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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후기/마기카로기아

허무를 넘어서

by 에이밍 2018. 12. 18.

허무를 넘어서

: 마기카로기아


시나리오

아본님 (@eggpowder_abon)


마스터

아본님 (@eggpowder_abon)


플레이어

에이미 (@ehrtlr)

광어님 (@Thousandillutio)

뫄님 (@mwa_trpg)



 

 이 벽만 넘어가면 돼.

 이 벽만 넘어가면 자유로워질 거야.

 그리고 자유가 네게 삶을 줄 거야.


 ....

 그런데...

 그런데 너는 왜 이곳에서 꽃을 심고 있는거야.




 0. 시작


 허무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허무란 대체 무엇일까요? 단순히 없음(無)을 의미하는 건 아닐 거예요. 텅 비어있는(虛) 수식어가 붙었으니 그것은 '비어서 없어진' 무언가입니다. 즉, 허무란 무언가 있었다가 사라진 흔적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텅 비어버린 공간 자체보다는 그 안에 원래 있었던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몰라도 부재를 실감하게 할 만큼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던 건 분명하니까요.


 세상 모든 일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깁니다. 사라지고 없어지는 건 너무나도 흔하고 당연한 현상인 거예요. 그중 대부분은 아무 이름도 가지지 못한 채 스러져갑니다. 그런 점에서 허무란 부재가 아닌 존재가 남긴 흔적에 가까워요. 사라지지 않으려 애써 긁어낸 무언가가 남긴 상처 자국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국 흔적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허무는 강력한 기록의 기재에요. 이 이야기 역시 그런 생의 몸부림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허무를 넘어서, 허상서가 2권에 실릴 아본님의 또 다른 시나리오입니다. 운명을 재봉하는 선택에 이은 두 번째 시나리오에요. 운명을 재봉하는 선택도 정말 좋았지만, 이번 허무를 넘어서는 그간 아본님이 보여주신 마법사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긴 시나리오였어요. 자세한 건 차차 써나가겠지만 서사적으로나 기믹적으로나 모자라는 귀퉁이 없이 꽉 들어찬 트뤼플 같은 아름다운 시나리오입니다. 꽤 농도가 높은 다크 초콜릿 소스가 덮여있긴 하지만 늘 그렇듯 열심히 떠내다 보면 순백의 케이크 시트와 붉은 체리 시럽이 녹아있어요. 시나리오집이 나오면 꼭 경험해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후기를 씁니다.


 언제나 그렇듯 세션 내내 느낀 제 감동과 감사가 고스란히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1. PC소개


  언제나 갓플레이어분들과 함께 하는 에이미입니다. 오늘도 세션에 잘 어울리는 세 명의 플레이어와 마법사를 모셨습니다. 덕분에 안 그래도 멋진 세션이 더 반짝반짝하게 빛날 수 있었어요. 덧붙여 이번 세션에서는 PC마다 개별 핸드아웃(비밀 포함)이 있었기 때문에 관련된 내용도 이쪽에서 소개해보겠습니다. 그럼 우리 멋진 마법사들을 보여드립죠!

 PC1 : 당신은 이 분과회의 분과회장이다. 당신의 카리스마는 미지의 영역이 되어버린 구도서관 속에서 분과회를 이끌 것이다.

 저는 카와타니 료코(크레이지 할리 홀리 퀸, 서공)를 데리고 구도서관에 입성했습니다. 길거리에서 파이터로 활약하고 있는 쿨한 양키 아가씨로 진짜 모습을 드러내면 Super Magic QUEEN이 되어 채찍을 휘두른다는 상큼한 설정(음? 무슨 생각하시는지^^)의 마법사입니다. 양키 캐릭터하고 싶어서 가볍게 만든 캐릭터였는데 다니는 세션이 어째 죄다 진지하거나 인마 주입 시나리오라서 본의 아니게 제가 데리고 있는 4계제 중에서 제일 무게감 있는 캐릭터가 되었네요. 덕분에 알피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ㅠ0ㅠ 아무튼 영광스럽게도^^;; PC1으로 당첨되서 분과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런 중요한 시나리오에서 분과회장이라니… 아니… 안돼… 망할 수 없다ㅠㅠ 정말 머리를 있는대로 굴려서 피의 리스펙을 하긴 했는데 결과는 후^^; 자세한 건 뒤에서 얘기하죠… 흑흑… 그래도 료코로 가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PC2 : 당신은 이 분과회의 분과회원이다. 당신은 이곳에 뭔가를 찾으러 이 조사에 참가했다. 구도서관에 들어갈 기회는 흔치 않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PC2는 뫄님의 후시미 유에(끝없이 이어지는 붉은 경계의 길, 서공/천애)가 맡아서 활약해주셨습니다! 멋진 마법명 못지 않은 근엄한 자태를 갖춘 동시에, 옛스러운 말투가 몹시 사랑스러운 센본도오리형 아가씨입니다. 무한의 성진 착즙으로 든든한 마소 공급을 담당해주신 은혜로운 천애의 마법사이시기도 합니다. (*천*애*천*하*) 유에가 있어 구도서관 방랑이 무척 든든했네요ㅎㅎ 품고 있는 비밀 때문에 이래저래 진행하면서 저희와는 또 다른 의미로 복잡한 심정이었을 것 같은 포지션인데 역시 뫄님의 캐릭터답게 진지하게 접근하고 몰입해주셔서 개인적으로 비밀이 공개되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캐릭터였어요. 설마 그런 비밀일 줄은…ㅠㅠ 유에가 PC2의 포지션을 맡아줘서 다행이었습니다ㅠㅠ

 PC3 : 당신은 이 분과회의 분과회원이다. 당신은 자기도 모르게 이 조사에 참가했다. 당신이 품고 있는 고민에 대한 해답이 이 서가에 있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고 있었다.

 저희 세션에서는 실질적인 주인공(?)이 되어버린 PC3은 광어님의 앨리스(아방궁, 외전)이 맡아주셨습니다. 도자기 인형처럼 생긴 아름다운 아방궁의 마법사로 그 내부는 공허로 가득차 있는 카오스 돌입니다. 시크하고 타협없는 성격이 매력적인 PC인데 주사위까지 날뛰어서 약간 무서운; 수준에 이른(..) 강력한 마법사예요… 라고는 해도 이번엔 배경이 구도서관인데다 이런저런 기믹이 있다 보니 외전은 난이도 : LUNATIC이라는 마스터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앨리스를 들고 와주셨는데요…! 세션 끝나고 보니 아니 이건ㅠ 앨리스를 데려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 PC 핸드아웃과 비밀이 가장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이야기의 실질적인 다른 한 축을 맡아서 진행해준ㅠㅠ 너무나 멋진 플레이&PC였습니다. 앨리스가 와서 너무 좋았고 정말 서사도 최고였어요ㅠㅠㅠ

 이렇게 저마다 사명과 비밀을 갖추고 구도서관에 들어가게 된 마법사들… 아, 아니 그전에 구도서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부터 설명해야겠군요. 그래요. 그러니까, 이야기는 천애의 베아트리체 브노와로부터 호출이 있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베아트리체는 말합니다. 회오의 벽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요.


 2. 세션


 마기로기의 세계관에는 구도서관이라는 장소가 있습니다. 대파괴로 인해 부서지고 무너진 예전의 도서관으로 지금은 폐쇠된 채 허무에 잠식되어가고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허무가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구도서관과 현재 세계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 바로 '회오의 벽'이라는 마력의 장벽입니다. 과거의, 버려진, 사라져가는, 황폐한, 모든 종류의 쓸쓸한 형용사를 붙일 수 있는 이 빛바랜 장소에 어느 날 강력한 마력이 감지됩니다. 아마 금서일지도 모르는 그것은 회오의 벽을 부술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회오의 벽이 무너지면 이 세계 또한 허무에 잠식되겠죠. 대법전은 이 사태를 막기 위해 분과회 <끝없는 허무의 귀환자들>를 부릅니다. 저마다의 이유로 구도서관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세 명의 마법사들. 누군가는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 누군가는 소중한 무언가를 찾으러, 누군가는 자기 자신을 찾으러 허무로 가득한 구도서관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나리오의 무대는 이미 소멸해버린, 정확히 말하자면 소멸의 경계에서 조금씩 침식되어가고 있는 구도서관입니다. 사라질 일만 남은 구도서관에서 대체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그곳에서 우리가 발견한 건 생명의 증거였습니다. 금서가 숨어든 도서관. 그곳은 <생물학 서가>였어요. 각종 균류와 벌레를 비롯한 작은 생물들이 자신들만의 체계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 별세계 아닌 별세계. 그리고 가장 안쪽에 피어있는 또 다른 생명의 증거들… 허무 속에서 기어이 피어난 이 생명들은 타오르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꺼져가고 있는 것일까요? 지금으로선 미약하게 타오르는 불씨 하나만 보일 뿐입니다.


 자... 무려, 대마법사 아본님의 고계제 시나리오입니다. 그만큼 빡빡한 기믹과 난이도를 자랑하는 시나리오입니다. 5계제라고 해도 조금 긴장하고 와야할 정도의 난이도에요.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빡빡함을 이해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모든 기믹이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얽혀서 작동하고 있거든요. 크고 작은 기믹들이 자신만의 논리를 가지고 움직이면서 미궁에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괜히 구도서관을 배경으로 선택한 게 아니야! 하고 외치는 듯한 이 정교함... 마기로기의 세계관과 룰에 정통한 아본님이니까 만들 수 있는 완벽한 설계예요. 어느 기믹 하나 모자라거나 과하지 않습니다. 정확하면서도 확실해요.


 얼추 떠오르는 기믹만 해도 [찢어진 페이지, 구도서관의 벌레들, 위치 이동에 따른 트랩, PC마다 주어진 핸드아웃의 특수 능력]로 4가지나 되는데 이 모든 기믹들이 위화감 없이 서로 어울려버립니다. 외부와는 단절되어 내부의 논리만으로 돌아가는 스몰 월드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신 흔적이 여기저기에 묻어있어요. 덕분에 실제로 세션 내내 정말 미궁 속에 갇힌 듯 답답하고도 긴장된 감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구도서관, 살아서 숨쉬고 있다고요. 생명을 가지고 있어요.


 생명... 그래요. 생명은 마법사에게 떼놓을 수 없는 테마입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에 역으로 생명이 중요해요. 그들이 생명을 느끼는 방법은 간접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껏해야 우자의 세계에 존재하는 탄생과 죽음을 엿보는 수밖에 없죠. 마법사에게 생명이란 허무 그 자체.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이 생물학 서가가 마법사의 생명을 은유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어요. (실제로 의도하셨을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사는 죽는 것이 아니라 소멸하는 것이고, 소멸은 없었던 것으로 흩어지는 것이니까요. 허무에 잠식되어 사라져가는 생명들, 그것 자체가 마법사의 생명과 같다고 느껴져서 왠지 쓸쓸했네요. 그리고 생과 사의 경계는 이 시나리오에서 다루는 가장 중요한 테마이기도 합니다.


 또 이 시나리오의 특징 중 하나는 맵을 사용한다는 점이에요. 사실 전 맵 쓰는 시나리오를 매우 좋아하면서도 조금 지루하게 느끼는 편인데 맵을 제대로 사용하는 시나리오를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전투 중심인 룰에서야 위치나 대미지 범위 개념이 있으니 맵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편이지만, 조사나 탐색이 중심인 룰에서 맵이 액세서리 이상 이하로 쓰이는 경우를 거의 못봤거든요. 특히나 COC류의 시나리오를 하다보면 맵이 오히려 과제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이번엔 5군데나 가야하네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금방 지루해집니다. 차라리 맵없이 하나하나 탐험하는 방식이 좋아요. 목표 지점을 다 보여주는 게 늘 좋은 것만은 아닌지라... 어쨌든 액세서리로서만 기능해도 충분하긴 하지만 늘 아쉬운 기분이 들곤 합니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달라요. 조사나 탐색 중심의 룰에서 활용할 수 있는 맵의 기능성을 최대한으로 뽑아냈어요. 단순히 장소를 표기하는 것을 넘어서 PC의 위치나 이동 방향에 따라 위험에 마주치는 기믹이 설치되어 있거든요. 이것이 단지 PC의 행동을 방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도서관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믹인 것도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특별한 묘사 없이 PC의 이동에 따라 여러 위험에 맞닥뜨리는 것만으로도 '너희는 지금 구도서관에 있고 그곳은 위험한 곳이다'라는 정보가 피부에 와닿습니다. 몰입감이 올라가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묘하게 현실감마저 듭니다. 맵을 제대로 사용하면 이런 감각을 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유의미한 시간이었어요. 맵에 그려진 디테일을 구경하는 재미도 당연히 빼놓을 수 없고요ㅎㅎ

 

 덕분에 미궁을 헤매는 과정 자체가 일종의 어드벤처 게임으로 변모합니다.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도 그곳으로 가는 것이 결코 만만하거나 지루하지 않아요. 최종 목적지로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살아남는 거거든요. 동시에 PC들은 각자 해결해야 하는 미스테리가 있습니다. 생존을 추구하는 가운데 자신들이 알고 싶은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움직여야 해요. 하지만 답을 쉽게 얻을 순 없죠. 난관이 필요합니다. 까놓고 말해서 어렵지 않으면 안 되요. 이곳은 그런 장소이고 그래야만 PC들의 동기가 자신의 것으로 소화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허무를 뒤적이며 알게 되는 흔적들... 이야기는 양파처럼 한꺼풀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처음부터 서사의 목적을 확실하게 주는 시나리오들과 달리 이 시나리오는 중요한 서사를 저 미궁 안쪽에 숨겨놨어요. PC들은 스스로 움직여 그것들을 한꺼풀씩 까고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문제의 답을 맞춰야 해요. 수수께끼는 힌트를 얼마나 간접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주느냐가 핵심이죠. 자연스럽게 PC가 의문을 갖게 하고 그 답을 찾아가게 만드는 수수께끼가 가장 좋은 것이고 이 시나리오는 그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요. 많은 것을 하지 않아도, 그저 구도서관을 돌아다니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이 허무 안에 숨겨져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엿볼 수 있게 만들어요. 서사마저도 허무에 침식되어 있는, 그곳으로 발을 디뎌야만 진상을 엿볼 수 있게 만드는 이 서사적 구성... 아, 정말 좋았네요.

 PC 핸드아웃의 구성도 두말할 것 없이 좋았습니다. 달이여, 물에 잠기어라 때도 그랬지만 모든 PC가 서사에 구체적으로 관여되어 있고,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확실하게 들고 있어서 사실 누가 주인공이 되어도 자연스럽게끔 정보값이 배분되어 있었어요. 이게 정말 쉬운 작업이 아닌데 이번에도 절묘한 각도로 딱 3등분 해서 잘라 두셨더라고요. 각각의 핸드아웃에 부여된 특수 능력마저 그냥 들어간 게 아니라 PC의 서사와 어울리게끔 배치된... PC 핸드아웃의 모범 사례입니다. 이렇게 만들기 정말 쉽지 않아요ㅠ


 이 완벽한 배분은, 단지 PC 각각이 이야기에 몰입하게끔 만드는 걸 넘어서 하나의 이야기를 세 사람의 시점으로 보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게 합니다. 각자의 비밀이 밝혀질 때마다 지금까지 봐왔던 이야기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도 볼 수 있게 만드는 그 입체적인 포커싱이 정말 좋았어요.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자신의 무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구성입니다. 저 사람의 문제가 내 문제보다 심각해보이지 않으면 아무래도 인간을 관심을 덜 갖게 마련이거든요. 하지만 저 사람의 이야기도 나 못지 않게 심각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공감하게 되는 것이 놀라웠어요. 막상 모든 이야기가 막을 내린 뒤에는, 저는 저 자신의 이야기보다 유에나 앨리스의 이야기에 더 깊은 여운을 느끼고 있었거든요. 내 PC가 아닌 다른 PC의 이야기에 감화되는 경험은 아무리 TRPG라고 해도 쉽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최근엔 더더욱 PC1에게 집중된 시나리오를 많이 즐겼다 보니 이런 감각이 또 새롭고 감동적으로 느껴졌던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감동은 TRPG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무엇이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이 시나리오는 기존의 마기로기와는 전혀 다른 에너미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자세히 얘기하면 스포니까 더 말하지 않겠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기존의 마기로기 시나리오에 익숙한 빠요엔 분들이라면 전혀 색다른 감각의 마기로기를 즐길 수 있다는 거예요. 이건 에너미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구성이나 전개 과정도 모두 포함한 이야기입니다. 네, 이 시나리오는 조금달라요. 평범한 마기로기 시나리오가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네요. 이러다 의도치 않게 스포까지 쓸라(..) 슬슬 스포일러를 포함한 후기로 들어가보겠습니다. 할말이 정말 많지만 전부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허무에 사로잡히기 전에 모든 흔적들을 꺼내서 담아보겠습니다. (두주먹)




 

 예전에 인간 없는 세상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인류가 사라지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에 대한 자연과학적 상상도를 그린 책입니다. 결론은 인간이 사라지면 자연은 오랜 시간에 걸쳐 원래의 모습을 복구한다는 거였어요. 이 수많은 콘크리트와 전선과 핵발전소를 뚫고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거예요. 어떤 훼방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 다시 생명을 이어가는 것, 살아가는 것... 그땐 그 책을 읽으며 느낀 감동을 설명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생명은 인간이 만든 얄팍한 허무에 절대 패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요. [루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꽃을 심으려고 했던 것처럼요.]



 3. 정리


 후기를 쓰면 쓸 수록 할말이 사라지는 후기는 처음이에요. 말문이 막힌다고 표현하는 쪽이 더 정확하겠네요. 들춰볼 수록 더 확실하게 느껴지는 완성도에 후기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퍼즐처럼 짜맞춰진 수많은 기믹과 프랙탈 형태로 드러난 일관성있는 테마, 사람에 따라 더 깊이있는 고찰로도 나아갈 수 있는 메타포적 구성까지... 어려운 말만 잔뜩 쓴 것 같은데 한마디로 말해서 정말 아름다운 시나리오입니다. 서사적으로도 아름답지만 미적으로도 훌륭해요. 세션이 끝난 뒤에 오히려 더 많은 걸 생각하게 되고 그만큼 더 감동하게 됩니다. 이번 허상서가 2권에 실리는 시나리오는 모두 훌륭한 시나리오뿐이지만 기존의 아본님 시나리오 (이방의 기사, 파란색 연구, 너에게 고한다)를 재미있게 해보신 분들이라면 반드시 해보시길 바라요.


 이방의 기사에서 보여준 사랑, 파란색 연구에서 보여준 가혹함, 너에게 고한다에서 보여준 선택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그야말로 아본님의 정수가 담긴 시나리오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마기로기와는 전혀 다른 플레이를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왠만한 시나리오는 할만큼 했다! 고 자부하시는 마법사분들께도 추천드려요. 이 시나리오는 그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느낄 수 없는 독자적인 맛의 플레이를 즐기실 수 있거든요. 아본님 시나리오의 팬이고 고계제 플레이어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무조건 하세요ㅎㅎ


 플레이하기 전부터 좋은 시나리오가 될 거란 건 예상했지만 그 이상으로 멋진 세션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부족한 후기로나마 감사의 마음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후기를 쓰는 시간조차 제게도 의미가 있는 멋진 세션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4. 러브레터


 아본님 : 런던에 이어 마스터링까지ㅠㅠ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후기 최대한 빨리 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하아, 역시나 아본님의 구다구다는 믿지 말아야 한다는^^ 그 예언이 이번에도 맞아떨어져서 매우 기뻤습니다. (흡족) PC 비밀은 물론이거니와 맵까지 준비하시기에 대체 뭐지 뭔데; 했는데 정말 그렇게 준비하신 이유를 뒤늦게 알 수밖에 없었던... 아, 정말...ㅠㅠ 어떻게 이렇게 쓰시나요. 후기 쓰면서 더 감탄하고 있습니다ㅠㅠㅠ 휴... 후기에 다 쓸 수 있어야 할텐데 괜히 조바심나네요. 최대한 열심히 써서 드리려고 하니 꼭 감사의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아마 이 세션이 올해 아본님 GM으로 받는 마지막 마기로기가 아닐까 싶어요. 올 한해 정말 너무 많은 세션으로 신세를 졌고 (후기도 엄청 밀렸고ㅠㅠ) 매번 마법사로도, 플레이어로도 최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늘 감사할 따름이에요.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것이 뭐가 더 있겠어요ㅎㅎ 제가 드릴 것은 후기 뿐... 다른 세션들도 꼬박꼬박 써서 꼭 안겨드리겠습니다. 부족한 후기지만 늘 기쁘게 받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ㅠ_ㅠ 이번에도 세션 준비하신 노고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내년도 잘 부탁드려요ㅎㅎ 감사해요... 감사해요!


 뫄님 : 유에쟝으로 함께 해주신 뫄님, 정말 감사합니다! 나중에 몸 안 좋으셨다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그 후로 컨디션 관리는 좀 하셨을지 모르겠네요ㅠㅠ 덕분에 저는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고... 뫄님과 함께 하는 마기로기 노잼일 수가 없지만요ㅎㅎ 멋진 아본님 신작을 뫄님의 유에쟝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즐겁고 좋았습니다! 유에는 개인적으로 연살가에서도 무척 인상적인 플레이어여서 함께 하면 어떨까 궁금했는데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멋지고 귀여운 큐티 각꼬이한(?) PC였고요ㅎㅎ 이 세션에서 함께 서사를 만들었으니 다음에 또 다른 세션에서 만나면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아서 무척 기대됩니다 헤헷>< 제가 사실 고정 분과회가 없는데요(?? 료코랑 함께 잇쇼니 해주시는 건ㅎ(질척펄척) 휴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유에쟝과 함께 하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ㅎㅎ


 광어님 : 앨리스로 함께 해주신 광어님, 감사합니다! 앨리스 정말ㅠㅠㅠ 서사적으로도 그렇고 연출적으로도 너무나 저격인...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멋진 장면들 많이 만들어줘서 함께 감동할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ㅠㅠ 마지막 전투에서도 고생하고 내내 외전이라서 이래저래 힘든 전개가 많았는데 그래도 광어님 캐라서 이 정도로 오래 살아남은 거다(??) 솔직히 제 외전 애들 데려왔으면 초장에 빠르게 리타이어했을 것 같고요ㅋㅋ...ㅋㅋㅋ... 그래도 역시 같은 편일 때 광어님 주사위는 완전 든든한 것 같습니다! 아니 거기서 어떻게 바로 22를 뽑앜ㅋㅋㅋㅋ 이 조다페 진짜 내년에도 주사위 운이 그렇게 잘 따라주는지 봅시다^^ 마스터할 땐 좀 망하시고 플레이어할 때는 잘 부탁드려요! (?? ㅎㅎ 런던 마스터링 직후에 플레이어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세션에서도 잘 부탁드려요+_+ 앨리스와 함께라면 언제든 불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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