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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후기/더블 크로스

RE:HALOS : <una☆stella> 요나 피냐텔리

by 에이밍 2023. 4. 1.

 

 

 자, 오늘은 요나편입니다:) 요나는 인섭이 형과 함께 RE:HALOS를 떠받친 두 기둥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인섭이형 다음으로 꼭 요나를 다루고 싶었습니다. 함께 해주셨던 멤버분들도, 그리고 요나의 PL이셨던 중구님도 공감하면서 읽으실 만한 리뷰가 되면 좋겠습니다:) 수정하고 싶은 내용 및 반박하고 싶은 내용은 후담팟에서 받겠습니다ㅋㅋㅋㅋ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음, 좋아요. 모든 영웅의 시작이 그러하듯 평범했던 시절의 요나부터...  어, 그러고 보니 요나는 평범했던 시절이 없네요?

 

 맞습니다. 요나는 다른 PC들과는 시작점부터 달라요. 요나는 평범하지 않은 일상에서 평범한 비일상을 꿈꿨던 아주 이단적인 영웅입니다. 이걸 짚고 넘어가고 싶어요.

 이하의 글은 <레니게이드 워> 캠페인의 전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빼앗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평범하게, 히어로가 되고 싶어
 

  영웅 서사는 평범한 존재가 비범한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을 다룹니다. 우리 모두 평범하지만 비범한 존재가 되길 바라기 때문에, 영웅 서사는 시대를 불문하고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해요. 


 그런데 여기... 서사의 공식을 장렬히 역행하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요나는 자신의 비범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평범성을 선택하는 역행적인 캐릭터에요. 야쿠자 집안의 딸로 태어나 언젠가는 그 무리를 이끌어야 하는, 10대 소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짊어진 채 요나는 동굴에서 뛰어나왔어요.

 

 캠페인 전체를 통틀어서 요나의 집안이 얼마나 살벌한 환경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사가 딱 한 번 나옵니다. 요나의 삶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알 수 있는 아주 단적인 대사에요. 

 

 

 현대 사회에서 복수는 판타지입니다. 모두가 거미줄처럼 얽힌 현대 사회에서 누군가를 배제하는 일이 쉬울 리 없기 때문입니다. 복수는커녕 시도하는 것조차 판타지죠. 그런데 요나는 그 판타지의 결말을 여러 번 확인하는 삶을 살아온 거예요. 고작 10대의 나이에. 이런 걸 일상이라고 할 수는 없죠. 드라마고요. 장르는 느와르입니다.

 그런 요나에겐 차라리 영웅의 삶이 '평범한' 축에 속합니다.

 

 다른 PC들도 비범한 삶을 살아오긴 했지만, '평범해지고 싶어서' 영웅이 되길 선택한 PC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 영웅을 동경해서 히어로가 되었죠. 하지만 요나는 히어로를 동경해서 히어로가 된 게 아니에요. 히어로라도 되어야만 여기에서 도망칠 수 있으니까 히어로를 선택한 거죠. 

 

귀여운 장면이지만, 만약 요나가 야쿠자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씁쓸하기도 했다

 

 요나의 이런 인식이 단적으로 드러난 적도 딱 한 번 있었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요나는 '자신이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빼앗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그리고 다른 PC들도 저마다의 이유로 그렇게 느꼈다는 걸 알게 되자 비로소 동지 의식을 느낍니다.

 

 

 왜 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할까요? 그건 요나가 영웅의 자리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나에게 영웅은 누군가가 바라는 자리인 거예요.

 하지만 영웅이 정말 좋기만 한 걸까요? 이 캠페인은 영웅이라는 업의 양면성을 다루고 있어요. 모두가 영웅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영웅이 된다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 할 수도 없어요. 

 

 그러나 빼앗았다고 표현할 때는, 그 자리를 동경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채감이 있는 거죠. 요나 자신은 가문에서 벗어나기 위한 차악으로써 히어로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니, 순수하게 히어로를 꿈꾸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을 거예요. 이런 자신이 히어로로 있어도 되는가 싶어 고뇌했던 거죠.


뮤직페스─ 폴 타임 밤의 첫날.
큰 상처가 있었던 도시는
아주 천천히, 치유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성자로서의 아이돌

 

 요나의 사회적 역할은 아이돌과 히어로 두 가지입니다. 요나에게 히어로가 평범성을 상징한다면 아이돌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남죠. 그걸 알기 위해서는 레니워 세계관에서 다루는 엔터테인먼트의 본질을 파헤쳐 볼 필요가 있어요.
 
 레니워 세계관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전쟁으로부터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는데도 세계가 매우 빠르게 회복되었다는 거예요. 히어로라는 초인적 존재들이 재앙을 빠르게 정리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들이 엔터테인먼트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전쟁의 상흔이 아주 빠른 속도로 엔터테인먼트로 승화했기 때문이죠.

 

 이게 자연스러운 과정일 리 없습니다. 뭔가 부자연스러워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과정이 벌어진 걸까요? 공식은 이  얼개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레니워를 탐사했던 입장으로선 이렇게 느껴져요. 이 세계의 엔터테인먼트는 일반적인 의미의 유희가 아닌, 전쟁의 흉화를 덮어 없애고자 하는 의식이라고요.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인간이 존재한다. 그들 중 일부는 인간을 해치려 한다. 레니게이드 워가 남긴 이 '교훈'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트라우마로 남을 것입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하나 안고 살게 된 셈이죠. 히어로와 빌런의 균형이 무너지면 언제 또 전쟁이 발발할지 알 수 없으니까요. RE:HALOS의 시점에서 보이지 않았을 뿐, 그 와중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빌런에 의해 죽어가고 있겠어요. 

 

그 불안과 두려움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세계의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사람들은 사실상 군인이나 마찬가지인 히어로들을 영웅으로 취급하고, 그들을 '랭킹제'라는 엠넷적 해석(!)으로 엔터테인먼트에 편입시켜, 사실 이 모든 일을 거대한 농담처럼 승화시키려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냉전 상태에 대한 부담을 잊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즉, 이 세계의 엔터테인먼트는 본질적으로 종교인 셈입니다. 그리고 그 엔터테인먼트에 적극 종사하는 아이돌은 종교인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죠. 사람들에게 이 세상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알려주고, 그들이 안심하여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요. 인섭이형 편에서 인섭은 아이돌 덕질을 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었는데, 누구보다도 이 세계의 첨단에서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지켜봐야 하는 인섭에게 아이돌이 위안이 되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고 봐요.

 그러니까, 요나가 아이돌에 가담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종교인이 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요나는 지옥 같았던 삶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기를 바라요. 히어로가 사회적 안정감을 위한 것이라면, 아이돌은 정신적 안정감을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단지 포지션으로만 종교인이 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이 세계를 품는 방식도 종교인과 흡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저 이 하나의 길을 열기 위해.
혹은 저 결말을 응원하기 위해.

이 세계의 기적

 

 요나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저는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PC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세상을 받아들이는데, 요나의 방식은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거든요. 이 흉화로 얼룩진 세상을 고스란히 품을 수 있는 용기는 기적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겠죠.

 

 

 사실 레니워의 세계에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은 싫으나 좋으나 '버틴다'뿐이긴 해요. 이건 우리 삶도 마찬가지이지만, 아무튼 삶은 견디어 내는 수밖에 없어요. 그걸 할 용기가 없어서 저지르는 다양한 일탈이 삶의 스펙트럼을 만드는 것이고요.

 

 

 레니워의 세계에서는 세상의 불합리에 저항할수록 빌런에 가까운 존재가 됩니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그 불합리를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점에서 사실 팔라딘은 영웅이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나유타도 마찬가지이고, 사실 인섭도 마찬가지예요. 릿카는 말할 것도 없고, 하야토는 온전한 의미의 영웅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뭐... 뭔소린지 나중에 더 해명함)

 하지만 요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히어로였던 유일한 캐릭터에요. 요나는 자신이 선택한 삶, 아이돌과 히어로로서의 삶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부산물을 감내하려고 애씁니다. 설령 그것이 가장 사랑했던 친구를 잃는 일일지라도요. 

 

 

 퓨어 오르쿠스라는 설정도 이런 점과 딱 맞아떨어지는데,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역시 도쿄돔을 로이스로 삼는 5화의 이 장면이었을 거예요.

 

 

 모두가 엔터테인먼트로, 또는 자신의 과잉된 에고로 도망치는 가운데 요나만큼은 묵묵히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요나의 이런 방식은 다른 PC들이 자기 자신과 세계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큰 영향을 줘요. 특히 나유타에겐 인섭과 더불어 가장 많은 영향을 줬을 거라고 봐요. 차라리 이 세계로부터 자신을 배제해달라고 부탁하는 나유타에게 요나가 건네는 말은, 그야말로 종교적입니다.

 

 

 대화의 맥락을 보면, 신의 사도가 고해성사를 하는 사람들을 용서해주는 프레임과 유사합니다. 너의 죄를 사하노니, 그대여 죽지 말지어라를 읊어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방식이 또 오만하지가 않아요. 아주 다정합니다. 

 

 다크나이트를 만나러 가기 전에, 빌딩 진입을 위해 요나가 나유타에게 빛의 계단을 만들어주는 장면입니다. 사실 전 이 장면에서 나유타가 망설이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자기 손으로 팔라딘을 끝장내야만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갈 수 있는 이 현실에 대해 분명히 저항감이 들었을 거예요.

 이 세계의 불합리를 거부하려는 나유타에게, 요나는 괜찮다는 징표로서 빛의 계단을 만들어 줍니다.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요나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PC1 입장에서, 요나라는 존재 자체가 마치 이 캠페인이 PC들을 응원하기 위해서 보내는 응원가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물론 나유타가 본격적으로 도망치기 시작한 후부터는 냉정하게 대합니다.)

 

 

 도쿄의 가장 큰 무대 위에서, 가혹한 결말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이 괜찮을 것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이 현직 아이돌의 노래는 분명히 이 세계가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적 중 하나일 것입니다.

 



당신이 내린 답이 뭐든...
받아들이는데, 도망치는 것이어서는 안 됐어.

 기적의 공식, 도망치지 않기


 하지만 생각해보면 요나 또한 처음은 '도망'으로 시작했어요. 가문의 멍에에 사로잡히는 게 싫어서 집을 나왔죠. 도망치는 게 캠페인의 시작점이었다는 점에서는 나유타와 요나는 비슷한 포지션에 놓여 있어요. 하지만 이 둘의 차이점은 나유타는 계속 도망쳤다는 거고, 요나는 계속 책임을 지려고 했다는 거에요. 

 요나가 책임을 지려고 하는 가장 에픽한 순간은 역시 로보와 관련된 장면입니다. 로보는 요나의 십자가에요. 7화에서 다시 재회하기 전까지 로보에 대한 복수심도 어느 정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스터 코발트가 로보를 되살려낸 것을 보며 분노하는 요나

 
 그리고 실제로 4화 클라이맥스에서 미스터 코발트를 쓰러뜨리면서 복수에 성공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요나가 정말 '복수'라고 생각했는지는 의문이에요. 개인적으로 복수의 본질을 무언가를 죽여 없애고 싶은 감정이 아니라, 무언가를 강렬하게 되돌리고 싶어 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실질적인 이득의 복원이든, 정신적으로 파훼된 감정의 복구든요.

 

 하지만 요나는 로보를 되돌려받고 싶다는 뉘앙스의 말이나 행동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저 못다 한 미련을 해소하고 싶을 뿐이고, 로보가 지켰던 세계를 자신 또한 지키고 싶어 할 뿐이죠. 음, 로보의 이야기는 잠시 후에 더 자세히 하도록 하고...  

 

 즉, 요나의 기적은 '도망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인섭이 히어로와 빌런의 경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요나는 도망치느냐 아니냐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지요. 도망치기 바빴던 나유타와 블래스터에게 건네는 말을 보면 요나의 이런 신념은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나요.

 

블래스터에게 건네는 말
나유타에게 건네는 말


 아마 나유타는 자기가 도망치고 있는 줄도 몰랐을 거예요. 알아도 사실 인지하지 않으려고 했겠지만, 요나는 꾸준히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점점 강도(?)가 강해지죠. 심지어 도망치지 못하게 아예 무대 위로 올려버릴 정도로ㅋㅋ

 

자, 노래해라!

 

 하지만, 요나가 도망치는 사람들을 질책하는 이유는 그들을 까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요나는 인도하고 싶은 거예요. 이 세계를 도망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면, 그제야 비로소 모두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얘기하고 싶은 겁니다.

 

 

 하지만, 정말로 요나도 그렇게 믿고 있는 걸까요? 요나를 푸는 마지막 열쇠는 역시 로보입니다.

 


요나가 노래하고, 많은 사람들이 요나를 좋아하는 세계 쪽이 좀 더 좋다고 생각해.

로보가 없는 세계

 
요나에게 로보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어요. 로보는 요나와 함께 완간지구의 삶을 공유하는 소꿉친구인 동시에, 히어로의 세계에서 싸우고 있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로보는 요나의 쌍둥이인 셈이죠. 로보는 요나와 완전히 같은 세계를 살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거예요.
슬픈 얘기지만 사실 히나조차도 경계선 위에 있는 요나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로보는 아이돌 요나의 첫 팬이기도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야쿠자의 세계에서 아이돌의 세계로 넘어오는 요나의 모습을 제일 처음 지켜 본 사람이 로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로보는 요나의 시작점이기도 해요.

 (그리고 이 부분은 제 추측이지만 사실 요나도 처음엔 아이돌만을 꿈꿨을 것 같아요. 히어로까지 꿈을 확장하게 된 건, 로보를 동경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결국 로보는 실패했습니다. 틀리지는 않았지만 실패는 했어요. 그리고 이건 사실 요나의 근간을 흔들 수 있었던 문제입니다. 야쿠자의 삶을 떠나 히어로의 세계로 왔더니, 바로 그 히어로의 세계에서 로보가 죽은 거예요. 차라리 둘 다 완간지구의 어둠에 파묻혀서 살았던 게 나았을 뻔한 상황이 된 겁니다. 그런 요나에게도 이스카리오테의 제안은 매우 매력적이었을 것이고요.

 


 하지만 요나의 신념에 따르면, 요나 자신도 이 사태에서도 도망치면 안 됩니다.... 이게 정말... 너무 잔인해요... 요나를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신념을, 가장 사랑했던 친구를 떠나보낸 상황에서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다뇨... 전 이 캠페인에서 가장 가혹한 취급을 당한 PC는 요나였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이 캠페인에서 요나가 해결해야 하는 딜레마는 '로보가 없는 이 세계에서 어떻게 도망치지 않을 것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망치거나, 견디거나. 견딜 거라면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하지만 1화 이후 세션에서 요나가 이것에 대해 주도적으로 언급하거나 (적어도 팀원들 앞에서는) 감정적으로 회고하는 듯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어요. 요나의 심정이 드러나는 장면은 7화에서 나루카미 무츠키, 로보와 다시 만나는 장면입니다.


 요나는 부정하지 않아요. 사실, 이스카리오테가 말하는 이 세계를 더 원한다는 걸. 자신도 사실 도망치고 싶었다는 걸요. 하지만 가장 가슴 아픈 사실은... 


 실은, 요나에겐 아이돌 생활도, 히어로 생활도 요나에겐 쉽지 않았다는 거예요.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지, 둘 다 이 어린 소녀에겐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던 겁니다.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더욱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요. 더군다나 요나는 자신의 역할을 언니에게 맡기고, 아무것도 들고나오지 않은 채로 비범의 세계에 뛰어들었어요. 아이돌로서 성장하는 것도, 히어로로서 자신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것도, 전부 자기 혼자서 해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감춰온 모든 고뇌를 다시 만난 로보 앞에서 쏟아내고 마는...ㅠㅠ 개인적으로는 요나의 모든 씬 중에서도 최고로 뽑는 씬입니다.

 로보가 없는 세상을, 버겁기 짝이 없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도망치지 말라는 건, 사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로보와 다시 만나기 전까지 요나도 아직 답을 찾는 중이었을 테니까요.


 방법을 몰라서 도망칠 자신이 없었던 건 사실 요나도 마찬가지였던 거죠. 그리고 로보가 옵니다. 요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결국, 로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요나 너도 그 세상을 사랑하잖아.

 로보가 없는 세상은 분명 끔찍한 세상이겠지만, 그렇다고 요나가 사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은 아니에요. 사랑하는 노래를 할 수 있고, 그걸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싸울 수도 있으니까요. 로보는 바로 그 사실을 알려주는 거예요. 내가 없는 세상이지만 네가 사랑할 것들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요.

 단,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요나를 로보를 떠나보내야 합니다. 요나에게 필요했던 건 로보를 향한 애도였던 거예요. 

 

 그리고 요나도 인정합니다. 로보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그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고, 그 후를 살아 나가길 바라는 자신을요. 바로 이 지점에서 나유타와 요나는 또 닮아있으면서도 다른데, 요나가 '로보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고 싶어 하는 자신'을 인정했다면, 나유타는 그럴 수 없어서 마지막까지 면류관을 거부한 것이거든요. 그렇게 요나는 먼저 성장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요나를 위해서 로보는 마지막으로 등을 떠밀어줘요. '로보가 없는 세계'를 '로보가 요나를 좋아했던 세계'로 다시 정의해서, 요나가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줘요. 여러 가지 의미로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감정을, 자신이 없는 세계를 살아갈 요나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고백하다니... 진짜 사랑이라는 건 이런 게 아닐까요? 받기 위해서가 아닌 주기 위해서 주는 마음.

 


 그리고 요나는 로보의 마지막 응원에 응하기로 합니다. 로보가 없는 세계를,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이 세계에서 도망치지 않고 살아가기로요. 


"언니가 계속 여기를 지켜주고 있었으니까."

흉화의 밭에서 노래할게

 

 그리고 히나와의 재회로 에필로그가 성립되면서, 요나의 서사는 완벽한 결말을 맺습니다.


 히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죠. 히나는 요나가 도망치고 싶었던 세계에 남겨두고 온 자신의 잔해에요. 히나와 마주한다는 건, 요나에게 자신이 가장 도망치고 싶어 했던 요나텔리 가문의 민낯을 다시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로보와의 대화로 이 세계에서 도망치지 않기로 결심한 후에, 요나가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이 바로 히나입니다.

 요나는 히나와 화해함으로써, 비로소 마지막으로 자신이 가장 도망치고 싶어 했던 세계까지 받아들이기로 한 거예요.  로보는 영원히 요나의 곁을 떠났지만, 로보가 남긴 것만은 영원하며 온전하다는 것을, 히나와 화해하고 가문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는 것으로 증명합니다.

 도망치기 위해서 시작한 여정이, 도망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나, 도망쳐선 안 되는 이유를 새로이 찾고, 도망쳐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순례의 여정. 요나는 흉화가 맺은 열매이나, 그 열매는 새로운 꽃을 피울 씨앗이 되겠죠. 요나가 사랑한 세상은 그렇게 다시 화원을 이루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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