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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후기/가든 오더

What a Wonderful World

by 에이밍 2021. 1. 1.

 

날짜 2020. 08. 28. 金 / 2020.08.30. 土
GM 류비엠 (@RBM_TRi7) -
PC1 에이미 (@ehrtlr) 라이카
PC2 우롱 (@oolong_trpg) 할로우 로우
PC3 베릴 (@nave_cat) 세레나데
PC4 역설 (@paradoxcho) 이모션 악셀


 <백아의 죄상>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제 귀에 그 시나리오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백야의 죄상>과 같은 라이터인 미야마에 카오루 님의 <What a Wonderful World>라는 대형 시나리오가 있다는 소문이 말이죠. 심지어 가든 오더 최고의 마스터 피스다, 인생 시나리오다, 이런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습니다. 아직 가든 오더 뽕이 가득한 상태에서 이런 얘기를 들어버리면요'ㅅ' (한숨)

 누가 좀 주워가주지 않으려나 하고 마법의 탐라에 둥실둥실 떠다녀 봤더니 아니? 갓마스터 중의 갓마스터인 류비엠님이 권유해주시는 게 아니겠어요? 거기다 멤버분들도 하나 같이 친해지고 싶었던 or 좋아하는 분들뿐이라 이거다 싶었습니다. 냅다 탑승했죠. 그것도 PC1으로^^;; 이게 무슨 일이고!ㅇㅁㅇ!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던 세션 날이 밝았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는 법이라지만, 일단 기대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더라고요ㅋㅋ 그냥 받아들여야지 뭐'-`) 그래봤자 실망하거나 만족하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까요. 

 하지만 이 세션,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이기에?

 

 1987년, 일본의 미친 종교 결사 놈들이 네필림을 왕창 소환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세상이 멸망하나 싶었을 때 강력한 힘을 가진 이들이 나타나 네필림을 물리쳤습니다.

 

 하지만 네필림은 무자비한 속도로 전 세계를 뒤덮기 시작했습니다. 초능력자 몇 명의 힘으로 단타 싸움을 반복하기엔 승산이 없었습니다. 체계적인 움직임이 필요했어요.

 

 그리하여, 인류는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GARDEN이라는 기관을 세웁니다. 네필림에 대적할 힘을 가진 이들을 오더(ORDER)라고 부르며 조직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죠.

 

 ...라는 것까지는 너무나 평범한 <가든 오더>의 배경 이야기. 다만, <WWW>의 배경은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갑니다. 네필림과 적당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던 원작의 세계관과 달리,<WWW>의 세계는 멸망까지 딱 한 걸음만을 남겨둔 상태거든요. 전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장기전은 인류의 멸망과 직결됩니다. 시기만 확정되지 않았을 뿐 멸망이 확정된 세계라고 할 수 있죠.

 

 그런 이 세계에 한 명의 오더와 그의 곁을 지키는 소울 인코더(: 죽은 오더의 영혼을 무기나 장신구에 부착한 것)가 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없는 이 세상에서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소모적인 전쟁에 나섭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계 곳곳에 핫스팟이라는 네필림 발원지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돌연히 두 명의 오더가 나타납니다. 네필림과 능숙하게 싸울 줄 알지만,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삼지어 자신들이 '오더'라는 사실 조차도요. 새벽처럼 깜깜한 세계의 한복판에서 그들은 미아가 됩니다. 

 

 이 이야기는 그 두 버디가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미래를 잃은 버디와 과거를 잊은 버디의 만남으로부터요.


 가든 오더, 그 자체.

 플레이해보니 극찬받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일단 스케일 자체가 압도적입니다. 그야말로 가든 오더라는 룰 그 자체를 다루고 있는 시나리오거든요. 플레이를 안 해보신 분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안 되실 텐데 가능한 한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아대 졸라맴)

 보통 TRPG 시나리오라고 하면 그 룰의 세계관에서 매력적인 요소를 사용해서 만들게 됩니다. 마기로기에선 특정한 우자의 삶이나 구도서관을 소재로 삼고, 크툴루에선 광신도에 의한 연쇄 살인 사건을 소재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무려 가든 오더의 세계관 그 자체가 소재에요.

가든 오더라는 세계 그 자체를 탐구 대상으로 삼다니 스케일부터가 엄청나다


 크툴루로 예시를 들자면, 어째서 이 세계에는 '크툴루'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시나리오거든요. 이렇게 말하니 굉장히 지루하고 현학적인 이야기일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폐허 속에 파묻힌 기억의 퍼즐을 맞추는 구성이라 추리물이나 탐사물처럼 흥미진진하거든요.

 게다가 일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가든 오더의 세계관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WWW>는 바로 그 설정과 세계관을 액기스로 뽑아먹는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WWW>는 플레이어를 바로 그 역사의 한복판에 세워놓고 주인공으로 삼아서 스스로 이 세계가 성립해가는 과정을 목도하게 만듭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이 이야기를 통해 이 매력적인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거예요.

 나는 세계의 일부, 세계는 나의 일부

 이야기의 스케일이 큰 만큼 시나리오가 다루는 이야기도 겹이 두텁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 모든 것을 알게 되는 이야기인 만큼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이 거쳐 가야 할 미궁이 깊습니다. <WWW>가 내세우는 메인 동력은 그야말로 ‘세계의 수수께끼’라고 할 수 있어요. 플레이어들은 작은 오더의 몸으로 세계의 수수께끼에 있는 힘껏 부딪치게 됩니다. 세계에 비하면 개인은 너무나 작기 때문에 온몸이 다 부서지지만, 결국엔 이 이야기가 그리는 장관을 경험하게 돼요.

 

버거운 수수께끼지만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저는... 취향이 고약한(?) 사람이라, 수수께끼가 두터울수록 매료되는 편입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불가해한 일들이 벌어지고, 몇 겹의 통로를 지나야만 비로소 뭔가 보이는 듯하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서 계속 파헤쳐 들어가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이요. 최근의 트렌드는 고구마와 사이다의 간격이 짧으면 짧을수록 잘 읽히는 편이기 때문에 저처럼 밤고구마 취향인 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시대가 되긴 했지만요... 

 하지만 <WWW>가 제시하는 수수께끼는 제 밤고구마 입맛에 딱 맞을 정도로 두텁고도 견고합니다. 그야 세계의 수수께끼라고요! 이 세계가 왜 이렇게 되었나? 이런 정치적/사회적인 범주에서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문제를 플레이어들이 작은 오더의 몸으로 꾸역꾸역 파헤쳐야 하는 이야기란 말이에요. 그리고 돌아보면 우리가 지나서 온 흔적들이 고스란히 세계에 남겨집니다. 그런 점에서 <WWW>는 세카이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다만, 기존의 세카이물과는 정서가 조금 달라요. 어쨌든 세카이물은 개인이 희생되는 결말로 끝나기가 쉽습니다. 고작 개인의 몸으로 세계와 싸우는데 그 정도의 디메리트가 없으면 아무래도 개연성도 떨어지고 감동도 떨어집니다. 그래서 세카이물은 높은 확률로 개인을 죽이죠. 거기서 비롯되는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세카이물, 적어도 그 용어가 처음 확립되기 시작한 무렵의 정의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시나리오에서는 어디까지나 세계가 개인에게 이바지합니다.

 즉, <WWW>는 플레이를 위한 세카이물인 셈이에요. 이 세계의 불가해함은 온전히 플레이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플레이어는 ‘희생당하는 개인’이 아닌 ‘창조하는 개인’으로서 이야기의 한 가운데에 섭니다. PC의 선택으로 세계가 만들어지는 무리한 구조임에도 개연성을 갖추고 있어요. 세카이물로서도 <WWW>는 연구 가치가 있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들

 PC들은 저마다 특정한 관점에서 이 세계를 바라볼 권한을 받습니다. 이런 구성이기 때문에 PC들의 역할은 이미 정해져 있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해요. 다만 그 역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 것이냐는 온전히 플레이어의 몫이고, 바로 이 순간 세계와 플레이어의 상하 관계가 하극상을 일으킵니다.

 

 PC는 철저하게 이야기의 일부로서 태어나지만, 결국엔 PC들의 선택에 의해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그만큼 후반부로 가면 플레이어들에게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고 각각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서도 이야기가 천차만별이 돼요. 돌아보니 이렇게까지 클라이맥스에서 심각하게 고민한 것도 참 오랜만이더라고요.

 

 그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슬슬 PC들 소개를 해볼까요? 

PC1 - 라이카(묘이 유즈루) / 중력조작 / 에이미

 

 제 오더인 라이카입니다. 황송하게도 이번에 PC1을 맡아서 플레이하게 되었어요! 만들 당시에는 단발 남캐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만들었던 것인데 지금은 무척 아끼는 PC가 되었습니다... 다 제 버디 덕분이죠ㅠ


 라이카는 본래 유명한 화가의 아들이었지만 아버지가 살해당한 것을 계기로 각성하여 GARDEN에 들어온 중력조작의 오더입니다. 배경이 이렇다 보니 성격도 밝기보단 염세적이고 어두운 편이고요. 하지만 우리 버디가 너무나 밝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던 탓에 저 어둑어둑한 성격 설정은 반쯤 죽고(?) 그저 츤데레가 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이런 애들 만들면 보통 츤데레가 되더라 ㅇ)-(

 

 라이카라는 콜 네임은 우주 실험에 사용되었던 강아지인 라이카에게서 따왔습니다. 날개뼈 사이에 독특한 스펙 컬러가 있는 탓에 아버지에게 모델로서의 활동을 강요당한 것도 모자라, 아버지가 살해당한 후에는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GARDEN에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붙인 멸칭이에요. 우주에서 생을 마감했던 라이카처럼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라이카에겐 너무나 훌륭한 버디가 있었습니다.

 

PC2 - 할로우 로우(아케인 슈로우) / 소울 인코더(발화능력) / 우롱

 

 우롱님의 소울 인코더이자 라이카의 버디인 할로우 로우입니다. 외관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밝고 활기찬 녀석입니다. 상대적으로 어두운 라이카와 좋은 궁합을 이뤘다고 생각해요.

 

 라이카와의 공통점이라곤 부잣집 도련님이었다는 것뿐인데, 제약회사 Arcane의 삼남으로 정체를 숨긴 채 오더로 활동하다가 사망한 뒤 부모의 부탁으로 소울 인코더로 재탄생했다는 씁쓸한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니 부모와의 관계도 라이카와 조금 차이가 나더라고요. 로우는 확실히 사랑받고 컸을 것 같은 캐릭터입니다. 거기다가 야구까지 좋아한다니 완벽한 열혈청춘캐의 조형 흡 (이뻐죽음)

 

 우롱님이 만드시는, 어둠 한 점 없이 깨끗한 아이들 참 좋아하는데, 로우는 그중에서도 일급수라고 생각합니다. 로우가 내뿜는 빛 덕분에 라이카도 어두운 우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후후, 로우에 대해서는 뒤에서 얘기할 기회가 많을 테니 우선 여기까지 해두겠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버디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끈끈함을 자랑하는 멋진 버디가 있습니다. 이 버디의 특징이라면... 단기 기억상실을 앓고 있다는 것이네요.

 

PC3 - 세레나데(미즈모토 타츠미) / 정신투영 / 베릴

 

 버디의 한 축은 베릴님의 오더인 세레나데입니다. 귀여운 얼굴과 달리 키가 182cm나 되는 자이언트 베이비고요(?) 정신투영으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거나 조작하는 무서운 아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문제는 기억이 없다는 거예요. 그는 자신이 왜 이런 곳에 와 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옆에 있는 소년이 소중한 존재라는 인식 말고는요.

 

 플레이하기 전부터 베릴님이 역설님 PC에게 치근대는(?) 캐릭터를 한다고 하셨는데 (와작와작) 슬그머니 와서 부비부빗하는 러시안 블루 고양이 같은 캐릭터라 제가 더 심쿵했더랍니다. 색깔 조합도 러시안 블루 같은 게 말이죠(?) 세레나데 욘석~!

 

 세션 중에 얘기가 직접적으로 나온 건 아니지만 세레나데도 라이카, 로우와 마찬가지로 유복한 집안의 도련님 출신입니다. 성인이 되면 부모님의 검술 도장을 물려받을 예정이었지만 스펙 컬러가 발동하는 바람에 스스로 가족을 떠나왔다는 설정이에요. 개인적으로 과거사는 세레나데가 가장 아팠어요. 가족에게 대놓고 도구 취급을 받았던 라이카와 달리 세레나데는 가족들에게 사랑받았던 것 같긴 하거든요.

 

 하지만 자신은 이미 평범한 인간이 아니고 이로 인해 벌어지는 사람들과의 틈은 노력한다고 해서 좁힐 수 있는 게 아니었겠죠.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과 멀어질 것이 뻔한데 그날이 올 때까지 굳이 기다릴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게 세레나데는 홀로 길을 떠납니다. 다행인 건 세레나데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세레나데에겐 그와 같은 운명을 짊어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PC4 - 이모션 악셀(엘 K. 시마무라) / 감각강화 / 역설

 

 살아있는 인간 스위치, 누르기 전에 누르는 모순의 플레이어, 조역설님의 오더인 이모션 역설, 아아니 이모션 악셀입니다. 은색의 스펙 컬러가 홍채에 박힌 이 어린 소년 역시 세레나데와 마찬가지로 기억을 잃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감각강화처럼 무서운 능력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무서운 오더인 것은 확실합니다.

 

 엘 K. 시마무라라는 희귀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소년은 방년 17세로 세레나데와 동갑, 기억에는 없지만 세레나데와 함께 이야기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역설님 PC답게 역설님의 성격을 빼닮은 부분이 있어서(?) 세레나데의 치근치근에 차근차근 철벽을 두는 모습이 귀여운 PC였네요ㅋㅋㅋ 아이 역설님 뭘 참 이런 걸 다 부끄러워하신담*^^* 하면서 놀릴 마음 만만으로 세션으로 들어갔는데 말이죠...

 

 하... 역설님 맞아... 이런 분이었지... 아닌 척하면서 할 거 다 해놓고 스위치 다 눌러놓고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오면 지금이야 하면서 죄다 터트려서 독버섯 구름 만드는 사람이었지... 하... 제가 바보였습니다. 하지만 1년 정도 못봬면 옛날 일은 잊을 수도 있죠. 정말 오랜만에 함께 플레이해서 즐거웠고, 그만큼 또 된통 맞았습니다ㅋㅋㅋ 이모션 악셀 이놈이 무슨 짓을 했냐면요? 네? 무슨 짓을 했냐면! (이하 생략)

 

 스포 없이 PC에 대해서 소개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이하의 모든 내용이 스포이기 때문에... 이 세션에 대해서 이 이상 이야기하는 것도 스포일 것 같아요. 플레이해보지 않은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슬슬 스포일러를 포함한 후기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티알생에 남을 갓세션이었기 때문에 저도 안이한 마음으로 후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썼기 때문에 예쁘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__)

 

 후, 그럼 시작해보겠습니다. 이 아름다운 세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요.

 

세션은 마스터의 사기극(?)으로 시작해야 제맛


 ! 이하의 후기에는 <What a Wonderful World>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 후기의 내용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편집과 날조가 가미되었습니다.원본 그대로가 아닌 2차 창작으로 봐주세요.


더보기

 

1987년.

일본의 수도에서, 어떤 종교 결사에 의해 네필림이 소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그때,

초능력, 혹은 마법이라 부를 수 있는 힘을 가진 자가 나타나

네필림과 교전을 벌였다.

…싸움의 여파로 수도는 붕괴되고,

도주한 네필림은, 각지에서 파괴를 일삼았다.

그리하여 인류는, 네필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위협을 맞이하게 되었다.

“Obligate Rarity Differential Extra-Race”,

―"오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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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들이 사는 이 세계는 아름답다. 하늘과 땅과 바다가 존재하고 각자의 색으로 빛난다. 모든 우주를 찾아봐도 이렇게까지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별은 없다. 이곳에서 태어난 당신들은 축복받은 존재이다. 당신들은...


 ㅡXX하고 자빠졌네.

 라이카, 당신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본부로 향한다. 하늘과 땅과 바다만 있으면 아름다운 세계인가? 끝없는 교전으로 밤낮 포화 소리가 그치지 않는 이곳에선 새파란 풀숲에서도 오더들의 시체가 숱하게 발견된다. 적어도 아름답다는 말은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다, 결코.

 

 쏟아지는 네필림을 막기 위해 수많은 오더들이 분쇄기에 갈려 나갔다. 동료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건 흔한 일이었고, 일부는 치열한 교전 끝에 정신을 놓고 영원히 웃기만 했다. 당신은 그런 험악한 세계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모두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그래도 당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은 소울 인코더 ㅡ 할로우 로우뿐이었다.

 

"여어, 오늘은 니이자키 씨한테 고백 하는 거야?"


 그는 평소처럼 당신을 그렇게 놀렸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놀림이었지만 오늘따라 견디기 어려웠다. 이유가 있었다. 당신은 버디의 짓궂은 농담에 대꾸 없이 본부로 들어갔다.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니이자키 아사히, 당신이 좋아하는 여자였다.


"고생 많았어, 두 사람 모두."


 니이자키 아사히는 좋아할 만한 여자였다.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똑똑했다. 당신을 남자로 보지 않는 것만 제외하면 완벽했다. 당신은 아사히의 환대에 조용히 주머니에 손을 넣어 구겨진 영화 티켓을 잡았다. 이런 세계에도 민간인들을 위한 도시는 여전히 존재하며 영화관도 있다. 옛날 영화만 반복 상영할 뿐이지만.

 영화 티켓은 두 장이었다. 한 장의 주인이 당신이 될 생각은 없었다. 아니, 사실 바라긴 했다. 하지만 막상 아사히의 얼굴을 보니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당신의 버디는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낄낄댄다.


 일단 건네고 보자고 마음먹은 순간 붉은 등이 점멸했다. 또 네필림이다. 거지 같은 세상, 하지만 어쩌겠는가? 당신은 오더다. 당신이 존재하는 이유는 오로지 네필림 때문이다. 당신은 아사히에게 티켓을 쥐여준다. 그 모습을 보고 할로우 로우는 당신에게만 들리게끔 중얼거린다.


 라이카, 당신은 이 녀석이 싫다.



 미즈모토 타츠미엘 K. 시마무라는 방공호에서 눈을 떴다.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 이런 곳에서 눈을 떴는지, 저 괴물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당신들이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 누구야 왜 내방에.. 콜록, 불 났어요?"


 현실 감각이라곤 조금도 없는 상태에서 당신들은 네필림이라는 괴물이 사람들을 뜯어 먹는 것을 본다. 아무리 기억이 없어도 위험한 상황이라는 건 알 것이다. 당신들은 자연스럽게 무기를 든다. 왜 이게 자연스럽지?


"아무튼, 살려면 싸워야 한다는 소리지, 그거?"


 근육이 멋대로 팔을 휘두른다. 시선은 빈틈을 확인하고 그곳을 깊게 벤다. 당신들은 간단하게 괴물을 죽인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도살하던 괴물들을 그보다 더한 힘으로 제압한다. 전능에 전율하다가도 무지에 공포를 느낀다. 어쨌든 당신들은 이 세계의 한복판에 있다.

 잠시 후, 어딘가에서 총알이 날아온다. 푸른 총알이 네필림을 꿰뚫는다. 어린 소년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다. 그는 긴 총으로 당신들을 노린다. 어둠 속에서 느껴질 정도로 짙은 경계가 느껴졌다.

"오더? 너희들 어디에서 왔지?"


 , 당신은 살기를 느껴 대검을 방패처럼 꽂아 먼지를 일으킨다. 먼지가 저쪽과 이쪽을 가른다. 소년이 중얼거린다. 포획한다ㅡ 그렇게 나오면 우리도 저항할 수밖에 없는데, 당신을 혀를 찬다.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노이즈 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퍼레이터와 대화를 마친 소년은 ‘신변 보호’라는 좀 더 그럴싸한 이유로 당신들을 설득한다. 완고한 자세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주변은 차갑고 어두웠다. 당장은 괴물을 도살할 수 있다고 해도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될지 모른다. 일단 신변 보호라는 말에 의지하기로 한다. 당신들은 소년을 따라 방공호를 나선다.


 괴물이 모두 사라진 방공호 안에는 당신들 네 사람의 발소리만이 텅텅 울려 퍼졌다.

 



 ㅡ뭐, 여기가 도쿄라고?


  타츠미, 당신은 당황한다. 기억은 잃었지만 적어도 도쿄가 이런 불바다가 아니었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풍경과 기억의 괴리를 맞춰보기도 전에 당신들은 아오바 시티 내부의 GARDEN 지부라는 곳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조금 전까지 목소리로만 들었던 여자가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당신들을 바라본다.

 경계? 위협? 어느 쪽도 아니다. 타인의 생각의 파동을 민감하게 읽을 줄 아는 당신은 그녀의 감정이 불호보다는 호에 가깝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오히려 더 의아하다.




 , 당신은 기억하려고 해본다. 그녀의 이름을, 그녀의 얼굴을, 그녀의 모습을.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녀가 뭔가 착각했거나 당신들이 잊고 있는 듯했다. 니이자키 아사히는 당신들을 지부장에게 안내했다.

"저는 GARDEN 아오바 시티의 지부장, 펄스에이더라고 합니다."


 그는 예전부터 그들을 알고 지냈던 사이인 양 여유롭게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했다. 사람을 다루는데 도가 튼 사람인 게 분명했다. 아무튼, 이곳에서 지내려면 ‘오더’라는 이름을 받아야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ㅡ



 , 당신은 내키지 않는다. 기억을 잃었다고는 하나 괴물의 이명으로 불리고 싶진 않다. 남자는 그 마음을 안다는 듯 교묘하게 말을 바꾼다. 협력을 바란다고. 잘 모르겠지만 당신들처럼 색을 가진 이들은 이 세계에서 귀중한 존재라는 것 같다. 그 이름은 괴물이 아닌 영웅의 이름이다ㅡ 그런 메시지가 은연중에 전달된다.

 남자, 그러니까 펄스에이더(Persuader)는 미소 지으면서 말을 잇는다.



 새로운 핫스팟의 출현. 그것은 이 세계에 있어서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현재 존재하는 핫스팟을 견제하는 것만으로도 GARDEN은 버거웠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나타난 오더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논리적이라는 결론. 펄스에이더는 당신들에게 핫스팟 근처의 방위를 부탁한다. 조금 전 전투에서 당신들과 함께 싸웠던 그 소년, 그리고 그의 버디와 함께 말이다.

 , 당신은 생각한다. 펄스에이더는 좋다. 이야기가 얼추 통하는 상대다. 니이자키 아사히도 좋다. 적어도 그녀는 당신들에게 불호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그 소년은 다르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소년은 당신들을 경계하고 있다. 경계를 감출 만큼 그는 불투명하지 않다. 당신들 사이에는 기분 나쁜 파동이 오간다. 민감한 당신은 그것을 쉽게 눈치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아무튼 이 세계는 무섭지만, 그보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당신들 자신이 가장 무섭다. 믿을 만한 것은 이러나저러나 이 사람들뿐이다.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고 당신들은 그들과 함께 핫스팟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2017년의 일이었다.



 라이카, 당신은 핫스팟의 방위 임무를 맡았다. 연달아 임무를 받는 것은 오더의 삶이다. 그것 자체에 불만을 가질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화가 난다. 그 정체불명의 오더들과 함께 팀을 이루는 것도 싫지만, 그보다는 아사히 때문이다. 당신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알려주는 거지만 당신의 모든 감정은 대부분 그녀를 중심으로 위성처럼 빙빙 돈다.


 이것 보아라. 아사히가 당신을 또 어린아이처럼 취급하니 울컥 화가 치솟지 않는가? 됐어, 지금은 그런 게 문제가 아니야. 그것보다 더 걱정되는 게 있어. 당신은 내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생각한다. 내가 핫스팟 조사를 맡게 되면 아사히도 오퍼레이터로 함께 참가하게 돼. 그게 문제라고, 그게...

 얼마 전, 당신은 자료 보관실에서 우연히 아사히의 자료를 보았다. 최근에 현장 오퍼레이터 임명을 위해 상위권자가 그녀의 자료를 참고하기 위해 찾다가 남긴 흔적이었다. (그 상위권자는 당연히 펄스에이더 그 남자겠지. 개자식, 멋대로 아사히의 자료를 보지마. 봤으면 흔적을 남기지 마.) 이유야 어찌 되었든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파일을 열었다. 그렇게 변명하고 싶었다.

 
니이자키 아사히, 그녀는 17년 전에 핫스팟 제타에서 발견된 피해자였다. 발견 당시에는 그녀는 고작 4, 5세 정도였다. 가족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나마 가방 속 필통에 적혀 있던 '니이자키 아사히'라는 이름 덕분에 이름만은 지킬 수 있었다.

 그 후 성인이 된 아사히는 GARDEN에 지원했다.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GARDEN에 들어온 것이다.
이유는 당연히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니이자키 아사히는 지금까지 혼자서 과거를 되찾기 위해 분투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 사실이 몹시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당신은 언제든 그녀를 위해 발 벗고 나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당신이 실수로 이 사실을 알아내기 전까지 그녀는 당신에게 이 일에 대해 단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남매처럼 대하면서도 실제로 아사히는 당신을 전혀 의지하지 않았던 것이다ㅡ 라고 당신은 아사히의 마음을 곡해한다.


 심통이 나서 그녀에게 말한다. 이번 조사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답이야 뻔하다. 아사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참가할 것이다. 그래도 자신이 심통이 났다는 사실만이라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아사히를 만류해본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아사히는 단호하고 침착했다. 아직 그녀에겐 당신이 모르는 어둠이 있다. 그리고 그것만큼은 당신이 쉽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나약하기 짝이 없는 당신이 뭘할 수 있겠는가. 익숙한 절망의 맛을 씹으며 당신은 출전 준비를 하러 나선다. 당신이 아사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이 정도라면, 이 정도라도 할 것이다.

 할로우 로우
, 당신은 그런 라이카가 안타깝다.




 미즈모토 타츠미, 당신은 핫스팟 조사를 앞두고 엘과 대화를 나눈다. 오더에겐 콜 네임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조사를 하러 가기 전까지 콜 네임을 정해두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당신들은 자신에 대한 단서가 하나도 없다. 무엇에서 힌트를 얻어 콜 네임을 지어야 할지 고민이다.

 그래서 타츠미 당신은 자신이 아닌 엘을 보았다. 함께 기억을 잃은 처지라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당신은 그가 편하다. 정신투영의 오더가 처음 만난 상대를 편하게 느끼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싫든 좋든 타인의 어둠을 느낀다. 그러나 당신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엘 K. 시마무라는 당신에게 있어 중요한 존재라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어디선가 감정이 자연스럽게 흘러넘친다. 갑작스럽지만 부자연스럽지는 않다. 기억만 없을 뿐 감정까지 사라진 건 아닌 모양이다. 당신은 텅 빈 자신이 아닌 그를 위해 콜 네임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신은 콜 네임을 자칭한다.


 그것에 부응하듯, 엘 K. 시마무라도 자신의 콜 네임을 정한다.


 모든 상황이 그렇게 바삐 지나가긴 했다. 당신들이 눈을 뜬 것도, 버디가 된 것도, 그리고 콜 네임을 정하고 있는 것도 말이다. 그러나 , 당신은 악셀의 주어를 삭제한다. 이 속도가 당신들을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직 모르기에.


 얼기설기 이름을 엮어 버디로 거듭난 당신들은 핫스팟으로 향한다. 핫스팟은 그리스 신화에나 나올 법한 못된 세쌍둥이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제타, 람다, 오메가. 각각의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른다. 그것은 아직 알 수 없는 문제다. 당신들은 제타, 람다, 오메가의 주어를 삭제한다. 주어는 당신들이 써 내려가게 될 것이다.


 

 본디 어떤 전쟁터에서도 살아남는 것이 바퀴벌레다. 인류사의 바퀴벌레인 불량배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런 전쟁통에서도 살아남아 골목을 채웠다. 바퀴벌레와 차이점이 있다면 어찌 되었든 그들은 일단 '인류'라는 것이다. 오더인 당신들은 인류에게 함부로 손을 대어선 안 된다.

 ...라는 것은 어디나 세상 밖의 이야기. 시선이 닿지 않는 골목 안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할로우 로우, 당신은 위협 사격을 한다. 부상 당한 오더와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구호품을 주머니에 잔뜩 욱여넣고 있었던 불량배들은 화들짝 놀라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라이카가 그들을 위로 붕 띄운다.

 “오더 새끼들이! 감히 우리한테 손을!”

 아래위로 흔드니 그들의 주머니에서 구호품이 쏟아져 나온다. 당신들은 그것을 주워 담는다. GARDEN에 신고하겠다느니 헛소리를 지껄이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거꾸로 들어서 주머니를 털었을 뿐인데 무엇으로 증명한단 말인가? 역시 중력조작은 편리하다. 발화능력이나 빙결능력처럼 흔적을 남길 필요가 없다. 깔끔하게 현장을 정리한 뒤 당신들은 본부로 돌아왔다.

 미즈모토 타츠미와 엘 K. 시마무라는 자신들의 콜 네임을 알린다. 세레나데악셀, 앞으로 당신들이 부를 이름이다. 언뜻 들어서는 무슨 의도로 지은 이름인가 싶지만 구태여 되묻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이름 짓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라이카 당신은 떠올린다. 그렇지,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도 기억을 잃은 채 발견되었었지. 그것도 핫스팟에서.


 그래, 이들은 아사히와 비슷한 입장이다. 아사히의 기억은 이미 너무 옛것이라 너덜너덜한 상태지만, 아직 이 둘이라면 뭔가 기억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원치 않는 대답이었다. 말을 빙빙 돌리는 당신의 태도에 답답함을 느낀 어느 정신투영의 오더가 당신의 마음속을 읽어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시설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동기 중에 짓궂은 성격의 오더가 있었다. 특히 그녀는 당신을 놀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한 번은 모두가 있는 앞에서 '어맛? 너 아사히짱에게 ♡폴링 인 러브♡?!'하고 큰 소리로 말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당신은 화가 나서 그녀와 말 한 번 섞지 않았다.

 맞아, 그 녀석도 정신투영이었는데.


 정신투영 오더들은 왜 이렇게 하나같이 눈치가 없는 걸까! 당신은 이 짓궂은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잠시 나갔다가 돌아온다. 다행히도 돌아와 보니 분위기가 한결 가라앉아 있었다. 가라앉았다고 해야 하나, 이미 당신의 문제는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가. 그보다 더 중요한 화두가 떠올랐으니까.

 그건 당연히 니이자키 아사히다.



 다들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동안, 악셀 당신은 니이자키 아사히에 대해 생각했다. 구면이 아니냐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신경이 쓰였지만, 그녀가 당신들과 같은 처지에 놓였었다는 말을 듣자 흥미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당신은 니이자키 아사히의 자료를 조사했다. 일반인인 그녀의 자료는 딱히 극비로 처리되어 있지 않았다.


니이자키 아사히, 1982년 도쿄 출신.
1987년 도쿄 재앙에서 양친을 잃음.
당시, 생일이 막 지난 5세였다.


 ...자료를 잘못 검색했나? 당신은 다시 한번 데이터를 검색한다. 하지만 니이자키 아사히에 대한 자료는 이것뿐이다. 잠깐, 그렇다면 말이 안 되지 않나? 1982년 출생이라면 2017년인 현재 그녀의 나이는 35살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나이는 22살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 자료를 설명할 수단이 없다. 악셀, 당신은 뭔가 기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니이자키 아사히, 너는 누구지?



 당신들은 본격적인 조사를 위해 핫스팟으로 향한다. 첫 장소는 제타. 망가진 도시를 네필림들이 뻔뻔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이 세계는 조만간 네필림의 것이 되리란 예감이 든다.

 할로우 로우, 당신은 핫스팟 제타의 정보를 요청한다. GARDEN 내부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자료도 현장에서는 얼마든지 열람할 수 있다. 현장 요원으로 접속한 당신은 끔찍한 사진을 몇 개 확인한다. 그것은 수많은 오더들이 형형색색의 피를 흩뿌리며 죽어있는 광경이었다.


 오더의 사망 현장은 기이하다. 특히나 혈액에 스펙 컬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사망 현장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오더의 사망 현장만 취재하는 종군 기자들도 심심치 않게 존재하는 시대에, 당신은 이미 수없이 많은 오더들의 사망을 미디어에서 봐왔다. 하지만 지금 이것보다 끔찍한 광경은 본 적이 없다. 네온색으로 빛나는 유체들이 자신들의 사망 루트를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건물 위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졌는지 핫핑크색의 혈흔이 건물 윗부분을 뭉개고 있다. 트럭 안에서 죽은 오더는 가슴팍이 연둣빛으로 잔뜩 물들어 있었다. 죽기 전에 눈물이라도 잔뜩 쏟은 것일까? 그 연둣빛이 자신의 스펙 컬러와 비슷한 것처럼 보여서 로우 당신은 흠칫한다.

 17년 전, 그러니까 2000년경. 핫스팟 제타는 그때 출연했다. 니이자키 아사히 또한 이때 5세의 나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2003년, GARDEN은 제타로부터 쏟아져나오는 네필림을 막기 위해 대규모 섬멸 작전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섬멸 작전에 투입된 오더는 모두 전멸했고 작전은 실패했다. GARDEN의 역사상 가장 뼈아픈 패배였다.

 그 후 제타는 완전히 봉쇄되었다. GARDEN이 그곳에 오더를 투입하는 일은 없었다. 서로 줄다리기를 하듯, 네필림들이 경계선 밖으로 나오려고 하면 목을 치는 정도로 알력 다툼만 반복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류를 인정해야 했다. 핫스팟 제타는 이미 합법적인 네필림의 서식지가 되었다는 것을. 

 시간의 흐름대로 사건을 정리할수록 이야기는 꼬여간다. 당신들은 아직도 이 모든 것이 장난처럼 느껴진다.



 당신들은 곧장 핫스팟 람다로 향한다. 핫스팟 람다는 제타 이후 7년 만에 등장한 새로운 핫스팟이었다. 당시에 GARDEN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였다. 제타의 재림을 예상한 GARDEN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제타에 접근했다. 하지만 그 기대를 가지고 놀기라도 하듯 람다의 토벌은 시시하게 끝났다.

 대신 그곳에선 한 명의 오더가 발견되었다. 안타깝게도 이미 목숨은 끊어진 상태였지만, 그는 여전히 아름다운 옥색의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렇다. 마치 당신들 곁에 있는 그 소울 인코더처럼.

 그 순간, 할로우 로우, 당신의 머릿속이 온갖으로범람하기시작했다. 그리고 소울 인코더로 이식될 당시에 잃었던 기억의 파지들이 제멋대로 아귀를 맞추었다. GARDEN도, 당신의 부모도,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숨겨온 문서 위의 글자들이 다시 잉크를 머금고 새겨지기 시작했다.


 할로우 로우 (본명 : 아케인 슈로우)

 2000년 핫스팟 제타의 싸움에 참여한 후 시체 소실.
 2007년 핫스팟 람다에서 발견.
 소울 인코더로 변환 완료.


 그렇다. 람다에서 발견되었다던 유체는 당신이었다.
 소울 인코더가 되기 전의 당신.


 


 캉ㅡ 하는 소리와 함께 기분 좋게 야구공이 하늘로 솟구친다.

싸움에 나서기 전, 당신은 늘 그렇게 야구공 하나를 배트로 쳐올리곤 했다.

야구공이 떠오르는 궤적에 따라 오늘의 승부의 결과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날 야구공은 당신의 육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솟아오르다가 공중에서 펑 하고 사라졌다.

 여어, 로우가 홈런을 쳤어. 오늘 전투는 대승이겠는걸?

 시시덕대는 동료들을 보며 당신 또한 배시시 웃었다. 솔직히 말해 오더들은 신이 나 있었다.
인류의 역사에 남을 법한 대전투에 참가한다는 사실에,
자신들의 이름이 새겨질 거라는 사실에,
이길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에.

 그리고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당신은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동료의 검은 피가 당신의 눈을 긁었다.

당신은 검은 것들을 닦아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바로 눈앞에서 아르테미스가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아아, 죽었다ㅡ 아르테미스의 시신을 향해 나딕이 뛰어온다.

평소엔 조용하던 나딕의 절규가 폭음을 뚫고 당신의 귀에 박힌다.

그리고, 아아, 죽었다ㅡ 동료들이 죽어간다.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당신의 눈앞이 또다시 어둠으로 물들었다.
아무리 울어도 어둠이 당신으로부터 사라지지 않았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당신은 당신 또한 죽었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ㅡ어두운 무기고, 당신은 그곳에 있었다.
익숙한 사람들의 익숙하지 않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아버지? 눈이 없는 당신은 더 이상 그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살릴 수만 있다면 어떤 모습이든 좋습니다.
그런 욕심 따윈 이미 7년 전에 버렸습니다.

평소에도 소년처럼 장난기가 짙었던 아버지가 입술을 깨물고 몇 번이나 운다.

아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아들의 육체를 태우겠습니다.
이 손으로 직접 태우겠습니다...

아버지가 바닥에 무릎을 꿇자 그 진동이 당신에게 이어진다.
손이 없는 당신은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지도 못한다.

 

 다시 시야를 얻었을 때 당신은 무기질의 바닥과 냉기 어린 천장 사이의 어딘가에 있었다. 당신은 360도로 모든 것을 보고 전방위의 모든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눈도 귀도 없었다. 당신인 더 이상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몸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위화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시 만난 부모님의 얼굴은 당신이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초췌하고 늙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마음고생을 시킨 탓이라고 생각했지 7년이나 시간이 흘러서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할로우 로우의 출현은 GARDEN에 있어서도 중대한 사건이었다. 핫스팟에 관해선 작은 사건 하나만 생겨도 전 지부가 들썩일 정도였기에, 펄스에이더는 이 사실을 당분간 은닉하기로 했다. 어째서 제타에서 소실된 할로우 로우의 사체가 7년 뒤 람다에서 다시 등장한 것인가? 그 사실을 밝히기 전까지는 입을 다물자는 것이 GARDEN과 아케인 가문의 약속이었다.


 "소울 인코더가 된 것만으로도 충격이 클 텐데, 이런 사실까지 알면 더욱 혼란스러워 할 겁니다.

지금은 아드님을 위해 배려하시죠."


 하지만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펄스에이더는 당신의 접근 권한을 허락했다. 아니면 세레나데와 악셀의 등장으로 더는 감출 수 없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결국, 할로우 로우 당신은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신의 삶에 7년의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리고ㅡ


 악셀, 당신은 잘못된 엑셀 데이터처럼 뒤죽박죽이 된 로우의 시간을 응시한다. 그러나 추상의 퍼즐은 맞추려 할 때마다 다른 아귀를 드러내 서로를 밀쳐내 버린다. 이 퍼즐은 자연스러운 형태로는 맞춰지지 않는다. 억지를 써야만 한다.

 

 

 당신은 핫스팟과 핫스팟 사이에 점선을 잇는다. 제타에 있었던 이들이 람다로 이동한 거라면, 제타에 나타난 이들 또한 다른 곳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곳은 어디인가?

 


어쩐지 당신이 낯이 익어요. 당신은 아사히의 낯을 기억해내려고 애쓴다. 하지만 기억해내려고 할수록 들어차는 기억의 칸막이에 당신은 힘없는 미노타우루스처럼 물러난다.

 


 지금은.

 



 당신들은 오메가로 향한다. 악셀의 추리대로 1987년의 도쿄에서 제타로, 제타에서 람다로 길이 이어지고 있다면, 람다에서 오메가로 가는 길 또한 있을 것이다. 그 숨겨진 길을 찾아내는 것으로 당신의 추리는 성립된다.

 그러나 오메가에서 발견한 것은 당신들이 원하던 점선이 아닌 물음표였다. 오메가의 네필림들은 한 지점을 향해 더듬더듬 나아가고 있었다. 폭력성이 배제된 극히 순진한 움직임에 당신들은 눈을 휘둥그레 뜬다.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

 아니, 그전에 이 녀석들은 왜 이렇게 똑같이 생긴 걸까?


 원래 그렇다...? 아아, 기억이 없으니 네필림에 대해서 모를 수도 있다. 잠깐,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다. 악셀, 당신은 명백한 위화감을 느낀다. 당신들은 네필림에 대한 기억이 없다. 이런 괴물들과 싸웠을지도 모르지만, 이들을 네필림이라고 부른 기억은 없다.

 


 상실과 부재는 다르다. 있었지만 사라진 기억은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원래 없었던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네필림에 대한 기억은 후자였다. 그런 이름을 들어본 기억은 어디에도 없었다.

 애초에 이들은 어째서 네필림이라고 불리게 된 것인가? 연달아 쏟아지는 물음표에 당신들은 말을 잃는다. 아라크네의 실을 소홀히 한 대가는 컸다. 그 와중에도 네필림들은 순진한 걸음으로 우두머리가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간다. 당신들은 조용히 그 뒤를 따른다.



 핫스팟의 최심부. 네필림들은 예수의 세례를 받기 위해 몰려든 인파처럼 노란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순진한 네필림들은 무언가의 은총을 기다리며 서로 몸을 부대낀다. 라이카, 당신은 몸을 가볍게 하고 날아오른다. 네필림들이 당신의 존재를 깨닫지도 못할 만큼 높이.


 구름 위에서 내려다본 세계는 노란 홍채로 당신을 노려보고 있다. 빽빽하게 모여든 네필림들, 그 사이로 검은 것이 우뚝 서서 당신을 바라본다.

 착각이 아니라면, 그것은 나무였다. 네필림과의 크기를 비교해봤을 때 건물, 아니 그 이상의 크기로 보이는 그것은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새까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라이카, 당신의 눈에는 그것이 지구에 박힌 거대한 혹처럼 보인다.

 위치... 위치는 어디지?

 당신은 나무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그 기이한 현장을 응시한다. 하지만 세계는 불쾌한 듯 눈을 감아버린다. 속눈썹이 일으킨 바람이 나비 효과처럼 돌풍이 되어 당신의 날개를 꺾는다. 당신은 서서히 추락하다가 빠른 속도로 바닥에 처박힌다. 


 중력조작 오더는 대부분 추락사로 사망한다. 그러니 추락에 대한 준비는 늘 해두고 있지만, 막상 이 상황이 닥치면 중력에 압도되어 버린다. 당신은 식은땀을 흘리며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전달한다.

 물론, 세레나데 당신은 라이카가 말하기 전에 그의 머릿속 풍경을 읽는다. 마찬가지로 노란 홍채가 세레나데 당신을 응시한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기이한 울음소리에 당신이 공들여 만든 정신세계가 무너진다.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당신의 세계가 유리처럼 부서진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평화로운 광경에 당신은 말을 잃는다.

 여긴 당신이 사랑했던 검도장이다.



 상대의 호흡에 맞춰 빈틈을 노린 뒤 동작을 가늠해 뒤로 물러난다. 검을 휘두르는 것은 순간일 뿐이다. 정말로 휘두르는 것은 검이 아닌 마음. 그런 이유로, 타츠미 당신은 검도가 좋았다. 의미 없는 수다보다 날카롭게 주고받는 검의 진동에서 당신은 더 많은 메시지를 들었다.

 그러나 당신 또래의 아이들은 그런 것을 재미있어하지 않았다. 1987년도엔 온갖 애니메이션이 쏟아졌다. 아이들은 딱딱한 검도보다는 진짜 날붙이를 휘두르는 TV 속의 주인공을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이 검도를 사랑하는 만큼 세상은 검도를 사랑하지 않았다. 검도는 혼자 할 수 없는 스포츠였다. 당신은 외로웠다. 그 소년이 검도장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 아이는 남달랐다. 또래 아이들처럼 게임을 하거나 몰려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복잡하게 돌아가는 기계의 구조를 구경하거나, 북적대는 인파의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감각강화의 기질을 가진 아이들은 상상력과 감응력이 높다는 이후의 연구 결과를 생각해 보면 그의 행동은 기이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때 당신에게 그의 존재는 무척 독특하게 느껴졌다.

 크고 위대한 것보다 작고 복잡한 것에 관심이 많았던 엘에게 검도를 흥미로운 취미였다. 대련을 하는 동안 펼쳐지는 정신세계의 향연은 여느 도시나 사람들보다 흥미로웠다. 때로는 차 사고를 낸 사람들끼리 다투는 것처럼 격하기도 하고, 함께 앉아 좋아하는 차를 마시는 것처럼 잔잔하기도 했다. 엘은 그 보이지 않는 세계의 풍경이 흥미로웠다. 가시의 세계보다 불가시의 세계를 보는 것에 더 특화된 그의 은색 눈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또래 아이들이 수험 공부다 뭐다 하면서 검도를 그만두기 시작한 바로 그때 엘은 검도장에 들어왔다. 엘은 현관에 놓인 목도를 들고는 겁도 없이 말했다.


 당신은 어쩌면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사히는 검도와는 큰 관계가 없는 아이였다. 아사히와 만난 건 대련장 앞에서 낑낑대던 강아지를 위해 접시에 하얀 우유를 부어주고 있을 때였다.

 "안 돼요! 강아지는 찬 우유 먹으면 아프다고요!"

 아사히는 그런 아이였다. 자기 자신도 작은 주제에 동물이나 어린아이를 보면 돌봐주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다. 너희 집 강아지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는 거로 봐선 그렇지도 않은 듯했다. 하지만 결국 막무가내로 데려가 버렸다. 다행히도 무코쨩은 아사히의 집에서 사랑받으며 자랐다. 그날이 오기 전까진.

 "강아지한테 찬 우유 먹이면 안 돼요! 아셨죠?"

 그다음 날도 아사히는 둘을 찾아와 혼내듯 얘기했다. 속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당신들은 아사히의 외로움을 느꼈다. 둘이었던 당신들은 셋이 되었다.


 


 아사히는 솔직한 아이였다. 처음엔 퉁명스럽게 굴었어도 결국엔 타츠미와 엘을 좋아하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아사히는 종종 검도장에 들러 둘의 대련을 구경하곤 했다. 늘 5분 정도 보고는 시시해ㅡ 하고 마루에 누웠지만 그래도 대련이 끝날 때까지 항상 함께했다. 그리고 옆에서 끊임없이 칭얼거리곤 했다.

 "귀여운 남자아이가 동생이었으면 좋겠어요. 호시나 동생처럼 뽀얗고 귀여운 아이."

 물론 아사히가 매일 그렇게 졸라도 뽀얀 남동생은 생기지 않았다. 웬만한 일은 전부 위로해줄 수 있었지만 그것만큼은 엘과 타츠미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해줄 수 없었다.

 "학교에 가면 그런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거야."

 외동의 유년이라 더 외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아사히를 달래면서도 타츠미는 내심 시간이 멈추길 바랐다. 학교에 들어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면 지금처럼 자주 보진 못할 테니까.

 "학교에 가도 오빠들 만나러 올 거예요."

 그러면 아사히는 타츠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곤 했다. 유치한 일이지만 타츠미는 그 말에 늘 위로를 받았다. 그건 엘 또한 마찬가지였다. 작고 복잡한 것에 관심이 많은 엘에게 아사히는 이미 흥미로운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아사히가 학교에 가는 일은 없었다.



 고작 이 정도로.
 잠깐 눈을 감았다 뜬 정도로.
 이렇게까지ㅡ


 도쿄에 정체불명의 괴물이 쳐들어온 그날, 당신들은 아사히를 지키기 위해 놈들과 맞섰다. 하지만 실패였다. 고작 둘이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심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왔지만, 진짜 특별한 것들 앞에서 당신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괴물의 마음은 보이지 않았고 목도는 휘두르기도 전에 산산조각이 났다.


 눈을 깜박이자 바닥에 무릎이 박혔다. 그다음은 거친 콘크리트 바닥에 뺨이 닿았다. 그다음은 온몸이 무겁게 바닥을 내리눌렀다. 그다음은, 소리가 들렸다.


 순간, 당신은 존재하는 것이 두렵다고 생각했다. 소중한 것들이 초 단위로 파괴되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뜨는 것만으로도,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생각해보려 하는 것만으로도 세계는 목을 매고 발판을 쳤다.

 안돼, 안돼.

 당신은 엘을 보았다. 늘 겁 없이 당당하던 그 눈동자가 공포에 절어 아사히를 보고 있었다. 둘 다 보아선 안 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당신들은 아사히를 향해 마지막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미즈모토 타츠미, 아니, 세레나데는 눈을 뜬다. 빛바랜 과거가 다시 쓰나미처럼 당신을 물들인다. 너덜너덜해져서 엘을 본다. 그것으로 엘은 당신과 기억을 공유한다. 엘에게도 그것은 잊어선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1987년, 당신들은 분명 그곳에서 왔다.

 
 당신들의 발밑으로 1987년의 세계가 펼쳐진다. 투명한 하늘 아래, 오래된 신문지처럼 바삭바삭 말라가는 1987년을 본다. 당신들의 만남이, 추억이, 그리고 현재가 남아있어야 하는 낡은 사진첩을 들여다본다. 낡아버린 것은 되찾을 수 없다.

 하지만 당신들은 낡기를 원하지 않았다. 낡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낡는 것은 스스로 그 모든 시간을 온전히 살아낸 다음이다. 당신들은 놈이 있는 핫스팟 제타로 향한다. 당신들의 렌즈로 빛바랜 세계를 다시 찍기로 한다. 눈 깜박할 사이에 스러져간 세계를 이번에는 당신들의 손으로 영원히 새기는 것이다.

 핫스팟 오메가는 그 반짝임을 눈치챈다.



  이런, 곤란한 일이 벌어질 것 같구나. 오메가는 자녀들에게 속삭인다. 핫스팟 오메가의 네필림 무리가 아오바 시티를 향해 돌진한다. 네필림들이 아오바 시티를 완전히 박살 내기 전에 근원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제타로 향하는 길, 세계는 노란 물결로 가득했다.


 당신의 말에 부응하듯 전에 본 적 없는 네필림ㅡ 노른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옆에는 건물만 한 크기의 거대한 나무가 있다. 유그드라실, 핫스팟을 만들고 세계에 비극의 뿌리를 내린 근원.


  유그드라실과 노른의 거리가 멀어 당신들은 고민한다. 유그드라실을 처리하는 사이에 노른이 아오바 시티로 가버릴 수도, 노른을 처리하는 사이에 유그드라실이 더 깊은 뿌리를 내려 핫스팟 알파부터 다시 시작할지도 모른다. 당신들은 서로의 갈 길을 바라본다.


 세레나데와 악셀, 당신들은 유그드라실에게 나아간다.
 라이카와 할로우 로우, 당신들은 노른에게 나아간다.



 라이카, 당신은 언제나처럼 전투에 앞서 몸을 가볍게 한다. 체중이 사라지고 몸은 공중으로 떠오른다. 그런 당신의 발밑에 옥색의 불꽃이 타오른다. 노른을 노려본다. 저렇게 덩치가 큰 놈을 맞추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당신은 작열하는 탄환을 노른에게 쏘아 맞힌다. 노른의 가슴팍에 꽂힌 탄환은 로우의 색으로 불타오른다.

 그러나 노른의 가슴에 푸른 구멍이 생긴 순간 세계가 입을 연다. 하늘이 열리고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간다. 주변에 있는 줄도 몰랐던 탄피, 물병, 오더 자켓... 모든 것들이 새하얀 빛과 함께 하늘로 치솟기 시작한다.


 라이카, 당신은 그 너머로 보이는 것들을 눈치챈다. 오렌지빛으로 물든 낡은 세계, 저곳은 분명 1987년이다. 노른을 죽이면 이 통로는 확실히 열릴 것이다.  1987년의 빛바랜 세계는 당신들을 향해 말한다. 기다리고 있어. 너희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어.


 물론 그곳에 당신은 없다. 라이카, 당신에게 허락된 세계는 이 세계뿐이다.


 그리고 1987년으로 돌아가 아사히를 구한다면? 지금의 아사히는 어떻게 되는 거지? 사라지겠지?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한 삶을 살다가, 평범한 남자와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살겠지. 그곳에 나는 없겠지. 나 같은 건 어디에도 없겠지.

 노른은 유그드라실과 함께 나타났다. 그러니 유그드라실만 처리하면 노른은 움직임을 멈출 것이다. 노른이 멈추면 1987년으로 이어진 통로 또한 사라질 것이다. 그래, 그렇게 해. 모르는 척 넘어가서 함께 유그드라실을 물리치는 거야. 너만 조용히 하면 아무도 모를 거야, 라이카. 닥쳐. 이 허망한 우주에 혼자 남겨지는 건 죽어도 싫잖아?


 달콤한 비겁함이 당신의 마음을 위로한다. 심지어 간단하기까지 하다. 도저히 노른을 잡을 수 없을 것 같아서 포기하고 유그드라실을 함께 공격하러 왔다고 하면 된다. 그걸로 아사히는 이 세계에 남는다. 혼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


 "ㅡ아."

 어린 왕자라는 소설에는 30초마다 가로등을 껐다 켜는 멍청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자전이 빠른 행성의 주민을 위해 쉬지 않고 가로등을 점멸한다. 누구를 그를 비웃고, 누구를 그를 동정한다. 하지만 빛 한점 없는 우주를 헤매는 당신은 그 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다. 끊임없이 점멸하는 옥색의 빛 ㅡ 그것은 이 우주의 유일한 등대였다.
 
 그러니, 할 수 없다.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녀석이 나를 비추는 한 절대로.

 이번에도 당신은 그 빛에 의지해 항로를 정한다. 목표는 행복.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 아사히의 행복, 그리고 당신의 행복.


 당신은 세레나데와 악셀에게 전달한다. 1987년으로 넘어가는 통로에 대해서.



 할로우 로우, 당신은 보았다. 당신 또한 보았다. 노른의 비명이 찢은 하늘 너머로 보이는 낡은 잿빛의 세계를. 그리고 라이카의 얼굴에 잠깐 스치고 지나간 굴욕적인 환희를.

 이대로 1987년으로 세레나데와 악셀을 보내면 어떻게 될까? 아사히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사히가 이 세계로 넘어오는 일은 없다. 그리고 라이카는 혼자가 될 것이다. 같이 영화를 보고 싶어 했던 마음조차 없던 것이 될 것이다.

 그때, 라이카가 세레나데와 악셀에게 정보를 전달한다. 


 말해버렸다, 저 녀석. 그렇겠지. 당연히 얘기하겠지. 라이카는 단순하고 신경질적이지만 순수하다. 자신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일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당신은 라이카의 부탁을 쉽게 들어주지 못한다. 들어주고 싶지 않다.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라이카를 설득해본다.


 그건 나도 동감이다.


 하지만 이건 좀 비겁하지 않냐.

 



 우린 둘 다 한 번 죽었다.

 동료들과 대승을 기원하며 나섰던 기습 작전 날.
 그리고 아버지가 이게 마지막이니 한 번만 와달라는 말에 억지로 집으로 향했던 날.

 홈런인 줄 알았던 야구공은 폭탄이 되어 일대를 불살랐고
 아버지의 캔버스에 그려진 천사는 피를 흩뿌리며 날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의 삶은 선물 받은 것이다.

 제때 제거되지 못한 오류가 바이러스가 되었다. 바이러스에겐 과분한 삶이었다. 라이카, 당신은 로우에게 말한다.


 할로우 로우, 당신은 그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 라이카의 존재를 부정해야만 아사히에게 삶을 돌려줄 수 있다는 말에 순응할 만큼 무력하지 않다. 1987년에서 온 두 사람과 함께 떠나라는 말에 당신은 저항한다. 조금 전 잠깐이나마 라이카의 얼굴에 스쳤던 구슬픈 환희를 기억한다. 이 녀석을 혼자 두고 가는 일은 없다.


 그날 죽었던 건 너 혼자만이 아니야. 멋대로 나에게서 이 세상을 빼앗아가지 마라. 당신은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약간 겁이 났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정하고 나니 두려움이 사라졌다. 물론 라이카 녀석은 안 된다고 하겠지. 이대로 라이카가 자신을 내동댕이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땐 나도, 어? 나도 터질 거니까, 응, 탄환을 머금고 있는 총을 우습게 보지 마라.


 하지만 라이카는 당신을 쥐었다. 당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열 손가락에 힘을 주어 당신을 붙잡았다. 지금의 자신도, 앞으로의 미래도, 아사히와의 추억도 전부 포기할 수 있다고 해놓고는 당신만은 붙잡았다.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라이카 당신은 할로우 로우와 함께 죽고 싶다.



 그때, 노른이 울부짖었다. 당신들은 노른의 메시지를 듣는다. 노른은 파멸을 선택한 당신들에게 안식을 약속한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파멸을 선택한 게 당신네 품에 안기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할로우 로우, 당신은 피식 웃으며 총구를 겨냥한다.


 노른의 시곗바늘이 돌아간다. 찌그덕찌그덕,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시간을 가속한다. 유그드라실에 맺혀 있던 검붉은 과실이 뒤룩뒤룩 살이 찐다. 과육에 살이 오르고 속이 울렁일 정도의 단내가 풍겨온다. 휘어진 나뭇가지에서 과실이 떨어진다. 악셀과 세레나데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과실을 피해 물러선다. 파과는 하얀빛을 터트리고 당신들은 그 빛에 잠긴다.


 그 빛에 지지 않으려 당신들은 두 눈을 부릅뜬다.



 당신들 사이를 나누던 공간이 점점 흐릿하게 변한다. 점점 더 색이 진해지는 유그드라실과 달리, 노른은 점점 더 오래된 필름의 음영으로 변해간다. 라이카, 당신은 할로우 로우와 함께 유그드라실이 있는 곳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그리고 악셀과 세레나데를 이곳으로 오게 해야 한다.

 당신은 늦을세라 그 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유그드라실을 우리가 처치하겠다, 이쪽으로 건너오라, 지극히 단순한 메시지였다.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 두 사람이 더 잘 알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너머에서 세레나데의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안다, 하지만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인가? 두 사람이 떨어져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 게 아니다!


 그리고 라이카 당신은 비로소 이해한다. 그들은 이곳을 지키겠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논리도 명확하다. 돌아가는 것을 결정하는 건 그들이다. 라이카와 로우가 가라고 해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안다. 이 세계는 결코 필사적으로 지켜낼 만한 곳이 아니다. 이곳에선 매일 싸움이 벌어지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 싸움의 의미조차 알지 못한다. 기계적으로 네필림을 무찌르고 저녁이 되면 본부에 돌아온다. 다음날이 되면 또다시 싸운다. 언제까지? 네필림에 찢어 발겨지는 그 날까지.

 그렇기에 원한다. 그 두 사람이 이 세계의 결말을 바꿔주길. 설령 그것으로 인해, 라이카 당신의 존재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리고 지금의 할로우 로우와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좋다. 그보다 당신은 원한다.

 니이자키 아사히가 가족들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세계를.
 할로우 로우가 다시 한번 홈런을 날릴 수 있는 세계를.

 당신은 필사적으로 설득했다. 아니, 부탁했다. 운좋게 살아남은 바이러스의 한 조각이었던 당신은 바란다. 이 세계를 재부팅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주기를.

 그런 당신의 간절함은 두 사람에게 닿았다. 이내 마음을 먹은 듯 악셀은 운동화 끈을 졸라맨다.


 라이카, 당신은 쓰게 웃는다. 고맙긴 하지만 그 말을 긍정할 수는 없다. 모두가 땅을 딛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분명한 물리 엔진의 오류이다. 당신은 이 세상의 오류다. 그것만큼은 세레나데와 악셀이 틀렸다. 하지만 기뻤다.



 이미 한번 결정된 세계를 다시 돌아가서 바꾼다? 당신들에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세계의 웜홀에 빠진 가련한 미아들이 무슨 자격으로? 어디선가 세계가 속삭인다. 악셀, 당신은 웃으며 대답한다. 세계를 바꾸다니? 그런 거창한 짓을 하려는 게 아니다. 기울어진 액자를 다시 박으려는 것뿐이다.
 
 왜곡된 것은 이 세계이다. 잘못된 것은 이 세계이다. 오류는 이 세계이다.


 시마무라, 그 아이는 좀 이상해.


 기억 저편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가 탄산처럼 떠오른다.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누군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그들에게 엘 K. 시마무라 당신은 이상한 아이였다. 아니, 생각해보니 누구라고 규정할 필요도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든 당신과 조금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론은 늘 '넌 이상하구나'였으니까.

 그래서 당신은 사람이 아닌 다른 것들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기계, 동물, 건물, 인형... 뭐든 좋았다. 사람이 아니면 일단 좋았다. 사람이 아니면 그 누구도 당신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당신은 언제나 당신이었을 뿐인데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정상이기도 했고 비정상이기도 했다.


내가 잘못한 거야?


 당신이 그리 물으면 아무렇지 않게 이상하다고 손가락질을 하던 사람들도 머쓱한 듯 눈을 피했다. 또는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했다. 세상은 당신이 무얼 해도 당신을 이상하다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당신만 인정하면 모든 게 끝난다는 듯이 몇 년에 걸쳐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사람이면서도, 당신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의 존재로 당신은 당신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단 한 명이라도 당신을 긍정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세상의 주장은 진실이 아니었다. 당신은 목도를 들고 세상을 향해 말했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ㅡ그러니
 라이카와 할로우 로우, 너희들도 오류가 아니다.
 이 세상이 너희를 오류라 규정하러 든다면, 내가 그것에 반기를 들겠다.

 비뚤어진 액자는 고쳐 달면 된다. 그럼 알게 될 것이다. 기울어진 건 우리들이 아니라, 이 세상이라는 걸. 그리고 그곳에 진짜 라이카와 할로우 로우도 있을 것이다. 오류에 휘말린 너희를 제대로 된 세계의 일원으로 만들 것이다.

 그거, 아까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인데.

 세레나데, 당신은 세계의 스산한 재잘거림 속에서 또렷하게 말한다. 당신의 목소리가 악셀에게도 닿는다. 유그드라실의 과실들이 쏟아내는 새하얀 빛 때문에 실명할 것 같지만, 당신은 눈을 감고 조용히 마음을 투사한다. 마치 과거에 악셀과 목검을 부딪으며 대화를 나누던 그때처럼.


 네가 팔을 뻗기도 전에 나는 안다. 네가 달려오기 전에도 알고 네가 물러나기 전에도 너를 안다. 너는 항상 그곳에 있고, 나도 항상 이곳에 있다. 수없이 많은 검을 나누어도 결국 우린 처음 시작한 그 자리로 돌아와 서로에게 인사를 나눈다. 그래서 검도가 좋았다. 너와 함께 한 나날이 좋았다.

 두 명의 미아는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미아의 권리이니까. 악셀, 당신은 먼저 노른을 향해 뛰어간다. 세피아 색의 공기가 당신을 구기려 든다. 당신은 선언한다.

 



 라이카, 당신은 악셀과 바톤 터치를 하고 유그드라실이 있는 곳으로 뛰어든다. 세레나데는 당신들이 도착할 때를 기다리며 홀로 유그드라실을 견제하고 있었다. 기다려, 지금 갈 테니까!


 그때, 유그드라실의 머리 위에 묵혀 있던 구름이 마치 배속을 높인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슥 하고 사라진다. 구름이 사라진 자리엔 맑은 태초의 하늘이 펼쳐진다. 그 빛에 눈이 부셔 소매로 얼굴을 가리기도 전, 이번에는 발밑이 툭ㅡ 하고 꺼지더니 보드라운 흙으로 뒤바뀐다. 따뜻한 빛과 부드러운 흙, 기분 좋다ㅡ 아니야! 아니야, 이건!

 라이카, 당신은 화들짝 놀라 로우를 움켜쥐고 뒷걸음질 친다. 조금 전까지 당신의 발밑에서 당신을 부드럽게 감싸던 흙이, 당신의 발과 다리에 멋대로 싹을 틔우려 하고 있었다. 씨앗이 살을 뚫는 듯한 고통에 뒤로 물러선다. 머리 위에서 내리쪼이던 햇살은 당신의 머리 위로 유그드라실의 뿌리를 싹 틔우려 하고 있었다.


 세레나데, 당신은 빛에 현혹되지 않고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둘 다 유그드라실의 일부가 되어 신세계의 싹이 되었을 것이다. 할로우 로우, 당신은 불쾌함 속에서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두지는 않지. 유그드라실도 결국 나무에 불과하다. 당신은 총구에서 불의 입자를 쏘아 올린다.

 탄환의 스치고 지나간 유그드라실의 껍질에 맑은 주홍빛의 불티들이 달라붙는다. 불티들은 유그드라실을 파먹으며 가지를 태운다. 유그드라실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순간...


 유그드라실의 주위에 있는 풀과 나무, 그리고 네필림과 동물들이 가리지 않고 유그드라실을 향해 뛰어든다. 유그드라실은 뛰어드는 그들을 가지로 쥐어 자신의 껍데기 사이로 욱여넣는다. 핏빛과 살빛이 흥건하더니 곧 신성한 푸른 연기로 승화되어 유그드라실과 하나가 된다. 모든 포옹을 마친 유그드라실은 변함없이 온화한 표정으로 당신들을 지켜본다. 유그드라실의 머리 위에서 검은 나뭇잎이 피어오른다.

 당신들은 절망한다.

 전쟁 중에 너무나 압도적인 광경을 목격하면 인간은 감상에 빠져든다고 한다. 이 거대한 세계의 보잘 것 없는 일부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ㅡ 그리고 인간은 그 경건함 속에서 죽는다. 하지만 세레나데, 당신은 그런 정신적인 싸움에서 질 생각 따윈 추호도 없다. 떠나기 전 당신은 둘을 향해 외친다.


 당신의 목소리에 라이카와 로우는 고개를 퍼뜩 든다. 라이카는 당신을 잠시 응시하다가 유그드라실을 향해 총을 뻗는다. 그의 모든 동작에서 절대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당신은 그들을 믿고 당신의 버디가 있는 건너편으로 향한다. 당신을 흉포하게 적시고 있던 색의 향연이 사라지고 메마른 세계가 시야를 가린다. 당신의 버디는 그곳에 있었다.



 세레나데가 넘어가자 흐릿하게 출렁이던 벽이 완전히 사라진다. 이제 두 번 다시 세레나데와 악셀을 다시 만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러설 곳은 없다. 라이카, 당신은 당신의 버디에게 말한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세계를 재부팅한다. 이 세계에 남은 당신과 당신의 버디는 결국 지옥의 구덩이로 들어가게 되겠지만 당신은 그것이 두렵지 않다. 지옥의 빨간 불도 로우의 초록 불로 태워버리면 그만이지. 그리고 나는 케르베로스를 죽이고 그 자리를 탈취하는 거다. 그땐 아예 케르베로스라고 이름을 바꾸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하하ㅡ

 다소 우스꽝스러운 공상과 함께 당신은 억지로 여유를 되찾는다. 절대 네 놈의 일부가 되진 않을 것이다. 당신은 할로우 로우를 들고 유그드라실의 보이지 않는 눈을 노린다. 천연덕스럽게 감고 있는 그 눈을 터트릴 것이다.

 하지만 역시 두려움이 더 강했던 것일까. 서브 머신건에서 쏘아 올린 탄환이 공중을 향해 날아간다. 제길, 왜 안 되지? 당신은 초조한 마음에 연신 총신을 바로 잡는다.

  할로우 로우, 당신은 라이카의 손에 찬 땀을 느낀다. 이 녀석, 긴장할 땐 늘 이런 식이다. 그리고 한 번 긴장하면 싸움이 끝날 때까지 침착해지지 못한다. 당신은 마음을 다잡는다. 언제나 그래왔듯 이제부터는 당신이 싸우는 수밖에 없다.



 노른은 새로이 찾아온 두 먹잇감을 향해 가혹하게 시계의 초침을 진전시킨다.


 세피아 빛의 세계가 조금 더 색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마치 스케치북에 방금 스케치를 한 것처럼 옅은 연필 자국만 남아 당신들의 형태를 그린다. 지우개로 지우면 당장이라고 지워질 것만 같아. 소멸의 공포가 당신들을 엄습한다.

 세레나데, 당신은 본디 이런 정신 공격에는 강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이번 공격에는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당신은 하얀 도화지에서 벗어나려고 손을 휘저어보지만 그럴수록 새하얗게 바라고 만다.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 세계 속에서는ㅡ 알고 싶지 않은 타인의 마음도, 추악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여긴 아무것도 없으니까. 모든 것이 ffffff로 물들고 당신도 ffffff가 되어 그토하던 무지의로 갈 수 있다 이쪽으로 오렴


가족들은 괜찮다고 했었다 다 거짓말이었지만 엄마가 물이 마시고 싶다고 생각해서 물을 가져다준 날 엄마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한다 생일 선물로 축구공을 사줘도 될지 고민하는 아버지에게 야구공이 더 좋다고 했다가 하일 아버지의 표정이 굳었던 것을 기억한다 동생이 친구와 대화할 때마다 문을 꼭 잠그고는 내 발소리만 들려도 소스라치게 놀라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전부 기억한다 어떻게 기억하지 않을 수 있겠어 마침내 가족들의 머릿속에서 나를 깨끗하게 날리고 돌아섰을 때 나한테 이런 이상한 능력이 있다는 걸 알기 전의 온화한 집으로 돌아가는 걸 봤던 그 날, 그날의 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나는 전부 기억해 영원히 기억할 거야 이 기억이 나를 평생에 걸쳐 좀먹을 거야 아닌 척하고 있지만 지금도, 치열하게 싸우는 이 가운데에서도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서는, 차라리 저 표백된 세계로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어 어떻게 어떻게 자유로워져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이런 능력 갖고 싶지 않았어 이런 세상

 


 그런 당신의 도화지를 악셀이 찢고 들어온다. 다시 세피아 빛의 세계가 돌아온다. 악셀, 당신은 세레나데를 삼키려고 한 노른을 난도질한다. 무엇도 당신의 버디를 데려갈 수 없다.

 운명에 맞서는 너의 노래를 부르라고. 세레나데, 당신은 언젠가 그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언제더라? 엘과 처음 목도를 부딪친 날이던가? 아니, 아사히와 만났던 날?

 ...아, 기억났다. 그날이었다.
 멋대로 가족들의 기억을 지우고 도망쳐 나와, 다른 마을로 떠나겠다고 했던 그 날.
 엘은 당신은 지탄하지도 않고 말리지도 않았다. 그저 그렇게 말했다.

 "운명? 그딴 거 콧노래라도 부르면서 지나쳐버려. 나는 네 편이야, 타츠미."

 당신의 마음속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얼룩이 사라진다. 세레나데라는 이름은 당신이 정한 것이 아니다. 그 이름은 엘이 정해주었던 것이다. 당신이 가장 비겁했던 날, 당신이 가장 초라했던 그 시간에 당신은 그에게 지금의 이름을 받았다.

 세레나데라는 용기의 이름을.

 당신은 노른을 바라본다. 노른은 새로운 안식을 위해 초침을 돌린다. 쫀득쫀득 흘러가는 초침 소리에 맞춰 당신은 두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난다. 이 이름이 존재하는 한 당신이 약속하는 안식에 몸을 맡길 수는 없다. 세레나데, 당신은 마지막까지 노래할 것이다. 당신에겐 그럴 용기가 있으니까. 왜곡된 세계를 향해 사랑을 외칠 용기가.



 자기혐오에 빠져든 파트너를 위해 할로우 로우, 당신은 탄환에 불을 먹인다. 그리고 도통 움직이지 못하는 버디를 대신해 방아쇠를 당긴다. 옥색의 작달막한 불덩어리가 유그드라실의 눈을 꿰뚫고 지나간다. 그 순간, 세상이 표백될 정도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온다.

 홈런ㅡ 당신의 익스플로전은, 마치 당신의 전성기 시절의 야구공처럼 구장, 아니 세계을 뚫고 날아오른다. 그 폭발력에 라이카 또한 정신이 든다.

 유그드라실은 비명을 지른다. 나부끼던 나뭇잎들이 급속도로 성장해 검은 이파리를 틔운다. 하나하나가 거대한 우산인 양 자라난 검은 잎파리들은 로우가 터트린 새하얀 빛을 가린다. 마치 암막 커튼을 친 것처럼 세계가 새까맣게 변한다.

 그 암흑 속에서 유그드라실이 마침내 눈을 뜬다. 유그드라실의 거대한 동공 안에는 수없이 많은 네필림과 동물의 눈동자가 자기 좋을 대로 이곳 저곳을 바라보며 부조화를 이룬다. 당신은 그 광경을 보고 경악한다. 그때 유그드라실이 다시 한번 외친다.


 유그드라실에서 뻗어져 나온 핏빛의 줄기가 검은 도화지에 뭔가를 그리기 시작한다. 산과 나무를 그리는 듯하더니, 나중에는 성, 그다음에는 도시, 그다음에는 모든 것이 파괴된 폐허를 추상화처럼 그린다. 그리고 떨어져 있던 핏빛 선들이 서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당신은 눈치챈다. 우릴 가두려는 것이다! 당신은 도망치라고 라이카에게 소리친다.

  라이카는 당신을 품에 안은 채 아직 핏빛 선들이 이어지지 않은 곳을 향해 뛰어든다. 유그드라실의 수백 개의 눈동자가 당신을 뒤쫓는다. 할로우 로우, 당신은 총구로 검은 벽을 두들긴다. 검은 벽에서 바늘 같은 틈새가 생기고, 거기서 하얀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당신은 온 힘을 다해 라이카를 그 틈새로 밀어 넣는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당신들은 원래 세계로 돌아온다. 라이카, 당신은 총천연색으로 범람하는 광경에 구토감을 견디며 말한다.


 이번에야말로 끝을 낼 것이다.



 이제 몇 분도 채 남지 않았다. 노른은 필요 없어진 시침을 떼어 악셀 당신을 노린다. 불길한 예감이 당신을 덮쳤다.


 시침은 당신을 향해 묵직하게 떨어진다. 그리고 당신은 깨닫는다. 노른과 거리가 멀어 시침의 크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기둥? 탱크? 건물? 점점 시침의 크기가 와닿는다. 당신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시침의 규모에 전의를 상실한다.

 그때, 세레나데가 당신을 밀쳐낸다. 소름 끼칠 정도로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시침이 땅 위로 떨어진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주위가 부르르 흔들린다. 이대로 세계가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처음으로 싸움을 하면서, 당신은 이 전투의 규모에 압도된다. 당신들이 상대하고자 했던 것은 정말로 세계 그 자체였던 것이다.

 세레나데, 당신은 버디의 불안함을 눈치챈다. 그리고 그에게 온기를 전하기 위해 다가간다. 


 하지만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한 악셀의 마음을 완전히 붙드는 것은 실패했다. 악셀은 공포에 압도되어 있었다. 정말 이길 수 있는 걸까? 운 좋게 해치웠다고 해도 타이밍이 맞지 않아 노른을 먼저 쓰러뜨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변명인지 도피인지 모를 고민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당신은 한 번 생각에 사로잡히면 벗어나지 못한다. 그 고질병이 왜 하필 지금…

 좋아, 벗어날 수 없다면 더욱 깊이 빠져드는 수밖에.

 악셀, 당신은 눈을 감고 당신의 모든 정신을 이 ‘세계’와 일체화시킨다. 바람 한 점 없는 죽어가는 공간에 모든 것을 몰입한다. 당신은 이곳이며, 동시에 이곳은 당신이다. 당신의 영혼이 잿빛으로 물들어간다. 이윽고 모든 것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당신은 세계에 묻는다.

  만약, 노른만 먼저 해치운다면?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세계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 당신은 내면의 세계로 깊게 빠져든다. 사물이 사라지고 오로지 당신만 남는다. 이곳엔 세레나데조차 없다. 당신은 답을 찾아 헤매인다. 모든 뇌세포에 먼지가 끼는 듯하다. 피곤하다.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의욕이 사라져간다.

 지쳐있던 몸은 세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서져 내린다. 당신은 부서진 당신을 레고 조각처럼 쌓아 올려 겨우 앞으로 나아간다. 이 앞에, 바로 이 앞에 정답이 있다ㅡ


 당신 앞에 IF의 세계가 펼쳐진다. 당신과 세레나데는 노른을 향해 이른 최후의 일격을 날리고 있었다. 모든 시계침을 잃은 노른은 와장창 떨어진다. 그리고 당신들은 상황을 방관해본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그때, 노른의 몸에서 가장 작은 톱니바퀴 하나가 굴러 나온다.

 톱니바퀴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운 뒤 혼자서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홀로 힘겨운 싸움을 하는 톱니바퀴 주변으로 자성이 생긴 듯 무너졌던 노른의 장기들이 모여들어 모습을 복원한다. 부서졌던 시계침마저 원래대로... 아니 그보다 더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시침, 분침, 초침으로 이루어졌던 세 개의 초침은 수천 개로 늘어 마치 털처럼 시계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또각또각찌각째깍깍깍깍깍깍깍깍깍깍깍깍ㅡ 수북한 소리가 고막을 파고든다.

 그 순간, 악셀 당신은 눈을 뜬다.


 프리코그니션의 답은 명확했다. 노른만 먼저 쓰러뜨려선 안 된다. 절대로. 당신은 이미 만날 수 없게 된 라이카와 할로우 로우를 떠올린다. 정말로 너희들에게 달렸다.



 제길, 너무 단단해. 라이카, 당신의 힘만으론 녀석의 뿌리를 뽑을 수 없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중력이 필요하다. 놈을 뿌리 뽑기 전에 당신이 당신의 힘에 짓눌려 죽을 것이다. 그때 할로우 로우가 말했다.

 “중력만으로는 어려워. 놈을 통제해. 내가 그 틈에 불씨를 날릴게.”
 “할 수 있겠어?”
 “뭐, 까짓거!”

 로우는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정말로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이번엔 로우를 만류할 수가 없다. 로우의 말대로 당신의 힘만으로는 녀석을 물리칠 수 없으니까. 지금은 로우의 힘에 기대는 수밖에. 당신이 중력으로 놈을 짓이기는 동안, 로우가 놈을 조금씩 불태우면 된다.

 “그래, 힘을 합치면 돼.”

 라이카, 당신은 중력을 끌어모은다. 주위의 사물들이 밑으로 꺼진다. 당신은 꺼진 대지 위에 유유히 서서 유그드라실을 향해 외친다.


 당신이 있는 곳에서부터 유그드라실이 있는 곳까지 땅이 계단 형태로 패인다. 당신은 모든 정신을 집중해 유그드라실의 뿌리를 파헤치려 한다. 중력이 유그드라실의 뿌리를 파먹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여린 뿌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서 불을 지르면 된다. 그걸로 모든 게 끝난다, 그것으로 아사히에게 새로운 삶을…


 왜 대답이 없어! 당신은 로우를 본다. 그리고 그제서야 당신은 당신이 허공을 헤집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긴 총신은 부러지고 없었으며 당신이 잡고 있는 건 방아쇠뿐이었다.

어? 이상하다, 조금 전까지 대화를 나눴는데? 협공하자고 계획도 세웠었는데?
언제부터?ㅡ


 ㅡ그때 이미.

 당신은 망연히 로우의 방아쇠를 어루만진다. 그리고 웃는다. 아니, 이렇게? 인사도 없이? 어이없어. 웃음만 나와. 울고 싶어도 황당해서 눈물이 안 나온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로우는 늘 그랬다. 몸도 없는 주제에 언제나 당신을 지키려고 했다. 위험한 순간엔 먼저 적들을 공격하곤 했다. 아사히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지 못할 때도 아사히에게 넌지시 그것을 전해주려고 했다. 당신은 그런 로우의 성급함이 싫었다. 항상 멋대로 앞서가는 주제에 버디라고 하는 것이 싫었다.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싫다.

 라이카, 당신은 모든 제한을 제거한다. 이제 당신은 GARDEN의 소속도 아니고, 오더도 아니다. 당신은 그저 무서운 줄 모르고 중력을 부리는 자연재해일 뿐이다. 네필림이나 다를 바 없다.


 망가진 로우를 안고 한 걸음씩 계단 밑으로 나아간다. 당신이 굳이 유그드라실에게 다가가지 않아도 어차피 끝난다. 하지만 당신은 구태여 다가간다. 당신 주위로 뭉쳐 있던 중력이 더욱 강력하게 땅을 부순다. 계단은 점점 더 밑으로 꺼지고 유그드라실과 당신 또한 지저로 향한다.


 착각일까, 당신의 버디가 속삭인다. 마지막까지 네 마음대로 해놓고 이래라저래라하지 마. 당신은 방아쇠를 안고 지옥을 향해 걸어간다.


 용암이 들끓는 강을 맨발로 건너가자. 악마들의 광소에 대고 삶을 구걸하자. 손톱을 씹어가며 배를 채우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도착하겠지. 내가 공을 던지면 네가 쳐올리고, 그 공이 그리는 궤적을 보며 환호할 수 있는 곳에 도착하겠지. 그리고 그 공이 닿은 곳에 아사히가 있겠지.

 네가 싫어, 로우.
 ㅡ그러니 널 붙잡고 지옥에 갈 거야.
 
 마지막 순간, 찌부러뜨려 지는 유그드라실과 함께 라이카 당신의 몸은 형광의 불꽃으로 타올랐다.



 끝이 다가오자 노른은 당신들을 향해 속삭인다. 시간의 가장 잔인한 성질이 뭔지 아세요? 째깍째깍 그건ㅡ 째깍째깍 아무것도 안 해도 째깍째깍째깍째깍 서서히 사라지는 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 거랍니다ㅡ

 그러니 이번에 끝내야지. 악셀, 당신은 귀를 막고 노른을 응시한다. 소란스러운 시계 소리에 휘둘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프리코그니션 때문에 무리한 탓일까. 당신이 휘두른 대검은 힘없이 회수된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불안감이 엄습한다. 만약 라이카 쪽에서 아직 유그드라실을 해치우지 못했다면? 이 이상 버티기엔 당신의 몸도 한계에 다다랐다.

 세레나데, 당신은 악셀의 초조함을 눈치챈다. 그가 망설일 때야말로 당신이 움직일 때이다. 당신은 당신의 마음을 칼날처럼 가늘고 길게 만든다. 당신이 칼이고, 칼이 당신인 것처럼 느껴진다. 당신의 기백을 느낀 악셀이 속삭인다.


 시침에 이어 분침마저 떨어져 나가고 이제 초침만이 남는다. 초침은 살벌한 속도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파괴해야 한다. 더는 돌이킬 수 없다. 당신은 악셀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대답한다.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의지와 의무가 당신을 양쪽에서 잡아당긴다. 그 장력에 의지해 당신은 노른의 한가운데에 칼을 박는다. 자물쇠에 열쇠를 꽂듯이. 그리고 당신은 역방향으로 칼을 돌린다. 노른의 시계가 역방향으로 돌기 시작한다. 강제로 돌아가던 시계는 쩌어억하고 운다. 노른의 몸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검은 금이 세레나데가 꽂은 칼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다.


 와장창, 노른이 깨진다. 그리고 세계가 서서히 색을 되찾는다. 당신들이 알던 색이다. 조금 전까지 온몸을 두르고 있던 빛바랜 갑옷이 함께 녹아 사라지는 듯하다. 당신들은 가벼워진 몸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1987년. 당신들이 살던 바로 그 세상이다.


 


 갑자기 색이 돌아온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당신들은 주위를 돌아본다. 기억을 찾았다곤 하지만 흐릿하게 남아있던 영상이 이제야 눈앞의 광경과 포개져 진해진다. 당신들은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본 뒤에야 비로소 확신한다. 드디어 돌아온 것이다.


 세레나데, 당신은 시멘트 바닥에 개의치 않고 칼을 내던져 버린 뒤 대자로 누워버린다. 하늘을 본다. 비가 오고 난 뒤의 하늘처럼 맑고 높다. 마치 하늘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악셀, 당신은 근처의 무너진 기둥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아사히를 발견한다. 조금 전까지 똑 부러진 목소리로 당신들을 안내하던 아사히 대신, 작은 손과 발을 가진 아사히가 색색거리는 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다. 당신들이 알고 있는 바로 그 아사히다. 당신은 아사히의 머리 위에 부서져 있는 돌 조각들을 쓸어내린다. 당신들은 아사히를 안아 들고 무너진 도시 한 가운데에 선다.


 지금 이곳엔 당신들을 괴롭히던 네필림도 유그드라실도 없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의 일. 머지않아 네필림이 태어나고 세상을 뒤덮을 것을 당신은 안다. 그리고 오더들이 태어날 것 또한 안다.

 당신들은 미래의 끔찍한 광경을 떠올린다. 오더들의 피로 얼룩진 형형색색의 세계. 당신들에겐 그것을 막을 힘이 있다. 라이카와 로우ㅡ 그 녀석들이 태어날 세상을 만드는 것은 당신들의 역할이다.


 오더가 자신을 오류라고 부르지 않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당신들이라면 할 수 있다. 이 세상은 오더의 피가 아닌 제대로 된 물감으로 그려낸 캔버스가 될 것이다.


 이것은 예언인 동시에 선언이다.

 


 

 ㅡ2017년, GARDEN

 할로우 로우, 당신은 오늘 두 가지 소식을 들었다.

 하나는 얼마 전 사건에서 당신이 구해준 아이가 오더로 각성하여 시설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졸업 축하해, 유즈루!"


 축하받는 상황은 익숙하지 않다. 유즈루, 당신은 적당히 둘러댄다. 하지만 그가 둘러댄다고 해서 축하를 멈출 아사히가 아니다. 아무튼 아사히는 유난이다.

 아버지로부터 도망쳤다가 GARDEN의 시설에서 보호를 받게 된 것이 엊그제 같건만, 어느새 당신도 어엿한 오더가 되었다. 처음엔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 좋다는 생각했다. 아버지의 천사로 살아갈 바엔 오더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가 연락하고 싶어 하시더라, 안 받을 거지?”

 하지만 인간이 아니게 된 뒤에도 아버지는 계속해서 연락을 취해왔다. 그래, 오더가 되었다고 해서 이 등의 날개 같은 문양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묘이 유즈루는 고개를 젓는다. 그럼 아사히는 더 묻지 않는다. 


 버디? 아, 버디. 당신은 고개를 끄덕인다. 모든 오더가 반드시 버디로 활동을 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당신 같은 초보자를 혼자서 활동에 투입할 리도 없다. 그래도 내심 시설에서의 성적은 좋았으니 바로 솔로로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최후변론을 마치고 사라진다. 어차피 만나야 할 버디라면 빨리 만나는 게 좋을 것이다.


 나한테 저녁이나 사줄 때가 아닐 텐데. 오늘 같은 휴일에도 나와서 일을 하고 있는 아사히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먼저 나온다. 당신은 장난치듯 얘기한다.


 당신은 아사히의 붉은 얼굴을 뒤로한 채 지부장실로 향한다. 그래, 그래도 버디가 생겨서 자신을 챙겨줄 사람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아사히도 자신의 삶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버디가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GARDEN의 명물인 1층 메이드 카페를 지나 꼭대기 층으로 향한다. 펄스에이더는 언제나처럼 온화한 미소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호선을 그리는 눈과 입을 누가 봐도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속내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인상이다. 한마디로 재수 없다.

 그래서 버디는 어디에? 그때, 하이톤의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뭐야 저 민트색은? 라이카는 눈이 부신 나머지 눈을 찡그렸다. 그러자 남자는 찡긋하고 윙크를 돌려보낸다. 아니, 윙크한 거 아닌데... 저 자식이... 수치심에 입술을 지끈 물자 펄스에이더가 그를 소개한다.


 이 민트색이 내 버디란 말인가. 유즈루, 당신은 속으로 한숨을 내쉰다.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버디를 만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 남자와는 절대로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상부의 명령을 거절할 수는 없겠지.


 콜 네임을? 이 남자한테? 당황스럽지만 그 감정마저도 숨긴다. 사실 콜 네임 따위도 어찌 되도 좋다. 누군가 당신을 임금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임금님이 되는 것도 아니고, 거지라고 부른다고 해서 거지가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 말에, 민트색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뀐다. 민트색은 뭔가 생각하더니 결심한 듯 라이카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시선의 높낮이가 같아진다. 남자의 민트색 홍채가 라이카를 꿰뚫어 보았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뭐에요, 라이카가 뭔지는 나도 안다고. 우주 실험을 위해서 인간들에게 멋대로 부려지다가 죽은 강아지의 이름이 아닌가. 이 남자 역시 내가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그런 이름을 붙여주다니. 쳇, 뭐 상관없다. 그런 이름도 좋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가 말한다.


 가능성.

 그 말에, 유즈루 당신은 어째서인지 말문이 막힌다. 조금 전까지 새하얀 사무 자료로 가득했던 사무실이 보랏빛과 검은빛의 우주로 바뀐다. 중력을 잃은 몸이 우주를 헤맨다. 처음부터 이곳에서 태어났던 것처럼 느껴진다. 원래 이렇게 되기로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때, 민트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지구를 발견했다.

 당신은 몸을 무겁게 하여 민트색의 땅에 발을 디딘다. 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우주에서 온 당신은 시력을 잃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당신을 할로우 로우가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당신은 말한다.


 아름다운 이름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펄스에이더는 신기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선대 지부장인 이모션 악셀세레나데의 요청에 따라 둘을 버디로 만들었을 뿐인데,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버디였던 것처럼 그들은 투덕대며 말을 잇는다.


 지금도 이 세계 어딘가에서 네필림과 싸우고 있을 두 거장을 떠올리며, 펄스에이더는 막을 내렸다.

 

 



END CREDITS

GM 류비엠

라이카(묘이 유즈루) 에이미

할로우 로우(아케인 슈로우) 우롱

이모션 악셀 (엘 K. 시마무라) 역설

세레나데 (미즈모토 타츠미) 베릴

니이자키 아사히 류비엠

펄스에이더 (카이 겐조) 류비엠

깡패 무리 류비엠
배경 아본

BGM 아본

가든 오더

시나리오 미야마에 카오루

 


Thanks you for reading

 

 



COOKIE

웃긴 장면이 너무 많았는데 후기가 진지해서 못 넣은 장면만 엄선함 근데 역설님 지분 실화인가

 

1. 오더 사랑 카드

 

2. 에반게리온 광인들

 

3. 엘밍아웃

 

4. 하지만 유그드라실이 너무 잘 피하잖아요

 

5. 어떻게 이런 생각을

 

6. 상사가 주말에 부르면 보통 그거죠

 

7. 꼰대를 부르는 새로운 방법

 

 

 이것으로 <WWW>의 막을 내립니다. 세션하는 내내 극장판 애니메이션 같은 거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안타깝게도 거기까진 능력이 닿지 않아서(?) 글로나마 최대한 극장판처럼 써보았는데 어떠셨을지 모르겠네요ㅎㅎ 많은 날조와 연출이 들어가 있지만... 제 사랑을 알아주실 거라고 생각하며^/^

 

 플레이를 한지 어느덧 3개월째인데, 지금 와서 돌이켜 봐도 모든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로 강렬한 세션이었습니다. 하기사 이런 이야기에서 어떻게 쉽게 헤어나올 수 있겠어요. 후기를 쓰면서 저도 지난 세션을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습니다. 이 멋진 세션에 함께할 수 있게 불러주신 류비엠님 정말 감사합니다! 세션 내내 류비엠님의 피땀 어린 노력과 사랑을 잔뜩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후기에 공을 들인다고 들인 만큼 전달이 너무 늦어져서 죄송한 마음 뿐이지만, 그만큼 오래 두고 읽을 수 있는 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후기를 읽으실 때마다 <WWW> 세션 때의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그런 후기가 되면 좋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너무나 멋진 시나리오를 써주신 미야마에 카오루님과, 멋진 세팅으로 시나리오의 감성을 100% 전해주신 아본님께도 감사 인사 드립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션인지! 저도 오래 오래 마음에 담고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What a Wonderful Member

 

 류비엠님 : 긴 시간 동안 수고하셨어요ㅠㅠ 륩님과 플레이어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평소와는 다른 형식으로 후기를 써보았는데 (덕분에 죽을 뻔했다) 어떻게...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줍) 워낙 분량도 길고 밀도도 진한 시나리오다 보니 플레이할 기회가 생길 수 있을까 싶었는데 탐라에서 덥덥덥하고 울자마자 너무나 갓멤버분들이 계신 팟에 투척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ㅎㅎ 클리어하고 나서야 이게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 마스터링인지 깨달아서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ㅠㅠ 류비엠님이 이 시나리오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껴지는 세션이라 다시 로그를 재탕해봐도 감동 그 자체더라고요. 구간 구간마다 플레이어들이 감정 이입을 할 수 있게 노력해주시고, 클라이맥스 전투 때도 진심으로 함께 싸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가든 오더에 최적화된 마스터... 그것이 류비엠이다(?) 노력해주신 만큼 저도 좋은 플레이어였으면 좋겠다는 낡은 기원을 담아 후기를 보내드립니다. 류비엠님하고 함께 하는 세션 늘 즐겁고 감동이니까요. 내년에는 더 자주 뵈었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ㅅ/

 

 우롱님 : 이 후기... 사실 우롱님 때문에 쓰고있는 거 아시죠(?) 흐어 아니야 아니야 부담갖지마ㅠㅠㅠ 아니 킹치만 세션을 진행하느라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라이카의 마음을 표현하려니 이런 방법밖에 없었다구요ㅠㅁㅠ 후, 세션이 시작하기 전에도, 세션을 하는 중에도, 세션이 끝난 후에도 라이카를 어엿삐 봐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우롱님ㅠㅠ 그려주셨던 팬아트도 보자마자 눈물 찔끔할 정도였고... 우롱님하고는 이게 플레이어로 처음 뵈었던 것 같은데, 이런 보물 같은 플레이어와 버디를 맺게 되다니 싶어서 내내 감사했습니다. 우롱님처럼 전력으로 세션에 뛰어들어 주시는 분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덕분에 같이 플레이하면 저까지 세션의 일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고 많은 버디 중에 저와 버디가 되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ㅠㅠ 후기에 쓰인 로우에 대한 제 감상, 어느것 하나 소홀히 쓴 게 없으니 제 감사와 사랑이 잘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ㅎㅎ 그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ㅁ/

 

 베릴님 : 베릴님 안녕하세용 히히 플레이어로는 처음 뵈었는데 워낙 갓플레이어시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저 든든한 마음으로 함께 세션할 수 있었습니다/ㅅ/ 실제로도 너무나 갓플레이어셨으며..ㅠㅠㅠ (자세한 건 후기에 있다는 입틀막 손짓발짓) 덩치 큰 리트리버 같으면서도 명석해서 모든 위기마다 가장 현명한 길을 선택하던 세레나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처음엔 도짓코일까 했는데 세션 진행하다 보니 도짓코는커녕 어찌 보면 저희 중에 가장 똑똑하고 강직했던 아이인 것 같더라고요. 로그 읽으면서 재차 느꼈습니다ㅠㅠ 중간 중간 넣어주시는 대사들도 하나같이 정곡이고... 후... 디스 이즈 베릴이구나 하면서 그저 즐거웠습니다/ㅅ/ 이 시나리오의 정서에도 가장 근접했던 플레이를 보여주시지 않았나 싶고요ㅎㅎ 덕분에 첫 플레이임에도 불구하고 저도 전혀 거리낌 없이 너무나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베릴님하고 세션하게 되어서 영광이에요ㅠㅠ 워낙 좋은 세션 많이 하시니 기회되면 베릴님하고 또 함께 하고 싶습니다ㅎㅎ 플레이어로든 마스터로든요! 그때는 저도 더 좋은 플레이어가 되어있을 테니 꼭 함께 해주시기에요/ㅁ/ 감사합니다!ㅎㅎ

 

 역설님 : 왜 이렇게 웃겨욬ㅋㅋㅋ 페이지마다 드립을 치셔가지고 로그 복습하다 웃겨 죽을 뻔 ㅠ 막판의 쿠키에서 역설님 지분이 얼마나 되는지 보란 말이에요(?) 여어튼... 티알 쉰 후로 오랫동안 못 뵈었다가 다시 뵙게 되었는데 재회 세션을 하필이면 또 <WWW>에서 하게 되다니 이것 또한 인연인지라 (불경) 다시 뵌 역설님 역시나 갓플레이어시군요... (은은) 세션할 때도 느꼈지만 후기 쓰면서 재탕하다 보니 진짜 이 사람은 천재다... 천재야... 하면서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렇게 느낀 구간들은 다 후기에 써놨으니 참고해주시고(?) 여튼, 역설님하고 다시 세션하게 되어서 솔직히 좀 신났었고ㅠ 아, 내가 진짜 복귀하긴 했나보다 하는 생각이 이때 처음 들었어서 감개무량했습니다. 오프로도 뵙고 싶은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영 어렵네요ㅠ_ㅠ 건강하시죠? (갑자기요) 건강하셔야 해요... 건강 챙기셔서 내년에는 예년처럼 또 같이 플레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ㅅ/ 역설님 세션에도 참가하고 싶고요!ㅎㅎ 역설님 세션? 당연히 찐한 밀도의 플레이와 후기로 찾아뵐 거니까요. 기회되면 꼭 불러주세요! 여태 저를 잊지 않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내년에 또, 기왕이면 자주 뵈어요!/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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