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플레이 후기/크툴루의 부름

설산밀실

by 에이밍 2018. 1. 1.

설산밀실

: 크툴루의 부름

 

마스터

에고님 (@dldl139)


플레이어

에이미 (@ehrtlr)

루루팡님 (@wishpotion)

Hyu님 (@Hyu0909)

코비님 (@trpg_cob)


 신작은 눈이 내리는 산을 배경으로 한 추리 소설이다.


 겨울, 산장, 밀실, 살인. 뻔한 소재인 건 알지만 뻔할 수록 잘 먹힌다. 내용이 뻔하지 않으면 되지 뭐. 그렇게 생각하고 스키장에 있는 호텔에 틀어 박힌 지 벌써 3개월 째...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초고는 이미 마무리했어야 하는데.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아아, 남자다. 남자가 없어서 글이 안 나오는 거다. 연애는 하루종일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서 곤란하지만, 약간의 자극은 생활에 활력을 주거든. 괜찮은 남자가 있으면 잠깐 데리고 놀아야 겠어. 이제 연말이라 사람들도 많이 몰릴 거고 말이야.


 ...음? 아, 젠장. 또 그 여자 전화지? 하루에 20통씩 찌라시를 보내는 것도 모자라 이제 아침 저녁으로 전화까지... 이쯤 되면 지랄도 정성이지. 그놈의 초보자용 임간 코스인지 뭔지 한 번 듣고 말지, 진짜.


 아, 남자... 다 필요 없고 남자가 필요해.


 에고님의 자비로 2017년 연말을 크툴루 세션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생전 처음 해보는 OR!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시작했는데... 그냥 한마디로 말하자면 제가 6개월만에 후기를 쓰고 있습니다 ^_TTT 써야 할 후기가 이빠이 있는데도 이것부터 쓰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 이걸 시작으로 착착 써나갈게요.


 후우, 자. 차분히 시작해 봅시다.


 우선 첫 OR이라 걱정이 많았습니다ㅠㅠ 늘 TR만 하다가 텍스트로만 해야 하는 것도 은근 부담스럽고, 롤20 사용법도 전혀 몰랐거든요. 하지만 준비된 OR 선생님 루루팡님이 잘 인도해주셔서 롤20 정착은 무사히 치렀고 캐메도 아주 간편하게 잘 치렀습니다. 그리고 텍스트 플레이도 전혀 어렵지 않았고요! (오히려 알피는 TR로 할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했닼ㅋㅋㅋ / 생각해보면 저는 실물보다 텍스트 친화적인 인간이고 ㅠㅅㅠ)


 오히려 기존 비주얼 노블 게임할 때 느끼는 그런 기분 좋은 피로감이 느껴져서, TR과는 또 전혀 다른 맛이 있었고 집순이인 저는 너무 너무 좋은 세계를 다시 알아버렸고(?!)ㅋㅋㅋ 실제로 세션 끝나니 비주얼 노블 한 편 하루에 올클리어할 때 그 느낌이 들더라고요. 시간을 오래 투자하는 만큼 시나리오나 NPC와 친해져서 몰입도가 더더욱 올라가는 그 느낌...! 제가 진짜 사랑하는 감정이고, 그래서 플레이 타임이 긴 비주얼 노블을 매우 사랑합니다ㅠㅠㅠ 근데 그걸 OR에서 느꼈네 크흡 ㅠㅠㅠㅠ 이 자체만으로도 감동이었고요..


 그렇게 12시간이 넘는 대규모 세션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와, 정말... 엄청난 시나리오였습니다. 여러가지 의미로!ㅋㅋㅋ 이렇게 감정 이입하면서 플레이해 본 게 대체 얼마 만인가 싶을 정도였고, 이렇게 고민하면서, 이렇게 간절하게 해피엔딩을 원하면서 플레이한 시나리오도 없었던 것 같아요ㅠㅠㅠㅠ


 감히 말하건데... 제 TRPG 인생 세 손가락에 꼽을 세션이었던 것 같습니다 ㅠㅁㅠㅠ


 스토리는 간단하고 아주 고전적입니다. 스키장에서 만난 플레이어들이 초보자를 위한 임간 코스에 참여하면서 벌어지게 되는 일종의 추리극... 인데, 그냥 추리극이 아니라 정말 무서운 장치 몇 개가 시나리오의 핵심 매커니즘으로 작동하는 대작 볼륨의 시나리오예요. 이 장치 때문에 마스터링 난이도가 급상승하는데, 난이도가 높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시나리오는 정말... 제가 살면서 본 TRPG 시나리오 중에 마스터링 난이도가 가장 높습니다ㅋㅋㅋㅋ 중간부터 '아, 이건 마스터링 절대 무리야ㅎㅎ' 같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요.


 마스터가 두 명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 할말 다 한 게 아닌가 싶은데@_@;; 어쨌든 세션 끝나고 가장 궁금했던 건, '아니! 이거 TR로 돌리신 분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였고 ㅠㅠㅠㅠ 진짜 궁금합니다. 이거 TR로 돌려보신 분들 제게 디엠 좀 ㅠㅠㅠㅠㅠ 저도 중간까지 TR로 소화할 방법만 연구하면서 플레이하고 있었는데, 후반의 어느 시점에서 완전히 놔버렸거든요. TR로 소화할 순 있겠지만, OR로 하는 게 가장 퍼펙트! 한 느낌이라 궁금합니다. 진짜 매우 매우...


 ...라고 말할 만큼, 이 시나리오는 OR에 최적화... 아니 OR로 해야만 하는 시나리오입니다. 그래야 진가를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TR버전을 안해봤지만...!) 등장하는 NPC도 많고, 마스터와 1:1로 대화해야 하는 부분도 굉장히 많습니다. 여기까지였으면 어떻게 핸드아웃이나 챗으로 해결해보려고 했는데 거기에 +a, a, a 되면서...ㅋ 포기. (팀원들 미안해요 홍홍 ㅠㅁㅠ)


 굳이 TR로 만든다면, 크툴루보다 인세인이 어울리겠다 싶기도 했는데... 소화가 가능한 정도일 뿐이지 OR로 느낀 이 재미는 없었을 것 같고... 아무튼, 저는 하신다면 무조건 OR 추천입니다. OR만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뽑아먹을 수 있는 시나리오예요. 훌륭합니다. 짝짝.


 하지만 사실 시나리오에 모든 공을 돌리긴 뭐한게, 이 시나리오는 정말 마스터가 노련하지 않으면 말아먹기 쉬운 어려운 시나리오거든요. 그리고 어찌 보면 매우 실험적인 부분도 있어서, 그 부분에선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주지 않으면 / 또는 노력했다고 해도 그 방향이 엉성하게 풀리면 한 순간에 확 노잼이 될 수도 있는 로또성이 있는 시나리오라, 시나리오 자체의 완성도만 따지면 조금 경악스러운 부분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 간의 시나리오 체감도가 많이 다를 시나리오라, 모두에게 평균 이상의 재미를 주려면 약간 운이 따라줘야 하지 않나 싶고요.


 즉, 마스터가 엄청 열심히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체크하고 분배하지 않으면 소외되는 플레이어가 발생하거나, 초중반부가 매우 지루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시나리오입니다.ㅠ 물론 중반부를 넘어가면 어떤 장치에 의해 모든 포텐을 폭발시키며 세션 자체가 미쳐 날뛰기는 하는데... 이게 모든 분들께 다 들어 맞을지는 조금 의문이긴 합니다. 한마디로 어려워요ㅠㅠㅠ 마스터링도 어렵고 플레이도 어렵습니다ㅠㅠ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나리오는, 아니 오늘 세션은 훌륭했습니다.


 일단 에고님이 시나리오를 장악한 상태에서 시스템에 맞게 잘 진행해주셨고, 플레이어분들도 저마다 역할에 맞게 적극적으로 잘 응해주셨어요. 게다가 저는 의도치 않게 약간 주인공 루트(..?)를 밟아버렸는데, 으윽... 이 루트가 너무 취향에 잘 맞고 전개도 원하던 대로 되서 ㅠㅠㅠㅠㅠ 더더욱... 아마 오늘 플레이어분들 중에 제가 제일 몰입이 심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ㅠㅠㅠㅠㅠㅠ 아 진짜 ㅠㅠㅠㅠ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미친 세션이었습니다ㅠㅠㅠㅠㅠ


 추리물이라는 장르에도 아주 잘 부합하는, 혹자는 김전일 극장판 같은 TRPG라고 하시던데, 정말 김전일 극장판을 TRPG의 문법으로 읽어내면 이렇게 되지 않을가 싶었고요ㅎㅎ 단순한 옮김이 아니라, 정말 TRPG화 시켜 버린 느낌이라 제작자의 내공이 엄청나다는 걸 느끼면서 플레이했습니다.


 진짜 재미있는데, 진짜 명작인데, 플레이 타임 100시간 넘어가는 비주얼 노블 같은 느낌(?) 그런 대작 특유의 테이스트가 찐하게 묻어 있고, 대작 고유의 단점마저 그대로 녹아 있는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대작인 시나리오입니다ㅎㅎ TR로는 쉽게 즐길 수 없는 밀도감이 있어서 너무 좋았고, 그 밀도에 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묵직한 임팩트를 받는 사람도 있을 법한 찐-한 시나리오였습니다ㅎㅎ


 스포 없는 후기를 위해 내용은 자제합니다만... 진짜 너무 간절하게 해피 엔딩을 원하면서 플레이했을 정도로 엄청나게 이입하면서 플레이했고, 그 결과가 이루어져서 너무 기쁘고 뿌듯했습니다ㅠㅠㅠ 설산밀실을 해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이런 캐릭터로 이런 플레이를, 이런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게 가장 기쁘고 영광이었어요.


 저는 일단... 에고님 마스터링 스타일이 너무 좋습니다.


 뭔가, NPC가 항상 살아 숨쉬는 느낌이고 플레이어와 적극적으로 교감을 해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이 교감이라는 게 단순히 대화를 나누거나 친해지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저 캐릭터는 저 캐릭터의 세계관을 가진 상태에서 나와 교감을 하는 느낌이라 너무 좋은데... ㅏ 하면 ㅓ 하고 답해주는 느낌이랄까...! 진짜 친해지는 느낌이에요ㅠㅠㅠ 플레이하고 끝! 이 아니라, 그래서 그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그 후에 잘 지내고 있을까? 이런 느낌이 드는 알피나 마스터링을 해주셔서 넘 좋아요... 여운이 장난이 아닙니다ㅠㅠㅠ 진짜 사랑해요 에고님 ㅠㅠㅠㅠ (와락) 오늘 NPC 알피는 정말 제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셨습니다 ㅠㅠㅠㅠㅠ


 그리고 OR 입문도 도와주신데다, 꼼꼼한 추리로 늘 허투루 나가는 법이 없는 루루팡님ㅠㅠㅠ 오늘도 믿고 가는 플레이였고, 진짜... 마지막에 참 진짜...ㅋㅋㅋㅋㅋ 루루팡님의 새로운 모습을 보면서 즐거웠고(???) 실제로 추리력이 많이 필요한 세션이라 자칫하면 방향도 못잡고 어긋날 가능성이 있었는데 루루팡님이 정돈된 추리를 보여주셔서 초반에 저도 좀 감을 잡고 플레이할 수 있었고, 늘 생각하지만 넘나 든든하고 멋진 플레이어이십니다..! 오늘도 같이 해주셔서 기뻤어요 ㅠㅠㅠ


 오늘 처음 함께 한 Hyu님..! 팀 폴라리스의 명성은 익히 들었고 정말 캐릭터의 모든 생각이나 대사가 로지컬(!)하고 개연성이 있어서 한참 멍때리다가 Hyu님이 한마디 하시면 "앗, 그랬지!" 하면서 저도 원래대로 돌아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초반에 그런 것들이 있어서 후반에 좀 템포가 늘어지지 않으셨을까 싶었는데ㅠㅠ 그래도 마지막까지 충실한 자기 어필(?) 놓치지 않고 해주셔서 넘 좋았고, 바쁘신 와중에도 집중해주셔서 덕분에 마지막까지 잘 끝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드림 소설 드립은 잊지 않을게욬ㅋㅋㅋ 언젠가 TR로도 뵙고 싶습니다/ㅅ/


 마찬가지로 처음 함께 한 코비님! 우왕 코비님 너무 알피 잘하시곸ㅋㅋㅋ OR 하시던 분 답게 흐름 타시는 거나, 필요한 타이밍에 필요한 말씀 해주시는 거 솔직히 프로 같아서 너모 멋있었습니다. -//- (잊지 마세요! 전 초반까지 코비님과 썸을 탔다는 것을!!ㅋㅋㅋㅋ) 리액션도 적극해주시고, 탐라에서도 늘 먼저 따뜻하게 말씀 주시거나 포근한 트윗 자주 해주셔서 꼭! 꼭! 같이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OR로나마 뵙게 되서 너무 영광이었고, 윤복이도 잊지 못할 거예요ㅠㅠㅠ 노란 브릿지의 청년...! 행복하시게! 또 다른 룰이나 TR로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간만에 쓰는 후기인데, 스포 없이 쓰려니 너무... 너무 감질 맛이 납니다! 사실 이건 후기보다 리플레이를 만들어야 하는 세션이기도 하고ㅋㅋㅋ 리플레이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_T 아무튼, 2017년 마지막과 2018년의 처음을 잇는 세션으로서 설산민실을 할 수 있어서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만족했습니다!


 다시 한 번 긴 시간 동안 마스터링 해주신 에고님 감사드리고 ㅠㅠㅠㅠ 함께 해주신 루루팡님, Hyu님, 코비님도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 안 되겠다. 스포 포함한 후기 쓴다 써. 내가 여운이 안 가셔서 죽겠다 ㅠㅠㅠㅠ 이하 스포 포함 후기입니다.



'플레이 후기 > 크툴루의 부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간에 관하여  (0) 2018.03.17
질긴 결속  (0) 2018.01.08
코빗 하우스  (0) 2017.03.26
Missing  (0) 2017.02.14
무당벌레야, 무당벌레야, 집으로 날아오렴  (0) 2017.02.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