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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후기/기타

광쇄의 리벌처 : The Day of Re-VULTURE

by 에이밍 2022. 5. 10.

 

날짜 2022. 02. 19
GM 우롱 (@oolong_trpg) 카나 멜로즈
PC 에이미 (@ehrtlr) 오토 벨키룬

 

 여러분은 어떤 작품을 계기로 오타쿠가 되었나요?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다 오타쿠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음) 제가 오타쿠가 된 계기는 바로 이 작품입니다. 

슈퍼 그랑죠, 90년대 한국을 조진 그 만화


 그래요. 제 오타쿠 로드의 출발점은 메카물이었습니다. 이런 작품이 초두 효과로 각인되었으니 메카물을 사랑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TRPG로 메카물을 해보는 게 진짜 유-구한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광쇄의 리벌처> 이전에는 메카물을 할 수 있는 룰이 <메탈릭 가디언>뿐이었어요. 그런데 이 룰은 주변에 즐기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ㅠ... 도무지 접할 기회가 생기지 않더라고요. 제가 각 잡고 헤딩하지 않고는 영원히 할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2인으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룰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지 말입니다. 

 그리고 설명을 읽어 보니 데이터보다 장르에 중심을 둔 작품인 것 같아서 더 호기심이 가더라고요. 메카물을 좋아한다고는 했지만, 사실 제가 좋아하는 건 '메카닉'이 아니라 '메카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거든요. 아마 저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나온 룰이 아닐까 싶었고,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습니다. 아주 마음에 쏙 드는 룰입니다ㅋㅋㅋ

 그럼 세션 후기에 앞서 <광쇄의 리벌처>가 어떤 룰인지 알아보죠. 이하의 후기는 제 메카물 방랑기에 종점을 찍어주신 갓GM 우롱님께 바칩니다('-'*ゞ  

 <광쇄의 리벌처>란? 두근두근 설렘펄렘 버디 메카물★


 <광쇄의 리벌처>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두근두근 버디 메카물입니다>_< 표지에 보면 다~ 나와 있습니다^0^/

황폐한 세계, 리벌처 그리고 슈발리에와 피앙세


 창 너머로 언뜻 보이는 황폐한 땅, 2인용 콕핏 안에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 이것이 <광쇄의 리벌처>의 모든 것입니다. 좀 더 주석을 달자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메카 버디물'이에요. 하나하나 살펴보죠.

 ...는 내용이 너무 길어서 룰북 리뷰로 따로 뺐습니다!^0T)//  어지간하면 룰 리뷰도 같이 쓰는 편인데, 쓰다 보니 너무 길어지더라고요... 그만큼 좋은 룰입니다ㅎㅎ 룰북 리뷰는 조만간 올릴 예정이니 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차후에 이쪽 링크를 참고해주세요:D → 광쇄의 리벌처(光砕のリヴァルチャー)

 그럼 이 리뷰에서는 대체 무엇을 얘기할 것인가? 당연히 저희 세션 이야기입니다. 저희 세션... 정말 쩔었거든요... 훗... 차근차근 설명해보죠. 내가 슈발리에였는데 말이여 할머니 그만 하세요


 간단한 헤딩 소감 : 메카물을 좋아한다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

 진-짜 좋았습니다. 제가 메카물로 즐기고 싶었던 요소를 전부 맛볼 수 있어서 大만족했어요. 세션 한 번 했을 뿐인데도 이제 성불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즐거웠어요. 왜 이런 테마성 룰이 흥하는지 알겠더라고요ㅋㅋ

 사실 타이만 룰이라 큰 기대는 안하고 있었거든요. 전투가 재미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어차피 저는 서사 파트를 더 즐기는 사람이니 전체적인 만족도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 같았어요. 실제로 전투를 제외한 나머지 페이즈는 룰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라이트했고요. 그냥 스킨이 메카물(?)인 버디 룰 정도가 아닐까 했죠. (<- 사실 이 정도여도 만족할 생각이었습니다. 메카물이 너무 없으니까ㅠ) 

 와... 그런데 아니었습니다ㅋㅋㅋ 이건 찐이에요... 진짜 메카물을 좋아하는 제작자가 만든 룰 같더라고요ㅋㅋㅋ 일단 전투부터가 너무나 메카물답게 구현되어 있고, 캐릭터 메이킹에 사용하는 각종 표의 내용이나, 메카닉마다 붙어 있는 NPC들의 영업 멘트가 죽어있던 메카쿠 심장에 불을 지르더이다... 예시로 메카닉 영업 멘트 하나만 번역해볼게요.

 

P.27 역관절형 「그레이 스털링」

신입 정비사 카렌베르크가 말하길...


 저, 저기 혹시 희귀한 리벌처를 좋아하시나요...?
 햐앙!? 죄송해요! 화내지 말아 주세요!
 ...화, 화난 게 아니라고요? 설명해달라고...?

 후훗, 그럼 설명할게요! 
 아이는 「미라주 실드」 시스템의 실험기로, 기동 성능과 채프에 의한 회피성능을 리믹스해서 생존성능을 높인 유명한 명기에요!
 아, 채프가 뭐냐고요?
 부서진 실드로 찌릿찌릿! 전기를 일으켜서 격렬한 섬광과 전파 피해를 일으키는 거예요!
 그걸로 소라바미의 감각기관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공격을 회피하기 쉽게 만드는 거죠!

 하아~ 귀여워...... 당시의 기술자 씨들과는 기분 좋게 포도 주스를 한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앗, 너무 들떠버렸다...


 카렌베르크쟝 너무 귀여워 그뭔씹으로 울리고 싶다 이런 영업 멘트만 봐도 얼마나 메카물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지 느껴지지 않나요ㅋㅋㅋ 이런 멘트가 메카닉 프레임마다 하나씩 다 붙어 있다고요ㅠ 어? 생각보다 본격적이잖아? 하면서 풍덩 빠지기 시작했죠...

 하지만 진짜 좋았던 건, 저자가 이런 메카닉의 딥한 설정을 유저에게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당장 메카닉을 고를 때만 해도 모르겠으면 적당히 멋있어 보이는 거로 골라라(..)라고 적혀 있을 정도고, 함께 플레이하는 사람이 메카닉 쪽에 큰 관심이 없다면 메카/과학 관련 지식을 방출하지 말라고 따로 컬럼을 빼서 써뒀을 정도예요. (p.20 칼럼 ~당신이 인형병기에 익숙할 경우~ 참조)

 메카물의 정수를 가득 담은 룰을 만들어놓고, 메카닉 지식을 유저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오타쿠라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다 아실 겁니다. 오타쿠라는 건 원래 남들이 물어보지 않아도 자기가 좋아하는 걸 줄줄이 말하는 인종이잖아요^_T 그런데 <광쇄의 리벌처>는 바로 그걸 해냈습니다. (눈물줄줄) 메카물을 좋아하지만 메카닉을 좋아하는 건 아닌 저 같은 유저들은 두 팔 벌려 환영할 수밖에 없는 룰이었던 것입니다...

뭐든 세우고 무너뜨릴 수 있는 너른 황야


 세계관 설정도 마찬가지예요. 메카물을 즐기기에 꼭 필요한 요소만 담아놓고 텅 비워놨거든요. 이게 참 대단한게, 솔직히 메카물은 세계관을 정교하게 만들고 싶어지거든요. 세계관이 정교할 수록 메카의 존재 이유도 명확해지니까요. 그런데 그 정교함에 대한 욕망을 한 수 접고 유저가 원하는 대로 배경을 그릴 수 있게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내준 거예요.

 실제로 이런 배려를 바탕으로, 저희 세션도 고유한 설정을 여럿 넣어서 마구 비벼 먹었는데 너어무 맛도리라ㅋㅋ 눈이 다 번쩍 떠지더라고요. 저희가 상상하고 반영할 수 있는 영역이 많다 보니, 캐릭터와 세계관에 몰입하는 데도 엄청나게 도움이 됐어요. GM 우롱님이 제 메카물 심상에 맞춰서 같이 놀아주신 덕분이 컸죠. 
클맥 장면에서 우롱님이 소라이로 데이즈를 틀어주시는 순간 그냥 모든 게 찢어졌으며(?)

 아무튼, 메카물 한 번이라도 찍먹해본 분이라면 이 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메카물을 잘 몰라도 유저가 그릴 수 있는 영역이 넓어서 먹고 들어가는 부분이 있거든요. 가벼운 버디물로 접근하셔도 좋고, 묵직한 메카물로 접근하셔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룰이라 관심이 있는 분들은 메이저 되기 전에 얼른 츄라이하시길 권하며🤓

 자, 그럼 저희는 이 룰을 어떤 설정을 넣고 비벼 먹었는가? 지금부터 브리핑해봅니다.

 
 장갑차를 타고 낙원을 향해

 저희 세션에서만 나왔던 두 가지 설정이 있습니다. 어떤 설정이었는지 간략하게 보여드릴게요. 이 룰에서 어떻게 테이블만의 세계를 구현하는지에 대한 예시로 봐주세요.

고유 설정 1.
포트리스 밖을 전전하는 장갑차 무리


 저희 세션에서는 '포트리스에 받아들여지지 못해 회색의 황야를 방랑하는 장갑차 무리'라는 설정이 추가되었어요. 하필이면 PC의 당신의 이야기가 '방랑자'가 나와버렸거든요. 인류가 고립된 삶을 살고 있는 이 세계관에서 어떻게 방랑자 설정을 살리지? 하다가 회색의 황야에서 사는 무리를 만들자고 해버린 거죠.

 그런데 포트리스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방랑자들 사이에서 슈발리에가 태어난다...? 이 설정을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피앙세 쪽에서는 슈발리에를 찾지 못해 고난을 겪고 있다는 양념을 가미했더니 혀가 얼얼해지더라고요.

 여기에 이 장갑차는 황야에 널려 있는 리벌처의 잔해를 모아 만들었다는 설정까지...:P 아무튼, 제가 보기에 맛있을 것 같은 설정은 죄다 비볐습니다ㅋㅋㅋ 이게 되는 게 넘 좋았어요. 세계관이 단순한 덕분에 고유 설정을 마구 올려도 무리가 없더라고요.

마침 이 작품도 로드무비라 더 뻐렁참

 
 사람에 따라 복잡한 세계관을 좋아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전 테이블 고유의 설정을 올려서 같이 퍼먹는 게 더 좋은지라 이 점도 굉장한 장점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런 유연성에서 플레이어에게 특정한 세계관을 강요하지 않는 저자의 철학이 느껴졌어요. (룰북 리뷰3. 매력적인 점 참조)

 

 

고유 설정 2.
오아시스 같은 포트리스, 레이니 케이지


 두 번째 고유 설정은 피앙세의 도시인 레이니 케이지입니다. 오아시스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포트리스이기 때문에 자연이 풍부하고,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비가 내린다는 설정이에요. (포트리스의 설정을 생각하면 이것도 인공적인 비겠지만!) 그래서 이름이 레이니 케이지입니다.

 여기에 우롱님이 진짜 천재적인 설정을 한 꼬집 넣어주셨는데, 바로 슈발리에가 오랫동안 부재중인 도시라는 설정이었어요. 이 설정 하나로 파생되는 사이드 서사가 엄청나더라고요ㅠ 도시는 풍요로운데 군사는 없다? 딱 침략당하기 좋은 상황이잖아요. 겉보기엔 낙원 같은 곳이지만 사실 슈발리에를 애타게 찾고 있는 도시라니? 시작하기도 전부터 심장이 펄떡거렸습니다ㅋㅋㅋㅋ

 이후에 소개하겠지만 제 PC는 장갑차 무리의 일원으로, 원래는 포트리스에 발을 들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입장이었거든요. 그런데 저쪽이 먼저 무릎 꿇고 도와달라고 한다? 그런 미래가 나에게 예정되어 있다? 파블로프의 오타쿠는 침을 질질 흘리며 세션에 끌려가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도시 설정만 가지고도 PL을 이렇게까지 후킹하다니... 도대체 우롱님... 당신이란 사람은... (도입만 들어도 사람이 처참해지던... 전성기 칸노 요코 스타일의 천재... 뭐 그런 것이다...) 


 첫, 슈발리에 그리고 피앙세 

 이 매력적인 배경을 토대로 저희 버디가 태어났습니다😎 제 메카 로망이 듬뿍 담긴 진심의 캐빌딩이...ㅎㅎㅎ 부끄럽지만 차분히 써봄ㅎㅁㅎ 


 

오토 벨키룬

 장갑차를 이끌고 회색의 황야를 방랑하는 무리의 소년. 장갑차에서 태어나 장갑차의 운전수로 살아왔다.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소녀 ㅡ 카나 멜로즈와 만나 슈발리에로 각성한다.


 주인공이자 제 PC였던 슈발리에입니다. 장갑차 무리의 일원으로 살다가 어느 날 리벌처에 탑승하는 바람에 슈발리에가 되었다는 설정입니다. 본래 슈발리에의 재능은 가지고 있었지만 발현될 기회가 없었다는 전형적인 조형을 잡아봤어요.

 제가 턴에이 건담의 영향으로 메카물을 하면 반드시 전원풍(?) 주인공을 세우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이렇게 하게 되더라고요^^ 심지어 전원풍 와꾸를 잡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세계관이라ㅠ 이것도 이 룰에 엄청 호감을 느끼게 된 계기였어요.

 게다가 포트레이트는 무려 우롱님이 그려주셨습니다😭 😭 😭 우롱님이 삼백안 소년캐를 좋아하시지 않을까 하는 킹리적 갓심이 있었는데, 저렇게까지 잘 그려주실 줄이야ㅋㅋㅋㅋㅋㅋ 포트레이트 보자마자 기절해서 거품 물고 드러누웠다고요ㅠㅠㅠㅠ 아악ㅠㅁㅠ!! 

 하, 그리고 우롱님께 부탁드린... 하... 나의 피앙세... (아련)

 

 

카나 멜로즈

 전술지원개체 K-099의 기원전 모델... 이라고는 하나 원래 인간이었다. 지아드 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인격이 양자 데이터화되었고 현재의 몸에 임플란트 시술을 받아 '카나 멜로즈'라는 존재가 되었다. 레이니 케이지의 피앙세로 마땅한 슈발리에를 찾지 못해 다른 도시의 슈발리에와 접선을 하러 가던 도중 소라바미의 습격을 받게 된다. 


 안드로이드형 AI 피앙세인 카나 멜로즈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슈라이크(리벌처=로봇)의 슈발리에를 찾지 못해 헤매다가, 우연히 만난 오토를 슈발리에로 각성시키는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요... 제가 호시노 루리풍으로 해달라고 요청(?)은 드렸지만 정말로 이렇게까지 호시노 루리 상위 호환인 무언가일 줄은 몰랐습니다ㅠ 새벽 3시인가? 2시인가에 포트레이트 받고 잠 다 깼던^^

 근데... 외모만이 아니라 롤플도 너무너무 AI 안드로이드 풍으로 잘해주시는 거예욬ㅋㅋㅋㅋ 아니 만나자마자 첫 대사가 이런 거일? 필요가? 있나? (madly positive)


 오토가 황야의 들풀이라면, 카나는 인공정원의 조화라서... 이 조합은 결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재미있었습니다. 메카물을 하면 꼭 해보고 싶었던 그 조합을! 예상치 못한 퀄리티로 풍족하게 즐길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ㅠ 

 

 

 슈라이크

 레이니 케이지의 리벌처(Revulture). 고기능성의 슈라이크 프레임으로 만들어져 있으나 다루기가 까다로운 탓에 오랫동안 적합한 슈발리에를 찾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 이유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광쇄의 리벌처>의 또 다른 주인공인 기체 얘기도 안할 수 없죠^_^ 그의 이름은 슈라이크... 고른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역관절형이라서ㅋ 그냥 역관절형은 줫나 멋있잖아요!!!! 로봇에 간지를 빼면 뭐가 남는단 말이냐?! 

 그리고 메카닉 설명을 읽으면 은근 슈라이크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파일럿이 많은 거 같더라고요. 크... 그냥 주인공 기체 쓰라고 밀어붙이는 거나 마찬가지^_^ 안 그래도 무기도 블레이드를 들 생각이었기 때문에 고민의 여지 없이 슈라이크를 골랐습니다. 다시 봐도 너무나 만족스러운 선택이에요:D

 무기로는 창현과 숏라이플을 들었는데, 창현(滄絢)이라는 이름을 보고 고르지 않을 오타쿠가 어디 있습니까... 숏라이플은 별 기대 없이 골랐는데 얘도 생각보다 효자더라고요ㅋㅋ 따로따로 골랐지만 마치 한 세트인 것처럼 기체랑 무기가 착착 조립돼서 엄청 쾌감을 느꼈어요ㅋㅋㅋ

 서사적으로는 오랫동안 적합한 슈발리에를 찾지 못했다는 설정을 넣었는데, 주인을 못 찾은 명마...ㅎㅁㅎ 이런 걸 오타쿠가 어떻게 그냥 넘어가... ㅎ... ㅎㅎ... 


 
 자, 이렇게 <오토-카나-슈라이크>로 구성된 완벽한 파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각자가 가진 서사도 재미있지만, 마치 퍼즐 조각처럼 서로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더 좋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메이킹은 캐릭터 메이킹보다 맥락 메이킹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전 캐릭터보다 전체적인 서사와 조합을 더 즐거워하는 편인지라, 진짜 메이킹만으로도 너무너무너무 즐거웠습니다... 또 이 친구들을 데리고 함께 놀고 싶네요ㅠ

 아무튼, 보시는 바와 같이 저희는 두 가지 고유 설정을 토대로 슈발리에와 피앙세를 만들었고 둘의 관계와 미래가 어느 정도 결정된 상황에서 플레이를 진행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첫 만남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피앙세를 슈발리에가 받았으면 좋겠다든가(?) 하는 것까지 정했는데, 와우...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려주는 포토샵이랄지... 세션 내내 보고 싶었던 장면만 나와서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그럼 실제로 어떻게 비볐는지 이제 보여드리...


 또 이런 후기를 쓰다니 그치만 어쩔 수 없었어 (Feat. WWW)


 ...려고 했는데, 이번 세션은 저도 관찰자 시점(?)으로 쓰는 게 불가능했습니다ㅋㅋㅋ 너무 몰입해서ㅠㅋㅋㅋ 그래서 간만에 또 이런 짓을(?) 해보았어요. 제가 어떤 심상을 가지고 이 세션을 즐겼는지 표현해보았습니다. U_U)* 재미있게 봐주십쇼~!


▼ 스포일러 포함 후기

더보기

 

 PROLOGUE : NAME OF DUST
 CHAPTER 1. DAYS
 CHAPTER 2. BRIEFING
 CHAPTER 3. MISSION
 CHAPTER 4. OVER
 EPILOGUE : LEGACY

 

 PROLOGUE : NAME OF DUST

「황야에 사는 이들을 먼지라고 칭하자. 그 이름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니까.」


 BGM : The Lack of Vegetation ~ MS Gundam IBO (OST I)

 ㅡ또 아이가 태어났어.
 
 산모는 그 여자인가.
 안나 벨키룬 말이지? 새벽에 도망쳤던데.
 참, 작고 가는 여자였는데 용케도 숨겼네.

 먼지들은 조종석에 덩그러니 남겨진 아이를 보며 저마다 중얼거렸다.

 그래도 남자아이인 게 다행이야.

 남자아이는 성장하고 나면 전력이 된다.
 다만, 아이는 어미를 닮아 머리가 붉었고 소라바미는 붉은 것을 곧잘 발견했다.
 붉은 아이는 고달픈 삶을 예고하는 점괘였다. 

 역시 죽여야겠군.

 잡고, 걷고, 말하고, 웃기 시작하면 그땐 아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내일 아침에 처리하지.

 그리고 수년의 세월이 지났다.
 어느덧 아이는 잡고, 걷고, 말하고, 웃었다.
 애가 탄 먼지들은 서로 눈이 마주칠 때마다 물었다.
 도대체 언제 죽일 건데?

 내일 아침에 처리하지.

 
어영부영하는 틈에 아이는 어엿이 조종사가 되었다.
 그즈음부터는 아무도 아이를 언제 죽일 거냐고 묻지 않았다.
 
 보름달이 황야를 남김없이 밝히던 밤, 아이는 전용 장갑차를 받았다.
 유독 낡은 리벌처의 잔해를 기워 만든 장갑차였다.

 너도 이제 먼지다.

 그 이름을 받고 싶어 초승달 반달 뜬 밤을 가리지 않고 고군분투해왔다.
 아이는 좋아서 장갑차 위를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오늘부터 오토 벨키룬이라고 부르마.

 오토란 장갑차의 통칭이었다.
 사람의 이름으로 붙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오토 벨키룬!

 가슴이 벅차올랐다.

 



 CHAPTER 1. DAYS

「소라바미가 나는 하늘에는 종종 달이 뜨지 않았다. 그래서 황야의 아이들은 달의 정체가 소라바미라고 믿었다.」


 BGM : Get it Better ~ MS Gundam IBO (OST I)

 "아야!"
 
 딱딱하게 마른 호빵이 오토의 뒤통수로 날아왔다.

 "아침도 안 먹고 뭐 하는 게야?"
 "포트리스까지 얼마 안남아서 망 좀 보고 있었어요..."

 오토는 투덜대며 호빵을 집었다.
 원래 이 호빵은 맛이 없지만 물자가 동날 때면 돌처럼 딱딱해진다.
 포트리스에 들어가면 더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을 테니 버텨볼 심산이었건만.

 "레이니 케이지에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 먹어 둬."
 "나 참, 축제 기간엔 어지간하면 외부인도 다 들이는 거 저도 알고 있거든요?"

 레이니 케이지는 오아시스 위에 세워진 포트리스였다.
 그런 풍요로운 도시에서 곧 모셔올 '슈발리에'를 환영하는 축제를 연다는 것이다.
 행사의 규모는 안 봐도 뻔했다. 일손이 모자란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들어가더라도 우린 입국 수속 순서가 제일 나중이라 2~3일은 걸린다고."
 "아, 먹기 싫은 걸 어쩌라고요."

 결국 오토는 본심을 털어놓고는 빨래처럼 늘어졌다.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내새끼치고는 입이 짧았다.
 ㅡ 그러고 보면 안나 벨키룬도 입맛이 까다로웠지.

 "전 레이니 케이지에 도착해서 병아리 만주 먹을 거예요! 그게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그 동네 명물인데, 네가 사먹을 게 남아있을 거 같냐?"
 "그럼요. 절 위한 병아리 만주가 딱 남아있을걸요? 두고 보세요. 꼭 먹을 거니까."

 ㅡ 혹자는 그녀가 입맛이 까다로운 게 아니라 자존심이 강한 거라고 했다.
 그 하얀 피부는 황야의 섬광에 타는 일이 없었고 그 마른 팔뚝은 거센 노동에도 근육이 박히지 않았다. 
 몰락한 포트리스의 귀족이라는 소문은 아마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오토는 그녀와 똑 닮은 얼굴로 투덜거렸다.

 "주위나 좀 둘러보세요. 리벌쳐의 파편이 남아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오. 그래. 이번에 팔 수 있는 게 있다면 더 좋고."

 오토는 마른 호빵을 씹으며 장갑차를 움직였다. 
 하늘에 그려진 불규칙한 무늬를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어...?"
 "왜 그러냐, 오토?"
 "하늘이..."

 불규칙한 무늬 사이로 맑은 광원이 툭툭 쏟아져 나왔다.
 배워먹지 못한 오토로선 그 광경을 이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하늘이 터질 것 같은데요...?"

 



 BGM : Sign of Disater ~ MS Gundam IBO (OST I)


  ㅡ피앙세,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까? 라는 건 현재 파손 상태에 대해 보고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카나는 침착하게 고개를 들어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방심했습니다. 갑자기 리벌처를 낚아챌 줄은ㅡ'

 쾅! 소라바미가 리벌쳐를 한 차례 더 내려쳤다.
 카나는 다시 패널에 머리를 박았다.

 '카나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않다. 사실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카나는 다년간의 학습을 통해, 인간은 진실을 들으면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는 걸 알았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인근의 포트리스에게 지원 요청을 해보겠습니다!'

 레이니 케이지는 황야의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세워진 요새다.
 희귀한 자연 풍경이니, 생물 자원이니, 그래, 그런 것은 분명 엄청난 장점이지만
 달리 말하자면 주변에 도움을 청할 포트리스가 없다는 뜻이다.
 오아시스란 원래 그런 곳에 존재하니까.

 '부탁합니다.'
 '네!'

 병사는 카나의 대답에 안심한 듯 밝게 답했다.
 불안해하는 인간을 안심시키는 것도 그녀의 역할이었으니까.
 연결이 끊어진 뒤, 카나는 AI의 관점으로 다시 상황을 분석했다.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은 슈라이크의 내부.
 소라바미의 공습으로 슈라이크가 붙들린 상황.
 ㅡ그리고 슈발리에의 부재.
 답은 정해져 있었다.

 슈라이크를 포기한다.

 분명 슈라이크는 우수한 기체다.
 하지만 슈발리에가 없다면, 아무리 우수해도 이것은 고물이었다.
 카나는 결단했다.

 슈라이크에서 뛰어내린다.

 육체는 무사하지 못하겠지만, 임플란트는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소라바미가 사라진 뒤에 누군가 자신을 회수하러 오겠지.
 ㅡ운이 좋다면.

 "카나 멜로즈, 전장 이탈. 슈라이크의 전개를 허가합니다."

 탈출용 도어 ㅡ 본래 화물용 도어지만 ㅡ 가 열리고 지상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 위치에서 추락하면 임플란트를 보존할 수 있는 확률은 0.0000283%.
 카나는 암모나이트처럼 몸을 말았다.

 하지만 이 형태라면 확률은 0.00875%.

 카나는 지상으로 몸을 던졌다.

 


 

BGM : Aspiration ~ MS Gundam IBO (OST I)

 "소라바미다!"
 "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날카로운 괴성이 두터운 지아드 구름을 꿰뚫고 지상에 닿았다.
 장갑차 무리는 벼락에라도 맞은 것처럼 속도를 높였다.
 덩그러니 남겨진 오토는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잠깐! 다들 멈춰요!"

 이런 상황일수록 죽은 듯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 강령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참다못한 오토는 장갑차의 윗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다들 진정해요! 멈추라고요!"

 장갑차 위로 붉은 머리가 불쑥 나오자, 그제야 먼지들은 오토 쪽을 보기 시작했다.
 메마른 회색 황야에서 붉은 것은 호기심을 끌 수밖에 없는 색이었다.

 "속도를 낮추고 천천히 가요! 소라바미에게 들키지 않게..."

 그때 오토의 붉은 머리카락 위로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그림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하얗고 길었다.

 "엇..."

 방심한 오토는 그것과 함께 장갑차 안으로 굴러떨어졌다.
 둔탁한 소란과 함께 오랫동안 방치된 물건들이 흐트러지며 먼지가 일었다.

 오토는 조금 전 떨어진 그것을 보았다.
 희뿌연 먼지로 시야가 두툼한 상황에서도, 그것이 하얗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처... 천사?"

 카나는 답했다.

 "부정합니다. 카나 멜로즈는 전술지원개체 K-099의 기원전 모델입니다."

 천사는 공장제였다.




 CHAPTER 2. BRIEFING

「사람을 좋아하는 것에 논리는 필요 없습니다, 카나. 이건 제가 아는 한 가장 논리적인 말이랍니다.」


BGM : Survive the Battle ~ MS Gundam IBO (OST I)

 

 전술개체란 예상외의 일에 대응하기 위해 존재한다.
 언제나 현 상황에서 최적의 수를 찾아낼 뿐이다.

 "슈발리에 적성자가 이 중에 있습니까?"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건 슈발리에였다.
 마침 눈앞에 사람이 있으니, 그 여부를 먼저 확인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오토가 그런 알고리즘을 알 리가 없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모자라 다짜고짜 슈발리에를 찾다니...
 당혹스럽고 황당했다.

 "그렇군요. 확인 감사합니다."
 "모르겠다... 이, 일단 같이 도망치자!"

 오토가 콘솔을 빠르게 조작하자 장갑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나는 그 모습을 조금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착각이 아니라면, 콘솔의 형태가 리벌처와 같았다.
 슈발리에의 적성자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왜 거짓말을 했죠?"
 "응? 뭐가?"

 의문은 답을 맺지 못했다.
 소라바미가 내지른 비명으로 장갑차가 구르기 시작했다.

 "이런!"

 오토는 재빨리 카나를 붙잡았다.
 우직한 소리와 함께 장갑차의 문이 나가떨어지고, 둘은 밖으로 함께 튕겨나갔다.
 오토는 카나를 꽉 안은 채 데굴데굴 굴렀다.

 잠시 후, 모래 먼지 사이에서 오토는 간신히 눈을 떴다.
 카나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시야가 흐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목소리는 닿을까 싶어, 오토는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내었다.

 "괘... 괜찮... 아?"

 다행히 건조한 답이 돌아왔다.

 "부적절한 행동입니다."

 카나는 모래 먼지를 헤치고 오토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일으켜 세우려는 듯 힘을 주었다.

 "괜찮... 구나."

 허나 일어나려는 찰나, 쿵ㅡ 하고 다시 대지가 울렸다.
 소라바미의 건재한 괴성에 절망한 오토는 카나의 손을 놓았다.

 "어서... 도망... 쳐."

 카나 혼자서라면,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령 도망치지 못한다고 해도 부상을 입은 자신과 이곳에 남는 건 최악의 선택지.

 "제안합니다."

 그러나 전술개체의 판단은 달랐다.

 "본 기체 내장 파일럿 개발 프로그램 V2.0으로, 최소한의 적성을 지원합니다."

 기체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오토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자 그것이 이내 눈에 들어왔다. 소라바미의 공격을 받고 바닥에 처박힌 그것.

 "리벌처의 탑승을 요청합니다."



BGM : Period ~ MS Gundam IBO (OST II)

 리벌처의 조종석, 크레이들.

 조금 전까지는 결코 올 일이 없었던 바로 그곳에 오토는 앉아 있었다.
 낯설지 않은 콘솔의 형태만이 조금 힘이 될 뿐이었다. 

"이름을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카나는 침착하게 말했다.

 "슈라이크입니다."

 이름이랄 것과 친숙하지 않은 삶이니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어색했다.
 하지만 살기 위해 이름을 불러야 한다는 것이, 오토는 제법 어색했고 꽤 마음에 들었다. 

 "올 그린, 슈라이크."

 낯선 콘솔이 익숙한 빛을 뿜었다.
 그 익숙함 덕에 왠지 마음대로 리벌처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살면서 느껴본 중에 가장 기분 좋은 착각이었다.

 "슈라이크의 정상 기동을 확인했습니다. 싱크로율이 낮은 편이지만 움직이는 건 가능합니다."

 하지만 카나는 아직 안심할 수 없었다.
 다른 슈발리에들도 리벌처를 기동하는 것까진 할 수 있었으니까.
 무기를 들고 싸우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러나 오토는 무지했다.
 
 "해볼게."

 패배한 리벌처의 결말은 참혹하다.
 황야 이곳저곳에 널린 리벌처의 파편이 그것을 증명했다.

 "부탁합니다."

 물론 그래도 괜찮다. 여차하면 퍼지 레버를 사용하면 되니까.
 퍼지 레버의 상수를 넣으면 슈발리에의 안전은 높은 값으로 계산된다.
 
 그리고 아마, 자신은 퍼지 레버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확률은 99.1653%.
 
 계산은 옛적에 끝나 있었다.




 CHAPTER 3. MISSION

「피식자는 포식자를 두려워하면서도 숭앙한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BGM : Vulnerable Surface ~ MS Gundam IBO (OST I)

 "상공의 소라바미 확인. Type:Dragon. 체외에 노출된 크리스탈로 지아드 입자를 정제하여 발산하는 개체입니다."

 카나의 브리핑과 동시에 구름이 걷히고 소라바미의 모습이 드러났다.
 인류의 입자 전쟁으로 태어난 무고하나 유해한 생명체.
 그러나 그런 역사적 맥락은 지워진 지 오래다.

 "저걸 물리치면 되는 거지?"

 오토는 무심코 주먹을 들어 올렸다.
 사실 주먹으로도 누굴 패본 적은 없었지만 주먹 외엔 생각나는 무기가 없었다.
 카나는 자기도 모르게 다급히 외쳤다.

 "오토 님! 슈라이크의 웨폰을 사용하세요!"
 "웨, 웨폰?!"
 "초근접거리에서 사용가능한 블레이드와... 근거리에서 사용 가능한 라이플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카나는 블레이드와 라이플의 위치를 표시하는 화면을 띄웠다.
 창현퍼볼 레이싱 도그라는 명칭이 그 옆에서 함께 점멸했다.

"현재 거리에서는 블레이드형 창현을 권장합니다."

 오토는 창현의 실물을 확인했다.
 창현은 황야에서 본 적 없는 푸른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이 검이라는 걸 인식하는 것조차 시간이 걸렸다. 
 어떻게 잡고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 거지?

 "곧 소라바미가 접근합니다! 빠른 판단을!"

 고민한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오토는 무작정 소라바미를 향해 뛰어올랐다.
 그리고 되는대로 창현을 휘둘렀다.

 "ㅡㅡㅡ!"

 무자비한 궤적이 소라바미를 감싸던 실드를 가로질렀다.
 소라바미의 날카로운 살의가 오토를 향했다.
 오토는 그 살의에 전율했다. 

 저 거대한 존재가 먼지와 다를 바 없는 자신에게 적의를 품었다.
 지금 이 순간, 소라바미는 오로지 그를 죽이기 위해 태어난 재해였다. 

 오토는 본능적으로 왼쪽 다리에 설치된 라이플 ㅡ 퍼볼 레이싱 도그를 꺼내 들었다.
 칼은 몰라도 총이라면 이미 여러 번 다뤄봤다.
 이 거리에서 쏘면 명중할 수 있다.
 
 발포하기만 하면 저 경이를 제압할 수 있다. 

 그 확신에 심장이 터질 듯했다.
 오토는 망설임 없이 소라바미를 쏘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예상대로 오토의 탄환은 모두 명중했다.
 소라바미는 더욱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몸을 비틀었다.
 오토는 몸부림치는 소라바미를 보며 숨을 삼켰다.
 하지만 가장 놀란 건 카나였다.

 "전탄 명중..."

 이 거리에서는 모든 탄환이 들어가는 게 당연하다.
 퍼볼 레이싱 도그를 사용한 것 또한 평범한 판단이었다.
 감탄한 건 전술이 아니라, 

 '싸움을 피하지 않아.'

 자질이었다. 

 


 
 그러나 오토는 어디까지나 미숙한 슈발리에였다.
 싸움이 치열해지는 만큼 카나도 바빴다.

"소라바미의 메인 독트린 확인! 독트린 B 실행됩니다! 주의를!"

 소라바미의 꼬리는 지성을 갖춘 뱀의 머리처럼 정확하게 슈라이크를 후려쳤다.

 그 충격에 크레이들이 크게 흔들렸다.

 "윽?!"

 괜찮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니까.
 카나는 준비했다는 듯, 역중력 프로세스를 가동했다.
 바닥으로 쳐박힐 뻔했던 슈라이크의 기체가 강제로 떠올랐다.

 "미, 미안해! 남의 귀한 물건을 이렇게..."

 착각이다. 리벌처가 아무리 귀해도 슈발리에보다 귀할 순 없다.
 아무래도 슬슬 슈발리에의 위상에 대해 알려줄 때가 된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설령 실드가 파괴되어도 퍼지 레버를 사용하면 됩니다."
 "퍼지 레버...? 그게 뭔데?"

 퍼지 레버야말로 리벌처 안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장치다.
 리벌처가 더는 슈발리에를 보호하지 못할 때, 슈발리에만을 사출하는 훌륭한 기능이었다.

 "카나 너는 어떻게 되는 건데?"

 카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대체할 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순간, 오토의 미간이 날카롭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카나는 그 표정의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오토 님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그를 위한 사양으로 제조되었으니까요."

 잠시 크레이들에 정적이 흘렀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걸까?
 카나가 고민하고 있을 때, 오토는 말했다.

 "미안해, 난 민간인이라서 리벌처에 대해서는 잘 몰라."

 오토는 망설임 없이 퍼지 레버를 걷어찼다.
 퍼지 레버에 이어져 있던 생명줄이 너덜너덜하게 딸려 나왔다.
 카나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오토님, 무슨 짓을!"
 "실수야."  

 실수로 퍼지 레버를 걷어찰 리가 없지 않나!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오토는 소라바미와 싸우기를 포기했다.
 그는 이제 이기기로 했다.



 이기기 위한 싸움으로 바뀌면서 전황은 더욱 거칠어졌다.
 오토는 쉬지 않고 소라바미를 몰아붙였고, 소라바미는 건방진 리벌처를 찢으려 들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소라바미가 휘청였다.

 '이길 수 있어!'

 승리를 직감한 오토는 그대로 소라바미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소라바미의 빈틈은 도리어 슈라이크를 붙잡기 위한 것이었다.
 소라바미는 슈라이크를 물었다.

 "오토님! 출력을 높여서 빠져나와야...!"

 허나 먹이를 문 소라바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소라바미는 그대로 슈라이크를 지상에 처박았다.
 지상에 꽂힌 슈라이크를 중심으로 황야가 갈라졌다.

 "ㅡㅡㅡ!"

 소라바미는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다시 날아올랐다.
 그것이 마치 비웃는 것처럼 들려 오토는 이를 악물었다.
 처음 미션이 시작되었을 때처럼, 소라바미는 하늘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토 님. 제노사이드 독트린의 트리거가 충족됐습니다."

 이번에 소라바미를 막지 못하면, 지상은 소라바미에 의해 파괴될 것이다.
 아주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완결이었다. 오토는 배시시 웃었다.

 "슈라이크의 기동력으로는...... 독트린이 실행되기 전에 소라바미에게 닿을 수 없습니다."

 카나는 패배를 예감, 아니 확신했다.
 퍼지 레버조차 없으니 오토를 구할 수도 없었다.
 이보다 더할 수 없는 완벽한 패배였다.

 "아냐, 할 수 있어. 가능해! 날 믿어볼래, 카나?"

 그러나 오토는 아직도 패기에 넘쳤다.
 어차피 계산할 것이 남지 않았기에 카나는 웃었다.
 무엇을 곱해도 제로가 되는 상황이니,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었다.

 "나 말이야. 실은 레이니 케이지에서 축제를 한다기에 그곳에 가고 있었어."

 레이니 케이지.

 "거기서 곧 축제를 한다기에, 거기서 파는 병아리 만주를 먹으려고 가는 거야."

 리벌처를 이끌 슈발리에 하나 구하지 못해,

 "그러니까, 카나! 같이 살아서 그 만주를 먹으러 가자!"

 풍요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나의 도시.

 "날 믿어줘! 그러면 돼!"

 무능한 피앙세는 무지한 슈발리에를 보았다.
 그는 소라바미를 향해 송곳처럼 날아올랐다.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발악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거친 몸부림이었음에도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난 장갑차 조종사 오토 벨키룬이다!"

 그리고, 창현이 하늘을 갈랐다.
 거리상 허공을 갈라야 했던 그 궤적은 소라바미의 날개를 갈랐다.

 ㅡ 어떻게?

 날아오른 슈라이크의 황금빛 궤적이 먼지투성이의 황야와 하늘을 연결했다.
 하늘이 열리고, 그 빛에 힘을 다한 소라바미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 모든 결과는 오토를 '임시'로 상정했을 때의 값이라는 걸.
 만약 오토가 슈라이크의 '주인'이라면 결괏값은 완전히 달라진다.


 승리할 확률, 187.6529%
 처음부터 이길 싸움이었던 것이다.




 CHAPTER 4. OVER

「먼지란, 어디로든 날아가 꽃을 피우는 흙이지.」


BGM : Lady Kudelia ~ MS Gundam IBO (OST I)

 오토는 온몸이 둥실 떠오르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아직도 하늘을 날고 있는 걸까? 하지만 이렇게 포근한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오토님, 정신이 드셨나요?"

 그 목소리가 눈을 뜨자 생전 처음 보는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지러울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거대한 털 짐승에 안긴 것처럼 몸이...

 "안심하세요. 그저 침대에 누워계실 뿐이니까요."
 "침... 대?"

 당연히,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침대 같은 것을 접해본 적은 없었다.
 무슨 말을 들어도 어리둥절해하는 오토를 위해 카나는 하나하나 차분히 설명했다. 

 "여긴 포트리스. 레이니 케이지입니다."
 "엣? 그, 그럼 우리... 지금 포트리스에 들어와 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본래 먼지들은 포트리스에 들어가려면 아주 길고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런데 이미 모두 포트리스에 들어와 있다니, 오토로서는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레이니 케이지는 장갑차 무리의 입국을 허락했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카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건... 오토님이..."

 조심스러웠다.

 "외부의 위협에 대응해서 레이니 케이지의 슈발리에로서 방위력을 행사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오토는 카나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카나는 오토가 이해할 수 있도록, 더욱 정확하게 얘기했다.

 "레이니 케이지에는 현재 슈발리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오토님이 필요합니다."
 "...."

 오토의 미묘한 표정에 겁이 나는 것은 카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카나는 준비된 명령어를 출력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런 연유에서, 다시 한번 제안드리고자 합니다. 레이니 케이지를 지켜주신다면..."

 뻔뻔한 부탁인 걸 알지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관리자의 허가에 따라 새장 안에서의 부도, 명예도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 도시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
 
 카나는 단두대에 놓인 사람처럼 오토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오토는 이상한 것을 물었다.

 "카나는 별로 그걸 원하지 않는 거야?"
 "네?"
 "제안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닌 거 같아서..."

 카나는 침대 옆에 놓인 거울을 흘깃 보았다.
 놀랍게도, 자신은 주눅 든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곤란해. 이 일로 카나가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건 원치 않아."

 그것을 듣고 나서야 카나는 인지했다.
 그렇다. 자신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멋대로 그를 끌어들인 것도 모자라 레이니 케이지를 위해 싸워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ㅡ먼지라면,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을 들어서.

 "거절하시는 건가요?"

 거절해도 어쩔 수 없지만, 거절하지 않기를 바랐다.
 아마 오토가 거절한다면 이제 이 세상에 슈라이크에 탑승할 슈발리에는 없을 테니까.
 결국 죄책감을 아무리 느껴도 자신은 이기적인 알고리즘으로 돌아가는 AI일 뿐이었다.
 어쩌면 이 죄책감마저 프로그래밍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토는 답했다.

 "아니."

 슈발리에가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리벌처 조종은 미숙하고 익숙해지려면 앞으로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ㅡ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에게 이렇게 전해줘. 오토 벨키룬은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남겠다고 했다고 말이야."
 "네...?"
 "네가 부탁해서가 아니야. 내가 남기로 결심한 거야."
 "어째서죠?"

 오토 벨키룬은 웃었다.

 "그야, 병아리 만주를 먹고 싶으니까!"

 생각지 못한 얼토당토않은 이유였다.

 "그러니까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평생을 먼지 속에서 살아왔을 터인데도
 조금도 탁하지 못한, 맑은 눈으로 오토는 말했다.

 "내가 선택한 거니까!"
 
 ㅡ아, 슬슬 설명해줘야겠다.
 병아리 만주가 이곳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연인들이 미래를 약속할 때 먹는 만주라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카나는 속으로 조금 웃었고
 그건 알고리즘에 상정되지 않은 행동이었다.

 



 EPILOGUE : LEGACY


 아이를 두고 떠나기 전날 밤.
 안나 벨키룬은 곱게 잠든 아이를 안고 말했다.

 이름 모를 내 아들아 기억해주렴.

 너는 결국 그들이 지은 이름으로 살아가겠지만
 그게 너를 규정하지는 못할 거야.

 세상이 너를 뭐라고 부르든
 너는 안나 벨키룬의 아들이니까.

 
어머니의 유품인 보랏빛 머플러로 아이를 감싸고
 아버지의 유품인 검은 장갑 위에 아이의 머리를 받쳤다.
 텅 빈 안나는 황야로 떠났다.

 두고 간 것은 아이만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슈발리에 하고 싶어여

 

 소설 후기는 <What a Wonderful World> 이후로 오랜만이네요. 간접적으로나마 메카 소설에 대한 욕망을 해소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세션하면서 느꼈던 제 심상이 잘 전해졌길 바랄 뿐이에요><

 2000년대 이후로는 메카물 자체가 많이 시들해진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메카물만이 가능한 영역이 있습니다. 우롱님이 그런 영역에 대한 제 니즈를 파악하고 열심히 호흡을 맞춰주신 덕분에 이 이 황야의 바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어요ㅠㅠ 정말 감사합니다... 나름ㅋㅋㅋ큐ㅠㄴㅀㄹㅠ... 한줄 한줄 몰입해서 썼어요... 제 심상과 감상이 잘 전달되었길 바라요😭

 룰적으로나, 테마로나, 세션으로나 모든 각도로 다 만족했던 갓벽한 세션이었습니다... 정말 즐거웠습니다ㅠ_ㅠ 메카물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단비 같은 시간이 되시길 바라요. 

 

 메카물 먹고 성불한 덕후의 다잉 사인

 

 우롱님 : 후기가 너무 길어져서 도망가실까 봐 좀 무섭긴 한데^^ (결국 룰북 후기 따로 뺌) 이 정도로 도망갈 나마누루이한 우롱님이 아님을 압니다! (우롱님을 강하게 키우는 호엥이) 메카물 좋아한다고... 메카물로 TRPG 하고 싶다고 거진 4년을 목놓아 외쳤는데... 그동안 기회가 없었던 게 <광쇄의 리벌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만큼 너무너무너~무 즐거운 세션이었습니다ㅠ_ㅠ 후기에서도 얘기했지만 제가 몰입도가 은근 떨어지는 편인데(?) 정말 당사자성을 제대로 느끼면서 플레이할 수 있었어요. (우롱님 세션에서는 늘 이렇게 되는 거 같은데 이유는 아직 모르겠는ㅎㅁㅎ) 애써서 헤딩해주신 것에 보답이 되는 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ㅠ0ㅠ 감사합니다 ㅠㅠ 또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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