
 3. 하이디는 왜 행방불명이 되었나?


 디에 : <화형> 사건 이후, 하이디는 모습을 감췄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정말 온갖 설이 존재하죠. 
 가돌프 : 자네는 어떤 설을 주장할 생각인가?
 디에 : 그전에 <황혼의 사도>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짚어보죠. 
 가돌프 : 우벨트의 말에 의하면, 성도에 참극을 불러일으켜 <저녁 뜸의 처녀>를 부를 생각이었다고 했지.
 디에 :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가돌프 : 뭐가 말인가?
 디에 : 정말로 성도에 참극을 일으키면 <저녁 뜸의 처녀>가 돌아오느냐는 겁니다.
 가돌프 : 그야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적어도 <황혼의 사도>는 그렇게 생각한 것 아닌가?
 디에 : 그래서 <저녁 뜸의 처녀>는 돌아왔습니까?
 가돌프 : 돌아오지 않았네. 
 디에 : 그럼 이 방법은 <저녁 뜸의 처녀>를 부르는 완벽한 방법은 아니었던 거군요?
 가돌프 : 그런 셈이군?
 디에 : 그렇담 <황혼의 사도>는 <저녁 뜸의 처녀>가 돌아올지 안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그런 대규모 이벤트를 벌였다는 거군요.
 가돌프 : 흠... 그렇게 되는군.
 디에 : <황혼의 사도>는 그런 과감한 짓을 저지를 만큼 멍청한 조직이 아닙니다. 아마 참극으로 <저녁 뜸의 처녀>를 부른다는 건 우벨트의 변명이었겠죠.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을 겁니다.
 가돌프 : 그 진짜 목적이 뭔가?
 디에 : 당연히 <저녁 뜸의 처녀>의 확실한 재림입니다. 방법은 아마 빙의였을 겁니다.
 가돌프 : <저녁 뜸의 처녀>를 빙의한다고?
 디에 : 네, 
저는 <황혼의 사도>가 그녀의 영혼을 누군가에게 빙의시킬 계획이었다고 봅니다. 아마 <성야> 사건은 에파세와 사리아를 이용한 빙의 실험이 아니었을까 싶고요.


 디에 : <저녁 뜸의 처녀>가 죽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흑점의 날>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간접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 최소한 실체가 없는 상태가 아닐까 합니다. 환청이나 환각 따위로 사람들을 현혹하다니 원령이나 할 법한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가돌프 : 뭐, 그리 생각할 수도 있다고 보네.
 디에
:  그러니 저는 <저녁 뜸의 처녀>가 죽었다는 전제로 추리를 전개해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영혼의 빙의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영혼의 친화성 환경의 유사성이죠. 영혼의 친화성은 성격이나 기질이 유사할 수록 높은 경향을 보입니다. 그래서 보통 직계 후손이 빙의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저녁 뜸의 처녀>는 죽은지 오래된 건 물론이거니와, 후손조차 남기지 않았죠. 
 가돌프 : 이미 죽은 지 100년이 된 영혼을, 후손이 아닌 사람의 몸에 빙의시켜야 하는 까다로운 실험이었다는 거군.
 디에 : 아마 <황혼의 사도>는 오랜 세월 동안 영혼을 빙의시키는 연구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 그 기술을 완성했던 거죠.
 가돌프 : 설마, 레스테가 우벨트에게 접근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건가?
 디에 :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레스테는 그들의 기술이 필요했고, <황혼의 사도>는 기술을 실험할 실험체가 필요했겠죠. 그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가 <성야> 사건이었던 겁니다. 
 가돌프 : 그렇다면 <화형> 사건에서는 뭘 얻으려고 한 건가?
 디에 : 그야 <저녁 뜸의 처녀>를 빙의시키기 위한 환경의 준비입니다. <화형> 사건은 그걸 위한 무대였다고 생각합니다.
 가돌프 : 무대치곤 너무 화려한 것 아닌가? 왜 조용히 빙의시키지 않고 그 소란을 피운 건가?
 디에 : 그 소란을 피워야만 <저녁 뜸의 처녀>를 빙의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겠죠.
 가돌프 : 그게 무슨 뜻인가?
 디에 : 앞서 사리아가 에파세의 집에서 지냈기 때문에 영혼의 친화성이 높아졌다고 말씀드렸을 겁니다. 즉, <저녁 뜸의 처녀>를 재림시키기 위해서는 그녀가 살아있었을 당시의 상황과 비슷한 환경이 필요했던 겁니다.


 디에 : 그리고 마침내 <황혼의 사도>는 <화형> 사건을 통해 성도를 불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이형화되고 성교회는 미쳐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저녁 뜸의 처녀>가 살아 움직이던 시절의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한 거죠.
 가돌프 : 그래서 <저녁 뜸의 처녀>를 빙의시키는 데 성공한 건가?
 디에 : 저는 성공했다고 봅니다.
 가돌프 : 누구에게?
 디에 : 당연히 하이디죠.
 가돌프 : 뭐라고?
 디에 : <저녁 뜸의 처녀>는 방직공들에게 경애를 받은 대상이었습니다. 하이디 역시 온건파의 영웅으로 불리는 성녀였죠. 만약 성도에서 <저녁 뜸의 처녀>와 가장 유사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건 하이디가 아니겠습니까?


 디에 : 만약 그런 이유라면 그녀가 행방불명된 이유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미 하이디가 아니니 다시 하이디의 자리로 돌아올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가돌프 : 결국 <비단찢기의 새벽>은 하이디를 <저녁 뜸의 처녀>에게 빙의시키기 위한 <황혼의 사도>의 계획이었다는 거군! 허허, 자네의 말대로라면 곧 이 세상은 멸망하겠구만.
 디에 : 다행히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희망이라는 빛의 나비가 한 마리 남아있었습니다. 
 가돌프 : 나비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디에 : 그럼 슬슬 이야기를 마무리해보죠. 왼쪽 땅의 인류를 구하기 위해 지금도 <저녁 뜸의 처녀>의 뒤를 쫓고 있을 우리의 영웅, 시드에 대해서요.



 

시드


 디에 : 일단 여기까지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군요.
 가돌프 : 듣다 보니 자네 말이 다 맞는 것 같아 난처해하고 있었다네.
 디에 : 과찬이십니다.
 가돌프 : 흐음, 슬슬 동이 트는 것 같군. 자, 이야기를 마무리해보세. 
 디에 : 네, 시드에 대한 의혹만 해결하면 <비단찢기의 새벽>을 완성할 수 있을 겁니다.
 가돌프 : 알았네. 시드에 대한 의혹은 무엇인가?
 디에 : 제가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시드는 왜 <비단찢기의 새벽> 동안 하이디와 함께 움직였나?
 2. 시드는 왜 하이디가 사리아를 숨긴 사실을 은폐했나?
 3. 시드는 왜 행방불명이 되었나?


 디에 : 시드 미스터리의 핵심은 그가 왜 하이디와 함께 움직였는가입니다.
 가돌프 : 하긴 둘은 불편한 사이지. <성도의 대규모 화형식>에서 이형화가 된 시드의 딸을 불태운 게 하이디였다니 말이야. 
 디에 : 그러니 이번 사건부터 갑자기 하이디와 동행한 게 수상쩍다는 겁니다.
 가돌프 : 시드는 사건의 수사관이었으니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맞닥뜨린 게 아닌가? 하이디는 사리아와 크로셰를 모두 보호하고 있었으니 말일세.
 디에 : 어쩌다 마주칠 수는 있지만, 그 후로 행동까지 함께한 건 이상합니다. 반드시 그랬어야만 했던 이유가 있는 게 아니고서야 시드는 하이디와 협력할 이유가 없습니다.
 가돌프 : 그럼 자네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디에 : 제 생각에는 시드가 하이디를 의심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그럴 여지는 충분하죠. 사리아를 따로 숨긴 데다, 크로셰에 대해서도 후원을 자처한 상황이었으니까요.


 가돌프
 : 만약 의심한 거라면 따라다녔을 이유도 충분하긴 하군.
 디에 : 사실 그것 외엔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실제로 하이디는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기도 했고요. 
 가돌프 : 음? 잠깐, 그럼 시드는 왜 하이디가 사리아를 은닉한 사실을 성교회에 보고하지 않은 건가? 정말 하이디를 의심했다면 이 사실을 성교회에 알려야 하지 않나?
 디에 : 자연스럽게 두 번째 의혹으로 넘어가겠군요.

 1. 시드는 왜 <비단찢기의 새벽> 동안 하이디와 함께 움직였나?
 2. 시드는 왜 하이디가 사리아를 숨긴 사실을 은폐했나?
 3. 시드는 왜 행방불명이 되었나?


 디에 : 시드가 하이디를 고발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두 가지입니다. 하이디에게 입막음을 당했거나, 또는 더 확실한 증거를 얻기 위해 일부러 은닉했을 가능성입니다.
 가돌프 : 전자는 왠지 아닐 것 같군. 시드가 협박에 굴복할 인물로는 보이지 않으니 말이야. 
 디에 : 그러니 저는 후자, 즉 시드가 하이디의 정체를 확실히 밝히기 위해 임시로 그에게 가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가돌프 : 어떻게 말인가?
 디에 : <황혼의 사도>를 위장하고 하이디의 계획을 도왔던 것이지요.


 디에 : 딸의 죽음을 잊고 기사로서 충실하게 살아간다? 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원한이 완전히 사라질 리는 없습니다. 그런 시드의 앞에 수예점 참살 사건을 통해 <황혼의 사도>가 다시 수면 위로 떠 오른 겁니다. 그리고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겁니다. 하이디가 <황혼의 사도>라는 것을요.
 가돌프 : 이런...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딸을 처형한 하이디가 <황혼의 사도>라니 얘기가 달라지겠군.
 디에 : 이때부터 시드는 하이디를 철저하게 조사했을 겁니다. 그리고 하이디의 경계를 받지 않을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 또한 <황혼의 사도>로 위장하는 거였을 겁니다.
 가돌프 : 하지만 그걸 하이디가 어찌 믿는단 말인가?
 디에 : 제가 시드라면 이렇게 얘기하겠습니다. '<황혼의 사도>가 사리아에게 에파세를 빙의시킨 것처럼 나 또한 딸의 영혼을 되살리고 싶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황혼의 사도>에게 충성할 테니 방법을 알려달라'고요.
 가돌프 : 옳거니, 딸의 영혼을 살리고 싶다며 무릎을 꿇은 게로군.
 디에 : 물론 이것만으로는 하이디의 신뢰를 얻기 어려웠을 겁니다. 아마 하이디는 시드의 진심을 증명할 무언가를 요구했겠죠.
 가돌프 : 무엇을 요구했다고 생각하나?
 디에 : 저라면, 시드가 두 번 다시 백은기사단으로 돌아갈 수 없는 어떤 타락적 행위를 요구했을 것 같습니다.
 가돌프 : 타락적 행위?
 디에 : 가람이 되는 것
입니다.


 디에 : 시드 또한 방직공이었으리란 추측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가람인 우벨트를 물리쳤으니까요. 그러니 하이디는 시드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을 겁니다. 
 가돌프 : 어떻게 이용한단 말인가?
 디에 : 그럼 마지막 의혹과 함께 정리해보도록 하죠.

 1. 시드는 왜 <비단찢기의 새벽> 동안 하이디와 함께 움직였나?
 2. 시드는 왜 하이디가 사리아를 숨긴 사실을 은폐했나?
 3. 시드는 왜 행방불명이 되었나?


 디에 : 아나스타시스는 가람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하이디가 그런 아나스타시스를 100% 신뢰했을 리 없죠. 그녀로선 담보가 필요했을 겁니다. 아나스타시스가 이상한 길잡이표를 내리면 그걸 대신 받아낼 사람이요.
 가돌프 : 그 담보가 시드였던 거군? 행여라도 아나스타시스가 쓸데없는 길잡이표를 내리면 시드가 그 일그러짐을 받아내도록 말일세.
 디에 : 그 정도는 해줘야 하이디가 시드를 믿어주겠다고 했을 겁니다. 
 가돌프 : 그리고 묵묵히 일그러짐을 받아내다 결국 가람이 되어 모습을 감췄다...
 디에 : 그런 무력한 결말일 리 없죠.
 가돌프 : 호오, 숨겨진 결말이 있나?
 디에 : <화형> 사건 당일의 행적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날 아침, 그는 자라스트로 대승정의 경호 임무를 맡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대승정의 곁에 있지 않았죠. 온
종일 성도 안을 돌아다녔습니다. 경호를 맡았다면 대승정 곁에 있었어야 할 터인데, 시드는 어떻게 움직일 수 있었던 걸까요?
 가돌프 : 흐음, 설마 대승정이 허락한 건가?
 디에 : 그렇다면 대승정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허락을 받은 걸까요?
 가돌프 :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군. 그러니까 자네는, 시드가 대승정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 아닌가?
 디에 : 네, 아마도 시드는 이미 대승정에게 하이디의 정체를 고발했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이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도 얘기했겠죠. 가람이 되어 <저녁 뜸의 처녀>를 뒤쫓겠다고요.


 디에 : 그리고 시드는 대승정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겁니다. 가람이 되는 건 거의 확정인 상황이었을 테니, 설령 그리되어도 <저녁 뜸의 처녀>를 뒤쫓을 수 있는 강제적인 장치가 필요했을 겁니다.
 가돌프 : 그런 장치가 있단 말인가?
 디에 : 혹시 가돌프님은, <비단찢기의 새벽> 이후 대승정님의 반지가 사라진 걸 알고 계십니까?
 가돌프 : 아, 대승정이 항상 끼고 다니던 반지 말인가. 사건 이후로는 다른 반지를 끼고 다닌다는 소식은 들었네만...
 디에 : 저는 시드가 그 반지를 가져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 그 반지에는 대승정의 힘이 담겨 있었겠죠.
 가돌프 :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뭔가? 
 디에 : 사람들이 반지가 바뀐 걸 눈치챌 수 있었던 건 대승정이 그걸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마음에 들어 오래 끼고 다녔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마법적인 힘을 가진 아티팩트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가돌프 : 그리고 그 아티팩트를 시드가 가져갔다는 거군.
 디에 : 대승정이 시드의 이탈을 허용한 점을 보아 둘은 협력 관계가 분명했을 겁니다. 하지만 대승정은 대외적으로 시드를 돕는 듯한 행동은 하지 않았죠. 보이지 않게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마법적인 지원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가돌프 : 바로 그 반지가 대승정의 지원이었다... 
 디에 : 어쩌면 시드는 그 반지의 힘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대승정의 곁을 오랫동안 지켜왔으니까요. 아마 그가 먼저 하이디의 정체를 고발하고 반지를 달라고 부탁했을 겁니다.
 가돌프 : 허허, 단지 곁에 오래 있었다는 이유로 반지의 힘이 무엇인지 안다고 주장하는 건 좀 무리이지 않나? 
 디에 : 아뇨,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겁니다. 사실 이 사건에서 하이디를 제압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강경파인 어신추중과 손을 잡는 겁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시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죠. 오히려 하이디와 같은 온건파라 더 설득하기 어려웠을 대승정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런 리스크를 감당할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그 반지 때문이라면 말이 돼죠. 


 가돌프 : 잠깐, 그 말을 애초에 시드가 가람이 될 걸 전제로 대승정을 찾아갔다는 게 되지 않나?
 디에
 : 그렇습니다. 시드는 어설프게 하이디와 <황혼의 사도>를 처벌하기 보다, 그 모든 악의 근원인 <저녁 뜸의 처녀>를 끝장낼 생각이었던 겁니다. <저녁 뜸의 처녀>가 하이디에게 빙의한 그때, 그를 죽이기 위해 영원히 뒤를 쫓는 가람으로 태어나기를 선택한 것이죠.
 디에 : 그렇다면... 애초에 하이디에게 먼저 가람화를 제안한 것도 시드일 수 있겠군. 
 가돌프 : 시드라면 충분히 그랬을 겁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충직한 기사인 시드라면요.

 


반론


 디에이 이야기를 마치자 테이블 위로 투명한 햇살이 들어온다. 디에은 남은 술을 비우며 피곤한 듯 말한다.

 디에 : 이것으로 제 이야기는 끝입니다. 10만 크레딧의 가치가 있는 이야기였는지 모르겠군요.
 가돌프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들었네. 자네의 추리력과 상상력은 탄복할 수준이군.
 디에 : 감사합니다. 그럼... 이쯤에서 자리를 파해도 될까요? 저도 슬슬 피곤하군요.
 가돌프 : 잠깐, 그전에 나도 자네에게 몇 가지 질문을 좀 하고 싶네. 질문이랄까, 자네의 이야기에 대한 반론이 되겠군.
 
 디에, 가돌프의 속내를 어림짐작하려는 듯 눈을 찌푸린다.

 디에 : 좋습니다. 말씀하시죠. 만족하실 때까지는 응해드리고 싶으니까요.
 가돌프 : 그럼 크로셰부터 시작하지. 아나스타시스의 용병으로 둔갑된 우리의 용감한 방직공에 대해서 말이야.




 

크로셰


 가돌프 : 자네는 크로셰를 아나스타시스에게 고용된 용병이라 주장했네. 그것도 하이디가 소개해준 용병이라고 말이야.
 디에
 : 맞습니다. 제 추리에서는 그런 흐름이었죠.
 가돌프
 : 허나, 이 추리에는 한 명의 존재가 누락되어 있네. 바로 에이미라는 소녀일세.
 디에 : 에이미? 아아, 설마 크로셰가 모습을 감춤과 동시에 함께 사라졌다는 그 불법 거주자 말씀이십니까?
 가돌프 : 그렇다네. 에이미는 크로셰가 수예점에서 머무는 동안 알게 된 사이라고 하더군.
 디에 : <화형> 사건 당시에 이형화가 진행되어 어신추중에게 붙잡혔다고도 하죠. 참 기구한 소녀입니다.
 가돌프 : 뭐, 결국에는 원래대로 돌아왔다니 다행아닌가. 아무튼, 중요한 건 그가 <화형> 사건 이후 크로셰와 함께 성도를 떠났다는 걸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디에 : 그게 뭐가 이상한 일이죠? 저라도 그런 사건에 휘말렸다면 성도를 떠나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불법 거주자의 신분이기도 했고요.
 가돌프 : 흐음, 에이미의 입장에선 그렇겠지. 하지만 크로셰에게도 에이미가 필요했다고 생각하나?
 디에 : 음? 무슨 의미로 하는 말씀이신지...
 가돌프 : <화형> 사건 이후, 그는 성도에서 재앙의 마녀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네. 그러니 가능한 한 철저히 정체를 숨기고 떠날 필요가 있었겠지. 그런 와중에 에이미까지 데리고 떠나다니, 이상하지 않느냔 말일세.


 디에 : 에이미가 일방적으로 따라간 건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둘이 연인이었을 수도 있죠.
 가돌프 : 성도를 파괴하러 들어온 공작 요원이 연인을 만들 여유까지 부렸단 말인가?
 디에 : 뭐, 그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겁니다. 사람 마음은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가돌프 : 좋네, 그렇다면 자네 말대로 둘이 연인이었고 쳐보세. 그럼 크로셰는 왜 에이미를 방치한 건가?
 디에 : 방치하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가돌프 : 크로셰는 이 성도가 난장판이 될 걸 알고 있었네. 그렇다면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에이미를 안전한 곳으로 빼돌렸어야 하지 않나?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뿐덜, 에이미는 이형화가 되어 어신추중에게 붙잡히기까지 했네.
 디에 : 그건...
 가돌프 : 그것뿐만이 아닐세. 어떤 주민의 보고에 의하면 <화형> 사건 당시 크로셰가 에이미를 찾아다녔다고 하더군. 자기 목숨 부지하기에 바빠 도망다닌 사람이 할 만한 행동은 아닌 듯하군.
 디에 : 확실히 그 정황은 이상하군요. 
 가돌프 : 자네의 추리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건가?
 디에 : 중요한 건 그 부분을 지적하셔도 크로셰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성도에서 쫓겨난 크로셰가 어떻게 다시 성도에 들어올 수 있었고, <화형> 사건까지 왜 성도에 머물렀는지, 그리고 어신추중의 추격을 피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주셔야 반론다운 반론이 도비니다. 
 가돌프 : 에이미를 대하는 크로셰의 태도로 모든 게 증명되네. 그는 정식으로 성도에 파견된 재봉사 조합의 일원이고, <화형> 사건의 피해자였던 걸세.
 디에 : 저와 정반대의 주장을 하시는군요. 
 가돌프 : 자네는 재봉사 조합에서 크로셰를 파견했을 리가 없다는 근거로 이야기를 시작했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재봉사 조합은 반드시 크로셰를 파견해야 했네. 아마 이 일에는 밤의 여왕이 관여했겠지.
 디에 : 그렇다면 어째서입니까?
 가돌프 : 수예점 참살 사건을 잘 생각해보게. 성교회의 입장에서 이 사건은 범인을 잡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닐세. 일개 재봉사가 죽은 사건이 아니라, 성도에 은닉하고 있는 방직공 길드가 드러난 것이니 말일세. 


 가돌프 : 어느 한쪽 세력이 손을 대는 순간, 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정치적 분쟁으로 빠지게 되네. 그러니 그들은 가능한 한 이 문제를 깨끗하게 처리할 방법이 필요했지. 그래서 재봉사 조합에 손을 내민 걸세.
 디에 : 성도의 문제를 재봉사 조합에게 맡긴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릴!
 가돌프 : 맡기는 게 아니라 떠넘기는 걸세. 생각해보게. 만약 강경파가 뒷수습을 맡아 이참에 성도에 숨어있는 모든 방직공을 처단하겠다며 나섰다고 말일세. 거기서 끝나면 좋겠지만 이후에 성도에서 또 재봉사 길드가 나타나면? 그땐 강경파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걸세. 이건 온건파도 마찬가지지. 재봉사 하나가 아니라  '길드'가 발견된 거니, 보통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다 이걸세.


 가돌프 : 그러니 재봉사 조합에게 뒷수습을 맡긴 걸세. '성도에서 재봉사 길드가 발견되었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 재봉사 조합에서 책임지고 이 사건의 뒷처리를 맡아주길 바란다'며 떠넘기면 모두가 편해지지.
 디에 : ...뭐, 좋습니다. 정치적인 문제로 재봉사 조합이 개입할 수밖에 없었을 거란 건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파견한 재봉사가 반드시 크로셰여야 했을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가돌프 : 이번 일은 재봉사 조합에서 모든 책임을 떠맡아줄 필요가 있었네. 확실한 신원을 가진 재봉사가 들어와 일을 해결하고 이후의 책임까지 모두 짊어질 보증이 필요했던 게지. 
 디에 : 확실한 신원...
 가돌프 : 누가 봐도 재봉사인 것이 확실한 인물이 필요했던 걸세.
 디에 : 성도에 명백하게 기록이 남아있는 재봉사, 크로셰로군요.
 가돌프 : 그러하네. 이걸로 하이디가 그의 뒤를 봐준 이유도 설명이 되지. 그는 그저 손님을 맞이하러 나왔던 것뿐일세.
 디에 : 좋습니다. 거기까지는 납득할 수 있을 것 같군요.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하이디가 <화형> 사건 당시 크로셰의 도망을 도와 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가돌프 : 아아, 그 부분은 아직 얘기할 차례가 아니네. 순서대로 진행하도록 하지. 일단 크로셰 미스터리는 여기서 일단락하고 레스테로 넘어가 보세나.




 

레스테


 가돌프 : 자네는 레스테가 에파세를 되살리기 위해 <성야> 사건을 꾸몄다고 말했네. 이유는 우벨트가 에파세를 고른 것이 이상해서라고 했지.
 디에 : 그렇습니다. 에파세는 참극을 일으키기 위한 재목은 아니었으니까요.
 가돌프 : 우선 나는 레스테가 에파세를 살릴 생각이 없었다고 생각하네.
 디에 : 그렇게 생각하시는 근거는 뭐죠?
 가돌프 : 기록서원의 방문 기록일세. 
 디에 : 아아, 그 자료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원래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는 자료지만, 이미 이 사건의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공공재처럼 돌아다니는 자료죠.
 가돌프 : 그럼 내가 뭘 말하고 싶어 하는 지도 혹시 알겠나?
 디에 : <화형> 사건 당시, 레스테가 대승정의 허락을 받아 기록서원에서 과거 대규모 화형식의 자료를 확인한 걸 말씀하시는 거겠죠. 
 가돌프 : 그러하네. 그리고 그 자료에는 대규모 화형식 사건의 범인을 아나스타시스로 추정할 수 있는 정보가 적혀 있었지.
 디에 :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군요. 성교회는 레스테가 이번 사건의 대변인으로 나서주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레스테는 아나스타시스와 친분이 있는 사이이니, 그녀를 설득하려면 아나스타시스에게 죄가 있다는 걸 증명해야 했을 겁니다. 그래서 자료를 보여준 것 아니겠습니까?
 가돌프 : 아니, 자료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닐세. 그녀가 이 자료에 이번에 처음 접근했다는 게 중요하네.
 디에 :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가돌프 : 자네 말대로 레스테가 에파세를 살릴 생각이었다면 그녀는 가능한 한 성도의 모든 자료를 조사했을 걸세. 그런데 화형식 날에 관한 자료를 지금까지 한 번도 조사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디에 : 대규모 화형식과 에파세의 부활은 큰 관계가 없으니 조사하지 않은 게 아닙니까?
 가돌프
 : 대규모 화형식 이후로 빙의와 강령술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네. 그때 억울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지. 빙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면, 대규모 화형식에 관한 자료도 봤을 걸세.
 디에 : 하지만 대규모 화형식과 관련된 자료는 자라스트로 대승정의 허가가 있어야 볼 수 있는 자료 아닙니까? 그래서 여태 보지 못한 걸지도 모릅니다. 
 가돌프 : <황혼의 사도>와 손을 잡고 에파세를 되살릴 생각까지 했으면서, 대승정의 허락이 없다는 이유로 자료를 조사하지 못했다니 그건 참 애달픈 일이로군.  
 디에 : ....
 가돌프 : 아무튼, 나는 이런 근거로 레스테는 에파세를 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인 적이 없다고 생각하네. 그러니 에파세를 부활시키기 위해 <성야> 사건을 꾸몄다는 자네의 주장은 무리가 있네.
 디에 : 그럼 레스테는 <화형> 사건에 왜 관여한 겁니까? 
 가돌프 : 그야 친구인 아나스타시스를 구하기 위해서였을 걸세.
 디에 : 무슨 근거로 하는 말씀이시죠?
 가돌프 : 이번에도 자네의 이야기에는 하나가 빠져 있었네. 바로 <화형> 사건 당시, 아나스타시스의 행적일세.
 디에 : 그녀의 행적이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사건 당일, 아나스타시스는 레스테의 저택에서 머물다 대승정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죠.
 가돌프 : 내가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아나스타시스가 레스테의 저택에 있었다는 부분일세. 중요한 사건 당일에 그녀는 왜 레스테의 집에서 꾸물럭거리고 있었던 건가? 레스테에게 일부러 들킬 생각이 아니었다면 그럴 이유가 없었단 말일세.


 가돌프 : 일부러 들킬 생각이 없었다면 이유는 하나일세. 아나스타시스는 레스테에게 협조를 구하러 갔던 걸세.
 디에 : 무슨 협조를 말입니까?
 가돌프 : 그야 <화형> 사건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협조지. 아나스타시스는 대승정이 어신추중을 막아서리란 걸 알고 있었을 걸세. 그러니 그를 저지할 사람이 필요했겠지.
 디에 : 불사자의 대표로서 대승정에게 항의할 사람이 필요했다는 거군요.
 가돌프 : 그러하네.
 디에 : 그런데 왜 하필 레스테를 고른 겁니까? 제 추리에서는 그녀가 <성야> 사건의 진범인 것을 성교회에 들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만...
 가돌프 : 음? 레스테가 적합한 게 당연하지 않나. 그녀는 불사자들 사이에서 사교 모임을 운영하고 있었네. 대표로 나설 만한 위치이지.
 디에 : 고작 사교 모임이 뭐라고... 과잉 해석이신 듯합니다만.
 가돌프 : '불사자'의 사교 모임이란 말일세. 저택에 틀어박혀 차나 마시며 시간을 때우는, 아마도 이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삶을 사는 성도의 불사자들이 모인 커뮤니티지. 그런 모임을 운영하는 레스테의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란 말일세.


 가돌프
 : 불사자의 대표로 레스테보다 완벽한 인물은 없네. 하지만 레스테는 아나스타시스의 계획에 응하지 않았고, 아나스타시스는 어쩔 수 없이 직접 대승정을 막으러 간 걸세. 그 과정에서 수상함을 눈치챈 레스테가 기록 서원의 자료를 보고 아나스타시스를 막으려 그녀의 집으로 향한 거고 말이야.
 디에 : 재미있는 추리로군요. 확실히 지금 말씀하신 방문 기록과 아나스타시스의 행적은 제가 간과한 부분이긴 합니다.
 가돌프 : 아아, 그것만이 아닐세. 하이디의 이야기에서도 자네는 많은 부분을 누락하고 있네. 그 점도 함께 짚어보지.




 

하이디

 

 가돌프 : 하이디 미스터리는 그녀가 왜 사리아를 사적으로 보호했는가부터 시작되네.
 디에 : 그렇습니다. 거기서부터 하이디의 모든 의혹이 시작됩니다.
 가돌프 : 하지만 하이디가 사리아를 사적으로 보호할 이유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네. 가령 사리아의 뒤에 <황혼의 사도>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면 어떠한가?

 디에 : 그렇다면 당연히 사리아를 성교회에 데려갔겠죠.

 가돌프 : 정반대일세. 성교회만큼은 절대로 데려가지 않았을 걸세. 그랬다간 사리아는 처형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말일세.
 디에 : 어째서죠?
 가돌프 : <저녁 뜸의 처녀>와 <황혼의 사도>에 관한 건만큼은 온건파와 강경파를 나누지 않고 모두가 처형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세. 하이디가 걸어온 길을 잘 생각해보게. 온건파의 영웅으로, 그동안 많은 방직공과 이형을 살려낸 그녀가 유일하게 이형들을 가차 없이 처단해야 했던 사건이 있었네.
 디에 : ...성도의 화형식날 사건입니까?

 가돌프 : <저녁 뜸의 처녀>의 재래는 <비단찢기의 밤>의 부활을 의미하네. 이것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지. 온건파의 영웅인 하이디마저 화형대에 사람들을 올려야 했을 정도로 말일세.


가돌프 : 그러니 <황혼의 사도>의 기척을 느꼈다면, 하이디가 사리아를 섣불리 성교회에 데려갈 수 있었겠나? 죄 없는 어린 소녀의 목숨이 자기 손에 달렸으니 신중할 수밖에 없었을 걸세.
 디에 : ...그런 해석도 가능하다는 건 납득했습니다. 그럼 나머지는 어떻게 설명하실 건지요? 하이디가 크로셰를 보호한 이유와, 행방불명된 이유에 대해서 말입니다.
 가돌프 : 크로셰를 보호한 이유라, 그건 하이디는 길잡이표가 일그러진 걸 눈치채고 있었던 거로 설명할 수 있네.
 디에 : 길잡이표가 일그러진 걸 눈치채다뇨? 하이디도 방직공이라고 주장하고 싶으신 겁니까?
 가돌프 : 그러하네. 하이디는 방직공이었던 걸세. 그러니 길잡이표를 눈치채고 크로셰를 보호하기 위해 나선 거지.
 디에 : 하이디가 방직공이라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가돌프 : 자네, 하이디가 성도의 범죄 조직인 포르테의 마담이라는 건 알고 있나?
디에 : 네, 알고 있습니다. 행방불명 이후 밝혀진 사실이지만요. 
가돌프 : 한 나라의 영웅이 아직 범죄 조직의 일원이라니 이것 또한 비극적인 일이지. 아무튼, 그녀 자신에겐 유용한 힘이었을 걸세.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하이디는 사리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 힘을 쓰지 않았네.
디에 : 구체적으로 무슨 말씀이시죠?
가돌프 : 사리아를 자신의 집에 몰래 데려간 것까지는 좋단 말일세. 하지만 데려가서 뭘 어쩔 셈이란 말인가? 하이디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사리아가 각성할 때까지 지켜보는 것 정도일세. 아니면 범죄 조직의 힘으로 성도 안에 있는 <황혼의 사도>를 추적하거나 말일세. 하지만 <성야> 사건 동안 포르테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네.
 디에 : 성교회의 힘도, 포르테의 힘도 사용하지 않았다...
 가돌프 : 그렇다면 그녀는 혼자서 <황혼의 사도>를 처리할 생각이었다는 것 아닌가. 대체 뭘 믿고?
디에 : 방직공이기 때문이라는 거군요.
 가돌프 : 그러하네.


 가돌프 : 하이디가 방직공이라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네. 왜 그녀가 사리아를 따로 빼돌린 것인지, 크로셰의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인지, 그리고 행방불명이 되었는지도 말일세.
 디에 : 설마 하이디가 가람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싶으신 건가요?
 가돌프 : 가람이 되었다고밖에 볼 수 없네.
 디에 : 어째서죠?
 가돌프 : 레스테의 침묵이 그 이유일세. 아나스타시스와의 싸움 도중에 죽었다면 명예로운 일이니 그녀가 굳이 이 일을 숨길 이유는 없네. 하지만 하이디의 행방에 대해 침묵한다는 건, 그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 되네.
 디에 : 그 말은 레스테가 하이디가 가람이 되는 순간을 목격했다는 뜻이군요? 그 증거는 있습니까?
 가돌프 : 기록 서원의 방문 기록이 그 증거일세. 그때 레스테는 혼자 기록 서원에 방문하지 않았네. 하이디와 함께했지. 
 디에 : 하이디와 함께...
 가돌프 : 자네 말대로 하이디가 <황혼의 사도>라면, 레스테에게 굳이 아나스타시스의 정체를 밝혀서 일을 어렵게 만들 이유가 없네. 하지만 하이디는 방직공으로서 이번 사태를 해결해야 했기에 레스테에게 도움을 구한 걸세. 
 디에 : 레스테를 기록 서원으로 데려간 게 하이디란 말씀이시군요.
 가돌프 : 그러하네. 그렇다면 그 둘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아나스타시스를 처리하러 갔을 이유도 명백하네. 그 과정에서 하이디는 가람이 되어버린 거지. 레스테는 하이디의 명예를 지켜줄 생각이었을 걸세. 그리고 이건 시드도 마찬가지겠지.
 디에 : 좋습니다. 시드의 이야기도 들어보죠.




 

시드


 가돌프 : 마지막이군. 시드에 대한 의혹을 해결하는 거로 우리 대화는 끝날걸세.
 디에 : 시드 미스터리의 핵심은 왜 그가 하이디와 함께했는지입니다. 어떻게 설명하실지 궁금하군요.
 가돌프 : 그럼 시드가 하이디에게 특별한 원한을 품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면 되겠군.
 디에 :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다고는 하나 하이디는 눈앞에서 딸을 태운 처형인입니다. 하이디를 볼 때마다 죽은 딸의 얼굴이 떠오르겠죠.
 가돌프 : 그렇다면 역으로 묻겠네. 시드는 왜 그토록 괴로운 상황 속에서도 왜 계속 기사로 재임한 건가? 그만한 아픔을 견디면서까지 버틸 이유가 있었던 건가?
 디에 : 딸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겠죠. 그 타이밍을 보기 위해 기다린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돌프 : 딸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렇다고 하기엔 지난 13년 동안 아무것도 한 게 없지 않나?
 디에 : 레스테와 같은 논리시군요. 실은 조금 전에도 말씀드리려고 했던 거지만 눈앞에 결과물이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아마 레스테도, 시드도 저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뭔가를 하려고 했었겠죠. 다만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고요.
 가돌프 : 좋네, 자네 말대로라고 해보지. 허나 그렇다면 정말로 이상한 게 있네. 그는 왜 대승정에게 협력을 구한 건가?
 디에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대승정이 가진 유물의 힘이 필요해서겠죠. 그리고 그는 하이디가 <황혼의 사도>라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접근했을 겁니다. 
 가돌프 : 내 말은, 만약 하이디가 <황혼의 사도>라면 
대승정이 <황혼의 사도>가 아니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냐는 걸세.


 가돌프 : 만약 내가 시드라면 이 일을 하이디의 개인적인 소행이 아니라 온건파의 소행으로
 받아들였을 거라고 생각되네. 일개 승려라면 모를까, 우두머리급인 하이디가 <황혼의 사도>라면 온건파 자체가 그 영향권에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디에 : ...그렇게 추측할 수도 있겠군요. 
 가돌프 : 게다가 따지고 보면 온건파는 방직공의 처형을 반대하는 무리 아닌가. 온건파의 성향상, 뒤에서 <황혼의 사도> 같은 방직공 무리와 영합하고 있었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네. 그렇다면 대승정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지 않느냐는 것일세.
 디에 : 하지만 시드가 하이디를 의심한 게 아니고서야 그녀와 함께 돌아다닐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가돌프 : 정말로 하이디와 함께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돌아다녔다고 하면 어떠한가?
 디에 : 그러니까 왜...
 가돌프 : 왜긴 왜겠나? 시드도 하이디도 모두 방직공이기 때문일세. 성도에서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방직공으로서, <황혼의 사도>의 등장은 그들에게도 위협이 되었을 걸세. 아나스타시스의 화형식도 마찬가지지. 무엇보다 둘은 영웅일세. 성도의 사람들이 위험해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던 걸세.
 디에 : 그걸 납득하기 위해서는 시드가 하이디에게 아무 유감이 없었다는 걸 증명해주셔야 합니다. 딸을 불태운 사람과 함께 싸우는 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가돌프 :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군. 자네가 말한 대로 시드가 원한을 품으려면, 딸의 죽음이 억울한 일이라고 굳게 믿을 만한 근거가 있어야 하네. 하지만 그 당시 딸의 이형화는 엄연한 재앙이었네. 누군가가 계획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었단 말일세. 


 가돌프 : 
시드의 딸만 집어서 화형을 했다면야 원한을 품을 이유가 없지 않지만, 이형이 된 사람은 아래위 구분 없이 모조리 불사른 사건이네. 그런데 단지 처형대에 올렸다는 이유로 하이디에게만 기이할 정도의 분노를 불사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디에 : 그건... 
 가돌프 : 적어도 그녀가 원한을 가지고 움직이려면, 성도의 대규모 화형식이 누군가에 의한 계획적인 범죄라는 걸 알아야 하네. 하지만 그 사실이 밝혀진 건 하이디와 레스테가 기록 서원에서 아나스타시스의 정보를 찾아온 이후지. <성도> 사건부터 하이디를 의심하고 그 뒤를 쫓았다고 보긴 어렵네.


 가돌프 :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시드가 원망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을 거라고 말일세. 번듯한 기사면 뭐하나? 딸의 이형화조차 미리 눈치채지 못하고 딸을 불살라야 했던 무능한 어머니이지 않은가. 기사 생활을 계속한 것 또한 딸을 위한 속죄의 고행이었던 걸세.
 디에 : 그렇다면 그는 왜 행방불명이 된 겁니까?
 가돌프 : 자네라면 십수 년간 피할 수 없는 재앙이라 생각했던 사건이, 사실 불사자 한 명의 안녕을 위해 벌어진 촌극이었라는 사실을 안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나?
 디에 : 원흉인 아나스타시스를 죽이고 싶었을 겁니다.
 가돌프 : 죽인 뒤엔 어떻게 되나?
 디에 : ...더는 살아갈 의욕이 생기지 않겠군요.
 가돌프 : 허무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기에 딱 좋은 상황이 아닌가. 그는 아무런 미련도 없었을 걸세. 그저 빨리 이 모든 것이 끝나길 바랐겠지. 그러니 모든 힘을 쏟아부어 아나스타시스를 죽이고 가람이 된 걸세. 그리고 하이디가 그 모습을 지켜봤다면, 그녀 또한 버티기 힘들었겠지. 어쩌면 그녀도 그 사건으로 인해 오랜 세월 죄책감을 품고 살았을지도 모르니까. 가람이 되면 모든 죄책감도, 원한도 사라지네. 둘은 가람이 되어 각자 모습을 감췄네. 레스테와 크로셰는 둘의 명예를 위해 그 사실을 숨긴 거겠지.
 디에 : ....
 가돌프 : 이상이 <비단찢기의 새벽>에 대한 나의 반론일세.

 


 

 가돌프,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 지그시 디에을 본다.

 가돌프 : 물론 우리의 이야기는 모두 추측에 불과하네. 우리 둘 다 틀렸을 수도 있지.


 가돌프, 10만 크레딧을 디에에게 건넨다.

 가돌프 : 하지만 자네의 이야기는 재미있었네. 10만 크레딧의 가치가 있었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디에, 돌연 표정이 텅 비어버린다. 그리고 인자한 여성의 목소리로 가돌프에게 묻는다.

 디에 : 그대의 이름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가돌프, 잠시 침묵하더니 답한다.

 가돌프 : 말하지 않았나? 가돌프라고 말일세. 왼쪽 땅을 떠돌아다니며 괴담을 모으는 이야기 수집가지.
 디에 : 신 앞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바른대로 고하십시오.
 가돌프 : 바른대로 고해야 하는 건 자네인 것 같군. 왜 거짓을 뿌리고 다니는 건가, 하이디 공?

 디에,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주르륵 흘러내린다. 새하얀 날개가 날린 늙은 여인이 나타난다.
 
 하이디 : 신은 그날의 성전이 잊히길 바라십니다. 모든 것은 역사의 뒤안길로. 그리하여 왼쪽 땅의 백성들이 안녕을 되찾기를.
 가돌프 : 신이 아니라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미스터리 속에 자신의 행적을 숨기는 것도 모자라 함께 싸웠던 동료들의 명예마저 더럽히려고 하다니 정말 질이 나쁜 가람이 됐군.
 하이디 : 진명을 고하고 신에게 엎드려 처분을 구하십시오, 레이쥬 에프카.

 가돌프,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벗는다. 전설의 재봉사 레이쥬 에프카가 고한다.

 에프카 : 신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은 너다, 가람 하이디. 

 에프카, 손끝을 공중에 튕긴다. 손끝에서 가는 빛줄기가 뻗어나간다. 어느새 거미줄처럼 방안을 메우고 있던 선들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빛나는 선을 따라 하이디의 형상이 산산조각이 난다. 하이디가 사라지자 조금 전까지 여관이었던 장소가 폐허로 변한다. 

 에프카 : 날개가 생겼다고 함부로 바다 위를 날면 곤란하지.

 에프카, 먼지로 가득한 테이블 위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느덧 해가 떠오르고 있다. 날카롭게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조금 전까지 하이디가 있었던 곳을 본다.

 에프카 : 파도에 쓸려가기 전에 사체는 회수해주마. 

 에프카, 다시 후드를 뒤집어쓰고 유유히 폐허를 나선다.

 에프카 : 미안하다, 클라우. 조금 늦겠구나.

 막이 내린다.

 

 Madly Ever After... 

 어떻게 재미있게 읽으셨는지 모르겠네요ㅎ 저는 재미있게 썼는데^^)9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방식인지라 평소보다 품이 더 많이 들었지만(!) 그만큼 결과물이 마음에 듭니다. 모쪼록 읽어주신 분들도 즐거우셨으면 좋겠네요. :D

 이렇게 성도에서의 미치광이 페스티벌이 끝을 맺었습니다. 그야말로 매드타시 매드타시ㅋ 전개와 엔딩이었지만 세션 끝나고 돌아보니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개연성으로 조밀하게 이어진 이야기였던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어요. 요즘 세션만 하면 PC를 로스트시키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고 있는데(!) 로스트하기에 너무 완벽한 서사라서 놓칠 수 없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비록 하이디의 시트는 찢어졌지만 이 세션의 기록은 오래오래 남길 것을 약속드리며ㅎㅎ

 그러나 SSS 캠페인의 막은 이제 올랐을 뿐입니다. 앞으로 남은 세 개의 국가와 여섯 개의 이야기를 거치며 함께 성장할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힘이 닿는 한 잘 남겨보고 싶네요. 게다가 2권부터는 저 혼자 남은 캠페인 내내 영속되는 PC를 맡아 어떤 식으로 후기를 쓸지 벌써부터 머리가 팽팽 돌아갑니다ㅋㅋ 꼭 써보고 싶었던 구성이 있었던 만큼 2권 후기도 기대해주세요.

 후, 그럼 이쯤에서 길고 길었던 성도의 문을 닫아볼까 합니다. 절제된 광인들의 이야기를 넘어, 다음은 세속적인 욕망으로 가득한 상업 도시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에요. 제 PC이자 남은 이야기의 기록자가 될 클라우를 소개해드리며 이 후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남은 나라들 모험도 잘 부탁드려요^^)9


 흑백으로 물들어 갈 우리

 광어님 : 성도 안내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9 참으로 즐겁고 광기로 가득찬 투어였어요( ͡° ͜ʖ ͡°)  이게 참 권마다 다른 도시에서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성이다 보니, 광어님의 모노뮤 투어 같고 그래요(?) 몇년 전에 약속했던 SSS 캠페인이 정말 시작될 수 있도록 핸들 잡아주신 것도 감사하고, 코시국 때문에 오알로 준비하시느라 신경쓸 게 많으셨을 텐데 감사해요. 오알이어도 광어님 연기 톤이 다 느껴진다 아닙니까ㅋㅋㅋ 이제 오프도 가능하니 오프 모노뮤 투어 즐겨보자고요:D 저도 마지막 투어 끝나는 날까지 후기도 세션도 열심히 참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루와즈님 : 매 세션마다 넘 예쁜 세카 제공에, 매력적인 PC에, 전투까지 점점 더 능숙해지시는 롸님... 정말이지 롸롸최입니다(?) 로그 다시 읽으면서 느낀건데 어쩜 이렇게 귀족 연기를 잘 하시는지 감탄하면서 봤어요ㅎㅎ (존댓말은 호의이다 < 크ㅎㄹ늑) 아무래도 모노뮤 세계관이 좀 독특한 편이다 보니, 불사자나 소레라 같은 PC는 덥석 알피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레스테도 그렇고 2권의 루프스도 그렇고 너무 이미 모노뮤 캠페인 몇 바퀴 돌리고 오신 분처럼(!) 자연스럽게 연출해주셔서, 롸님 덕분에 저도 덩달아 세션 몰입도가 높아집니다;ㅅ; 롸님이랑 모노뮤 캠페인 할 수 있어서 기뻐요ㅎㅎ 앞으로 만날 롸님의 PC들도 기대하며 후기를 두고 갑니다/ㅅ/ 잘 부탁드려요!

 아본님 : 시드... 정말 좋은 PC였습니다ㅠㅠ 눈물줄줄... 항상 세션에 최적화된 PC를 데려오신다는 느낌이 있는데, 시드가 있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그런 결을 가지며 끝맺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어요. 가족을 잃은 아픔이라는 건 다른 감정으로 대체할 수 없는 영원한 상실감이잖아요. 적당한 전개로는 절대 시드를 구원할 수 없었던 게, 이 이야기를 멋진 비극으로 이끄는 이정표가 되어줬던 것 같아 정말 좋았습니다. 이런 미치광이 동네의 이야기는 완전히 봉합된 해피 엔딩보다, 실패한 봉제선 사이로 솜이 흘러넘치는 쪽이 더 매력적이지 않나 싶고요. 시드 덕분에 하이디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어요. 감사드립니다/ㅅ/ 남은 도시에서도 함께 매드새드해피베리한 이야기 만들어 보자고요!ㅋㅋㅋ

 녹차님 : 녹차님 정말ㅠㅠ 매번 세션도 좋은데 후기도 정말 열심히 써주셔서 몸둘 바를 몰라하며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하이디 그려주신 거 보고 회사에서 드러누었다고요ㅠ0ㅠ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던 이야기들이 누군가에 의해서 구체화될 때의 황송함을 녹차님 후기 통해서 진하게 느끼고 있어요. 덕분에 호화롭기 짝이 없는 캠페인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ㅅ/ 크로셰는 녹차님의 녹차성(!)이 듬뿍 담긴 PC라 믿음직하면서도 여러가지 의미로 무시무시했어요. 특히 하이디에게 마지막에 던진 그 대사... <ㅇ> 하이디를 로스트시키면서도 스스로 별 대미지 없을 줄 알았는데 그 대사 들었을 때 생각보다 대미지가 엄청 들어와서 너무 즐거웠어요.. 휴, 남은 세션도 기대해봐도 되겠죠? 저도 노력할게요!

 

 아카이브용 링크

 후기에 사용된 몇몇 문구는 다른 플레이어분의 후기 내용을 오마쥬해서 가져왔습니다. 본문에는 컬러로 별도 표기해뒀으니 원문은 이하의 링크를  참고 부탁 드립니다.

 아본님 후기

 <비단찢기는 성야에 춤춘다
 <구제와 같이 화형이 오누나>


 녹차님 후기

 <비단찢기는 성야에 춤춘다>

 <구제와 같이 화형이 오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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