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플레이 후기/가든 오더

Heaven's Bullet : 제4절 천사는 종말의 방아쇠를 당긴다

by 에이밍 2021. 3. 21.

날짜 2020. 01. 30. 土
GM 아본 (@eggpowder_abon) -
PC1 우롱 (@oolong_trpg) 블룸 익시더
PC2 류비엠 (@RBM_TRi7) Viva La Vida
PC3 나코 (@trpg_bbi) LOST
PC4 에이미 (@ehrtlr) 애쉬즈 이브


 먼 옛날, 지상을 흠모한 천사가 있었습니다. 천사는 매일 지상을 내려다보며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신은 어쩔 수 없이 천사를 지상으로 내려보내 주었습니다. 천사는 행복했습니다. 천사는 하얀 발로 가시 돋친 땅을 밟았습니다.

 그토록 흠모하던 지상을 거니는 동안 천사의 발은 새까맣게 변했습니다. 하얀 드레스는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어졌습니다. 반짝이던 뺨은 핼쑥한 구덩이가 되고, 두 손은 바싹 말라 그물처럼 굳었습니다.

 신은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아이야, 지상은 네가 생각하던 것이었느냐. 천사는 답했습니다. 아니오, 여긴 제가 생각하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신은 말했습니다. 그리될 줄 알았노라. 내 손을 잡고 이곳으로 오거라.

 천사는 신의 손을 잡았습니다. 신은 그 몸에 새살을 돋게 하고, 새 옷을 입히고, 영혼을 불어넣었습니다. 자, 너는 이제 다시 내 것이 되었다. 신은 기뻐하며 천사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그 손을 뿌리치며 말했습니다.

  이 모습이라면 사람들이 다시 나를 사랑해줄 거야.

  천사는 하얀 발로 다시 지상을 밟았습니다. 신은 한탄했습니다. 아이는 죄악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는 그날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대망의 마지막 이야기

 드디어 마지막 화입니다. 열심히 후기를 쓰면서 따라온 첫 캠페인만큼 마지막 화를 맞이하는 감회가 남달랐어요. 매편 최선의 최선을 다해서 썼지만 이번 화는 조금 더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먼 훗날에 이 후기를 읽으며 헤븐즈 불릿의 나날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요.

 ...그렇다고 지난 화처럼 무식하게 쓰려는 건 아니고요ㅋㅋㅋㅋㅋ 양보다는 질에 초점을 맞춰 써보겠다는 뜻이지요'ㅅ')9 아무튼, <헤븐즈 불릿>이 정식으로 공개되기 전에 감상문도 함께 공유하는 게 목표인데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210321의 에이미 : 못했어 이 새끼야) 맞춰야 할 과녁은 명확하니 섬세하게 조준해서 맞춰야죠. 자, 그리하여 끝을 맞이한 대망의 헤븐즈 불릿, 탄환들은 어디를 향해 날아가는가ㅡ 탄환이 닿은 최종 목적지는?

 지난 화 이야기


다른 상공도시로부터 요청을 받아 움직이기 시작한 샹그릴라.

 


그 과정에서 다른 상공 도시의 헤븐즈 불릿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 세계는 헤븐즈 불릿에게 가혹한 곳이었다.
애쉬즈 이브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거대한 악의가 그들을 덮쳐온다.

 


무사히 악의를 걷어내지만, 헤븐즈 불릿들은 또 다른 공허를 맞이하게 된다.

 


과연 그들은 세계의 악의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찾아가세요, 당신의 세계를

 충격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하자면, 제 안에서 가든 오더가 끝난 것 같습니다(?) <헤븐즈 불릿>으로 가든 오더의 결말을 봤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너무 쩌는 이야기라 다른 이야기가 눈에 안 찬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헤븐즈 불릿>이 가든 오더의 세계관이 완벽하게 매듭짓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래요 . 동인이니 AU로 취급해도 상관은 없지만 그렇게 하기엔 너무나 흡족한 결말이 나와버렸습니다... 는  물론 그래도 계속 하긴 할 거니까요?;_; 기회 있으면?;;_;;

 <헤븐즈 불릿>은 오더의 존재를 확장한 이야기입니다. 헤븐즈 불릿과 소울 인코더는 본질적으로 오더와 크게 다르지 않고, 이 두 가지 존재는 각각 오더의 다른 측면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존재이거든요. 오더를 '착취당하는 히어로'라고 규정한다면, 소울 인코더는 '착취당하는' 히어로이고 헤븐즈 불릿은 착취당하는 '히어로'인 셈입니다.

 소울 인코더는 무기가 되어서 착취당하고 있지만 히어로는 아닙니다. 헤븐즈 불릿은 착취당하고 있지만 ‘히어로’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히어로 취급도 해주지 않으면서 착취당하는 소울 인코더와, 착취당하고 있지만 히어로라고 불리는 헤븐즈 불릿. 이 둘의 비극성은 오더와 크게 다르지 않거나 그 이상입니다. 비극을 확대한 세계에서 초점을 맞추는 이야기는 주로 한 가지입니다.


이런 세계를 지킬 가치가 있는가?


  그런 점에서 <헤븐즈 불릿>은 아주 적극적으로 <가든 오더>의 세계관에 의문을 던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어마무시한 질문의 답을 플레이어가 직접 찾아 나가는 것이 이 캠페인의 목적이기도 하고요.

 1화에서는 이 세계가 무엇인지 묻고
 2화에서는 헤븐즈 불릿이 무엇인지 묻고
 3화에서는 오더가 무엇인지 묻고
 4화에서는 그래서 이 세계의 가치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캠페인을 진행하는 동안, 이 질문에 필사적으로 고민한 사람일수록 4화에서 느껴지는 선택의 무게와 즐거움도 큽니다. 1~3화까지는 공부하는 시간이고 4화는 직접 스스로 문제를 푸는 시간이랄까요? 다만 결론이 무엇이든 이 세계는 당신의 결말을 100% 지지합니다. 세계가 바뀌고 이야기가 완성됩니다. <가든 오더>의 완결편을 우리 손으로 직접 쓰는 느낌이었어요.


 <WWW>를 자꾸 언급해서 불쾌하지 않으실까 걱정되네요ㅎㅎ;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두 시나리오야말로 가든 오더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생각하는거든요. <WWW>는 이 세계의 기원을 이야기하고 <헤븐즈 불릿>은 이 세계의 미래를 논하는 이야기니까요. 그만큼 함께 플레이했을 때의 시너지도 어마어마합니다.

 물론 이 모든 전제 조건은 플레이어가 온 마음을 다해 이 세계를 탐색하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할 때의 이야기에요. 정답이 정해진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 답이나 내놓을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거든요. PC는 반드시 노력해야 합니다. 빛나는 결말을 맞이하고 싶다면 더욱이요.

 온전히 플레이어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

 캠페인 전체가 아니라 제4절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자면, 그야말로 플레이어를 위한, 플레이어에 의한, 플레이어의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이야기의 구성에 플레이어가 녹아있거든요. 1~3화를 거치면서 플레이어가 선택하고 만들어왔던 그 모든 것들이 이야기됩니다. 보통 캠페인 마지막 화는 그간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구성을 취하긴 하지만 이건 단지 그런 레벨이 아닙니다. A부터 Z까지 전부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로 구성되거든요.

 단편은 단편만의 장점이 있고 캠페인에는 캠페인만의 장점이 있습니다. 단편은 한 편의 텍스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캠페인은 PC들의 컨텍스트가 누적되며 서사가 쌓이는 게 장점이죠. 이 컨텍스트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캠페인은 고유한 빛을 발합니다. 이건 관점에서 <헤븐즈 불릿>의 4화는 이런 캠페인의 장점을 극한까지 맛볼 수 있는 이야기에요.

 

 심지어 이야기의 결말까지 플레이어의 손에 주어집니다. 이 세계에서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이고, 지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결정해서 집행합니다. 이 정도까지 플레이어에게 모든 것을 주다니 싶어서 감탄할 정도였어요. 물론 처음부터 아예 마스터와 플레이어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게임이라면 이 이상의 전개를 보여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엄연히 세계관과 스토리가 결정된 시나리오에서 플레이어에게 모든 선택권을 주는 케이스는 처음 봤습니다.

 마지막 선택의 순간도 짜릿합니다. 이거야말로 정말 파티 구성원에 따라서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거든요. 헤븐즈 불릿과 소울 인코더 모두 모순된 정체성을 안고 있는 존재이기에, 어떤 정체성을 더 중요시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가령 같은 헤븐즈 불릿이어도 누군 네필림 쪽에 가깝고 누군 인간에 가까울 테니까요. 소울 인코더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중에는 인간성을 유지하려는 부류가 있고, 인간성을 포기하고 자유로워지려는 부류가 있으니까요. 이런 모순 때문에 PC들의 선택은 더욱 풍성한 갈래를 가지게 됩니다.

 돌아보면 제1절부터 제3절까지는 PC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결국 제4절의 결말은 PC들이 어떤 정체성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거든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이 세션이 '캠페인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세션이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캠페인이란 준비된 이야기를 와르르 클리어하면 끝나는 장거리 경주가 아니라, 직접 지도를 그려가며 이곳이 맞는지 저곳이 맞는지 확인해가는 모험인 거죠.

 

캠페인은 모두 함께 직접 지도를 그리며 만들어가는 것이다


 언뜻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당연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플레이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줘야 하거든요. 스토리를 관조하는 태도로는 절대 캠페인이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삼 정말 복 받은 캠페인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는 PC1~4, 어느 한 분도 빠짐없이 이 이야기에 최선을 다해서 마음을 내어주고 적극적으로 고민해주셨거든요. 마스터님이 관대하게 내어준 판에, 플레이어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야기입니다. 자랑컨대 저희 팟의 <헤븐즈 불릿>은 캠페인으로서는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형태로 매듭지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씨앗이 될 탄환들


 PC 소개를 쓰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 되겠네요. 다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싶을 정도로 멋진 결말을 맞이했지만, 막상 마지막 소개를 쓰려니 조금 아쉽기도 하네요. 그래도 마지막이니만큼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D

 

PC1 - 블룸 익시더 / 헤븐즈 불릿 / 우롱님

"나와 같이 살아갈, 내일을, 선택해!"


 우리의 영원한 PC1, 블룸.  이번 세션에서는 특히나 블룸이기 때문에 겪는 고민들이 있었어요. 제1절 ~ 제3절을 거치면서 자기 나름의 정답을 찾아냈던 다른 PC들과 달리, 블룸은 마지막까지 고민해야 하는 위치라서 세션 내내 좀 안쓰럽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사실 블룸의 고민은 이 세계의 존속과 관련된 것이기도 해서 결정이 절대 쉬웠을 것 같진 않아요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블룸은 해냈습니다... 결론은 모두의 의사를 모아서 진행하긴 했지만,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린 건 블룸이었고, 블룸이 그 결론을 받아들여 줘서 고마웠어요. 사실 블룸이 원하지 않으면 저도 따를 의사는 없었거든요. 세계의 명운과 블룸의 행복? 당연히 후자죠. (안경척)

 그 모든 고민과 선택의 시간을 거쳐, 마지막에 볼 수 있었던 블룸의 모습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블룸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세션 하는 내내 아름다웠지만 마지막의 블룸은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웠어요. 블룸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블룸과 함께 본 세상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PC2 - Viva La Viad / 소울 인코더(광파간섭) / 류비엠님

"몰락한 왕은 이제 천국의 문 앞으로 다가갈 거예요."

 

 비바는 <헤븐즈 불릿>과 <가든 오더>를 연결시켜준 아교였다고 생각해요. 다른 PC들이 이 세계의 일원이었다면, 비바는 언제나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잇는 밧줄을 두 손에 꽉 쥐고 버텨줬죠. 비바가 있었기에 이 이야기가 <가든 오더>의 완결편으로 느껴졌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PC랑 플레이할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행운이에요.

 돌아보면 비바는 진심으로 이 세계를 사랑했던 것 같아요. 그랬기에 가능했던 행동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저는 비바의 마지막 선택도 그런 궤에서 이해가 되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사랑했던 비바니까요. 이야기가 끝이 났으니 일단 무대에서 한번은 내려오고 싶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조금 아쉬웠어요. 비바에게도 이 세계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이걸로 끝은 아니니까요. 언젠가 비바가 다시 눈을 뜰 때, 비바에게 보여줘도 아쉽지 않을 세계가 되어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걸 위해서 이브도 나아가기로 한 거니까요.

PC3 - LOST / 헤븐즈 불릿 / 나코님

"나는 어떠한 이유도 붙여지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거야."


 제1절 후기에서 로스트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고 썼던 것 같은데, 제4절이 끝난 지금 돌아보니 진짜 너무 기특한 거 있죠. 저희 PC를 통틀어서 제일 많이 변한 사람은 로스트일 겁니다. 로스트야말로 <헤븐즈 불릿>이 영혼이 아니었나 싶어요. 로스트는 매 에피소드마다 성장했거든요. 에피소드마다 주어진 테마를 양분으로 삼으면서 차분히 자신만의 길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엔딩의 로스트고요.

 1화에서 그는 형이 사라진 세계를 받아들였고, 2화에서는 이 세계에서 살아갈 이유를 발견했고, 3화에서는 다시금 엄니를 드러내는 세계와 마주했어요. 4화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이유의 대답을 찾았고요. 로스트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헤븐즈 불릿>의 궤적이 보입니다. 로스트야말로 이 이야기의 핵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녀석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 로스트의 버디를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브는 몫을 다한 것 같습니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함께 빛나는 엔딩을 맞이하게 된 게 너무 감동적이에요. 로스트와 버디가 되어 서로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 기쁩니다.

PC4 - 애쉬즈 이브 / 소울 인코더 (전자조작) / 에이미

"이런 몸으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겠더라고요.
태어나서 다행이었다고."


 캠페인 후기를 빡빡 쓰면서 키워온 건 이브가 처음이다 보니 저도 애정이 가요. 덕분에 이 아이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끝맺을지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결말이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이브는 제 티알생에 한 획을 남긴 아이가 되겠죠. 이 자리를 빌어 이브에게 인사해봅니다. 정말 수고 많았어, 이브야!

 극도의 염세주의에 물들어 죽는 것만 바라던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삶을 갈구하게 되는가, 그것도 건강한 방식으로. 삶에 대해 집착하는 것이 아닌 삶을 포용하는 과정 속에 이브를 담고 싶었어요. 사실 조금이라도 제가 납득할 수 없는 방식이라면 그냥 이브를 보낼 생각도 있었고요. 하지만 결국 답을 찾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브는 잘해줬고 이브가 이렇게까지 잘 해낼 수 있었던 데는 플레이어분들과 마스터분, 그리고 <헤븐즈 불릿>이라는 멋진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후기에서 이런 내용들도 다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사실상 이 캠페인 후기를 쓰게 된 이유 중 하나였던 버디 관계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가든 오더 캠페인이기 때문에 버디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좀 더 초점을 두고 보려고 했고, 이제 그 결산을 내릴 때가 되었으니까요. 왠지 두근두근합니다ㅎㅎ 요것도 차분히 써보죠.

 


블룸 익시더 with Viva La Vida

시작과 끝의 경계에서

 


 서로 모자람 없이 딱 맞는 퍼즐처럼 시작했던 블룸과 비바. 1화에서는 경력 있는 스승과 그 밑에서 수련하는 제자 같은 느낌이었는데 말이죠. 2화와 3화를 거치면서는 동료, 4화에서는 영원한 소울 메이트로 거듭나더라고요. 

 어찌 보면 이 둘의 결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유독 잘 맞는 것처럼 보였던 것도, 이런 이별이 준비되어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운명의 블룸과, 언젠가는 끝날 운명의 비바. 이 둘은 그 시작과 끝을 잇는 경계에서 만났던 거죠. 

 그리고 마침내 그 경계가 갈라지면서 솟아오르는 해돋이와, 그 햇살을 받으며 활짝 웃는 블룸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 <헤븐즈 불릿>에서 보고 싶었던 장면은 모두 봤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시작인 동시에 아름다운 결말이었어요. 


 LOST with 애쉬즈 이브
버디가 아닌 친구로써

 


 이 둘은 결국 친구가 되었습니다. 친해지는 건 예정된 일이긴 했지만, 그저 사이가 좋아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각자가 안고 있던 결핍을 훌륭하게 해결하면서 함께 성장했다는 점에서 가슴이 묵직해집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사춘기 불알친구의 느낌(?)이랄까요ㅋㅋ 한창 감수성이 민감한 시기에 서로 멱살 잡고 싸우다가 졸업식을 맞이하고,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친구 같아 좋았네요.

 

 블룸과 비바 쪽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확인하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면, 이 둘은 성장하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로스트와 이브에게 있어서 <헤븐즈 불릿>은 거대한 성장통이었던 거죠. 혼자라면 너무나 아팠을 성장통이지만, 이 둘이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잘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만고의 시간 끝에 얻어낸 성장은 아름다웠어요. 엔딩 장면에서 함께 봤던 장면들,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로스트와 함께 그 광경을 볼 수 있어서 기뻤어요. 이 둘은 그 후로도 이 대지에 많은 꽃을 피우며 살아갔겠지요.



블룸 익시더 with LOST

새로운 삶을 축하해

 


 저희의 선택으로 새로 만들어진 이 세계에서 이 둘은 이제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예정입니다. 아니,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삶의 방식은 달라질지 몰라도 이 둘의 본질은 변함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블룸은 블룸답게, 로스트는 로스트답게 살아가겠죠.

 그래도 둘에게 찾아올 새로운 삶을 축하하고 싶습니다. 그 삶은 이브와 비바가 바랐던 것이기도 하니까요. 그간의 성장통을 보상받는 시간일 테니 마음껏 즐겼으면 좋겠어요. 물론 새로운 세상에서도 둘에겐 많은 문제가 닥쳐올 테지만, 블룸에겐 로스트가 있고, 로스트에겐 블룸이 있으니 그때마다 서로를 일으켜 세워줄 수 있겠지요. 그리 생각하니 더더욱 홀가분하게 이 이야기를 덮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Viva La Vida with 애쉬즈 이브
다른 방향으로, 그러나 언젠가 같은 곳에

 


 죽마고우(?)처럼 시작해서, 각자 다른 결말을 맞이하게 된 비바와 이브. 비바에겐 고맙다는 말밖에 할 게 없는데, 비바라는 캐릭터가 아니었다면 이브가 이렇게까지 단단할 수 있었던 것 같거든요. 비바가 이전 세계와 현재 세계의 균열을 필사적으로 막아주었기 때문에 이브도 망가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 비바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해요.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야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비바는 끝을 향해, 이브는 시작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던 것 같다고. 전 처음에는 반대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동력이 바뀌면서 한쪽은 위로, 한쪽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결말의 그 장면도 그래서 좋았고요. 날아가는 이브와 남겨지는 비바. 그래도 둘은 영원히 함께하겠죠. '친구'라는 이름 아래에서요.



 블룸 익시더 with 애쉬즈 이브
 내가 원했던 삶을 네게 줄게

 


 개인적으로 마지막 화이니만큼, 이브의 입장에서 PC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 다 주고 싶었어요. 돌아보니 로스트에겐 사랑을, 비바에겐 작별 인사를 주었다면 블룸에겐 삶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네가 뭔데 블룸한테 삶을...? 싶지만, 이브 입장에선 자신이 바라 마지않았던 세계를 블룸이 살아가주길 바랐거든요. 이렇게 쓰고 나니 삶을 준 게 아니라 살아줬으면 하고 부탁한 것 같긴 하네요^^;;

 제1절의 이브를 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사실 동료라기보다 언젠가 처단해야 할지도 모르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는데(어쨌든 네필림이니까요) 제4절에 와서는 블룸에게 고통없는 삶을 안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으니 어찌보면 가장 큰 변화를 이룬 관계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적어도 이브 입장에서는 그래요.

 블룸이 그 선물을 받아줘서 정말 다행이죠. 사실 어찌보면 일방적인 부탁인지라... 하지만 엔딩 장면에서의 블룸은 생각해보면 이브의 생각이 썩 틀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블룸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LOST with Viva La Vida
미래를 기약하고 현재를 살아갑시다

 

 

 후기를 쓰는 내내 계속 이 둘의 결이 비슷하다고 얘기해왔는데, 4화까지 즐기고 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비슷한 게 아니라 양극단에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극과 극은 닮기 때문에 비슷하다고 느껴졌을 뿐이죠. 하지만 로스트의 미래는 비바일 것 같고, 비바의 과거가 로스트였던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둘 다 이 세계를 사랑하거나 사랑하게 되었고, 그에 어울리는 결말을 맞이했으니까요.

 로스트는 이 세계의 일원이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자신을 미워했고, 비바는 이 세계의 일원이 될 수 있었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행동 양식은 다르지만 결론은 매한가지에요. 둘 다 이 세계를 뼈저리게 사랑했기 때문에, 또는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맞이한 결말은 전혀 다르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하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각자가 선택한 곳에서, 각자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좋겠는데요. 물론 그렇게 되겠죠.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둘이니까요. 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 짚을 수 있었던 것도 이번 <헤븐즈 불릿> 후기의 성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 그럼 이제 진짜로 4화의 이야기를 할 때가 찾아왔습니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전부 할 수 없다면 꼭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만이라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헤븐즈 불릿>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우리 탄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더보기

 오프닝 페이즈

 


 린이 사라진 일상. 잔인하게도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합니다. 평소와 같은 도입일 뿐인데도 린을 잃은 상실감이 모두를 침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브는 어떻게든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애씁니다. 사실 제3절에서 뭔가를 얻고 나온 건 이브 뿐이긴 하거든요(..) 밥도 안 먹고 시들시들한 블룸이 걱정되어 겨우 핫도그를 한입 먹게 하는데 성공합니다만...

 

용 서 못 해 


 ㅋ아 잔인하다니까!!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을 겪은 직후에 일상을 묘사하라고 하실 수 있어요~~~!ㅠ 전쟁 후의 참상이나 다를 바 없는 매거진의 분위기에 이브는 숨이 다 막힙니다. 그에 비해 비바는 냉정한 편이었어요. 비바라도 냉정해서 정말 다행이죠. 그래도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이별을 경험한 비바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강한 편이랄까요.

 

...누가 냉장고 열어놨죠;


 좀 너무 냉정해서 제가 다 쿨몽둥이로 맞는 기분이긴 합니다만(..) 다행히도 블룸은 비바의 냉장고 속에 감춰진 따끈한 심장을 찾아냅니다. (표현이 왜 이런) 새삼 이래서 얘네 둘이 여태 버디를 할 수 있었던 거구나 싶더라고요.

 

 

 한쪽만 남아있었다면 망가졌을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둘이 함께라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대화로든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사이라니 이 둘처럼 이상적인 버디도 많지 않을 거예요.

 휴... 여튼 이쪽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 잠깐 렌즈를 돌려봅시다. 그래, 우리 로스트...!!!! 어카냐고ㅇ)-( 이제 막 형의 부재에서 벗어난 로스트에게 다시 상실의 순간이 몰아친 거잖아요. 카밀의 죽음에 헤븐즈 불릿의 장례식까지... 우리 핸섬똥강아지 힘들어하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빠른 이별이 오히려 다행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만약 카밀과 더 깊은 관계를 쌓은 상태에서 그런 파국을 맞이했다면, 그때 로스트는 정말 일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요. 세션 하다 보니 별 이상한 걸 다행이라고 여기게 되네요.

 


 ...인 줄 알았지만 그게 상실인 줄도 모릅니다 이 자식ㅋㅋㅋㅋㅋ 상실감을 느낄 정도의 감정조차 쌓지 못한 상태였나 봐요ㅠ 아... 이브는 빡칩니다ㅋㅋ 왜 나만 진심이지? 왜 나만 걱정되는 거지? 왜 다들 괜찮은 척하는 거야!!! (에이미는 재밌음)


 그야... 이브 너는 지난 화에서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직 아니니까ㅡㅡ;; 네가 퇴원했다고 다들 퇴원할 수 있는 건 아니란다... 아, 됐어요! 이브는 그런 거 몰라요! 그냥 이 상황이 싫고 다들 예전처럼 활기찬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요! 이브는 다짜고짜 린을 구하러 가자고 말합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구하러 가자고요!

 그렇게 마음을 먹었을 때 마침 에블린이 PC들을 찾아옵니다. 나이스 샷, 에블린.


 가든 오더의 마지막 퍼즐 ㅡ 술식

 

 에블린은 린을 찾고자 하는 PC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알려줍니다. 그것은 바로 지상에 갈 때마다 모았던 GARDEN의 연구 자료입니다. 그 안에는 네필림에 관한 비밀이 적혀 있었습니다.


 무려 <가든 오더>에서조차 미지수로 두었던(사실 뭐라고 정의한 거 같긴 한데 아 몰랑 안 봤어 그런 거) 바로 그것, 네필림과 오더의 기원에 대한 정보입니다. 어허, 이걸 다룬다고? 정말로? 약간 마기로기로 치면 마법사가 어떻게 태어나는지에 대한 설정인 거잖아요. 덥크로 치면 레네게이드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인 거고. 갑자기 이야기의 스케일이 또 한 번 확장되더라고요.


 <헤븐즈 불릿>에서는 이것을 '술식'이라는 형태로 표현합니다. 창조주가 이 세계에 새겨둔 바이러스 같은 것이죠. 왜 바이러스냐면 시간이 일방향으로 흐르는 이 세계에서, 이 술식은 시간을 역방향으로 흐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네필림을 죽이고 또 죽여도 어디선가 계속 기어 나왔던 이유는 그들이 시간 역행에 의해 불멸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계에는 이런 인리를 벗어난 또 하나의 존재가 있습니다.

 

 앞에서 제가 이 시나리오를 <가든 오더>의 완결편이라고 했던 이유입니다. 공식에서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 못했던 네필림과 오더의 기원을 다루고 있거든요. 네필림의 불멸과, 오더의 탄생, 그 모든 역사를 술식(시간역행)이라는 요소 하나로 전부 설명합니다. 복잡한 수식의 답이 1로 딱 떨어질 때의 쾌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사실 전 가든 오더의 세계관이 그렇게 완성도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고유한 감성이 있긴 하지만 가끔은 그것조차 그냥 얻어걸린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훌륭한 시나리오들을 접하면서 가든 오더의 세계관에 애정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정점을 찍어준 것이 바로 <헤븐즈 불릿>이었던 것 같습니다. <헤븐즈 불릿>의 존재로 이 나사 빠진 듯한 세계관이 하나로 깔끔하게 조립되거든요.

 이 중요한 설정이 도입에서 과감하게 공개된 것도 좋았습니다. 덕분에 진상이 뭔지 골때릴 필요 없이 오로지 우리의 '선택'에만 집중할 수 있었거든요. 그만큼 엄청난 무거운 선택지가 우릴 기다리고 있는지라... 아무튼, 에블린 박사의 이야기를 러프하게 정리하면 결론은 이렇습니다.

 린을 죽이면 인류가 살고, 인류가 죽으면 린이 삽니다.

 트롤리 딜레마 문제네요. 하필 많고 많은 문제 중에 가장 골 때리는 문제를...ㅠㅠ 혼란스러운 건 PC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PC들은 답을 찾아서 다시금 샹그릴라로 걸음을 옮깁니다. 그곳에 우리가 풀고 온 모의고사의 답안지들이 놓여 있었거든요.


 미들 페이즈

 


 미들 페이즈의 조사 대상은 저희가 지금까지 만났던 NPC들이었습니다. 늘 함께한 미나와 에블린은 물론 제2절에서 한 번 같이 문제를 풀었던 윌 형사와 헤카테, 그리고 켄필드 함장까지. 새로운 조사 장소나 자료가 나올 줄 알았는데 깡그리 치워놓고 저희가 지난 세션 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성장의 계단을 밟을 수 있게 도와준 NPC들과 마지막 대화를 해보라고 판을 깔아주시더라고요. 

미들 페이즈 본 에이미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앞에서 에블린이 말했던 진상을 이 미들 페이즈에서 조사하게 만들고, 클라이맥스에서 린과 싸우는 구성이 먼저 떠오르는데 말이죠... 진상은 앞부분에 전부 몰아넣고 미들에서는 PC들이 그간 정을 쌓은 NPC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각자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구성이라니ㅠ 저희 진짜 미들 페이즈를 통째로 선물 받은 기분이었어요... 이럴 수가...

 그간 <헤븐즈 불릿>을 즐기면서 정교하면서도 간결한 전투 시스템이나 시나리오 구성에 감탄을 표해왔지만, 개인적으로 이 미들 페이즈의 구성이 그중에서도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헤븐즈 불릿>이라는 캠페인 자체를 플레이어들에게 안겨주는 것 같은 미들 페이즈였거든요. 마스터가 플레이어를 100% 신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구성이기 때문에 더욱 감동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저희에게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본님...

 그리고 본격적으로 미들 페이즈가 시작됩니다. NPC들이 한곳에 모여있는 미들 페이즈를 보고 있자니 비로소 우리의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르렀구나 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미들 페이즈의 역할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어요. 


 미들 페이즈의 행동을 통해 PC들을 기다리고 있을 린과의 인연을 쌓아갈 수 있었거든요.  NPC들과 소통하며 지난 이야기를 정리하는 동시에 마지막 싸움을 향한 결의를 다지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캠페인 마지막 화에 어울리는 이상적인 형태의 미들 페이즈였다고 생각합니다.
 


 씬1. 로스트

 

 

 우선 로스트가 윌 형사를 찾아가기로 합니다. 윌 형사, 어찌 보면 그는 이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해 최초로 버튼을 누른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처음으로 인간과 오더의 경계를 허물어 준 사람이니까요. 그 후로도 이 이야기는 인간과 오더의 관계에 대해서 꾸준히 얘기해왔습니다. 한번 답을 제출했던 사람인 만큼 윌이라면 이 문제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여유롭게 대화를 나눌 만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제3절에서 난민을 잔뜩 받아들인 바람에 샹그릴라 전체가 들썩이는 상황이었거든요. 윌은 바로 그 경계에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시민들에게 공격당하는 윌의 앞을 막아섰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헤븐즈 불릿은 탄환이라는 멸칭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왠지 그때랑은 다릅니다. 사람들의 경멸에 주눅이 들던 그때와 달리, 어째서인지 지금은 무서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윌이 우리의 존재를 한 번 긍정해줬기 때문일까요? 새삼 윌이 저희에게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깨닫게 되어서 좋았어요.

 사람들을 물리친 뒤, 겨우 대화를 나눌 만한 상황이 됩니다. 로스트는 윌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한 사람만 사라지면 모두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냐고요. 그리고 윌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멋진 답변을 들려줍니다.

 

 윌은 정의로서의 정의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정의를 얘기합니다. 애초에 이런 윤리적 딜레마에 정답이 있을까요? 정답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 많은 불행이 생겨나는 건 아닐까요? 그러니 형사님은 정답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마음의 소리에 따르라는, 아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예언을 남기죠. 형사님의 조언을 마음에 품은 채 로스트는 어딘가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을 린에게 마음을 보냅니다.


 그러자 린이 대답합니다. 아직 인연 포인트가 낮아서인지 몰라도 대답은 단호했지만요. 린의 진짜 속내를 들여다보려면 좀 더 그녀의 마음에 다가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는 다음 사람과 만나기 위해 씬을 닫습니다.

 내용과 별개로 이때 린이 인연 대사로 말해서 놀랐어요. 이 캠페인 고유의 인연 포인트 룰이 단지 옵션 룰이 아니라 서사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하는 것 같아서 좋았거든요. 인연 포인트 시스템이야말로 <헤븐즈 불릿>의 영혼이 아닐까 싶어요. 


씬2. 애쉬즈 이브


 그다음으로는 이브가 앞장서서 미나와 함장을 만나러 가기로 합니다. 아서는 의회와 싸우느라 바빠서 미나만 있긴 했지만요. 이브는 대놓고 린을 만나러 떠날 거라며 미나를 떠봅니다. 아니다 다를까 미나 역시 린의 뒤를 추적하고 있었더라고요.  어쨌든 린은 오더가 태어나지 않는 이 세계에서 발견된 오더니까요. 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샹그릴라 쪽이 더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생존을 향해 움직이는 샹그릴라와는 달리 린은 소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어요. 그말은 즉, 린이 인류를 구하기로 마음 먹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우리도 다시 결정해야 했습니다. 린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을 지켜볼지, 린이 희생하는 것을 막을지.


 당연히 답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브는 린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 없었거든요. 한때 폭탄처리반의 일원으로서 살았던 이브이기에, 자기만 죽으면 다 끝난다고 생각했던 이브이기에, 같은 선택을 하려고 하는 린이 왜 잘못되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거든요. 이브는 린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ㅎㅎ꼭 가오 잡으면 이러더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아무튼 판정은 실패했지만 멋있게 얘기하고 있었으니까 대충 넘어가 줘~!!ㅋㅋㅋㅋㅋ 흐음, 역시 이브의 목소리만으로는 부족했던 걸까요? 상공 어딘가에 홀로 떠돌아다니는 린은 슬프게 외칩니다.


 무슨 기분인지 알아요. 하지만 안 됩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평화를 되찾으면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인류는 또 새로운 희생양을 바라게 될 거예요. 이번 한 번으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근본적으로 잘못된 거예요. 그러니 린의 희생은 옳지 않습니다. 그 희생으로 찾아올 미래 또한 결코 옳지 않습니다.


 늦기 전에 린을 찾아야겠습니다. 이 뒤는 블룸과 비바에게 부탁해야겠어요.


씬3. Viva La Vida


 그리고 드디어 비바의 차례가 옵니다. 사실 비바와 블룸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자신들의 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린의 희생으로 뭘 얻고 잃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보다 블룸에게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세계의 위기는 둘째치고서라도, 우선 블룸은 린과 제대로 이별하지 못했어요. 왜 이별해야 하는지도, 정말 이별하는 게 맞는지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린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이후에 린이 어떤 선택을 내리든 일단 블룸은 린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어 합니다.


 비바는 블룸의 그 뜻에 적극적으로 동조합니다. 한쪽은 네필림에 가까운 인공의 존재고, 다른 한쪽은 인간을 위해 싸우는 오류의 산물임에도 린을 구한다는 목적으로 둘은 하나가 돼요. 서로 배척한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이 둘이 제4절에 이르기까지 충돌하지 않았던 건 린이 있어서가 아닌가,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바는 에블린 박사를 찾아갑니다. 역시 헤카테를 제외하면 가장 큰 열쇠를 가지고 있는 건 역시 에블린일 것 같으니까요. 에블린은 그런 저희를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반겨줍니다.


 세션 내내 반복되었던 에블린의 포옹이 왜 유독 이날 따라 더 찐하게 느껴지던지... 왠지 이별을 예감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사히 돌아올 수도 있지만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비바는 잠시 에블린과 독대를 원합니다. 약간 어리둥절한 상태로 잠시 자리를 비키는 세 명의 PC들. 휴, 플레이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브는 궁금해 디지겠지만 저는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네요ㅋ 아니나 다를까 비바는 바로 핵심으로 파고들었어요.


 아까 로스트가 윌 형사에게 했던 질문이기도 하죠. 이 질문을 윌 형사와 에블린 박사 두 사람에게 다 물어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둘은 이 건에 대해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굳이 따지자면 윌 형사는 인간 측이고, 에블린 박사는 네필림 측이죠. 하지만 놀랍게도 둘의 대답은 같았습니다.


 사실 트롤리 딜레마 문제에서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그게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정말로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과연 우리 중에 몇 명이나 소중한 사람을 죽이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트롤리 딜레마는 굉장히 치사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과 에블린은 당당히 말합니다. 결국 그 상황이 되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요. 서로 다른 존재를 대변하면서도 같은 대답을 내놓는 게 참 신기했네요. 어쩌면 인간과 네필림은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필사적으로 생을 갈구한다는 측면에서요.


 하지만 고민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린의 작은 몸이 그런 거대한 술식을 오래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거든요. 린이 우리를 급하게 떠났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린이 하려는 건 역시...


 자신의 시간을 돌리는 것이겠죠. 린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오더라는 종(種)의 마지막 개체니까요. 그녀의 희생으로 술식은 힘을 잃고 네필림은 필멸의 존재가 될 거예요. 이렇게 단순하고 확실한 답이 없습니다. 린의 입장에선 다른 선택지를 생각하기가 힘들 겁니다. 마지막 오더라는 설정이 '유일한 종'으로 맥락을 바꾸면서 비극의 방아쇠가 되다니... <허무를 넘어서>때 느꼈던 지적 쾌감을 또 한 번 느낀 부분이었습니다.

 


 아무튼, 린의 답답한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비바는 린을 막고자 합니다. 적어도 린의 선택이 억지는 아니어야 하니까요. 그러니 비바는 린에게 말합니다. 만약 지금 린이 하려는 선택이 불합리한 것이라면, 아주 조금이라도 도망치고 싶다면, 함께 도망쳐주겠다고요.


 그리고 그제서야 린의 진심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비바가 말을 걸자 비로소 린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플레이할 때 벅차오르더라고요. 한때 함께 했던 버디였기 때문에 가능한 교감의 영역이랄까요. 아주 조금만 더 린이 솔직하게 얘기해줬으면 좋겠어요. 그 대답을 듣기 위해 블룸이 나섭니다.


씬4. 블룸 익시더


 에블린과 대화를 마친 비바는 돌아온 일행에게 린이 곧 폭발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고 린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도요. 이거라면 샹그릴라도 협조해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헤카테를 만나러 가려는 블룸에게 비바가 말합니다.


 이거야말로 블룸이 해야하는, 그리고 할 수 있는 역할이겠죠. 블룸이라면 잘할 수 있을 겁니다. 블룸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향해 손을 뻗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니까요. 설령 그 대가로 손목이 잘려 나가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그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에 더 감사하겠죠. 네필림이기 때문에 가능한 사고방식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룸을 믿습니다.

 한편, 헤카테를 만나러 가는 도중 내내 침묵을 지키던 로스트가 이브에게 묻습니다.


 해방이라. 소울 인코더에게 있어서 해방이란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정신적인 사망일 수도 인간으로 돌아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질문에 대한 이브의 답변은 단순합니다. 이젠 필요없어요. 예전엔 원했지만 이젠 필요 없습니다. 동생을 찾았고 버디가 생겼으니까요.

 이때 나코님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든 이브와 로스트가 같은 구도가 됐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없는 줄 알았던 동생을 되찾은 이브와, 영원히 함께할 거라 생각한 동생을 잃은 로스트. 울퉁불퉁한 톱니를 드러내며 서로를 갈아대던 둘이 어느새 완벽한 합을 이루고 있더라고요. 그 말은 즉 지금의 이브를 로스트는, 지금의 로스트를 이브는 이해할 수 있다는 거고요.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이미 답을 찾은 이브와 달리, 로스트는 아직도 답을 찾아 헤매고 있는 중이라는 거예요. 제1절에서 이브가 로스트에게 던졌던 질문이 있었죠. 왜 살아가는 거냐고, 왜 싸우려는 거냐고. 로스트는 아직 그 답을 찾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착실한 녀석...) 그리고 로스트는 클라이맥스에서 정말 끝내주는 대답을 찾아줍니다. 이건 잠시 후에 얘기하도록 하죠:) 

 그리고 마침내 블룸은 헤카테와 다시 만납니다. 여전히 징그러운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블룸은 거부감 없이 그녀에게 안겨요. 그리고 헤카테는 블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녀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일깨워주고, 그것으로 린을 구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줘요.

 아포토시스는 네필림만을 사멸시키는 존재ㅡ 즉, 블룸이 린을 쓰러뜨릴 경우, 린 안의 네필림만을 사멸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정말 이게 가능하다면 린을 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린이 짊어지고 있었던 짐을 블룸이 대신 짊어지게 되겠지만요. 이 세계에서 누구의 시간을 돌릴지 결정하는 것 말이에요.

 이때 우롱님은 블룸이 자신을 네필림으로 인식하고 있을 거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돌아보면 블룸은 로스트에 비해 그다지 인간과 가까워지려고 애쓰지는 않았죠. 오히려 헤카테에게 훨씬 더 큰 애착을 보였고요.

 그렇다면 역시 블룸은 인류가 아닌 네필림을 선택하게 되는 걸까요? 인류와 네필림의 혼혈이기에, 그리고 네필림 쪽에 조금 더 애착을 가지고 있기에 블룸의 선택은 더욱 어렵고 깊은 맛을 자아냅니다. 이 또한 클라이맥스에서 멋지게 펼쳐지고요.

 


 헤카테는 그런 블룸을 배웅합니다. 헤카테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니까요. 린을 구할 방법을 알아낸 블룸은 린을 향해 외칩니다. 그녀가 숨겨둔 진심을 얘기해주길, 그리하여 블룸 또한 린을 만나러 가는 것을 '허락받기'를 원합니다. 외친 사람이 블룸이었기 때문일까요? 마침내 린은 가슴 속 깊은 곳에 담아둔 속내를 얘기합니다.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린을 구하러 가야 해요. 이때를 기점으로 린과의 인연 포인트가 Lv MAX를 찍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린의 위치가 확인됩니다.


 서두릅니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저 나약한 푸른 점을 향해서 도약합시다. 그러려면 역시 아서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네요.

 

씬5. 애쉬즈 이브

 

 


 로스트의 말대로 출항 허락, 아니 이브의 표현으로는 귀향 허가를 받으러 갑니다. 다시 돌아올 거니까요. 그렇게 하기로 헤카테랑 약속했으니까요. 1화에서 로스트와 대화를 나눴던 그 전망대에서 아서를 불러 루트를 변경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처음엔 아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꿔요. 내버려 두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까요.

 한편, 아서는 이제 와서 지상으로 돌아간다 한들 의미가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아서는 함선이고 이브는 장미 채찍이니까요. 땅을 밟은 발조차 없는 그들에게 지상을 되찾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야, 의미가 있습니다. 이브를 위해서가 아니라 로스트와 블룸,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서요. 아서의 말대로 네필림의 시간을 돌리고 인류를 구한다고 해도 소울 인코더인 그들은 세계가 원상복구되어도 그 일원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로스트와 블룸은 살아갈 거잖아요. 그리고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 또 이 세상을 살아갈 거잖아요. 적어도 앞으로 태어날 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종이비행기에 실려 사라지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그들은 지상을 되찾기로 합니다.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요.


 비바의 표현대로입니다. 이제는 지상을 되찾을 때가 되었죠. 아서에게 마음껏 착륙할 수 있는 땅을 주고 싶어요. 더이상 자식들을 공중으로 날려 보내는 일을 경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아서는 이브의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아서는 속력을 높여 좌표가 있는 곳으로 몸을 날립니다. 그 속도에 실려 날아가는 우리는, 그야말로 하늘의 탄환이 된 듯했어요.


 클라이맥스 페이즈

 

 린은 찾아 떠나는 여로를 가로막은 것은 역시나 네필림이었습니다. 매 전투마다 멋진 기믹을 보여준 캠페인인 만큼 제4절의 전투도 몹시 기대되었는데요. 제4절의 클라이맥스는 크게 3페이즈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첫 번째 전투는 에리어 전이었어요.

1페이즈 : 네필림 교전

 


 1페이즈는 5개로 나뉜 에리어를 통과하는 페이즈입니다. 에리어 5에서 시작해 에리어 1에 도착하는 게 목적이고, 전원이 다 에리어 1에 도착하면 클리어입니다. 에리어는 전력 이동으로만 넘을 수 있기 때문에 행동을 잘 분산해서 사용해야 했어요. 이러다 보니 턴 오더가 굉장히 중요해지더라고요. 턴 오더야 원래 중요한 개념이긴 하지만, 이 전투에서는 좀 더 게임적인 의미로 중요해서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가령 A의 순서가 빨라서 먼저 에리어를 넘어갈 수 있다고 해봅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B가 체력이 약해 혼자 이곳에 남으면 몬스터에게 공격당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B가 잘 회피하길 바라면서 먼저 이동하거나, 이번 턴에서는 이동을 포기하고 B를 지키기 위해 몬스터에게 인게이지 하는 둥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무조건 앞으로 쭉쭉 이동하는 게 능사가 아닌 거죠.

 실제로 저희도 이런 상황이 여러 번 나와서 전투를 하는 내내 행동 순서를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턴 오더는 원래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번에는 에리어 개념이 도입된 덕분에 변수를 더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덕분에 턴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원한다면 2라운드에 1번 샹그릴라의 주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갓기믹까지... 제3절에서 사용이 끝난 기믹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이어지니 든든하고 뻐렁치는 거 있죠ㅠ 함장님의 지원을 믿고 의지를 다져봅니다. 할 수 있다고 믿어요. 아니, 해내야죠. 까짓거 에리어 정도도 통과 못 하겠습니까? 저희는 탄환인걸요. 그렇게 헤븐즈 불릿들은 비행 드론을 타고 차가운 상공으로 날아오릅니다.

저 너머에서는 린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고요


 하지만 마음처럼 그리 빨리 이동할 수는 없었는데요. 언제나 그렇듯 온갖 사건사고가 벌어졌기 때문이죠^^ 분량 조절ㅎㅎ... 을 위해 이번 클라이맥스 전투는 인상적인 장면 몇 개를 뽑아서 집중적으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함께 해주시죠^___^


 「블룸과 비바의 행방불명」 By 우롱 프로덕션

 비바가 네필림을 무너뜨린 사이 에리어를 넘어가려고 하는 블룸. 이때 륩님의 제안으로 메인 액션으로 '성원'을 사용해, 블룸이 비바의 인연 포인트를 올려주기로 합니다. 메인 액션으로 인연 포인트 올릴 생각을 하다니...? 다들 천재냐며 난리였는데 이어지는 블룸과 비바의 롤플이 정말 정말 좋았어요. 모두 봐야 하니까 박제합니다. (침착)

 


 우롱님은 참 뭐랄까... 필체가 극장판 셀화 애니메이션인 분이라고 해야하나ㅠ 가끔 이런 식으로 묘사를 해주실 때마다 캐릭터의 움직임과 채도가 동시에 느껴집니다. 색깔을 구태여 묘사한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프레임 단위로 흘러가는 캐릭터의 움직임이 느껴져요. 이 장면 또한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클라이맥스처럼 함께 상공을 가르며 유대감을 나누는 모습이 그려져서 인상적이더라고요.

 블룸은 비바에게 어째서 싸우는지를 묻습니다. 비바는 싸우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었던 거라고 말합니다. 거창한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라고요. 에블린이 그랬고, 윌 형사가 그랬듯 비바 역시 소시민성을 숨기지 않아요. 영웅이라서 싸우는 게 아닙니다. 이건 GARDEN의 시절부터 그에게 맡겨진 임무였고 그는 그 임무를 수행하는 오더에 불과했을 뿐이에요. 비바는 누구보다 그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한 거고요.


  블룸은 그런 비바에게 전쟁이 끝나면 함께 지상으로 가서 들꽃을 보자고 이야기합니다. 고생했어요, 수고했어요, 힘들었겠군요 같은 추상적인 위로가 아니라 이 전쟁이 끝날 것을 확신하는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말을 해요. 어쩌면 이번 전투에서 패배할지도 모르는데, 전투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룸은 꽃을 보러 가자고 합니다.

 평소엔 냉정하고 객관적인 비바도 이 꿈같은 이야기를 반박하지 않아요. 비바 또한 이 전투의 승리를 믿고 있다는 듯이요.
서로 다른 입장에서, 다른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이 둘이 어째서 그동안 버디로서 함께할 수 있었는지 드러나는 부분이라 뭉클하더라고요.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어도 보고 싶은 광경은 같았던 거예요. 함께 지상으로 내려가 꽃을 보는 거요.
 
 뼈(이시다 아키라) 부러지는 소리

 ㅋ아 제목이 갑자기 왜 저런가 하면ㅋ 아무튼 들어보세요... 이시다 아키라 팬 여러분들이 화내실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2라운드가 시작했을 때였어요. 와이번이 로스트의 다리를 으득 뭅니다. 그런데 무려 대미지가 충격 25인 것 아니겠어요... 다리 골절에 중상에 슬로우 ㅠ 이건 다리가 부러졌다고 봐야죠. 로스트의 길게 뻗은 다리가 우둑! 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이런 미친 드립이ㅋ


 ㅋㅋㅋㅋㅋ아 ㅅㅂ 이시다 아키라 같은 부러지는 소리 뭔데요 진잨ㅋㅋㅋ 티알피지 하면서 온갖 뼈가 다 부서져 봤지만 그 소리가 이시다 아키라 같은 사람은 또 처음 보네(?) 마지막까지 대상화되는 로스트...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뼈 부러지는 소리가 이시다 아키라처럼 청명하고 까리한 건 좋은 거니까 칭찬이라고 생각해주고(?) 휴, 한참 진지하게 블룸비바네 극장판 보다가 갑자기 꽁트 보는 것 같아서 즐거웠네요^^ 웃음과 진지함이 공존하는 갓세션 헤불.

 소울 인코더로 살면서 이런건 또 처음 보네

 여튼 다리는 부러졌어도(..) 로스트는 진심입니다. 이 녀석은 진심으로 이기고 싶어 한다고요. 4연격ㅡ 죽음의 死를 꿈꾸면서 로스트는 앞을 가로막는 와이번을 공격합니다.

 

봤죠? 죽었죠?

 

?


 아 거참 여기서 펌블 대미지가 나오는 건 또 뭐람^^ 하지만 우리 로스트의 전설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아직 3격이나 남았으니까? 펑펑 터트려줄 테니까 기다려라?

 

또 성공이죠?
??????


 ㅅ... ㅅㅂ뭐지 이건ㅋㅋㅋㅋㅋㅋ대미지 판정이 두 번 연속 펌블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 참 진기한 광경이네요^^ 마지막 화라고 그냥 보내주질 않네 이런 재미난 것도 보여주고 ( ͡° ͜ʖ ͡°) 저희가 아쉬운 만큼 이 세션도 저희가 아쉬운 거겠죠. 이해합니다ㅎㅎ 하지만 다음 꺼는 맞자?

 

우와아아악 (번역: 맞아라!)


 아!!!!!!!!!! 어째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쯤 되면 이브 잘못이네요 야!!!^ㅁT 이브야! 똑바로 안 휘두르니!!! (가시다뽑음(아니뽑으면안되네(꽂아놓음 펌블 2번에 준펌블 1번이라니요.........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입니다ㅋ 

 


 급기야 마스터님의 배려로ㅠㅋㅋㅋㅋ 다시 한번 굴리게 됩니다... 하긴 저 대미지는 좀 너무하긴 하죸ㅋㅋㅋ 만약 이번에도 또 펌블 뜨면 어... 그냥 여기서 바로 이브 은퇴시키는 거로 (침착)

고생했다 스트야...


 다행히 정상적인 대미지가 나옵니다 휴... 그래 이 정도는 나와야지 도대체 아까 그건 뭐였던 걸까요...? 사실상 빗나간 것과 마찬가지인 대미지ㅠㅋㅋ 죄송합니다 이브가 참 모지란 채찍이라서요... (오열) 하지만 아직 마지막 4격이 남아 있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크리 풀댐을 뽑으면 앞의 패착은 다 사라지는 것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다!!

 

나는 천애다!!!
반은 맞췄다!!!


 거참 버거운 시간이었네요ㅠㅋ 그래도 중요한 건 뭐겠습니까? 4격이 다 들어갔다는 겁니다ㅎㅎ 대미지가 좀 후레하긴 했지만 아예 안 맞는 것보단 낫잖아요ㅎㅎㅎ 심지어 대미지 두 개는 멀쩡하게 들어갔으니 대만족입니다... 휴... 로스트 정말 수고했어요ㅠㅠ

 마침 좋은(?) 장면이 나온 김에 저희도 인연 포인트를 올려보기로 합니다. 4화에서 이브랑 로스트 단둘이 얘기할 만한 시간은 어쩌면 지금뿐일지도 모르니까요.

 마지막엔 우린 부둥켜안고 우는 사이가 될 거라고 했죠?

 이브와 로스트 역시 앞서간 둘을 따라 에리어를 이동하면서 대화를 나눕니다. 이브는 눈치 없이 이런 소리를 해요.

 


 이 상황에서 스프린터 얘기라니(..) 하지만 어쩌면 이게 두 사람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메타적으로야 클맥에서 어지간해선 패배하지 않을 거라고 믿지만, PC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러 가는 거니까요. 그래서 로스트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브가 떠든 거랑 로스트가 그걸 들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죠(?) 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이니 그 말을 들었을지 못 들었을지 확인해보겠다며 나코님이 판정을 진행합니다ㅋ


 안돼 히히 못가! 이브는 로스트를 붙잡고 이야기합니다. 제3절까지의 이브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이야기들을 해봐요. 로스트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이 맥락에서 이브라는 캐릭터가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얼마나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지 궁금했거든요. 만약 어색하지 않다면 지난 회차들을 통해서 충분히 성장했다는 뜻이니까요.

절대 이브가 하지 않을 이야기. 이 녀석은 지금까지 타인의 감정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야잌ㅋ 츤데레얔ㅋ


 평소 같으면 이쯤에서 물러났겠지만... 오늘은 마지막 화라고요? 이브는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다고요? |ㅅㅇ) 이미 이 시점에서 저는 (저와 이브의 대결에서) 이브가 승리했음을 느꼈습니다. 특히 다음 대사를 칠 때는, 이브가 제게서 완전히 졸업을 선언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아이고 부끄러워라-///- 하지만 원래 진심은 부끄러운 법이야


 제 손에서 태어났을 때만 해도 이브는 절대 이런 녀석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제2절, 제3절, 그리고 제4절의 이야기를 통과하면서 이브는 예전과 전혀 다른 녀석이 되었습니다. <헤븐즈 불릿> 캠페인을 시작할 때 캐릭터의 성장과 버디 관계의 진전을 지켜보는 게 목표였는데, 전자의 이야기는 이 장면에서 일단락이 된 듯했어요. 이브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모두 후기에 적을 수 있었고요. 아직 후기를 쓰는 도중인데도 왠지 뿌듯하네요. 


 그리고 이브는 마지막 인연 포인트를 올립니다. 저는 이 대사로 이 세션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브에게 로스트가 영원한 버디이듯 제게도 이브는 <헤븐즈 불릿>의 영원한 상징이 될 거거든요. 이 캠페인, 나아가 이 룰을 이브의 이름으로 기억할 거예요.

 버디, 서로의 가능성을 믿는 관계

 그렇게 모두가 어렵사리 에리어 1에 도착합니다. 남은 건 저 너머에 있는 린과 마주하는 것이죠. 그전에 블룸과 비바도 버디로서 나눌 만한 마지막 대화를 나눕니다.


 블룸은 린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도 이게 옳은 일인가 싶어서 걱정합니다. 린을 막기 위해서 가는 것과 별개로, 린이 자신들을 반겨줄까 하면서요. 블룸은 이런 상황에서조차 린의 마음이 가장 중요했던 거예요.

 


 비바의 논리는 일관적입니다. 정말로 린이 자신의 희생을 바라는가? 린의 자살은 결국 타살이 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바는 망설이지 않아요. 설령 린이 비바가 오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비바는 갈 거예요. 그게 린의 마음을 부수는 길이 된다고 해도, 일단 린이 있는 곳까지는 무조건 갈겁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일은 블룸의 몫이라고 말해요.


 여러 가지 의미로 한 말일 거예요. 아포토시스의 역할뿐 아니라, 블룸이기에 린의 마음을 구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말한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한번 린을 혼자 내버려 둔 적이 있기에 자신의 힘으로는 린을 설득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걸 지도요. 그걸 알기 때문에 블룸에게 린을 구원해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았어요.


 힘으로 린을 막는 건 가능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린을 구하려면 린의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블룸이라고, 블룸이야말로 린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거고요. 어쩌면 이때부터 비바는 자신이 없는 미래를 상정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블룸은 비바의 의지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비바는 그런 블룸에게 인간성을 부여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비바가 블룸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행위가 인상적이었어요. 평생 네필림을 적으로 여기고 싸워온 비바가, 네필림인 블룸에게 '인간'의 칭호를 부여한 거니까요. 마치 제2절에서 윌 형사님이 의원을 향해 총을 발사했던 것처럼 인류와 네필림의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듯한 행위였어요. 블룸이 네필림이든 인간이든 상관없이, 비바에게 그녀는 자신이 평생에 걸쳐 지키려고 했던 인류의 일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블룸의 답입니다. 이보다 더 진해질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더욱 진해지는 이 둘의 유대라니.... 노을 뒤에 찾아오는 밤처럼 짙고 아름다웠어요. 이 버디의 이야기를 바로 앞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제가 승리자가 아닌가 싶네요.


2페이즈 : '디바인' 린 교전


 네필림을 물리치고 목적지에 도착한 일행은 마침내 그녀와 조우합니다. 파란 머리를 휘날리며 공중에서 우릴 바라보고 있는 린...

헐 린 너무 귀엽잖아ㅠ

 

크게 크게 보자


 맵에 다들 린이 나오자마자 탄성을 멈추지 못했는데요, 이미지가 너무 귀여워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정면으로 저렇게 떡하니 서 있으니 보스로서의 위상이 느껴지더라고요. 마치 PC들이 아니라 모니터 너머의 PL을 보고 있는 것 같고(짜릿) 한편으론 정말 린이랑 싸워야 하는구나 싶어서 긴장이 됐습니다.


 린은 자신의 희생으로 모든 걸 끝내고 싶다고 합니다. 소울 인코더들이 끝나지 않는 싸움 속에서 망가져 가는 걸 막고 싶다고 해요. 그녀의 말대로 린이 술식을 끌어안은 채 죽으면 네필림은 시간 역행의 힘을 잃고 필멸의 존재가 될 겁니다. 하지만 그런 린의 이야기에, 비바는 잠시 가면을 벗고 진심을 드러냅니다. 

비바의 캐릭터를 생각해보면 초강수를 둔 셈이다.


 말은 하지 않아서 그렇지 비바도 이브만큼, 아니 이브 이상으로 죽음을 원했던 소울 인코더에요. 그런 비바가 린에게 함께 살아갈 테니 죽지 말라고 부탁하는 장면인 겁니다. 허나 안타깝게도 린은 그 이야기를 믿지 않습니다. 린은 이미 비바를 오랫동안 기다렸었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고, 설령 둘이 함께 살아남는다고 해도 비바가 죽지 못해 살아가는 소울 인코더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으니까요.

 어쩌면 사실 린도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리히트가 이런 모습으로 살아있는 게. 오랜 시간을 견디며 리히트와 다시 만나길 기다렸는데, 다시 만난 리히트는 만질 수도 닿을 수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으니까요. 리히트가 은연중에 죽음을 바라고 있다는 것도 이미 눈치챘겠죠.

 그 죽음을 눈치채게 된 계기는 역시 사이렌 피니어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카밀의 죽음 앞에서 소멸을 바라는 피니어의 모습을 보고 소울 인코더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삶을 연명하고 있는지 알아버렸을 거예요. 내심 조마조마하게 비바의 눈치를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리히트는 괜찮은 거겠지? 하고요. 그런데 사실 아니었던 거예요. 소울 인코더들은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던 거에요. 그 밝았던 사이렌 피니어가 카밀의 죽음 앞에서 극도의 허무감에 사로잡히며 죽고 싶다고 외쳤던 것처럼...

 어쩌면 다시 만나자는 약속 때문에, 자신과 했던 그 약속 때문에, 리히트가 이 영원에 가까운 처벌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거기까지 번지면 린도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겠죠. 비록 여기서 자신이 술식과 함께 죽는다고 해서 리히트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이 이 세상에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가 그것뿐이라면 칼을 휘두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설득은 실패합니다. 그리고 전투에 들어갑니다. 린을 막기 위해서는 린의 마음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저 상처를 덮기 시작한 켈로이드를 먼저 잘라내야 해요. 린의 상처는 저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두터웠던 거예요.

 

 밀어내는 린, 다가가는 우리


 2페이즈의 전투는 린을 감싸고 있는 시공간의 장벽을 뚫고 들어가 린을 공격하는 겁니다. 하지만 린이 PC들을 계속 밀어내는 스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접근하는 게 만만치 않아요. 다행히도 메인 페이즈에서 올려두었던 인연 포인트만큼 장벽의 에너지가 깎이는 기믹이 있었습니다. 마침 저희는 MAX+a의 인연 포인트를 찍어두었기 때문에 에너지를 꽤 깎은 상태였고요.

린의 체력이 이러했던 이유!


 메인 페이즈의 행동이 전투 페이즈에서 영향을 주는 걸 너무 좋아하는 저이기에 + 린이 너무 무서웠기에ㅋㅋㅋㅠ 기믹 결과 확인하고 기뻐했네요. 한편으론 린은 밀어내고, PC들은 다가가려는 이 구성 자체가 현재 이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듯해서 좋았어요. 캠페인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전투로서도 의미가 있는 싸움이라 더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이번 페이즈도 마찬가지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뽑아서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보스전이라서 그런지 정말 놀라운 장면이 또 잔뜩 나왔거든요ㅠㅋ 함께 하시죠!

 

 내가 보스다

 싸움의 포문은 로스트가 열었습니다. 제일 처음으로 턴 오더를 잡았거든요. 공격은 잘 들어갔습니다. 문제는 린이 이걸 막았는데...ㅋ

1로 막았다는 거죠...ㅋㅋㅋ


 아니... 어떻게 이게 여기서 1이 나올 수 있죠?ㅠ 아... 뭐 1이 나올 수는 있는데요ㅇ)-( 시작하자마자 1로 딱 막아버리니까 갑자기 엄청 무섭더라고요. 내가 보스다! 하고 외치는 것 같은 저 주사위 대체 뭔데ㅋㅋㅋㅠ 이렇게 겁 안 줘도 이미 다들 무서워하고 있단다^ㅁT
 


 그리고 로스트의 이어진 공격이 2번 연속으로 실패하는데 이것도 완전 짜릿했어요. 마치 린의 힘에 놀라서 실패한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보스가 1로 대미지 막아낸 다음에 바로 PC가 2번 연속으로 판정에 실패해버리면 아무래도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더군요ㅋ 그리고 보스로서의 아우라에 정점을 찍겠다는 듯, 린은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사실 인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야기죠. 린 스스로 희생양이 되어 네필림과 오더들을 모두 없던 거로 만들어주겠다는 거니까요. 차마 그 결과물까지는 부정할 수 없는 게 좀 고통스러웠어요. 린이 죽는 건 원하지 않지만 솔직히 그 결과는 원하니까요. PL로서도 모순된 감정을 느껴서인지 세션이 끝난 후에도 꽤 오래 기억에 남아있었던 장면입니다. 인간이란...

 이브도 할 말 있어요!

 하지만 린 보스의 아우라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어서 이브가 공격을 하는데ㅋ 여기도 주사위가 정말 황당했거든요.


 99로 실패...ㅋ 대체 얼마나 쫀 거냐고요ㅠ 물론 린이 정말 무섭긴 했지만요... 모니터 너머의 PL도 이렇게 무서운데, 직접 싸우고 있는 PC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휴... 여튼, 이대로는 가오가 안 살아서 알피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말을 걸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99는 심했잖앜ㅋㅋㅋㅋㅋㅋ


 린은 자신의 목적이 '죽음'이 아니라 '안식'이라고 말합니다. 오, 그렇다면 이브도 할 말 있어요. 제4절의 이브는 이제 그런 안식을 원하지 않거든요.


 살려달라고 빌어봅니다. 물론 애초에 린이 물러날 거라고는 생각하고 빈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린도 이 말에는 조금 충격을 받았는지 미안하다고 해요. 이런, 여기선 상냥하게 린을 위로... 해줘야 하는데 그런 거 못 하는 놈이죠, 이브는.

 미안해 린!!!! ༼;´༎ຶ ۝༎ຶ`༽!!!! 하지만 이건 이브의 진심이 아니야!!! 사실 린을 흔들기 위한 어그로였어!!!! (뒤늦은 해설)


 살인자라는 말에 흔들릴 정도의 결의라면 린도 아직 망설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린 자신도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려는 거예요. 혹시나 진심인 게 아닐까 싶어서 남아있었던 마지막 의구심마저 사라집니다. 역시 린을 말려야겠어요.

아직 설득한 여지가 남아있는 것 같으니까요.


 로스트의 진심

 하지만 이브의 어그로가 너무 거시기했던 것인지(..) 이후로 린의 공격은 점점 더 강력해집니다^^;; 라운드 하나만 더 넘어갔다간 죽을 것 같을 정도로요ㅋㅋ 마침 전장을 쳐부수고 있던 린은 이브의 부상표가 깨끗한 것을 눈치채고(..) 조금 전의 어그로를 응징하려는 듯 공격을 날립니다.


 98인데 왜 성공이냐곸ㅋㅋㅋㅋㅋㅋㅋ 대미지도 최저치 같은데 35?ㅋ 아무튼 저거 맞으면 이브는 죽습니다. 종잇장이니까요!! 로스트를 믿습니다!^^

 

아이고 그런데 크리티컬로 피해버리지 뭐예요 이 자식ㅠㅠㅠㅠㅠ


 그러고 보면 로스트는 항상 이브의 회피에는 진심이었어요... 이 캠페인을 하면서 의외로 이브가 대미지를 받은 적이 거의 없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로스트가 미친 듯이 회피해 줘서 여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아닌지ㅠ 그런데 클맥에 와서까지 이러니까 갑자기 뻐렁차버려서ㅠㅠㅠㅠ 로스트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어요으아앙ㅠㅠㅠㅠ 내 버디아악ㄴㄹ!!!! 깨끗하게 공격을 회피한 뒤, 로스트는 린에게 애타는 심정으로 외칩니다.

그리고 로스트는 린에게 부탁합니다


 이 대사를 듣는데 어찌 보면 로스트야말로 지금 린의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한때 로스트도 린처럼 궁지에 몰려 죽음을 꿈꿨으니까요. 제1절에서 이브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지상에 내려가 스프린터의 유산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지금 로스트는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생각하면 참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도 보입니다. 그 절망적이었던 로스트도 이렇게 살아남았으니까요. 로스트 자신도 할 수 있었으니 린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게 아닐까요?

 비바의 완벽한 5연격

 그렇게 다시 시작된 2라운드. 2라운드는 다들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선제치가 난리도 아니었습니다ㅋㅋ 1라운드 해보니 진짜 장난이 아니긴 했거든요... 최대한 빨리 린을 쓰러뜨려야 한다;;

심지어 20 뽑았는데 나 꼴찌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진심이었던 건 비바였어요. 이 와중에 24를 뽑아버리다니ㅋ 비바가 얼마나 간절한 상황이었는지 느껴지더라고요. 주사위가 해주는 캐해는 언제나 맛있지만, 비바는 정말 주사위 캐해를 너무 잘 받는 캐릭터라서 부럽기도 합니다ㅠ 후, 그렇게 비바는 린을 향해 진심을 담은 5연격을 날립니다. 그런데 이게요...


  세션 최초로 5연속 크리티컬이 터진 게 아니겠어요? 세상에 선제치 24에 5연속 크리티컬이라니... 정말 비바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쥐어 짜낸 듯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진심에 단단하게 굳어 있던 린의 마음이 부서지기 시작합니다. 비바는 린에게 말합니다.


 비바에게 있어 린은 영원한 어린아이입니다. 린이 오더여서, 술식의 그릇이어서 막으려는 게 아니에요. 처음 버디가 되었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비바에게 린은 인도해줘야 할 어린아이였던 거예요.

 
 잘못된 선택을 하려는 린을 인도할 수 있는 건 역시 비바뿐이겠죠. 블룸 또한 그 사실을 인정합니다. 린의 미래는 블룸이 함께 걸어가겠지만, 린의 과거를 매듭짓는 건 비바의 역할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결국 린은 쓰러집니다. 이 장신구가 결국 무해내고 만 거예요.


 그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것과 마주합니다.

 

.

.

.

.

.

.

.

.

.

.

.

.

.

.

.

 

 

 

 

3페이즈 : 술식 교전

 


 린의 모습이 벗겨지고 술식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저는 위압감이 느껴지는 최종 보스를 좋아하는데 단지 덩치가 크다고 해서 위압감이 생기는 건 아니거든요. 근데 이때의 린은 <헤븐즈 불릿>의 보스가 아니라 <가든 오더>의 최종 보스 같았어요. 이 녀석, 그야말로 이 세계의 원리 그 자체라서...


 최종 보스답게 이런 무서운 스킬도 가지고 있었고요(..) 조금 전 페이즈에서 2회씩 행동하는 것도 죽을 뻔했는데 3회라니ㅠ 미치겠다 별들아★ 하지만 잡몹 없는 일대일 보스전이니 이 정도 디메리트는 있어야겠죠ㅠ 등장하자마자 린은 공격을 한 방 날려줍니다.


 무려 대미지 44...ㅎ 그렇습니다 이것은 너희들 다 죽이겠다는 주사위의 선언...(은은) 하지만 진짜 최종 보스니까요. 이번 전투에서는 목숨 걸고 모든 걸 털어버려도 되는 거니까요! 오히려 의지가 타오릅니다. 이기고 싶어요. 기왕이면 아름다운 장면도 많이 만들고 싶고요.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정말 멋진 전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라

 술식을 말합니다. 이 싸움을 멈추고 싶으면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라고요.

 


 인간을 품어야 하는 세계가, 도리어 인간을 바이러스로 여기고 그 가치를 증명하라고 주장합니다. 세계의 면역 체계가 작동하자마자 인간을 먼저 제거하려 드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죠. 뭐... 인간으로서 할 말이 없긴 하네요. 인간은 지구의 암세포 같은 존재라던 유명한 문구도 떠오르고요. 하지만 지구는 저희가 구할 수 없어도ㅠ 이 세계는 저희의 힘으로 구할 수 있으니까요. 굴복할 생각은 없습니다.


 비바는 술식에게 고합니다. 당신은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이미 인간을 바이러스로 인지하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망가진 면역 체계를 설득할 생각은 없다고요. 대신 비바는 이 세계를 한번 무너뜨리는 것으로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겠다고 합니다.


 도도하게 서로를 부정하는 모습이 고수들의 싸움 같아서 짜릿했어요. 특히 비바는 소울 인코더, 그중에서도 장신구라는 작디작은 몸이니까요. 인간의 몸으로 맞서기에도 거대한 세계를 장신구라는 작은 몸으로 맞서는 비바의 모습은 영웅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겠다는 듯이 4연속 크리티컬을 날립니다. 마지막 공격은 실패하지만, 약간 미치지 못한 것마저 룽했어요. 여기까지가 비바가 그 작은 몸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하지만 세계는 비바의 방식을 다시 부정합니다. 자신을 무너뜨린다고 해서 인간의 가치가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화가 난 삼류 배우가 무대를 부쉈다고 일류로 거듭나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에 대해서 비바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인류는 아직 정답을 찾고 있을 뿐이라고.


 인류는 아직 부족하지만, 그 결과 소울 인코더와 헤븐즈 불릿이라는 오답을 잔뜩 써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요. 참... 어떻게 이런 대사를... 비바는 정말 정말 인간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따지고 보면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게 인간인데,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면 이 상황에서도 인간을 옹호할 수 있는 걸까요?

 그리고 그 질문에 다른 방식으로 대답하려는 또 다른 존재가 있습니다.

 2. 로스트,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다

 비바가 소울 인코더의 입장에서 인간의 가치를 호소한다면 로스트는 헤븐즈 불릿으로서 인간의 가치를 호소합니다. 인간이 되길 꿈꿨지만 그러지 못해 무기의 형태로라도 그들 곁에 있고자 했던 로스트가 술식을 향해 인간의 가치를 호소합니다.


 로스트에게 술식의 질문은 매우 잔혹했을 거예요. 자신을 위해서, 또는 자신과 함께 살다가 죽어간 사람들의 죽음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라는 소리니까요. 하지만 이건 로스트가 찾아야 하는 답과 맞닿아 있는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왜 싸워야 하는가? 왜 살아가야 하는가? 로스트를 위해서, 또는 로스트 곁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유지를 이어가면서까지 로스트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로스트의 대답이 정말... 이 캠페인의 테마로 삼아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좋았습니다...


 비바도 그렇지만 로스트도 중요한 순간에서는 논리가 아닌 가슴을 묻는 게 너무 짜릿하지 않나요. 결국 로스트를 움직인 건 정답이 아닌 감정이었다는 것이요.


 술식은 그런 로스트에게 흥미를 느끼기라도 한 걸까요? PC 중에서는 처음으로 로스트에게 이름을 묻습니다. 그를 인간의 아이라고 칭하면서요. 하지만 로스트는 그 부름에 응하지 않아요. 자신의 이름을 고하기는커녕 온몸으로 거부합니다. 인간을 무가치하다고 말하는 술식의 오만함에 솔직하게 분노합니다.


 자신의 존재의 근원인 인간을 부정하는 술식에게 알려줄 이름 따윈 없는 것이지요. 인간을 부정하는 술식을 부정한다ㅡ 이 장면에 와서 로스트는 비로소 자신의 근원을 인정해버린 것입니다. 나는 인간이라고 외치고 있는 거예요. 인간이 되고 싶었지만, 인간이 될 수 없어서 스스로를 무기라고 칭했던 그가 이제 자신을 인간이라고 소리쳐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하, 여기 다시 읽는데 너무 멋있어서 소름이ㅠㅋㅋㅋㅋ 진짜 너무너무 로스트다운 방식이었다고요... 그는 구태여 인간을 아름다운 존재로 수식하지 않아요. 인간은 추합니다. 인간은 약하고요, 이기적이고 더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트는 더러운 존재 그 자체로서 인간을 수긍합니다. 그래? 내가 더럽다고? 그럼 봐, 이 추악함을 보라고, 하면서 인간의 치부를 완전히 드러냅니다.


  인간을 멸균의 대상을 생각하는 술식에게 가르쳐줄 이름 따위는 없어요. 지금까지는 자신의 나약함을 외면하려 자신을 무기로 칭했던 로스트지만, 이제는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래, 나는 인간이 만든 죄악. 그래서? 그래서 어쩌라고? 나는 죄악의 산물이기에, 마음껏 숨을 쉴 수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도 없단 말인가? 

 


 트롤리 딜레마는 애초에 아주 오만한 전제를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수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요. 하지만 인간의 목숨은 수량으로 환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의 존재 가치는 입니다. 100명이든 1명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오더든 인간이든 상관없어요. 그런데 왜 우리에게 가격표를 붙이려는 거죠? 누가 이렇게 오만한 문제를 만들었나요? 가상의 트롤리는 치워버리고 인간의 가치를 증명해봅시다.

 


 로스트는 이브의 질문에 대해 비로소 대답합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 어떤 조건도, 그 어떤 삶의 형태도, 나의 존재 가치를 규정할 수 없습니다. 오더니까, 헤븐즈 불릿이니까, 소울 인코더니까 살아가면 안 된다? 살아야 한다? 누가 그런 사기를 치고 있죠? 만약 세계가 그런 사기를 치고 있다면 그 세계를 부정해야 할 일입니다. 그건 거짓말이니까요.


 삶 그 자체를 합목적성에 따라 살아가겠다는 이 소년 칸트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저는 로스트의 이 대사로 <헤븐즈 불릿>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테마 중 하나가 나왔다고 생각했어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다는 테마요. 인류든, 오더든, 헤븐즈 불릿이든, 소울 인코더든 상관없이.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했네요.

 나코님의 진중한 롤플레잉에 다시 한번 감탄하고 감사한 장면이었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고민하고 노력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사라는 게 느껴져서 짜릿했거든요. 로스트와 함께 버디가 되어 성장한 나날들에 보람을 느낍니다. 이런 PC, 그리고 PL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당신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었어요

 로스트가 멋진 대답을 줬으니 이브도 대답을 찾으러 가야 해요. 이브도 술식이라는 시험지에 자신의 답을 적기로 합니다.


 어찌 보면 술식은 자신을 태어나게 만든 존재. 이 왜곡되고 그릇된 몸은 그녀로부터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그녀에게 말하기로 합니다. 제4절의 이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 있었으니까요.


 로스트가 인간의 가치를 정의했다면 이브는 실제로 그 가치에 따라서 달라진 삶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론편이 로스트라면 이브는 실전편이에요. 이브는 말합니다. 이렇게 왜곡된 삶이었지만, 이도저도 아닌 존재로 태어나, 착취당하는 존재로 살다가, 지금은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싸우고 있지만 그 모든 삶의 조건이 그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이브는 행복했노라 선언합니다. 누구보다도 삶을 부정하고 싶어 했던 이브가, 이제는 삶 그 자체를 받아들기로 합니다. 로스트의 선언이 영향을 주었겠죠. 로스트와 함께 한 지난 시간이 큰 영향을 줬을 거예요. 인간의 가치, 이거라면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적어도 이브의 PL로서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ㅋㅋㅋㅋㅋ아 로그 읽다가 뻘하게 웃겨서 ㄴ헝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의 미래에 네가 있어 줬으면 좋겠어

 
소울 인코더와 인간 측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네필림의 대답을 들어야겠네요. 블룸은 술식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제 그녀의 공격으로 린 또한 자유로워지겠죠. 블룸은 마지막 진심을 담아 술식에게 공격을 날립니다.


 아아, 그런데 대미지가 무려 크리티컬에 풀댐ㅠ 아... 주사위야... 원래 서사는 주사위가 주시는 대로 받는 것이긴 하지만, 2페이즈에서는 비바가 5연격으로 '린'을 쓰러뜨리고, 3페이즈에서는 블룸이 크리풀댐으로 '술식'을 무너뜨리는 거ㅠ 이쯤 되면 운명 아닌가요...


 그리고 PC1답게, 블룸은 그가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에게 들은 모든 이야기를 차분히 정리합니다. 블룸이 저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들어주고 있는 줄 몰랐어요. 내심 블룸은 네필림 쪽에 가까우니 우리 이야기보다는 자신만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그건 제 착각이었습니다. 블룸은 네필림이 아니라 블룸이었던 겁니다.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오만한 행위에 블룸 또한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다만 로스트처럼 거부하는 방식으로 저항하지 않아요. 블룸을 술식을 끌어안습니다. 이 세계의 모순 그 정점에 있는 블룸이기에 술식의 균열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공격.


 두번째 공격도 크리에 풀댐... 미쳤다 진짜... <ㅇ> 캠페인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공격 두번이 전부 다 크리티컬에 풀댐이라고요? TRPG라는 건 스토리랑 캐릭터가 좋아도 주사위가 받쳐주지 않으면 예쁘게 매듭짓기 어려운 법인데, 이쯤 되면 주사위가 저희의 캠페인을 전력으로 지지해준다고 봐도 되겠죠. <헤븐즈 불릿> 캠페인의 마지막 주사위가 블룸의 결의에 부응하는 수치로 나와줘서 흥분했었어요.


 내내 망설이던 블룸이지만 마지막 궤적을 그을 떄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엉망진창인 세계일지라도, 그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세계일지라도 살아가겠노라 합니다. 그녀는 이 왜곡된 세계를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선택의 시간

 

 하지만 싸움이 끝났다고 해서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술식을 린으로부터 떼어내긴 했으나, 그 술식의 힘을 어떻게 다룰지는 저희가 정해야 하거든요. 어찌 보면 여기서부터가 본편... 그래서 PC들은 어떻게 할 생각인 걸까요? 누구를 희생시키고 누구를 구할 생각인 걸까요?


 여기서 잠깐이지만 소울 인코더들도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혹시나 해서 살짝 제안드렸는데 반영돼서 좋았어요ㅎㅎ 초월적인 시공간 속에서 육신의 굴레를 벗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로를 대면하는 두 버디. 호들갑스럽지 않은 대면식을 치른 뒤, 저희는 주어진 조건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전제 조건

 1. 술식의 파괴와 함께 네필림의 불멸은 사라진다

 2. 술식을 파괴하려면 하나의 '종(種)'이 술식과 함께 시간 역행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3. 시간 역행의 시점은 임의로 정할 수 있다.

 이 전제 조건은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기 때문에 팟에 따라서 다채로운 결말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같은 경우에도 조금 독특한 선택을 한 편이고요. 그럼 저희의 최종 결정에 앞서 무슨 선택지가 있었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선택지

 1. 소울 인코더의 소멸 : 술식이 소울 인코더를 시간 역행의 대상으로 삼는다. 소울 인코더가 사라지는 대신, 헤븐즈 불릿과 인간은 네필림을 물리치고 지상을 되찾는다. 

 2. 네필림과 헤븐즈 불릿의 소멸 : 술식이 네필림을 시간 역행의 대상으로 삼는다. 네필림으로부터 태어난 헤븐즈 불릿의 존재 또한 소멸한다. 소울 인코더는 생존한다. 

 결국 소울 인코더 or 헤븐즈 불릿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건데, 네필림만 없애는 거라면 모를까 헤븐즈 불릿까지 보낼 수는 없으니 참 난감합니다. 다른 선택지도 있긴 했습니다. 가령...

 3. 린의 소멸 :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오더인 린을 시간 역행의 대상으로 삼는다. 헤븐즈 불릿도 소울 인코더도 남는다. 


 그야말로 한 명만 희생하면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계속해서 트롤리 딜레마의 전제를 부정해온 저희인 만큼 이 선택지는 절대로 고를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무서운 선택지가 하나 더 나오는데요.

 4. 블룸(아포토시스)의 소멸 : 지구상의 유일한 종인 아포토시스를  시간 역행의 대상으로 삼는다. 블룸의 소멸로 헤븐즈 불릿, 소울 인코더, 린 모두 살아남는다.

 아 정말 싫다ㅋ 오히려 점점 가관인 기분이 드는 것은...? (소울 인코더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차라리 첫 번째 선택지가 제일 나아 보이는 것은?!?! 이후, 저희는 미친듯한 토론을 시작합니다. 조건이야 여러 가지 있으니까 제3의 방법이 있을 것 같았거든요. 우리 중 누구도 죽지 않으면서 네필림의 불멸만 처리할 방법이!!!

다들 닉네임의 상태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마 다행인 건 특정 존재의 시간을 돌린다고 해서, 현재 상황까지 리셋되는 건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즉, 우리 모두의 시간이 리셋 당시로 돌아가는 건 아니고 현재 상황은 고정된 상태에서 그 요소 하나만 달라지는 느낌이었네요. 그렇다고 하시니 5의 선택지가 떠오릅니다.

 5. 헤카테의 소멸 : 헤븐즈 불릿을 구성하고 있었던 네필림/인간 중, 네필림 쪽을 담당하는 헤카테의 소멸. 이것으로 헤븐즈 불릿은 인간이 되고 네필림 역시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처리된다.

 가능한지 여쭈었는데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하셔서... 이것도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하고 고민해보기로 했습니다만, 결국 이건 블룸이 헤카테에게 죽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거라서ㅠ 이건 이것대로 미치겠더라고요. 문제는 블룸이 줄곧 자신을 네필림에 가까운 존재로 인지해왔었다는 거고요.

 

핵심을 짚어낸 륩님


 어찌 됐든 마지막 선택을 하는 것은 블룸입니다. 다들 나름대로 답은 나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모두 블룸에게 한 마디씩 전하기로 합니다. 먼저 이브부터 얘기했어요.

 
 이브는 당연히 블룸이 인간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요. 이렇다 할 근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이브가 인간의 삶을 꿈꿔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삶을 헤븐즈 불릿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을 뿐이에요. 더 이상 종이비행기에 쓸려 사라지는 삶을 살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비바는 린에게 말했듯 이 모든 것은 블룸의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블룸이 희생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비바는 지금도 간신히 살아있는 상태니까, 아직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 때 블룸과 린이 행복해진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해요.


 결국 비바도 블룸이 인간을 선택하길 바랍니다. 비바의 마음도 이브와 마찬가지일 거예요. 블룸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길 바라는 거겠죠. 비바가 그토록 사랑했고, 그토록 지키려 했던 인간의 삶을 블룸에게 주고 싶은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 차례는 로스트였습니다. 같은 헤븐즈 불릿의 입장이기에 로스트만이 블룸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로스트는 블룸이 고민하는 핵심을 찌릅니다. 헤븐즈 불릿은 탄환인가 사수인가. 로스트라면 아마 헤카테를 미련없이 쐈을 겁니다. 하지만 블룸을 달라요. 블룸은 헤카테를 진짜 어머니로 여기고 있으니까요. 그러자 로스트는 말합니다.


 나코님 미친 사람... 미친 사람... <ㅇ> 너무 딱 맞는 비유인 데다가, 이 이야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완벽한 가이딩이었던 것 같아서 혼자 감탄하고 있었어요. 그렇다고 블룸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게 아닌 것도 좋았고요.

우리가 아닌 것들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로스트 역시 모든 선택을 블룸에게 맡깁니다. 단지 블룸의 뜻을 따른다는 정도가 아니라, 같은 헤븐즈 불릿으로서 종의 운명을 맡기겠다는 선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무슨 말인지 블룸은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블룸은 헤카테의 소멸을 선택합니다. 블룸이 그녀에게 세계의 운명을 맡긴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이 이상 헤븐즈 불릿이 필요한 세상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종이비행기에 쓸려가던 헤븐즈 불릿들. 그리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어야 했던 형사님. 불멸의 엔진이 되어 인류를 태운 채 날고 있는 중력 조작의 오더들.


 블룸은 자신이 아닌 세상을 위한 선택을 내리기로 합니다. 이런 판결이라면 헤카테도 납득하겠죠. 자신의 인자를 사용해 헤븐즈 불릿을 낳았을 만큼 인간을 사랑했던 헤카테니까요.

 

.

.

.

.

.

.

.

.

.

.

.

 

 
  승전가가 울려 퍼집니다. 네필림은 사라지고 지상은 온전히 인류의 것으로 돌아옵니다. 이 길고 장대한 싸움이 결국 인류의 승리로 끝난 거에요. 캠페인의, 아니 <가든 오더>의 이야기가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블룸은 예정대로 헤카테와 이별을 하러 옵니다. 어찌 보면 잔인한 장면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헤카테가 블룸을 원망하기는커녕, 마치 이날을 기다려왔던 것처럼 블룸을 받아들여 줬거든요. 어쩌면 헤카테는 이 순간을 위해서 헤븐즈 불릿들을 낳았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여행'


 그리하여 블룸은 모든 악몽으로부터 세계를 구원합니다. 블룸의 선택으로 이 세상엔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색깔의 꽃이 피어나겠지요. 피우고 초월하는 자 ㅡ 블룸 익시더는 그렇게 아포토시스를 초월하고 인간이 되었습니다.

 


엔딩 페이즈

 
 엔딩의 이야기는 그 후로 1년 후, 상공 도시의 사람들이 지상에 완전히 정착하기 시작한 때부터 시작합니다. PC마다 돌아가면서 장면을 만들었어요. 우리 PC들이 각자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그리고 어떤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는지 마지막까지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흰 이걸 위해서 지금까지 달려왔거든요.

 상처를 잃고 앞으로 나아갈 ㅡ 스카


 로스트는 더 이상 제복을 입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평상복 차림으로 윌 형사님과 함께 꽃을 보러 옵니다. 제1절에 나왔던 바로 그곳으로요. 싸움이 끝나면 함께 지상에 꽃을 보러 오자고 약속했었으니까요. 아직 온전히 복원되지 않은 공원과 폐허를 거닐면서 그들은 대화를 나눕니다. 라이언이 잠들었던 바로 그곳입니다.


 그리고 로스트는 윌 형사와 함께 꽃밭으로 향합니다. 꽃보다 잡초가 더 무성한 꽃밭이지만 그래도 스프린터가 묻혀 있을 그 땅입니다. 로스트의 여행을 갈무리하기에 딱 좋은 곳이죠.


 혼자 올 줄 알았던 이곳에 형사님과 같이 오게 된 것만으로 로스트에겐 해피 엔딩일 거예요.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역시 로스트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회고를 하더라고요.


 로스트에겐 짧지만 너무나 강렬한 여행이었죠. 그 짧은 시간 동안 소중한 사람을 잃고, 또 얻고, 다시 잃는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으니까요. 로스트가 그렇게 오랜 여행을 하는 동안 잡초들이 이만큼이나 자란 것입니다.


 제1절의 로스트를 생각하면 로스트에게 이보다 더 아름다운 엔딩이 찾아올 수 있었나 싶어요. 버디로서 로스트의 행복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인간으로서 늙어갈 미래를 축복해요. 로스트와 함께 세션을 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죽어가는 자들을 곁을 지키며 살아갈 ㅡ 미카 켄필드

 

 이브는 아서의 곁에 남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상으로 떠나고 나니 샹그릴라가 쓸쓸하기 짝이 없거든요. 아서는 씁쓸해합니다. 비참한 시작이었지만 샹그릴라로서의 삶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형으로서 동생이 이렇게 쓸쓸해 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죠. 이브는 아서를 위해 제안합니다.


 이브와 아서에겐 어떤 엔딩이 가장 이상적일지 줄곧 생각해왔어요. 어차피 이 둘은 이 모습 그대로 계속 살아갈 운명이니까요. 더 이상 소울 인코더가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으니 이제 둘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내내 고민하고 있었지만 제3절에서 이미 이 둘의 결말은 정해졌던 것 같습니다. 만약 아서와 함께 엔딩을 맞이하게 된다면 이 장면을 꼭 만들고 싶었거든요.


 이브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저도 기뻤어요. 이 말을 하기 위해서 그런 성장 과정을 거쳐온 게 아닌가 싶었다고요. 죽음을 바라 마지않았던 폭탄마가, 삶에 애착을 가지고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며 평생을 살겠노라 다짐하게 됩니다. 장면을 만드는 동안 저도 가슴이 뜨거울 정도로 두근두근했어요.


 꼰대인 아서도(?) 이것만큼은 흔쾌히 수락합니다. 거부하려면 거부할 수도 있었을 텐데 받아줘서 좋았네요. 이제 의회니 뭐니 하는 복잡한 정치 관계 속에서 고생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이 장면에서 아서도 왠지 후련해 보였는데 제 착각일런지요ㅎㅎ

 아무튼, 계획은 정해졌습니다. 다만 이 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인지라 스카를 불러서 도움을 요청하기로 해요. 마침 스카가 만나러 와주기도 했고요. (덥석!)


 1년 만에 만나는 건데 1시간 전에 만난 것마냥ㅋㅋㅋㅋ 새삼 정말 엄청난 사이가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따끈해집니다. 이 둘은 10년 후에 만나도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브는 이 계획을 떠올렸던 이유 중 하나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사실 이건 PL(에이미)의 마음이기도 했네요(..) 제3절에서 스카랑 카밀 너무 커플 분위기로 몰아간 게 미안해서ㅠㅠ;; 나코님도 즐겨주셨으니 괜찮긴 하지만 그래도 로스트 얼굴 보면 미안해 죽겠어욬ㅋㅋㅋ 로스트가 그나마 좀 쿨하게 넘어가 줘서 다행이지ㅠ 휴... 뭐어, 여튼 스카는 츤츤거립니다. 이 녀석은 1년 만에 만나도 츤츤거리네요!ㅋㅋㅋ 평생 이럴 것 같다니까'-^*

 


 그리고 전 스카의 그런 점이 좋아요. 이렇게 잘 맞는 둘이니 아마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종이비행기를 회수하러 다니겠죠. 이야기는 끝났지만 둘의 버디 관계는 이제 시작됐다는 느낌이 들어요. 새삼 가슴이 다시 벅차오릅니다.


 비로소 안식절을 맞이할 늙은 왕 ㅡ 리히트 슐레겔
 
 새로운 삶으로 나아간 로스트와 이브와 달리... 비바는 작동 정지 엔딩을 노립니다. 너무해...ㅠㅠㅠㅠ 하지만 비바의 삶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밖에 없는 엔딩이라 조용히 응원해주기로 했네요. 비바는 구인류로서 자신이 알고 있었던 모든 정보를 사람들에게 넘긴 뒤, 독일에 있는 고향의 집으로 향합니다. 지금까지 인간적인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던 비바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되니 너무 마음이... 정말 끝이 나는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비바는 이별을 고합니다. 블룸은 비바를 적극적으로 붙잡지 못해요. 버디로서 함께 호흡하는 동안, 이 결말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거겠죠. 하지만 블룸과 달리 린은 화를 냅니다.


 린이 화내는 것도 이해가 돼요. 자신은 이렇게 살려놓고 혼자 잠들겠다니, 이것 때문에 사실 린이 소울 인코더들과 함께 사라지려고 했던 거니까요. 그래도 비바는 쉬고 싶어 합니다. 아무리 마음이 원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어요. 이 이상 길어지면 마음이 무너질 것 같다고 하니 정말 말릴 방법이 없더라고요.

 
  비바가 고통스러웠는지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비바가 온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린을 구하려고 했던 건, 린을 걱정해서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소울 인코더인데 이런 고통을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비바...


 린도 초강수를 두지만 비바는 응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비바의 의지가 굳건하다는 뜻이겠죠. 결국 대신 이별을 받아주는 쪽은 블룸입니다. 블룸은 비바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리히트 슐레겔은 그것에 대해 우아한 인사를 고합니다. 처음 블룸을 만났을 때처럼요. 이 새로운 세계의 왕에게, 구인류로서 마지막 유언을 남깁니다.


 그렇게 내내 반짝이던 리히트의 불이 꺼집니다. 안식절을 끝내고 다시 돌아올 그 날을 기다리면서요. 그때에도 블룸과 린이 아직 이 세계에 존재한다면 셋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겠죠.

Knocking on heaven's door


 오랜 여행을 떠나는 소녀들 ㅡ 블룸 익시더

 그 후로 아주 긴 시간이 지납니다. 블룸은 키가 컸어요. 어른이 됐죠. 키가 훌쩍 커버린 블룸, 그 자체만으로도 블룸이 인간이 됐다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보다 기쁜 건 블룸이 밝게 웃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리히트와 다시 만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은 걸까요.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말은 아름다워 보였어요.

출처 : 우롱님 (https://twitter.com/oolong_trpg/status/1360768828767043587)


 그야 블룸이 이렇게 밝게 웃고 있는걸요. 분명히 저희는 이 장면을 보고 싶어서 그 오랜 시간을 달려온 걸 겁니다. 그리고 블룸의 마지막 미소와 함께 이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탄환들의 이야기가 막을 내립니다. 하늘로 쏘아졌던 탄환들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곳으로 떨어져 꽃을 피우기 시작해요. 그렇습니다. 우린 탄환이 아니라 씨앗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헤븐즈 불릿> 캠페인의 마지막 후기를 마칩니다. 마지막 후기이니만큼 캠페인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전부 담아보려고 했어요. 잘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만족합니다XD 이제 이 이야기가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새로운 땅에 씨앗을 피우길 바랄 뿐이에요.

 돌아보면 저희가 걸어온 모든 전쟁터에 꽃이 피어있습니다. 살고 싶어서 쏘아 올렸던 탄환은 씨앗이 되어 이곳저곳에 흩뿌려지고 눈 깜짝할 사이에 세상은 아름다운 정원이 되어있습니다. <가든 오더>의 결말로 이보다 완벽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을까요? 감히 자부하건대 TRPG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캠페인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든 오더>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고 오더들은 네필림과 싸우며 치열한 삶을 살아나갈 것입니다. <헤븐즈 불릿>은 그런 오더들을 위한 송가가 될 거예요. 싸움에 지친 오더들이 마지막 순간에는 이 캠페인을 통해 승리의 찬가를 부를 수 있기를. 이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많은 분들께 사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남아 새로운 이야기의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그리될 거라 믿습니다.

 

 마지막 인사

 

 아본님 : <헤븐즈 불릿> 캠페인,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탐라에서 보고 헐떡대다가 탑승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무리할 수 있을 줄 몰랐어요. 후기를 꼬박꼬박 쓰면서 따라가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이렇게 마지막 후기를 쓰게 된 것도 감지덕지하게 느껴집니다. 처음으로 캠페인의 모든 후기를 실시간으로 따라가며 쓰게 된 세션이 <헤븐즈 불릿>이라서 기쁘네요ㅎㅎ 그만한 가치가 있는 세션이었고 이야기였습니다. 세션마다 완벽한 셋팅은 물론이거니와 간결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기믹, 그리고 플레이어들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며 이야기를 이끌어주셔서 행복하다 못해 호화로운 시간이었어요. 매달 <헤븐즈 불릿> 캠페인 일정 + 후기 일정부터 정해놓고 다른 걸 생각할 정도로... 그 결과, 좋은 캠페인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너무 좋은 캠페인이 되어버렸네요. 이다지도 완벽한 마스터링으로 이 이야기를 즐길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언제나 그래왔듯 아본님의 정성이 담긴 이야기인 만큼 출간되면 많은 분들께 사랑받고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세션에 마음을 담아주신 만큼, 저도 모든 후기에 마음을 담았습니다. 저희가 즐겁고 행복했던 만큼 아본님도 후회없는 시간이 되셨길 바랄게요ㅎㅎ 참가하게 해주셔서 감사, 또 감사, 그리고 감사합니다!

 

 우롱님 : 우리 PC1... 정말 고생했어요! <헤븐즈 불릿>을 하면서 블룸이 PC1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는데, 이번엔 특히나 그렇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블룸이 PC1이기 때문에 그 선택이 의미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뭣보다 마지막 장면... 워낙 장대했던 이야기인 만큼, 이 이야기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하는 게 좋을까하고 늘 생각해왔는데 블룸이 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순간, 그렇게 활짝 웃어준 순간 정말 미련 없이 이 이야기를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블룸의 저 미소를 보고 싶어서 <헤븐즈 불릿>을 해온 게 아닐까 싶었을 정도로요. 언제나 셀화 극장판 같은 이야기를 연출과 묘사로 세션의 입체감을 1000% 살려주는 우롱님이기에 가능했던 연출이라 보는 입장에서도, 플레이하는 입장에서도 호화로웠습니다. 마지막까지 블룸 다운 선택과 블룸 다운 이야기와 멋진 이미지를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블룸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 오래오래 잊지 못할 거예요.

 

 류비엠님 : 주인공은 우리 모두였지만, 히어로는 비바였다고 생각해요. <가든 오더>와 <헤븐즈 불릿>의 연결 고리로서 비바가 캠페인 내내 고리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이렇게 빛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마지막 화에서는 주사위도 그렇고, 롤플레잉도 그렇고 그간의 포텐셜을 다 터트리면서 소름 끼치는 장면을 만들어줘서 좋았어요. 어떻게 비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죠... 비바를 롤플레잉 하는 륩님을 볼 수 없다니, 사실 이게 이번 캠페인을 갈무리하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고요ㅠ 버디는 아니었지만 같은 소울 인코더 동지로서 쌓아온 유대가 있어서인지 비바의 행보가 더 가슴에 와닿더라고요. 이브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었기 때문에 더욱... 모니터 너머에서 혼자서 아련하게 비바... 하면서 소울 인코더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었네요. 제가 이 정도로 소울 인코더로서의 이브에게 이입할 수 있었던 것도 륩님 덕분이었다고 생각해요. 비바, 정말 최고의 캐릭터였습니다. 제 티알생에 남을 PC일 거예요. 함께 한 시간들 잊지 않을게요:)

 

 나코님 : 나코님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ㅠ 컨디션도 현생도 받쳐주지 않는 상황이라 힘드셨을 텐데, 그 와중에도 로스트 탈만 쓰시면 너무너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주셔서... 로스트와 버디를 할 수 있었던 게 이제 와서 보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에요. 특히 이번 마지막 화에서 로스트가 했던 모든 대사, 모든 선택, 모든 행동들이 다 와닿아서 전부 다 박제하고 싶었을 정도였습니다. <헤븐즈 불릿>은 로스트의 성장담으로서도 정말 훌륭한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로스트가 클라이맥스 전투에서 했던 대사들을 <헤븐즈 불릿>의 테마로 삼아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늘 이야기의 핵심을 짚고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남김없이 표현하는 나코님인 만큼, <헤븐즈 불릿>의 로그가 소중해진 데에는 나코님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로스트랑 함께 한 버디 생활 행복했습니다. 나코님도 행복한 시간이셨기를 바랄게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